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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예절이란 무엇인가?

가정결혼양육 한갑수 박사............... 조회 수 2491 추천 수 0 2010.05.20 00:20:25
.........
출처 :  

한갑수 박사 한글학회

 

예절에서 실질적인 것을 간단하게 몇가지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예절의 규정은 1) 몸을 닦고, 2) 사람과 사귀고,3)사회에 처하고,4) 神과 富를 섬김에 있어서 이치에 합당하게 하는 것 이것이 예절의 근본 理가 됩니다. 즉 이것은 지나칠까 조심하고, 모자랄까 근심하며, 힘써 중정(中正)에 합치도록 하는 노력의 행동화를 의미합니다.
서구적 예절의 뜻은, 전통적인 제어와 관습 안에서 사람과의 접촉을 교절한 것,그래서 동양의 예절은 혼자 있을 때에도 신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사생활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서 이때는 사람 앞에서 하는 것 같이 행동이나 말조심,몸조심을 안해도 좋으므로 개방사회,개방시간을 가질 수 있고 신을 생각지 않는 것이 서양 예절의 범위입니다. 이러한 대개의 뜻이 동양과 서양 예절의 다른 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 있어도 삼가한다는 것이,혼자 있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둬도 좋다는 서양과는 다르다는 이점을 우리가 지적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절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으로는 (1) 마음가짐 (2) 말씨 (3) 몸가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잠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

 

우리 신변의 어려운 사람 앞에서,모셔야 될 어른 앞에서,체면을 지켜야 할 사람 앞에서,제일 먼저는 손위 어른,아버님,어머님,시아버님,시어머님,할머님,할아버지,시할머님,이러한 분들 앞에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는냐? 첫째로,희로애락을 억누르는 일입니다. 이것이 동양 예절의 근본사상입니다. 그래서 동료간끼리는 앉아서 무슨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화기롭게 [하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 앞에서나 체모를 차려야 할 바깥 사람이 계실 때에는 그렇게 웃지를 못합니다. 이 말은 웃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적극적인 표출을 삼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기쁠 때 기뻐하고 노여울 때 노여워하고 슬플 때 슬퍼하면서도 일면 억누르는 태도, 이것이 교양이요.이 자체가 바로 예절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단적인 것을 몇가지 더 표현해 드리면, 어른 앞에서 내외가 서로 부르질 못합니다. 결혼한 여자의 경우, 시아버님,시어머님,시할머님,시할아버님이 계신 앞에서

[여보,당신은 오늘 바쁘세요?]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옛날의 우리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부르긴 불러야 되므로 남편 곁으로 슬며시 가서 작은 소리로 [저좀 보세요]그럽니다. 그렇다해도 시아버님,시어머님이 다 압니다. 그렇지만 [여보!]하고 큰 소리로 부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데 - 부엌이나 마루나 건넌방으로 건너 간다든지 해서 거기서 마음놓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마음놓고 얘기하는 것은 시할아버님,시할머님,시부모님께서 눈치를 채도 좋습니다. 다만 그 앞에서 희로애락의 적극적인 표출을 삼가는 것 뿐이지 내가 기쁠 때 기뻐하지 않는 목석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은 아니지요. 또 하나,좋은 실예가 되는 것으로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벗겨졌을 때입니다. 마루 위에서는 시아버님,시어머님이 손자가 귀엽게 노는 것을 보고 계신데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시다가 보니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납니다. 그러면 그 며느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예절에 맞는 행동인가?얼른 가서 부둥켜 안도
[아유 가엾어라 우리 강아지! 여길 이렇게 다쳤으니 이걸 어떻게 허나 어유 피까지 나오고...]
이렇게 하지를 말고 부엌에서 작은 소리로
[일어나! 일어나! 이리 와, 이리 와]
하면서 손짓을 합니다. 그러면 시할아버님, 시할머님이
[아,어서 가 일으켜 주어라]
말씀합니다. 그때는 일으켜 줘도 괜찮은 허락이 내린 것이니 벌떡 일으켜 안아가지고 부엌으로 들어옵니다. 부엌에 들어와서는 [어유 가엾어라 얼마나 아팠니?]

