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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吾 동화] 돌아오지 않는 강도
사랑나라 오로리 숲에 사는 현자(우주의 원리와 사람의 도리를 깨쳐 어질고 슬기로운 사람)의 집에 아주 귀한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독차지나라 왕이 들었습니다. 다섯 가지 색깔이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인데요, 누구든지 그것을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온몸을 감싼다는 거예요.
독차지나라 왕은 그 구슬을 손에 넣고 싶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사랑나라 현자한테 가서 구슬을 만져볼 수 있지만, 그럴 마음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왕이고, 왕은 뭐든지 욕심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왕이, 물건 훔치는 솜씨가 독차지나라 제일이라는 양상군자(도둑)를 불렀어요.
“네가 이 나라 으뜸가는 도둑이냐?”
“예, 감히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네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보아라.”
“아홉 겹 담장을 넘어 아홉 개 자물통을 따고 금고에 들어있는 물건을 쥐도 새도 모르게 훔칠 수 있습니다.”
“그래? 거 참 대단한 솜씨로구나. 좋다, 어디 네 그 대단한 솜씨 한번 보여주겠느냐?”
“말씀만 하십시오.”
“사랑나라 오로리 숲 현자의 집에 오색영롱한 구슬이 있다더구나.”
“예, 그렇다는 소문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 구슬을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올 수 있겠느냐?”
“문제없습니다.”
“네가 그 구슬을 훔쳐오면 큰 벼슬을 내리겠다.”
“고맙습니다. 닷새만 말미를 주십시오. 닷새 안에 구슬을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사랑나라 오로리 숲으로 떠난 지 닷새째 되던 날 해거름에 도둑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는 겁니다.
“어찌 되었느냐? 물건을 훔쳤느냐?”
“죄송합니다, 전하. 실패했어요. 구슬을 훔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훔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깊숙이 숨겼더란 말이냐?”
“아닙니다, 전하. 현자의 집에 가보니 담장이 아홉 겹은 관두고 단 한 겹도 둘려있지 않더군요. 담장이 없으니 대문도 없고 대문이 없으니 물론 자물통도 없지요.”
“아니,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고 자물통도 없는 집에서 물건을 훔치지 못했단 말이냐?”
“전하, 저는 도둑입니다. 도둑이 하는 일이란 꽁꽁 숨겨둔 것을 아무도 몰래 훔치는 것인데,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고 자물통도 없는 집에서 무얼 훔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그 물건을 보지도 못했느냐?”
“보긴 했습지요. 과연 소문대로 오색영롱한 구슬이더군요.”
“그걸 뻔히 보고서도 그냥 돌아왔단 말이냐?”
“예, 전하.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으로 훤하게 트여있는 마루방에 누구나 들어가서 만져볼 수 있는 물건을 아무리 재주가 용한 도둑이라도 어떻게 훔칠 수 있겠습니까? 송구합니다, 전하.”
“쯧쯧, 훔칠 수 없으면 빼앗아 오기라도 했어야지!”
“전하, 사람이 뻔히 보는 앞에서 물건을 빼앗는 것은 저 같은 양상군자가 할 짓이 아닙니다. 그건 강도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오냐, 알았다. 그럼 이 나라 으뜸가는 강도를 불러야겠다.”
독차지나라에서 뽑혀 온 으뜸가는 강도에게 왕이 물었어요.
“어떠냐? 가서 그 구슬을 빼앗아 올 수 있겠느냐?”
“그야, 식은 죽 먹기올시다.”
“좋다. 닷새 안에 사랑나라 오로리 숲 현자에게서 구슬을 빼앗아 오너라. 방해하는 자들이 있으면 죽여도 좋다.”
“염려 마십시오. 닷새까지 기다리실 것도 없습니다. 가는 날, 오는 날 합쳐서 사흘 뒤에 물건을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이번 일에 성공하면 너를 국방장관으로 삼겠노라.”
“예, 전하. 그럼, 사흘 뒤에 뵙겠습니다.”
약속한 사흘이 지났어요. 하지만 강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흘, 닷새가 지났는데도 그의 모습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왕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지요.
“이 날강도 놈이 어째서 여태 돌아오지 않는 거냐? 누가 가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아라.”
독차지나라 강도는 어째서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예, 그랬습니다. 그날 강도는 사랑나라 오로리 숲으로 득달같이 달려갔지요. 가서 행복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웃고 있는 마루방 한 가운데 놓여있는 오색영롱한 구슬을 거침없이 손으로 움켜잡았어요.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온몸을 감싸는 거예요. 강도는 가슴 깊은 데서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를 바라보는 방 안 사람들도 따라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지요.
아무리 여태까지 강도짓을 하며 살았다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웃는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남한테서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도 사랑나라 오로리 숲 현자의 집에 가면 누구든지 마음 놓고 그 구슬을 만질 수 있답니다.
월간<풍경소리>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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