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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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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춘 교수 감신대학원
상담이란 심리학적 기술이나 사람의 마음을 약간 아는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고 우리를 받아 주셨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감격이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게 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상담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이냐,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느냐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말에서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란 [살]이란 말과 [암]이라는 말이 합쳐서 된 복합명사입니다. [살]이란 우리의 육체,살덩어리를 말합니다. 어렸을 땐 보드랍고 젊을 때는 팽팽하며 늙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살입니다.
2년전에 미국의 어떤 사람이 사람의 살덩어리를 값으로 따진다면 얼마나 되겠는지 계산해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낳으시느라 수고하신 것,키우시면서 사랑 주신 것, 교육을 위해 쓴 물질적인 것,옷 입히고 먹인 것등 18세 까지 모두 합해서 통계를 내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자그만치 1,5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시골에서 황소 한 마리에 50만원이라니까 황소 20마리에 해당되는 엄청난 값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살덩어리만도 이렇게 비쌉니다. 그러니 집에서 아이들 듣는데 돈 없다고 하지 마십시요. 아이 한 명이 1,500만원이니까 자녀를 가진 부모는 모두 부자입니다. 나는 아이들이 넷이니 항상 6,0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너는 돈으로 따져도 1,500만원이나 가는 굉장한 사람이야.그뿐인가 생각할 수 있는 마음과 영적 은사 그리고 믿음 등을 따지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하단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의 재산은 놓으면 놓은대로 가만히 있고 땅은 땅대로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딸의 재산은 자꾸 크고 배우고 깨달으며 나중에는 하나님을 그 마음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굉장한 사실입니다.
[암]이란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기하고 똑같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짐승을 말합니다. 소나 닭을 보고 여자 소,남자 소 하지 않고 암소,숫소 또는 암탉,수탉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쓰이면 [어머니]란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들에게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암'이란 말이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서 젖을 못 주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1938년 일제치하에서 자랐는데 그때만 해도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없어 걱정하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아내가 첫 아기를 낳았는데 건강한데도 젖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집사님이 나무를 하나 가져 오셨는데 그 나무는 논에다 물을 댈 때 물이 흘러가도록 통나무에 흠을 파서 도랑처럼 만든 것으로 이것을 도끼로 쪼개어 불을 피워서 미역국을 끓여 먹으면 젖일 잘 난다고제 아내에게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젖이 안나는 어머니들은 쌀을 잘 씻고 쇠붙이에 닿지 않게 나무 방망이로 찧어서 깨끗하게 씻어 죽을 정성스럽게 쑤어서 여기에 설탕을 넣어 젖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아기에게 주었는데 그것을 '암죽'이라 불렀습니다. 암죽은 [어머니의 죽]이란 뜻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말에서 사람이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온 살덩어리]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그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셨고 그 어머니는 또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듯이 이렇게 자꾸자꾸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간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살덩어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형제나 친족을 살붙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맺은 좋은 관계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과 잘못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될 수 없고, 하나님과는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성립될 때 사람들과도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활,이것이 바로 진실한 크리스챤의 생활이며 상담의 목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상담을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 생각하면 인간관계 중에서 우선 다른 사람과 나와의 관계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란 말을 하나로 줄이면 삶이 되는데,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가 바로 사는 것이 신앙이고 올바른 삶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담의 목표이며 원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상담의 목표는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나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나와 다른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것부터 생각하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라]하면 가고 [먹자]하면 먹는데 왜 나와 나와의 관계가 잘 안되는지 이상합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이것이 잘 나와 있는데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고민하고 걱정하기를 [내 속에는 두개의 법이 있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반면 또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결심해도 살다가 보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괴롭다.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내가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는가?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따라가고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못하게 하는 마음이 다른 한편에 있습니다. 기도하고 결심을 해도 무엇인지 반대로 끌고가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죄의 힘입니다. 이 죄의 힘을 이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내 결심으로, 내 힘으로 안되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통해서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담이란 이렇게 갈라지려는 마음과 역행하려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상담이 다루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나와 나와의 관계가 잘 안될까요?