엄살을 떨어도 좋은데 시부모 앞에서는 그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시부모가 예절 차리고 교양있는 시부모 같으면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아가! 그 뭘하고 있느냐?애기가 넘어졌구나,어서 가 일으켜 주어라] 그러시는 분이 시아버님,시어머님이십니다. 또 어떤 시아버님,시어머님은 얼른 뛰어 내려 와서 손자를 손수 일으켜 데리고 가셔서 닦아주고 약 발라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적에는 며느리 되는 사람은 모른척 해버립니다. 소위 이러한 방법이 희로애락의 표출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여러분은 신신공부를 하셨고 또 여기 계신 대부분의 자모님도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들만 계신 것을 잘 압니다만 불행하게도 여러분의 시부모님은 옛날의 유교사상,불교사상이 약간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교육가들의 얘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의 지금 기본 사상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20% 정도의 유교영향, 15% 정도의 불교영향,7-8%정도의 기독교 영향을 받은 것이 한국 사람의 현재 사회적인 의식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이것이 한국사람이 美를 보는 것, 생활양식 하는 것, 몸가짐을 하는 것,걸음을 걷는 것. 물건 하나 장식을 하는 것. 등이 그러한 사상이 지배를 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기독교계에 계시지만, 아무래도 이 사회가, 우리의 사회 전체가 옳다고 하는 기준은 유교의 영향이 들어가 있고,불교의 영향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식사상을 가진 시아버님,시어머님이 앉아계신대 그 앞에서 요새,신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대학을 나오고 고등교육을 받고 학교 선생 노릇을 하고 하는 며느님의 태도가 왜그런지 마음에 안듭니다. 그래서 찌뿌드둥하게 보고 있고 그저 뭐 말은 못하고 밖에 나가서 선전은 못하지만 내외분이 혼자 있으면

[거 며느리가 사람은 성격이 착한데 도무지 어른 모실줄 몰라...] 한탄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을 가지신듯 하시면 여러분이 물론 기독교인으로서의 행동은 다 하셔야 되지만 그 시부모님의 뜻을 맞춰드리는데 약간 마음만 쓰면, 사람의 감정이란 간사한 것이어서 곧 부함이 돼서 시아버님,시어머님이 나를 귀한 며느리로 위해주는 때가 곧 오고야 만다하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외끼리도 얘기를 할 때, 큰 소리로 얘기 하지 않습니다. 가령 둘이서 자기 자녀에 대한 어떤 못마땅한 점에 대해 얘기를 할 경우, 시아버님 시어머님이 계신데 며느리가 큰소리로.
[내버려 둬요.여보! 왜 그리 자꾸 그래요! 그러면 애가 자꾸 버릇이 나빠져요]
이렇게 큰 소리를 어른 앞에서 하는 것은 어른 대접이 근본적으로 아니다 라고 어른의 감정은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시아버님,시어머님이 계시므로 조용조용하게
[내버려 두세요.괜찮아요 뭐 어떨라구요. 너무 그렇게 걱정마세요]
이정도로 부부가 얘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부를 때도 크게 못 부르고,말도 크게 못하고, 웃는 것도 크게 못 웃고 그러나 웃을 때는 웃어야 되고 기쁠 때는 기뻐해야 되고 슬플 때는 슬퍼해야 됩니다.그러면서도 그 슬픔과 그 기쁨이 표출해서 적극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것이 곧 교양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령, 무슨 잡수실 것,고기,혹은 별미,진미가 생겼다 했을 때 우선 시아버님,시어머님께 갖다 바치고 남편,자녀 생각은 안하는 그런 태도로 상에 놓아 시부모님께 드립니다.
[이웃에서 잔치가 있다고 뭘좀 가져왔군요]
그러면 원래 교양이 있는 부모-교양이 없는 부모같으면 자식의 예절주의를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교양이 있는 부모는
[아 그것 두었다 애비 주고, 애들 주거라. 아 우리 늙은이가 뭘 그걸 먹겠니]
그러면서 하나,둘 정도 접어들고 내놓는게 교양 있는 부모입니다.
그러니까 교양 있는 부모 노릇하기도 어렵지만 교양 있는 며느리,아들 노릇하기는 한층 더 어렵습니다. 아랫사람의 위치가 언제나 어려운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에도 마음을 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2. 바른말씨 사용에 대한 예(例)

 

요새 와서 사귀는 젊은 남녀,결혼을 했거나 아니했거나 상관이 없습니다만 가령 대학생 남녀가 어쩌다 데이트를 몇번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는 '이분이 장래의 내 배필감'이라 정하고 말도 함부로 하게 되어
[어디가? 오늘 바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장래의 배필로 생각지 않게 되면 이름을 부릅니다. 가령 [복희씨][철수씨]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더 서먹할 때는 붙여 [김철수씨][이복희씨]이런 식으로 서로 부르다가 ' 이사람은 내 배필감이다' 정하여 남 안보는 데서 은밀한 애정표시도 가한 사이아 되었을 때면 남의 앞에서 하는 말이 대개 이렇습니다.

