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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강원일보] 치킨보이 - 조호재

신춘문예 조호재............... 조회 수 566 추천 수 0 2019.03.27 22: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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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치킨보이 / 조호재


   치킨보이 / 조호재

 

  “제 꿈은 발라드 가수입니다.”

  꿈자랑 발표회 시간. 앞으로 나간 하윤이는 눈을 감고 감정부터 잡았습니다.

  “우와! 표정 좋은데?”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하며 하윤이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은 책상을 두드려대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선생님까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어? 내가 지금 싸이의 말춤이라도 추는 건가?'

  하지만 다시 확인해도 가슴 절절한 발라드가 분명했습니다. 결국 하윤이는 1절도 채 못 부르고 도망치듯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정이 좀 불안했지만 박자만큼은 컴퓨터 뺨칠 정도네!”

  선생님의 위로 섞인 감상평은 그 순간 별로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자신의 비밀! 그 끔찍한 사실이 하윤이의 머릿속을 하얗게 마비시켜버렸습니다.

  `내가 음치였다니! 내가!...'

  하지만 수업을 마칠 무렵 하윤이의 표정은 다시 밝아져 있었습니다. 꿈을 살짝 수정했던 것입니다.

  “그래! 내 꿈은 이제 래퍼야!”

  박자 감각이 뛰어나다는 선생님의 위로가 도움이 되긴 됐던 모양입니다.

  방과 후 하윤이는 부모님이 일하는 양계장으로 갔습니다. 어미 닭들이 이곳저곳 낳아놓은 달걀들을 찾아내 바구니에 담는 일은 보물찾기만큼이나 재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즉흥적으로 랩을 지어 흥얼거렸습니다.

  “내 꿈은 누가 뭐래도 래퍼! (꼬꼬)... 내 실력은 따라올 수 없는 슈퍼! (꼬꼬)... 날 비웃는 너희들은 밥이나 퍼! (꼬꼬)...”

  하윤이는 갑자기 랩을 멈추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어? 누구지? 이 추임새는...'

  둘러봐도 주위엔 닭밖에 없었습니다. 하윤이는 쫑긋 귀를 세우고 다시 랩을 해보았습니다.

  “내 꿈은 누가 뭐래도 래퍼! 꼬꼬!... 내 실력은 따라올 수 없는 슈퍼! 꼬꼬!... 날 비웃는 너희들은 밥이나 퍼! 꼬꼬!...”

  이럴 수가! `꼬꼬'... 분명 닭소리였지만 그건 보통 `꼬꼬'가 아니었습니다. 과녁의 정중앙에 꽂히는 화살처럼 정확한 박자에 명중하는 신통방통한 `꼬꼬'였습니다. 하윤이는 즉시 그 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소리만큼이나 특별한 용모를 지닌, 그러니까 온통 하얀 빛깔의 닭 한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얀 닭이 뭐가 특별하냐고요? 그곳은 오골계 농장이었으니까요. 온통 까만 닭들 속에서 솜사탕 마냥 하얗고 토실토실한 그 녀석은 아주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뼈대 있기로 소문난 오골계 가문에서 어떻게 그런 닭이 나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하윤이는 여러 번 그 녀석의 랩 실력을 테스트 해보았습니다. 발성도 좋았고 박자감각도 훌륭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음악적 호흡이 환상적이었습니다.

  “랩 같이 할까? 오디션에도 같이 나가고. 어때?”

  “꼬꼬!”

  “좋아. 네 이름은 이제 치킨보이야! 맘에 들어?”

  “꼬꼬! 꼬꼬!”

  둘은 그렇게 한 팀이 되었습니다.

  며칠 후 나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농장은 원래부터 외부인이 출입하기 힘든 곳이기도 했지만 이제 부모님은 다른 사람은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막았습니다.

  “이제 너도 오지 마.”

  아빠의 결정에 하윤이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저것 좀 보시라구요. 직원 외 출입금지!”

  하윤이가 가리킨 건 농장 입구에 붙은 안내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지 말라는 거다.”

  “제가 그동안 치운 닭똥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그걸 다 모으면 아마도 저 산보다도 높을 걸요?”

  그러니까 자신도 직원이 맞고 얼마든지 농장에 출입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닭똥산' 정도는 아니어도 하윤이가 적잖게 부모님의 일손을 거든 건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손을 든 건 아빠 쪽이었습니다.

