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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행복을 찾아서

가정결혼양육 김중기 교수............... 조회 수 2119 추천 수 0 2010.05.09 09: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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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세대학교 김중기 교수

세상에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행복하시오?'하고 물어보면 '글쎄요','별로요',하고 대답합니다.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들 얘기하기에 그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두 세번 선택을 잘못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때, 그 하는 일 자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며 사명감에 넘쳐서 하는 것이냐 하는 여부에 따라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평생을 일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을 할 것이냐의 선택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말고 자꾸 다른 일 하겠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선택해서 그 일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밖에 없으나 자기가 좋아서 하거나 자기의 진짜 할 일이 아닌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자꾸만 하겠다고 애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불행해지는 이유는 가정에서의 생활이 잘 안될 때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남과 더불어 사는데 이 남고 더불어 사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해서 아내와 남편이 가정생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훌륭하게 되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는 마땅한 일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생활이 원만할 때 행복할 수 있는데 이 가정생활이 잘 안되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결혼생활이 제대로 되는 길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답을 '행복한 가정을 찾아서'라는 주제를 통하여 간단하게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여러 사람한테[결혼해서 행복하냐?]고 물어보았더니 마지못해서 했거나 죽지 못해서 할 수 없이 했거나 어영부영하다가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정을 이루어서 사는데 이들은 대부분 결혼의 의미가 뭔줄로 모르고 그냥 남들이 결혼하니까, 부모님이 서두르니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하면 행복해질 줄 알고 결혼했다고 대답합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결혼하면 행복해질 줄 알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막연한 가정(假定)속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이 뭔지 아는 것 같지만 심각하게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결혼이란,한 사람을 잘 선택해서 그 사람과 더불어,남과 더불어 잘 사는 본보기 살믈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결혼해서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을 터득해서 잘 살고 있으면 그 결혼은 성공한 것이고 결혼했는데도 남과 더불어 잘 살지 못하면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분 나뻐하는 것의 80% 정도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데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돈이 없어 기분 나쁘거나 기침이 나서 기분 나쁜,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남과의 관계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니까 기분 나쁜 것입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기분 나쁘고 불행하고 재수 없다는 기분들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과 더불어 잘 살아야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남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본보기 사는 그 삶 즉 결혼생활이 잘 될 때 사회생활도 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생활 17년 동안 큰 것을 딱 하나 배웠는데,그것은 남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저는 무척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나니까 하루 아침에 아버지가 세 분, 어머니가 두 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 장인어른입니다. 결혼하고 난뒤 처가집에 갔더니 장인어른이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보다 더 끔찍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체득했습니다.나는 장인어른을 아버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나는 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난 뒤에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보다 더 저를 아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나이 지긋한 사람을 보면 '내가 이 양반 따님하고 결혼을 했더라면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텐데'하고 생각하니까 나이 많은 남자분들을 보면 전부 아버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분들을 만나면 아버지처럼 대해 드리기 시작했더니 저를 싫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두분 되셨는데 저를 낳아주신 분과 장모님이십니다. 저를 낳아주신 어미는 보기만 하면 잔소리를 하셨는데 새로 생긴 어머니는 잔소리도 안할 뿐만 아니라 보기만 하면 맛있는 것을 해주셨습니다. 장모님도 생판 남인데 저한테 잘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나이 지긋한 할머니를 보기만 하면 제 어머니 같았습니다.

제가 그 분 따님하고 결혼했더라면 그분이 저의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할머니를 보기만 하면 전부 어머니라고 부르며 잘 해드렸더니 모두들 저를 좋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당신을 향하여 어머니라고 할 수가 없다. 여인이여, 주의 말씀을 듣고 이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혼하면 알게 되는 사실이고 결혼 잘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산책을 하다보면 공원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어요. 옛날에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이제는 그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들처럼 사랑스러워서 꼭 끌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낳은 뒤부터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이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겠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귀엽고,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결혼을 잘 하게되면 인생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지며 이것은 결혼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결혼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경말씀 창세기 2:24절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고 성서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이유는 결혼하고 나서도 그 부모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완성되려면 마치 출생이 끝날 때는 그 부모의 배에서 나와 탯줄이 끊어져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부모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그 부모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그 부모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혼례라는 뜻도 되며 경제적인 독립을 의미하기도 하며 법적으로 결혼신고를 했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본래 떠나는 사건과 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떠남이 없이는 결혼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결혼하고 난 뒤의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인데 이것은 자식이 부모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남자가 장가를 갔으면 자기 부모에게서 떠나 독립하여 새 살림을 차려야 할텐데 맨날 자기 아버지 한테 가서 돈을 타다가 살림에 보탠다거나 아니면 자기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얘기하면서 반찬투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도 결혼하고 나서 훌쩍훌쩍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것 등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며 부모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아내와 연합한다고 하였습니다. 연합한다는 것은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연합하고 여자와 연합하여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성적 결합 즉 육체적인 결합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의 삼각관계가 잘 균형 잡혀 있는 결혼생활이 진정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마다 이 삼각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싸움과 불만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결혼해서 십 년이나 살았는데 떠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시길 우리가 결혼하고 난 뒤 한 삼십년 있으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돌아가시고 우리 집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시니까 떠남은 필요없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내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도 깨끗이 해야 하십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내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도 깨끗이 해야 말년에 진짜 내가정이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떠남은 내가 죽을 때까지 매번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가정은 연합이 잘 안되는 부부도 있습니다. 이 연합이란 히브리말 속의 원 뜻을 보면 두 사람을 아교로 딱 붙인 것 만큼 그 사랑하는 사이가 완전하다는 뜻으로 아내와 남편과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합이 안돼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자식 때문에 남편에게 무관심해지고 아내에게 등한히 할 때 생겨납니다. 심리학자들도 얘기하기를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내가 아기를 갖기 시작할때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아기를 가지면 생리적으로 자기 몸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에게 온 신경을 쓰게 되니까 자연 남편에게는 등한히 하게 되어 남편이 딴 짓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귀가시간이나 여행에서 돌아올 때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벌써 우리 집사람은 제 발자욱 소리인줄 알고 문을 열어 저를 반겨줍니다. 그 다음에 아이들이 쪼르르 다렬 나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이들부터 끌어안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들은 조금 기다리라고 한 다음 아내의 볼에다 뽀뽀하고 그 사이 별일 없었느냐는 말을 건넨 후, 작은 녀석 안아주고 그 다음에 큰 녀석을 안아주고는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연합의 단면이며 가정교육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경에 결혼과 부부애를 설명하면서 자식얘기가 하나도 없는 것은 우선 부부가 있고 난 다음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셋 중에서 하나라도 삐딱하면 전부 쓰러지게 됩니다.

