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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화禍) 예화 56편 모음

최용우............... 조회 수 11668 추천 수 0 2009.10.03 15: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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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화禍) 예화 56편 모음


1.화(禍)


사람은 왜 화가 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억지로 시키니까, 나를 무시해서, 내 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등등등...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참 많습니다.
첫째, 잘 참아라. (분노를 억압하고, 누르고, 감추고, 조절하라 -고전적인 방법)
둘째, 참지 말아라( 적절하게 분노를 발산하여야 병이 안됨-주로 심리학자들)
셋째, 세상 만사 도통하면 화낼 일이 뭐가 있겠는가 (도사들 가라사대)
가장 확실하게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화(禍)는 불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은 긍정적으로 잘 사용하면(+) 요리도 할 수 있고 에너지도 얻을 수 있지만, 잘 못 사용하면(-) 집을 태우고 산을 태우고 사람을 태워버립니다. 우리는 대부분 화를 부정적으로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화는 내 안에서 불끈 솟아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화가 불끈 솟아나오면, 그대로 터트려 버리지 말고 잠깐! 1초만 생각하세요.
(+) 플러스! 이 불을 잘 사용하자! 지금 터지면 집을 태운다!  ⓒ최용우


2.사람을 망가지게 하는 것은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화(禍,anger)'와 '음란(淫亂)'입니다.
모든 죄는 이 두 기둥에 붙어 자라는 가지입니다.
1. 화(禍,anger)는 인간의 내면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화는 내 안에 있는 뜨거운 불인데, 불은 잘 다스리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잘 못 다스리면 나 자신을 불태워버립니다. 분노, 스트레스, 이기심, 시기심, 욕심 같은 마음병이 모두 화를 낼 때 옵니다.
그러므로 화를 안 내는 게 좋지만, 어디 살면서 화를 안내고 살 수 있나요. 방법은 화를 낼 때 나오는 뜨거운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는 밥을 배워야지요. 마치 자동차에는 냉각장치가 있고, 컴퓨터에도 발열장치가 있고, 밥통에도 열이 빠져나가는 스팀구멍이 있듯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각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2. '음란'은 인간의 육체를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가정을 파괴시키고 인간 존엄 자체를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의 피해보다도 더 심각합니다. 그래서 란(亂)이라고 합니다.
음란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당연 음침한 곳에서 저지르는 '음란'이 아니라, 밝은 곳에서 건전하고 정상적인 '양란'을 해야지요^^  ⓒ최용우


3.분을 참으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오래 전 미국의 홀트 이반 판사는 살인을 저지른 27세의 한 여인에게 중형을 언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홀트 판사는 이 일을 내내 가슴 아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의 살인 동기가 너무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웃과 5센트(한화 40원)를 갖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기다가 그만 격분을 참지 못하고 총을 들어 상대방을 쏴 죽였던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 발단되어 엄청난 비극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을 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4. 히틀러의 분노


히틀러가 2 차 세계 대전 때 망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분노 때문이다. 히틀러는 머리가 명석하고, 관찰력이 깊고, 예리한 판단력과 비상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나 화를 잘 내는지 자기의 비위를 조금만 거슬려도 미움과 분노가 충천하므로, 그의 부하들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등 자유 진영과 힘겨운 전쟁을 하면서도 일시적인 분노로 말미암아 주력부대를 빼돌려 소련을 침공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일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때 히틀러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평소 그는 부관에게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부하들은 연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을 감행하였을 때, 소련군의 기갑 사단만 그쪽으로 돌린다면 상륙을 저지 할 수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잠든 히틀러를 깨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히틀러가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연합군이 노르만디에 완전히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한 뒤였고, 이로 인하여 독일은 패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시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5. 혈기와 분노


혈기를 잘 부리는데는 다음의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욕구 불만 때문입니다.
둘째,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주의 성령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넷째, 사탄의 노리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이 버위크 박사는 혈기 혹은 분노를 가리켜 '감추어진 폭탄' 이라고 말하면서 "폭발하는 분노는 당신의 건강을 해친다. 그것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궤양, 고혈압, 그리고 편두통을 일으키며 감정적으로는 우울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정신이상도 일으킨다." 라고 했습니다. 혈기는 전염병입니다. 그리고 습관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6.화를 내어도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에는 화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최근의 생리학은 분노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분노하지 않는 편이 절대로 이롭다." 어떻게 이롭다는 말인가?
첫째,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화를 내면 뇌 속에서 해로운 물질이 분비된다. 끝까지 화를 내는 것은 독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둘째, 노화를 촉진시킨다. 분노는 활성 산소를 생성시킨다. 활성 산소는 호흡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 산소가 변화한 것인데, 강렬한 노화 촉진 인자로 인식되어 있다. 항상 화만 내고 있으면,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생기며 탄력성이 없어진다. 어린이를 심하게 꾸짖고 있는 어머니는 노화를 촉진하고 있다.
셋째, 분노는 때로는 감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어 인생을 파괴하는 수도 있다. 화가 난 나머지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살해당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
넷째, 분노는 대체로 즐겁지 않다. "넌 바보야!"라는 말을 듣거든 "아, 그래? 충고해 줘서 고마워" 하고 감사해 한다. 이렇게 하면 뇌 속에서 쾌감 물질이 나온다. 알랭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고, 최고로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다."