  농장에 랩하는 닭이 살고 있다는 건 하윤이밖에 몰랐습니다. 오디션에 붙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다는 게 하윤이의 속셈이었죠.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기를 쓰고 농장 일을 돕겠다는 아들이 의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효자 아들을 둔 게 틀림없어! 하하하!”

  농장 출입을 허락받긴 했지만 하윤이는 철저히 위생수칙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손과 머리 신발에까지 몽땅 다 소독약을 뿌려야만 했습니다. 귀찮은 일이긴 했지만 치킨보이를 만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치킨보이! 넌 튼튼하지?”

  “꼬꼬!”

  “그래도 조심해. 밥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란 말이야.”

  “꼬꼬!”

  “자 그럼 어제 했던 거 다시 해볼까? 드롭 더 비트!”

  강한 비트가 스마트폰을 통해 울려 나왔습니다. 거기에 맞춰 하윤이가 먼저 랩을 시작했고 치킨보이도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꼬꼬! 꼬꼬! 꼬꼬댁!”

  저녁 식사 시간. 세 식구가 모여 앉은 식탁에선 힘없는 숟가락 젓가락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바로 옆 동네 양계장에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윤이가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TV를 켰습니다.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고기와 달걀의 유통량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왜 하필 그 뉴스였을까요. 하윤이는 급히 채널을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음악 채널이었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곤두선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하윤아...”

  엄마가 TV를 끄라며 하윤이를 불렀습니다. 할 수 없이 전원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다음 화면이 하윤이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랩 오디션 광고였습니다. 옳다구나! 신난 하윤이가 속으로 펄쩍펄쩍 뛰고 있는데 아빠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통화를 하는 아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전화를 끊은 후에도 돌처럼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끄러워! TV 꺼!”

  하윤이는 얼른 TV를 껐습니다.

  “무슨 일인데?”

  엄마가 초조히 물었습니다. 아빠는 침착하려 애를 썼습니다.

  “하윤이는 잠깐 들어가 있어. 소리친 건 아빠가 미안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왜 자기만 빼놓으려 하냐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빠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간 하윤이는 그러나 문 앞에 귀를 대고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우리 닭들도 감염됐대.”

  “뭐?”

  “지금 군청 사람들이 오고 있어. 오늘밤에 살처분할 건가봐.”

  하윤이는 살처분이란 단어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뜻을 몰라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았습니다. 전염병이 돌 때 가축들을 죽이는 일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병이 났으면 약을 먹여야지... 튼튼한 녀석들은 그냥도 나을 텐데...'

  하윤이는 성급히 동물들부터 죽이고 보는 어른들의 대처에 화가 났습니다. 잠시 후 검색을 계속하던 하윤이가 하얗게 질렸습니다. 병든 가축을 죽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병이 들었건 아니건 상관없이 한 마리가 병에 걸리면 그곳에 있던 다른 동물들 전부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돼지, 소, 다른 가축들 역시 똑같았습니다. 사람들 멋대로 대량으로 키우다가 사람들 멋대로 대량으로 죽이는 것, 살처분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윤이는 저도 모르게 거실로 뛰어나가며 소리쳤습니다.

  “안 돼요! 우리 농장은 살처분 같은 거 하지 마세요!”

  그 말에 부모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얼른 전화 거세요! 살처분 안 하겠다구요!”

  하윤이는 아빠에게 핸드폰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란다.”

  “그러면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거야.”

  “약이라도 한번 먹여봐야죠! 우리 닭들은 튼튼하잖아요! 이겨낼 수 있다구요!”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이 그래.”

  “법이요?”

  “그래, 법.”

  “무슨 법이 그래요!”

  따져 묻는 하윤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습니다. 하윤이는 바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어두운 시골길을 뛰어 이른 곳은 농장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낯선 차가 여러 대 도착해 있었습니다. 또 우주복 비슷한 걸 입은 아저씨 몇 명이 농장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닭들을 축사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하윤이는 문득 아까 인터넷에서 봤던 게 떠올랐습니다. 살처분을 할 때 닭들을 가둬놓고 열풍기를 튼다고 돼 있었습니다. 열에 민감한 닭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치킨보이만이라도 구해내야 해!...”

  얼마 후 닭들이 모두 축사 안에 갇혔습니다. 그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닭소리에 하윤이는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치킨보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저 아저씨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습니다.