[자기 오늘 바빠?]
이 [자기]라고 하는 말은 벌서 16-17년에 새로 생긴 말이 됩니다. [자기]라는 이 말의 출처는 원래 [이몸]이라고 하는데서 파생이 되었습니다. 가령,[김철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3자인 그[김철수]가 지금 이 자리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정희]라는 사람하고 [김철수]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김철수씨 그분 인품이 참 좋더군요.재산 모두를 자기 자녀들이 아닌 불우이웃 돕기에 써달라고 기탁했대요]
이럴적에 제3자를 [김철수]로 부르고,다시 되짚어서 내가 그를 호칭할 때 [자기]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우리말의 바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남녀가 서로 상대를 보고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어법상 크게 틀린 일이므로 사용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허물없는 젊은 남녀의 경우,상대방 호칭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우리 조상은 이럴 때 처소격 대명사인 [거기-You),[여기 = I]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거기,오늘 바쁘지 않아?]
[응 나? 오늘 바쁘지 않아]
[여기도 오늘 바쁘진 않은데...]
이래서 [거기][여기]로 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허물없는 남녀의 대화로서 [거기][여기]가 통하는 것이지 옛날의 귀한 양반집 자제들은 깍듯한 말씨로 [도령께서] [낭자께서]라는 존칭어를 썼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반드시 이성을 썼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반드시 이성간의 호칭은 [000씨]하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는 또 아주 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끼리도 서로 [하오]로 통했고 여자끼리도 그랬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떻게 해서 요새 이토록 많이 변했는지 요즘에는 남녀가 대개 반말 아니면 [해라]로 통합니다. 강의를 들으시는 여기 어머님들께서도 아드님, 따님이 계시거든 [거기][여기]가 우리 조산이 줄곧 수천년동안 쓰던 말이니 국어 사전에도 없는 [자기]라는 틀린 말을 쓰지말도록 바르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시조부모님 앞에서 시부모를 칭하는 말입니다. 나보다 더 높은 직계존속 앞에 덜 높은 직계존속 즉 나의 시아버님,시어머님을 시할아버님,시할머님 앞에서 어떻게 말을 하느냐? 예를 들어 시할아버님,시할머님이 손자며느리에게 이렇게 물어올 경우,
[응접실에 애비 있니?]
이 말은 응접실에 너의 시아버지가 있는지 알아보아라 하는 말입니다. 또 그쪽에서 며느리를 부를 때는 자녀가 있거나 없어도 [아가]로 부르나 나이가 40-50이 지나면 [아가]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어미야]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었어도 소생이 없었으면 늙었어도[아가]로 부르다가 환갑이 지나면 [며늘아]이렇게 부릅니다. 이 호칭은 달리 붙일 호칭이 마땅치 않을 때에 붙이는 마지막 호칭이며 보편적으로는 [어미야]라고 부릅니다.

[어미야! 응접실에 가서 애비 있나 보아라]
여기서 [어미야!] 라고 부른 것은 손자에 대한 [어미]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자칫 착각과 혼동이 올 수가 있습니다.(시아버님을 애비라고 부르시면서 손자며느리인 나를 어미라고 부르면 혹 항렬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에게 대해선 손자를 생각해서 [어미야!]부르는 것입니다.

[아비,응접실에 있나 보아라]
물으셨으므로 [네]하고 대답한 후 시아버님을 찾아 보고나서 시할아버님,시할머님께 이렇게 보고를 드립니다.
[애비는 지금 응접실에 없어요]그럽니다. 자기 시아버님을 보고 [애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절입니다.
[그러면,부엌에 가서 에미 있나 보아라]
여기서의 에미는 물론 시어머님입니다.
[네,에미는 부엌에 있어요.조금아까 보았어요]
그럽니다. [그럼 가 오너라 해라]그러면 가서 [어머님,할아버님께서 부르세요]이렇게 말을 합니다. 설령 자기 시아버님이 듣고 있어도 시할아버님이 앞에 놓인 어떤 것을 보고
[이것 어디서 났니?]
물으면
[애비가 주었어요]애비라고 합니다. 시아버님이 아무리 옆에 있어도 시아버님을 시할아버님 앞에선 [애비]라고 해야 됩니다.
이것은 참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령 어느날,가족회의에서 [말을 제대로 쓰는 법에 대한 강연을 들으니까 우리 집안의 호칭이 안된 것 같다. 우리 집안의 호칭을 앞으로 고치자]
하는 가족회의를 한번 거치시면 어려워도 될줄 믿습니다.