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먹고,쓰고,사용하라 하셨는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이 이브에게 다가와서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함께 먹었기 때문에 둘 다 죄인이며 둘 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혹의 내용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무엇이든지 하실 수가 있는데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의 이름이나 짓고 먹으면 먹고 쓰라면 쓰는 것이 고작이니 하나님처럼 만들어 보고 하나님처럼 전능해지고 싶었습니다.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따먹고 나니 눈이 밝아지긴 했는 진리를 찾는 눈,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려는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벗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는 것 밖에는 더 나아진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만이 그러한 유혹을 받고 그들만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합니까? 성경의 역사를 보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처럼 돼보겠다는 것을 비롯하여 이런 유혹이 종종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자들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아기를 만드는 것까지 하려고 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혹 하나님처럼 되고싶어 하고 있지 않은지 또는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고 있는지 진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세수할 때,거울 앞에 가서 제 모습을 비쳐 봅니다. 여러분도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십시오. 우선 제일 위에 있는 머리칼을 보고 머리결은 보드라운지 또한 색깔은 마음에 드십니까? 이마를 볼 때 좁으면 어떻고, 넓으면 어떻고 이렇듯 말이 많은데 적당한 멋이 있습니까? 눈썹도 올라간 사람,처진 사람 등 여러가지입니다. 저는 눈썹이 올라갔는데 어렸을 때도 눈썹이 반달같이 생겼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썹 모양을 마음에 들게 하려고 화장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눈을 보면 시력이 좋은 사람,안경을 껴야 하는 사람,눈이 작은 사람,눈썹 사이가 너무 넓은 사람,좁은 사람 등 가지각색입니다. 코를 보아도 콧구멍이 너무 들리면 들창코,코 끝이 너무 뾰죽하면 매부리코 등등 말이 많습니다. 입술이나 귀,목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 얼굴이고 내 모습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치고 싶은 것이 더 많습니다. 나쁜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다 좋은 것 같아도 살다보면 약점,결점,부족한 것등 모두 고치고 싶은 것 투성이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고쳐야 하고 저 사람은 저것을 고쳤으면 좋겠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얼굴을 보며 자기 스스로 못마땅해 하고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모두 못 마땅한 것 투성이입니다. 자기 얼굴을 볼 때 하나님께서 세계의 40억 인구 중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얼굴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족한 것을 서로 보충하라고 짝지어 주신 내 남편,내 아내를 감사하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자녀들의 잘 하는 것 보다는 못하는 것을 더 많이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 중 밤잠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는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젖혀놓고 공부만 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하지만 노래는 형편없이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 재능만 주셨기 때문에 저는 그 잘하는 것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얼굴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내 아내,내 남편, 내 자녀,내가 사는 집 등 나의 모든 조건을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변화가 오며 자신이 생기게 됩니다. 비록 돈이 없어도, 못 났어도 자신이 생기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다 받아들일 때 남의 결점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심리학자들은 [수용]이라 부르는데 이는 [얼굴을 받아 들인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 얼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선을 볼때,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되면 다 좋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 저것 들추어 내며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다고 할 때도 큰 사람에 비하니까 작은 것이지 그 사람에게는 알맞은 키이며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큰 것입니다. 사람의 생긴 그대로 다 받아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내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도 올바로 맺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몇년 전 제가 아주 시골의 탄광 근처에서 목회를 할 때 조그만 단칸방에서 등잔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한숨만 크게 쉬어도 꺼지는 등잔불 밑에서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허름한 집일망정 불평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만족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세 가지 마음을 주셨는데 그 첫째는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소꼽놀이 하는 것이나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자기도 어린 아이면서 엄마,아빠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다 자기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으로 그 마음이 자라서 진짜 엄마,아빠가 되어 고통을 무릅쓰고 아기를 낳고 희생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마음은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였는가에 따라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화가 나면 밥을 안 먹거나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딛치기도 하며 심지어는 옷을 찢는 경우도 있는데 어린이들은 부모들의 이런 것을 그대로 닮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행동에 미치는 부모의 영향은 이처럼 큰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을 자녀들이 그대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잘못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가 지는 것입니다.
어버지의 마음에는 비판하려는 마음과 양육하려는 마음의 두가지가 있습니다. 비판하려는 마음이란 좋다.나쁘다,된다,안된다 등을 판단하는 마음인데 화가나면 이 마음이 자꾸 나옵니다.