참 결혼, 행복한 결혼이란 커다란 돌멩이 위에 삼각 널판대기를 올려놓고 부부가 손을 잡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발이 셋이면 좋겠는데 네 발이 올라서니 균형이 잘 안잡혀서 뒤뚱거리게 됩니다. 한 쪽이 되면 다른 한쪽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떠남이 잘 안되면 연합이 안되며 연합이 안되면 그날 저녁에 한 몸 이루는 것 역시 안됩니다. 그러면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며 다시 결혼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만 잘 되어서도 안되고 셋이 한꺼번에 다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한 성경 말씀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결혼은 무조건 떠나기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에 한 몸 이루고 나서 둘이 잘 연합해 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결혼순서입니다. 요즈음은 한 몸부터 이뤄놓고 그 다음에 연애하다가 취직해서 돈 벌면 결혼하는 것이 현대식 결혼방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순서는 우선 연합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연합이란 서로 만나서 사귀어 보는 연애기간을 말합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서 연합연습을 할 때부터 삼각형을 그려 가능성을 타진한 후 시작합니다. 서로 보조를 맞추어 손을 꼭 잡고 걸을 수 있도록 균형있는 삼각형을 이루어 나가다가 교제가 상당히 깊어지게 되면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성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까 자기 적성에 맞게 그려가면서 점점 키워가다가 나중에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리잡기 시작해서 결혼생활이 건전해지면 그 삼각형 안에 사는 자녀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이 삼각형이 제대로 되고 세가지가 균형이 맞추어지려면 그 어디엔가 하나님이 계셔서 줄을 내려 보내 주셔야 제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저울 위에서 줄이 내려와 잡으면 쉽게 균형어 잡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이 어느 가정이든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진짜 원만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떠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되며 연합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되고 한 몸 이루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되며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셋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연합하는 것,즉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이 무엇이라고 완전하게 정의를 내린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에도 사랑의 완전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서 완전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질문은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나?'(How do I know she loves me?),'그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나?'(How do I know he loves me?)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교제하면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상대방이 진짜 날 사랑하냐는 것입니다. 그이가 날 사랑하는지 혹은 그녀가 날 사랑하는지를 알기 위한 방법 4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헤어져 있을 때 좋은 것을 보면 혼자 못보고 그이와 같이보고 싶다던가,좋은 강의를 들으면 그이하고 같이 들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몇해 전에 나 혼자 아주 좋은 곳에 여행을 갔었습니다. 안내자가 그 아름답고 웅장한 곳을 구경시켜 주는데 내 마음이 아파서 다 구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후 삼년 뒤에 아내와 같이 와서 그 아름다운 곳을 보면서 [내가 삼년 전에 혼자 여길 왔을 땐 일부러 보지 않았어오, 이렇게 멋있는 곳을 보면 볼수록 당신 생각이나고, 같이 보면 얼마나 당신이 좋아할까 하는 마음에 안 보았소]하였더니 아내의 감격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처럼사랑은 좋은 것, 귀한 것을 함께나누고 싶은 마음(Sharing Spirit0입니다. 나에게 그런 생각이 나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그런 생각이 나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같이 있어도 부담스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리라] (창세기 2:25)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을 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설 작가들은 사랑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지며 몸둘 바를 모른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유스럽게 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결혼 전에 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잘 보이려고 너무 애를 쓰고 긴장을 한 나머지 그날 집을 돌아오는데 기진맥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였지만 그 다음에는 다시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만난 사람은 만나도 거북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분식집에 가서 라면 한 그릇으로 때워도 부끄럽거나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이처럼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것입니다(Liberating Spirit).

셋째는 먼저 화해하는 마음입니다. 제게 가끔 결혼주례를 서 달라고 찾아오는 남녀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가지를 묻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싸워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녀는 사랑하는데 왜 싸우냐고 반문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남이 만나 같이 사는데 안 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싸워 보지 않은사람은 서로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릅니다. 싸우고 나면 잘했든 잘못했든 먼저 화해하는 마음(reconciling spirit)-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정신 - 인 화해하는 정신이 사랑입니다.

네째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고 또 보아도 새롭게 보입니다. 매번 보는데도 같아보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아내와 함께 20년을 살았지만 늘 새로와 보입니다. 세월이 흘러 늙어가니까 이마에 주름이 늘고,열심히 일할 땐 이마의 주름 사이에 땀방울이 모여 흐르면 마치 산의 계곡에서 물이 흘러 내리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주 안에서 살면서 늘 새로와 보이는 마음(Creating Spirit)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3년내지 4년쯤 지나면 권태기가 온다고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는 징조입니다.

이상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될 때 남녀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그 가정이 그리스도를 모신 원만한 생활이 될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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