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二吾 동화] 바로 그 사람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하는데, 그 일이 어떤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일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해도 되는 일인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 자기한테 이로운 일인지, 해로운 일인지, 뭐 그런 걸 도무지 모르는 겁니다. 꼭 내 손 같은 사람이지요. 내 손은 지금 이렇게 종이에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제가 종이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든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움직일 따름입니다.
그 사람이 하루는 길을 가는데, 어느 집 담장을 넘으려던 도둑이 그를 보고 소리쳤어요.
“웬 놈이냐?”
“나요?”
“그래, 너.”
“난 너인 납니다.”
도둑은 그의 대답을 듣고서 안심이 되었어요. 어디가 한참 모자라지 않고서야 “나요? 난 너인 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없을 테니까요.
“너, 뭐하는 놈이냐?”
“나요?”
“그래, 너.”
“난 지금 당신하고 얘기하는 놈입니다.”
영리한 도둑이 머리를 굴렸어요. ‘당신하고 얘기하는 놈이라고? 이 녀석은 뭐가 뭔지 모르는 바보가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엉뚱한 말대꾸를 할 리가 없지. 잘 됐군. 마침 망봐줄 녀석이 필요했는데 저 녀석을 부려먹어야겠다.’
“너, 나 좀 도와주지 않겠니?”
“당신을 도우라고요?”
“여기 서서 망을 봐다오.”
“망을 보라고요?”
“그래, 누가 이리로 오는지, 지켜보란 말이다.”
“누가 이리로 오는지, 지켜보라고요?”
“그래.”
“알았어요.”
“그럼, 부탁한다.”
도둑은 담장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지요.
그 사람이 담장 밑에 서서 망을 보는데, 저쪽에 누가 나타났어요. 차림새로 보아 순경 같네요. 맞았어요. 마침 마을에 도둑이 든다는 말을 듣고 돌아보러 나온 순경이었습니다.
누구네 집 담장 아래 서성거리는 낯선 사람을 보고 순경이 물었어요.
“당신, 누구요?”
“나요?”
“그래, 당신.”
“난 너인 납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나요?”
“그래, 당신 말고 여기 누가 있소?”
“난 지금 아저씨하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아니, 내가 오기 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느냔 말이오.”
“망을 보고 있었어요.”
“망을 봤다고?”
“예. 누가 이리로 오는지, 지켜보고 있었지요.”
“너, 도둑이냐?”
“아니오. 나, 도둑 아닙니다.”
“그럼 도둑과 한 패냐?”
“아니오. 나, 도둑과 한 패 아니오.”
“여기서 망을 보고 있다면서?”
“그래요. 망보고 있어요.”
“누가 시켰나?”
“그 사람이 망을 보라고 했어요.”
“그놈, 이 집으로 담 넘어 들어갔지?”
“예, 그랬어요.”
순경도 도둑만큼 영리했지요. 곧장 호루라기를 꺼내 불면서 대문을 두드렸어요.
자, 도둑은 어찌 되었을까요?
“너, 누구냐?”라는 물음에 “난 너인 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으니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을 텐데요, 혹시 오늘 그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낯선 사람이 있거든 한번 물어보세요.
“당신, 누구요?”
그가 만일 “나요? 난 너인 납니다.”라고 대답하거든 한 번 더 물어보십시오.
“여기서 뭘 하고 있소?”
그가 “나요? 당신하고 얘기하고 있잖아요?”라고 대답하면 틀림없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에요.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동무가 되는 사람.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등지지 않는 사람.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겁날 게 없는 사람.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상처 입지 않는 사람,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
“누구냐?”는 물음에 “난 너인 납니다.”라고 대답하는, 바로 그 사람!
월간<풍경소리> 2014년 4월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