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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최용우
오늘은 대설입니다.
대설(大雪)은 말 그대로 많은 눈이 내린다는 절기인데, 올해는 정말 많은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대설은 24절기중에 21번째 절기입니다. 앞으로 세 절기만 더 지나가면 1년이 끝나고 '봄'이 시작됩니다. 아니, 벌써 봄 이야기를 하다니... 농사일이 끝나고 한가해지는 대설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메주콩 쓰는 냄새가 구수합니다. 우리집에서는 2층의 웅이 할머니가 해마다 마당에서 직접 메주를 쑵니다. 새벽 4시부터 마당에 있는 솥에 불을 때가며 콩을 삶습니다. 메주 만드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은데 우리동네는 시골이라서 아직도 메주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설 그림은 창문 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며 날리는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냥 하얀 종이에 까만 크레파스로 동그라미만 그렸습니다. 옆에서 동그라미만 그려도 그림이 되는것이 신기하다고 하네요.ㅎㅎ 그래서 '화가'인거야. 앗! 내가 진짜 화가인가? 화가의 꿈은 중학교 졸업하면서 접었는데... ⓒ최용우 2012.12.7
[정규호의 절기 이야기]
대설-정겨운 겨울 속으로 들어가보자
밤새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얀 아침을 맞이한다.
장독대에 소복히 쌓여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어머니는 시린 손 마다 않고 가마솥에 불을 지피며 아침을 준비하시고, 아버지는 마당과 골목길의 눈을 쓸고 계신다. 대설 무렵 정겨운 겨울풍경의 한 장면이다. 점 점 정겨운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절이다. 점 점 정겨운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절이다.
일년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은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는 11월이고,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나 8일경에 든다. 이때 태양의 황경은 255도에 이르는데, 본격적으로 겨울철 날씨가 시작되어 입춘때까지 이어진다. 대설을 옛 사람들은 동지때까지 5일씩 3후로 나누어 계절의 변화를 읽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으며,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말후(末候)에는 옛 부추인 여지(荔枝: 여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설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역법(曆法)의 발상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로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이 시기에 눈이 가장 많이 온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입동에서부터 입춘전인 대한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로 생각하고 있다. 여하튼 대설이 있는 음력 11월은 다가올 동지와 함께 점 점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서, 농가에서는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는 농한기(農閑期)로서, 가을철 풍부한 먹거리가 저장되어 있어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시기이다. 이 무렵 농가에서는 사랑방에 모여 않아 화로불에 고구마를 비롯한 밤을 구어 먹기도 하며, 가을에 걷은 짚 풀을 이용하여 새끼 꼬기와 멍석, 둥구미 등 이듬해에 쓸 생활용구를 만들며 농한기를 보냈다.
이러한 대설무렵 절기에 대하여 19세기 중엽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는 ‘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 갈단새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 염교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농가월령가 11월령에는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라고 노래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는 한겨울에 해당하는 시기로 대설 무렵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는 보리의 작황과 연관이 있다. 보리의 작황과 관련하여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가 풍년이 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 무렵 농가에서는 소설무렵 만들었던 메주띄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장(醬)은 일 년농사 못지 않은 가정의 중대사중의 하나이다.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장맛은 가정 부녀자의 최대 과제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장맛의 근본은 바로 메주띄우기에서 시작되는데 메주가 잘 발효가 되어야 장맛이 좋기 때문이다. 메주를 만들어 햇볕에 일정기간 겉말림을 한 메주는 곰팡이가 잘 번식할 수 있도록 발효를 시키는데,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곰팡이가 잘 필 수 있도록 보관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항온항습제어시스템을 이용하여 일율적으로 곰팡이가 잘 필 수 있도록 발효실을 건조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대설 무렵 눈이 많이 오면 여러 가지 생활에 장애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산간촌락에서는 대설로 인하여 이동이 힘들어 지며, 눈이 녹을 때까지 집안에서 생활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눈길을 이동할 수 있는 생활용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설피(雪皮)이다. 설피는 겨울철 눈이 많이 쌓이는 강원도 산간지역과 제주도, 함경도 등지에서 눈에 빠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에 덧대 신었던 넓적한 덧신으로 살피라고도 하였다. 설피는 다래나무나 노간주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뜨거운 물에 담가 타원형으로 구부려서 틀을 잡고, 가래나무로 틀의 가로, 세로를 엮은 다음 양쪽에 칡 끈이나 삼끈, 새끼를 달아 신발과 발목에 고정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설피는 바로 눈과의 접지면적을 넓혀 눈 위에서 활동하기 쉽게 만든 용구인데, 이동뿐만 아니라 특히, 겨울철 수렵활동을 때에는 스키 같은 긴 나무신발을 신고 빨리 갈 수 있었다.
한편 눈이 많이 오는 울릉도에는 우데기라는 전통가옥이 있다. 우데기는 가옥전체가 덮일 만큼 많은 눈이 와도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일정공간을 확보하는 외벽으로 울릉도지방의 독특한 주거형태이다. 이러한 우데기는 처마를 따라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지면까지 새 띠나 억새·수숫대·싸리 등으로 엮어 둘러친 것이다. 이러한 우데기는 눈이 가장 많이 오는 울릉도의 기후환경 때문에 생겨난 특유의 가옥구조로 투막집에 우데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이 투막집을 '우데기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데기집은 지붕의 재료가 통나무를 얇고 넓게 쪼개어 만든 너와이기 때문에 '너와집'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는데, 우데기는 폭설에도 무너지지 않으며, 그 내부는 다른 집과 통하지 않아 통로의 역할은 못하지만 눈이 많이 와도 집안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 특히 우데기 안 한쪽에 축사와 연료나 식량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마당보다 높게 흙을 돋운 토방이 있는데, 우데기는 방설설비(防雪設備) 외에도 방풍(防風)·방우(防雨)·차양(遮陽) 등의 다양한 효과가 있는 구조이다.
본격적인 한겨울의 시작인 대설에는 구들방에 둘러 앉아 한담을 나누며 고구마나 밤을 구어 먹고, 차갑게 먹으면 더욱 그 깊은 맛이 나는 ‘동치미’를 시절식으로 즐겨 먹으며 여유로운 겨울을 보냈다. 또한 이 듬해 사용할 생활용구를 만들고, 종자씨앗을 관리하며 이듬해 농사를 위한 마음가짐을 다듬기도 하였다.
조상들의 겨울나기 풍속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슬기롭게 즐기는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다. 현대사회에서 겨울은 연말연시에 대한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조상들의 겨울나기 풍속을 근간으로 내 년을 위한 충전을 착실하게 하는 올 겨울을 만들어 보자!
정규호 기자 전통장류명품화사업단 사무국장 | webmaster@sjpost.co.kr 세종포스트 2012.1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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