 

3. 바른 몸가짐에 대해서

 

어른 앞에서의 몸가짐,특별히 체면차려야 할 분 앞에서의 에절 갖춤에는 구용(九容)이라 해서 다음과 같은 아홉가지가 있습니다.

(1)口容止
입은 다물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벌써 3,000년 전,중국 주나라 때 세워진 예절입니다만 오늘날에까지 동양이나 서양에서 똑같이 통합니다. 5.16혁명 전,정치가(장면)씨의 정치고문으로 있던 서양인 [웨디카]씨가 동.서양 예절을 상호 비교하는 저술작업을 한바 있는데 이 아홉가지 구용을 번역하면서 감탄한 것이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예절이 너무나도 잘 부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외구에서도 예절을 가르칠 때, 여기 구용에 있는 내용과 똑같이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2) 目容端
눈이 흰동자만 나오게 되는 경우를 삼가라는 뜻입니다. 가령 누가 [00씨]하고 뒤에서 불렀을 때,자칫 머리만 젖혀 힐끗 쳐다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태도는 실례가 되며 반드시 뒤로 돌아서서 정면으로 쳐다보고 아는척을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응접실에 훌륭한 그림이나 글씨가 걸려 있으면 그것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간혹 여성들은 얌전한척 하느라고 다소곳하게 제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보고싶은 그림을 슬쩍슬쩍 곁눈으로 잠깐씩 훔쳐봅니다. 이렇게 비스듬히 사물을 보게 되는 경우,눈의 흰동자가 보이게 되어 종종 본의아니게 실례를 범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3)手容恭
어른 앞에서 손의 자세를 공손히 가지라는 뜻입니다. 바람직한 자세는 즉 왼손으로 오른손의 마디를 잡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배꼽 아랫전에 닿도록 하면 팔은 약간 구부러지는 정도가 되는데 이것이 어른과 대면할 때의 자세입니다. 어른께서 말씀을 하실 경우에는 혹은 옷고름 맨 곳에 두고 다소곳이 고개 숙여 있되 어른이 새로 말씀을 시작하실 때,잠깐 쳐다보고 내가 말씀드릴 때 잠간 쳐다보는 정도로 하여야 되며 너무 빤히 쳐다보거나 전혀 고개를 수그리고 있거나 하는 태도는 예절에 어긋납니다.

(4) 頭容直
다소곳한 곳은 좋아도 그밖에 아무 각도로도 구부러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 어른 앞에서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채 말씀을 드리거나 머리를 갸웃거리는태도를 삼가라는 것입니다.

(5)聾容
어른 앞에서 목청을 돋구지 마라. 큰소리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 氣容熱
군자는 숨소리,기침소리,재채기,한숨쉬는 소리도 삼가한다는 뜻입니다.

(7) 立容德
어느 다리든지 한 다리에 체중을 싣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어른 보는 앞에서라면 잠깐 서 있는다 해도 꽂꽂이 두 다리로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바지를 입었을 때는 괜찮지만 스커트를 입었을 때에는 발 뒷굼치 길이가 땅에서 15cm 이상 떨어지지 말도록 가르친다고 합니다.

(8) 色容粧
얼굴빛을 온화하게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항상 그 낯빛을 부드럽게 가지면 집에서 기르는 짐승조차도 그것을 알아보고 반응이 벌써 다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하물며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9) 足容重
발의 모습은 무겁게 가져야 된다는 뜻입니다. 어른 앞에서 발을 까불거나 건들건들하는 버릇,괜히 길 가면서도 돌뿌리를 톡톡차는 일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이런 행동은 전혀 경박해 보이므로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의 내용이 어른 앞에서 갖춰야할 [아홉가지의 몸가짐]즉 구용이라 해서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예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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