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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수리와 문제집 속 친구들 / 박연미
수리와 문제집 속 친구들 / 박연미
“엄마, 오늘은 놀면 안 돼요? 어제도 잔뜩 풀었잖아요.”
엄마는 수리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1학년 수학 문제집을 펼쳤어요.
“다른 아이들을 앞서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해.”
수리는 엄마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을 앞서면 뭐 해요? 놀이공원에 갔을 땐 윤서가 나보다 훨씬 앞에 서 있었는데 놀이기구는 같은 거 탔단 말이에요.”
엄마는 못 들은 척 오리가 그려진 뺄셈 문제를 설명했어요.
“수리야, 오리 다섯 마리가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었어. 그런데 세 마리가 어디로 가 버렸어. 그럼 오리는 모두 몇 마리 남았을까?”
수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어요.
“오리 세 마리는 어디 갔는데요?”
엄마가 대답했어요.
“글쎄….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은 오리가 몇 마리 남았는지 생각해 보렴.”
수리는 곰곰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리가 어디 갔는지 궁금해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어요. 눈만 이리저리 굴렸죠.
수리를 물끄러미 보던 엄마가 문제집을 앞쪽으로 넘겼어요.
“아직은 뺄셈이 어려운가 보구나. 그럼 덧셈을 해볼까?”
수리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는 붕어가 그려진 문제를 설명했어요.
“붕어 네 마리가 어항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조금 있다가 붕어 세 마리가 더 왔어. 그럼 붕어는 모두 몇 마리가 되었지?”
수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어요.
“엄마, 붕어 세 마리는 어디서 왔어요?”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때마침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수리 머리에 콩, 꿀밤이 떨어졌을지 몰라요.
엄마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수리는 혼자 중얼거렸어요.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 붕어는 어디서 왔을까?”
그때였어요. 수리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문제집 속 동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거든요. 엄마랑 공부할 땐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죠. 앞장 뒷장 넘겨봐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 문제집 속 동물들이 사라졌어요.”
엄마가 전화를 끊고 오자 수리가 문제집을 내밀었어요. 문제집을 살펴본 엄마가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어요.
“어? 열도 없는데 이상하네?”
엄마는 문제집 속 동물들이 사라졌다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자기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휴, 오늘은 그만하자.”
엄마가 방을 나갔어요. 혼자 남은 수리는 방 안을 찬찬히 훑어보았어요. 동물들이 어딘가 숨어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탁자 위에 놓인 동그란 어항을 보게 되었어요. 어항 안에는 금붕어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헤엄치고 있었죠.
수리는 어항 앞으로 다가가서 나지막이 물었어요.
“금붕어야, 네 친구들은 어디 갔니?”
금붕어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헤엄칠 뿐이었죠. 수리는 답답했어요. 금붕어가 알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수리는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 질렀어요.
“네 친구들은 어디 갔냐니까!”
그제야 금붕어가 수리 쪽을 쳐다보며 입을 벙긋거렸어요.
“궁금해?”
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어요.
“응, 넌 친구들이 어디 갔는지 알아?”
“알아, 그곳으로 데려다 줄까?”
“좋아!”
수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붕어가 공기방울을 따라 흔들리는 물풀을 입으로 톡톡 건드렸어요. 그러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요. 방 벽이 사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하더니 눈앞에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어요. 어항은 마을 한가운데 동그란 연못이 되었고, 작은 화분에 심긴 버드나무는 연못가에 선 커다란 나무로 변했어요.
수리는 연못으로 달려갔어요. 연못에는 붕어와 잉어와 메기, 개구리 등이 헤엄쳐 다녔어요. 연못 둘레 풀밭에는 말과 염소, 토끼,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었지요.
수리는 놀라서 입을 딱 벌렸어요. 그때 머리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네가 우리 마을을 궁금해한 수리구나?”
수리는 깜짝 놀라 버드나무 가지 위를 올려다보았어요. 동그란 안경을 쓴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수리야, 우리 마을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이 마을 선생이다.”
수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어요.
“이 마을은 무엇을 하는 곳이에요?”
“흠흠, 아이들이 더하기를 할 때 도와주러 가는 동물들이 사는 마을이란다.”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황갈색 바탕에 검은 세로줄무늬가 있는 날개를 털며 말을 이었어요.
“빼기에 나오는 동물들이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지. 한마디로 문제집에 나오는 동물들이 사는 곳이야.”
“와, 저도 이런 마을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수리가 신나서 소리쳤어요.
“흠흠, 그렇지. 우리는 문제에 나온 동물들을 궁금해 한 아이만 초대한단다. 그래서 널 이리 데려온 거야.”