  이제 아저씨들은 축사의 창문은 물론 뚫려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다 비닐과 테이프로 막았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자 한 아저씨가 수상한 전기코드를 콘센트에 꽂았습니다. 윙 하는 기계음이 들려왔습니다. 열풍기였습니다. 닭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잠시 뒤 아저씨들은 축사 옆에 쭈그려 앉아 술을 나눠 마셨습니다.

  “자넨 처음이랬지? 기분이 어떤가?”

  “좋을 리가 있겠어요. 저것들도 엄연히 생명인데...”

  “오늘밤 꿈에 계속 닭한테 쫓기고 그럴 걸세.”

  아저씨들도 마음이 좋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하윤이는 한껏 몸을 낮춰 축사 문을 향해 다가섰습니다. 치킨보이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테이프를 떼어내고 몰래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확 밀려 나온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혔지만 꾹 참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손전등을 비췄습니다. 열풍에 떠밀려 반대편 구석에 몰려 있는 오골계들이 보였습니다. 하윤이는 분주한 시선으로 하얀 닭을 찾았습니다.

  “다 구해주고 싶지만 미안해...”

  그때 마술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지날 때마다 닭들의 색깔이 변했습니다. 검은색에서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으로, 뭐라 부르기 힘든 색도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뚱뚱한 몸이 늘씬해지고 짧은 날개는 점점 커졌습니다. 어느새 닭들 모두 낯설고 멋진 새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드디어 흰색 빛깔의 새가 앞으로 떡 나왔습니다. 모습이 변하긴 했어도 하윤이는 그 새를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치킨보이!”

  치킨보이가 랩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닭! 하늘보다 땅을 더 좋아하는 새! 하지만 이젠 날아가야 해!...”

  갑자기 분홍색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더니 천장에 구멍을 내고 날아갔습니다. 이어서 다른 새들로 차례차례 그곳을 통해 바깥으로 날아갔습니다.

  “...수많은 간판에 적힌 우리의 이름들. 하지만 프라이드 양념은 우리의 운명이 아니지! 똑똑히 봐! 우리의 하늘을!”

  랩이 끝났습니다. 다른 새들은 이미 다 날아간 후였습니다. 그제서 치킨보이도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에 떠올랐고 하윤이의 주위를 몇 바퀴 빙빙 돌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잘가... 치킨보이...”

  서운한 마음에 하윤이는 눈을 감았습니다. 푸더덕!... 치킨보이의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리다가 금방 고요해졌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하윤이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산 하나를 넘었겠지 하면서도 왠지 두려웠습니다. 눈앞에 닭들이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꽉 감았습니다.


  <당선소감>두 아이 위해 시작한 글 손가락 부러지도록 쓸것


  처음 동화랍시고 끄적거렸던 때가 떠오릅니다.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첫 독자에 대한 기억은 분명합니다. 저희 집 두 아이였으니까요. 그저 아이들 읽기 연습용으로 쓴 조잡한 글이었습니다. 근데 하다 보니 재미가 붙은 쪽은 아이들보다 저였습니다. 아내는 책 사줄 돈이 아까워 저런다고 핀잔을 줬지만 굴하지 않고 매일 저녁 한때 쓰고 또 쓰며 즐거워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값진 습작의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제 스승님이었습니다. 과분한 상을 받고 보니 이제 하산하란 스승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으로 내려가 손가락 부러지도록 써보라고요. 하지만 저의 재주를 알기에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사랑하는 가족, 속 깊은 친구들 그리고 제 곁을 지켜주시는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후한 점수를 주신 신춘문예 관계자 분들께도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 서울 生.

  ● 중앙대 토목공학과 졸업.


  <심사평>작품성 단연 두드러져 생명에 대한 모럴 품어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 중 단연 `치킨보이'가 두드러졌고, 그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나'가 랩을 부를 때 누군가 `꼬꼬!'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암탉이었다. 그 후 나는 암탉 `치킨보이'와 친해졌고, 노래 호흡도 맞춰간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류독감 소식과 함께 `나'의 집 닭들도 살처분된다. 닭들이 살처분되는 순간, 몰래 닭장에 들어간 나는 치킨보이와 닭들이 새가 돼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살처분하는 어른들의 처사를 꼬집으면서도 닭들의 죽음을 비극적 아름다움으로 처리해 낸 작가의 생명에 대한 모럴이 진하게 느껴진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권영상, 원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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