국민학교 아이들의 학부모의 경우를 볼 때 수,우,미,양 가로 매겨진 성적표를 받아보고 성적이 나쁜 경우에는 마구 야단을 칩니다. [이 바보야,이것을 공부라고 했니!...] 한참을 야단하고 난 다음에는 이상하게도 자기 신세 한탄을 합니다. [아이구,내가 저 녀석을 위해서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입고 뒷바라지를 해 주었더니...]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나면 현장에 없는 아버지를 끌어 들입니다. [네 아비를 꼭 닮았으니 네가 무슨 공부를 잘 하겠니....] 이러한 야담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몇천번을 듣게 됩니다. [그래,나는 아버지를 꼭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데 왜 나보고 공부 잘하라는 거야?] 하면 화를 내고 반항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저주하고 폭언하고 비판하는 말은 곧 잊어버릴 것 같아도 머리 속에 나쁜 말은 나쁜 말대로,좋은 사람은 좋은 말대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험볼때 잘 생각하고 심각하게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머리속에 녹음된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에이, 내가 공부는 해서 뭘해] 하는 마음이 생겨 그냥 되는대로 하고 맙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소리, 은혜받은말도 평생 잊지 못하지만 가슴을 쑤시고 상처를 주고 저주하던 목소리도 항상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정신 분열증에 걸리면 귀에서 왕왕거리는 소리 때문에 자꾸 떠든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을 [마녀의 소리]라고 합니다. 마녀의 소리로 자녀의 머리 속에 기억될만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비판할 때도 아이에게 자꾸 손가락질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선생님이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야단치는 것을 보면 사랑이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또 화가 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그 말이 아무리 자비롭고 잘 되라는 말이라도 아이들은 큰 소리로 야단치는 어버이를 싫어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자꾸 깎여 나가고 조금 있던 믿음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양육하는 마음은 떠받들어 주고 싶고,일으켜 주고 싶고, 뭔가 자꾸 채워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양육하는 마음은 잘 한다.못한다고 하지 않으며 아이의 입장을 변호 해주면서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주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그 아이의 키에 맞게 허리를 구부려 시선을 마주치게 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부모나 양육하는 어버이의 마음은 평등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속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똑같이 닮은 모습,복잡한 형상이며 그 자라나는 과정 또한 신비롭기만 합니다.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육하는 마음, 어버이의 마음으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어른의 마음이 있습니다. 어른의 마음이란 양심이 명하는 그대로 결정하고 따라가는 마음,생각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에도 혈연,지연 관계로 인해 아는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뽑는 마음이 어른의 마음입니다. 상담에 있어 심리학적 지식이 없어도,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어버이로서,형제 자매로서 내 사랑하는 이웃,내 피를 나눈 형제에게 말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말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풍향계가 바람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듯이 말에도 방향이 있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쁠때 머리에서 꼬리를 쓰다듬아 주면 털에 윤이 나고 기분 좋아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쓰다듬어 주면 털이 부스스 일어나며 기분 나빠합니다. 털을 쓰다듬는데도 방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쓰다듬어 줄때도 이마로부터 정수리로 쓰다듬어 줍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방향이 있듯이 사람의 말도 방향을 잘 타지 못하면 말이 사람의 가슴 속에 들어가 독소가 되어 상처가 되고 해를 끼치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는 마음이 다 사라지고 복음을 받아들인 마음도 일그러집니다. 말의 방향은 참 중요합니다. 특히 예수를 믿는 사람은 복음을 증거해야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말을 많이 하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언10;11).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15:22)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이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잠15:28)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언25:11) 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해야 할 것이 있고 안해야 할 것이 있으며 방향에 있어서도 해야 할 사람과 들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세 제자에게 기도하라고 하시고 가셨는데 내려와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하려 했으나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든 것을 아시고 비판적 마음으로 야단치시지 않으셨으므로 제자들은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잘못한 아이에게[할래,안할래?] 란느 식으로 묻는다면 야단맞는 아이의 대답은 뻔한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하는 대답에 불과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깨달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만일 제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핑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들어야 할 말이며 예수님이 하실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지도자가 할 말을 백성이 하고 백성이 할 말은 지도자가 하면 선생님이 할 말을 제자가 하고 목사가 할 말을 평신도가 하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고 질서가 파괴되며 감정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말은 신앙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했던 말들을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가 난다고 어떤 말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한마디 때문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예수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 깨닫게 하는 말씀 한 마디 한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말로써 의견을 나타내는 것은 누구나 잘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말씀이 되어야 하고 그 말속에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속에는 감정이 있어 기분이 나타납니다.
요즘 제가 나가는 교회의 교인 한 사람이 잘 나오지 않아 제 아내보고 가서 권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목사님께서 자매님이 교회를 잘 안나오셔서 걱정하세요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왜 안나오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저요? 이젠 기분 나빠서 안 나갈래요.전요 기분 나쁘면 천당도 안가요.저를 기분 나쁘게 한 사람 천당가면 전 안가겠어요]이렇게 말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됩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기분 나빠서 천당에도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 그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기분내키는대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가갈 때 성전 미문 앞에 앉은뱅이 거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이나 던져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단 한번만이라도 일어나 보았으면 하는 한맺힌 소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년이 가고,십년이 흘러 포기하면서도 어떻게 한 번 일어나 볼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돈 던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제3의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제3의 거듭난 입으로 말하며 제3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그 가슴 속에 있는 근본적인 소원임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그가 벌떡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혀가 말을 해서 소리를 내게 되니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슴이 되었습니다. 몸이 일어나니 그 마음도 변화되고 새 사람이 되어 새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상담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증거하는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상담입니다. 멀리 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내 슬하에 있는 자녀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이 자녀들의 공부 문제, 절망, 갈등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게 됩니다. 믿음을 심어주며 하나님을 역력히 볼 수 있는 지혜도 줍니다. 비판적 어버이의 마음은 되도록 억제하고 양육하는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십시오. 자녀하고 말할 때도 허리를 숙여서 자비와 사랑이 담긴 마음으로,가슴을 활짝 열고 뭔가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대하도록 하십시오. 적절한 말 한마디가 사랑을 불러 일으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상으로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동력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담입니다. 말 한마디라도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노력할 때,여러분의 자녀들은 새로이 변모할 것입니다. 가정문제도 해결되고 사회문제도 세상의 모든 문제도 모두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상담은 내 말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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