말을 마친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동물들을 불렀어요. 코끼리와 기린, 사슴, 다람쥐, 오리 등 온갖 동물이 연못가로 모여들었어요. 줄을 타던 원숭이는 줄을 놓고 왔어요. 반달가슴곰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지요.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와 버드나무 가지 위에 빼곡히 앉았어요. 연못가는 금세 동물들로 바글바글했지요.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어요.
“여러분, 우리 마을에 기쁜 소식과 걱정스러운 소식이 한 가지씩 있습니다. 기쁜 소식은 수리가 우리 마을에 왔다는 것입니다.”
“수리야, 만나서 반가워!”
“수리야, 궁금했어!”
동물들이 저마다 인사를 건넸어요.
인사말이 잦아들자, 반달가슴곰이 앞발을 들고 물었어요.
“걱정스러운 소식은 뭔가요?”
“흠흠, 셈을 도우러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동물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다람쥐가 앞발을 들고 물었어요.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흠흠, 아직 모릅니다. 이유를 아는 동물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아무도 말이 없었어요. 서로 얼굴만 마주 볼 뿐이었죠.
그때였어요. ‘안내’ 이름표를 단 토끼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외쳤어요.
“큰일, 큰일 났어요!”
“흠흠, 무슨 일입니까?”
“슬기가 사람 인형 더하기 문제를 풀려는데 인형 한 개가 모자라요.”
슬기는 수리랑 같은 반 아이였어요.
“흠흠, 우리 마을 창고에 사람 인형이 넉넉하게 있지 않나요?”
수리부엉이 선생님의 물음에, 토끼가 숨을 할딱이며 대답했어요.
“오늘 토요일이라 덧셈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창고가 텅 비었어요.”
“흠흠, 이를 어쩐다?”
수리부엉이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에 휩싸였어요. 토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어요.
“어떡하죠? 다음 문제가 사람 인형 더하기 문제란 말이에요.”
그때 수리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제가 갈게요!”
“안 돼. 넌 진짜 사람이잖아!”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말렸지만 수리는 동물 마을을 돕고 싶었어요. 모험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인형처럼 꼼짝 않고 있을게요. 보내 주세요. 네?”
수리부엉이 선생님은 슬기가 앞 문제 답을 썼다는 소식을 듣더니 하는 수 없이 허락했어요.
“토끼는 빨리 수리를 데려다 줘요.”
토끼가 사람 인형과 수리를 나란히 세우고 지휘하듯 연필을 휘저었어요. 순간 펄럭펄럭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나더니 수리는 어느새 사람 인형이 되어 슬기 문제집 속에 들어와 있었지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슬기는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걸 보고 깜짝 놀랐을 거예요.
수리는 사람 인형 셋이 나란히 서 있는 줄 끝에 꼼짝 않고 서 있었어요. 옆줄에는 사람 인형 넷이 나란히 서 있었지요.
슬기는 더하기 문제가 어려운가 봐요. 연필을 꼭 쥐고 사람 인형 그림만 뚫어지게 보았어요. 수리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요. 슬기가 자기를 알아볼지도 모르니까요. 다행히 슬기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문제를 보며 한숨만 팍팍 쉬었어요.
‘슬기야, 너도 힘들겠다. 토요일인데 놀지도 못하고’.
수리는 마음속으로 슬기를 위로했어요. 하지만 슬기 귀에 들릴 리 없었지요.
그때 방 밖에서 슬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슬기야, 이리 와서 간식 먹어.”
슬기가 연필을 놓고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데 슬기가 방을 나가고 난 뒤였어요. 어디선가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수리가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옆 페이지에 있는 동물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였어요.
“어휴, 맨날 아이들 문제 풀이 도와주러 다니는 것도 정말 지겹고 재미없어.”
한 동물이 그러니까 다른 동물이 거들었어요.
“맞아, 오늘도 동물 마을로 돌아가면 또 문제 풀이를 도와주러 가야 할 거야. 사람 어른들이 아이들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공부를 시키니까.”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어요.
“그럼, 우리 동물 마을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놀러갈까?”
“어디로 가지?”
“놀이공원 벽에도 동물 그림이 많으니까 그리로 가자. 엊그제 다른 동물들도 거기로 간댔어.”
“좋은 생각이야.”
동물들이 와글와글 떠들더니 한순간에 조용해졌어요.
한참 후에 방문이 열리더니 슬기가 들어왔어요. 다시 문제를 보던 슬기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문제집 속에 있는 동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없었거든요. 사람 인형 문제만 빼고요.
“엄마, 문제집 속 동물들이 사라졌어!”
슬기가 놀라서 문제집을 덮고 방을 나갔어요. 순간, 수리는 동물 마을로 돌아왔지요.
“수리야,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칭찬해 주었어요. 수리는 어깨가 으쓱했어요.
“동물들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도 알아냈어요. 동물들은 매일 문제풀이를 도와주러 다니니까 지겹고 재미없대요. 동물들도 놀고 싶어 해요. 놀이공원에 간다고 했으니까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수리 말에, 수리부엉이 선생님이 양쪽 날개를 치켜들었어요.
“흠흠, 동물들도 놀 권리가 있어요. 우리도 실컷 놉시다!”
“만세, 우리도 놀자!”
연못가에 모인 동물들이 소리쳤어요.
“고맙다, 수리야!”
동물들이 입을 모아 소리치자 수리는 얼굴을 붉혔어요.
그때 방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수리야 뭘 하는데 이렇게 시끄럽니?”
엄마가 문을 벌컥 열었어요. 순간, 동물 마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방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엄마가 보았을 때, 수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요.
“수리야, 간식 먹으렴.”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수리는 문제집을 보며 말했어요.
“동물들아, 다음에 또 만나자!”
<당선소감> 아이들 마음에 좋은 씨앗 뿌릴 수 있는 글 쓰겠다
“언제까지 우리를 파일 속에 가둬둘 거야?”
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따졌습니다.
“미안, 내가 좀 더 열심히 쓸게.”
“그래, 내가 보기에도 넌 너무 게을러. 툭하면 힘들다고 투정이나 하고 말이야.”
저는 시무룩해졌습니다. 전화는 언제, 어떻게 올까? 속으로 상상한 적이 많습니다. 혼자 길을 걸을 때면 당선 전화를 받고 기뻐하는 제 모습을 떠올리며 남몰래 웃음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전화는 좀체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도 기다려 보고, 저렇게도 낙심하며 숱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 12월엔 베란다 창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전화해!” 목소리는 흩어져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또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전화가 왔습니다. 그동안 상상했던 제 모습은 간데 없고 눈물만 나왔습니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제 글이 재미있다며 칭찬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 준 ‘동어모’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함께여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신 원유순 선생님과 안미란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좋은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가르쳐 주신 이만교 선생님, 정해왕 선생님, 이미현 선생님, 이미애 선생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매순간 기도로 응원해 준 가족들과 소중한 조카 채원과 정원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저와 동행하시고 늘 새로운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1971년 전라남도 목포시 달리도에서 태어남.
● 진화하는 글쓰기공작소 수료.
● 어린이책작가교실 수료.
심사평 /공부에 묻혀 사는 어린이 현실 포착, 기발한 상상력으로 흥미있게 풀어내
근래 응모작의 소재가 대부분 어린이의 팍팍한 현실에 두었다면 올해는 부쩍 애완동물을 소재로 한 동화가 많았다. 고양이, 강아지는 물론 물고기, 새, 파충류 등 종류도 다양하여 읽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어린이의 현실에 기반을 둔 동화라도 올해는 밝고 유머러스하게 이끌어간 동화의 비율이 높아졌으며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간 판타지 동화가 제법 눈에 띄었다.
이는 그만큼 동화의 폭이 넓어졌다는 방증이어서 기뻐할 일이었다.
본심에서 심도 있게 논의된 작품은 모두 5편이었다. ‘꿈꾸는 ㅸ’은 한글 낱자 ‘ㅂ’이 ‘ㅇ’을 만나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여 완전한 행복을 이룬다는 내용으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따스하고, 서사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함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란성 남매의 경쟁 심리를 담은 ‘진짜 춤을 출 거야’는 칭찬 받는 아이가 진정 행복한 아이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점에서 신선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이 평범해서 소품에 그치고 말았다.
나눔의 철학을 담은 ‘뭄바와 토봉이의 여행’은 각박한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주제였으나 작가의 목소리가 커서 거슬렸다. 옛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호리병 속 작은 아이’ 역시 작가의 상상력은 돋보였으나, 서사의 흐름이 잔잔하여 지루한 감이 있었다.
당선작 ‘수리와 문제집 속 친구들’은 공부에 묻혀 사는 현대 어린이의 현실을 포착하여 기발한 상상력으로 흥미 있게 풀어냈다.
문제집 속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탈출하여 맘껏 뛰노는 결말 부분은 통쾌했으며,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풀 죽은 요즘 어린이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게 읽혔다. 당선을 축하하며 꾸준하게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원유순, 안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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