7.최악의 사고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잠 14:17)
중국 북부 산시성 산젠 마을에서 한 남자(34)가 자신을 버린 부인에 대한 복수로 결혼식장에서 폭탄을 터뜨려 36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했다고 중국 청년보가 31일 보도했다. 전직 석탄 광산 폭발물 전문가인 이 남자는 29일 아침 마차에 50kg짜리 폭탄을 싣고 마을 대로에서 열리는 결혼식장에 도착, 폭탄을 터뜨렸으며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지난 해 부인이 자신을 버리고 아들을 데려간 후 질투심과 분노에 가득 차 '최악의 사고'를 낼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경고했었다. 그러나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범인의 부인과 세 자녀(아들과 두 딸)는 결혼식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분노는 사람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고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했으니, 이것은 분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잠언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8.거북이의 목을 꺼내는 법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
거북이는 여하한 강압적인 방법으로도 거북이의 목을 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거북이를 불 가까이 놓는 것입니다. 온 몸에 따뜻함을 느끼면 거북이는 스스로 머리를 내놓습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도 같습니다. 우정과 형제애의 따뜻한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해결이 옵니다. 주먹으로 우격다짐으로 해선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내지 아니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성내는 것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식사 예법에 몹시 엄격한 왕이어서 왕자들이 식사 시간을 언제나 무서워하곤 하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던 요크 왕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에드워드 7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 하며 소리를 쳤습니다. 요크 왕자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에드워드 7세는 요크 왕자를 조용히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이제는 늦어버렸어요."
"늦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갔었어요."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내로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0. 택시기사와 목사


제법 큰 교회 목사가 차를 운전해 가는데 어떤 택시가 갑자기 새치기를 해 들어와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화가 치민 목사가 급히 뒤를 쫓아가서 신호대에서 만났습니다.
차에서 내려 달려가, "이 엉터리 같은 택시 기사! 사고나는 것 보려고 작정했소? 사고 날 뻔 했잖아?" 하고 화를 버럭 내는데 그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화풀이를 하니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한다.
"목사님"이란 말에 움짓하며, "당신 교회 나가요?"하자
"저 목사님 교회 아무개 집사입니다"한다.


11.분노와 사탄의 역사


인간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분노다. 문제는 분노가 폭발할 때 그것은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나 미국과 알카에다간 관계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아무리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일단 분노가 폭발하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된다. 마치 내리막길을 달리는 마차와 같아서 넘어지기 쉽고 넘어질 때는 크게 다치게 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화가 나면 열을 세고,많이 나면 백을 세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바울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분노란 누구나 안 가질 수는 없지만 사탄에게 죄를 짓는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며 모두 분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첫째,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분을 모두 털어놓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우리의 분을 해결하는 장소다. 두 번째 방법은 분을 쌓아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 기도: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분노를 억누르고 관용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감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하소서.


12.분노의 결국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소리 없는 권총을 갖고 싶었던 소망이 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학생잡지인 "학원"에 연재된 '검은 별'에서 사용하던 무성권총에서 얻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 권총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뒷줄에 앉은 힘이 세고 키가 큰 동급생들의 등살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하게 매맞고 당하는 우리 조무래기들의 한이 나에게는 그렇게 표출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분노로서 끝이 나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이 분노가 행동으로 나타나므로, 확실히 정신건강으로는 치료의 길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과는 모두가 파멸일 때가 더욱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찍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분노는 어디에 두셨는지 뺨을 때리고 침을 뱉으면서 모진 채찍으로 십자가에 못박던 군중들 앞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욕을 당하면서 한마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역사를 볼 때 분노의 행동이 세상을 이길 것 같고, 분노의 도구인 총과 칼이 세상을 지배할 것 같으나 결국 자비와 사랑이 세상을 승리하게 한 것을 봅니다. 지구상에는 표범과 사자와 같은 분노하는 사나움과 힘의 동물의 숫자는 줄어들고 오히려 분노를 표출할 줄 모르는 양, 토끼, 소 같은 초식동물의 숫자는 날로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13.삶의 여유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친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쏟아버렸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이 한 마디에 친구는 손뼉을 치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크를 즐기는 사람은 삶에 여유가 있다. 외부의 공격에 직격탄을 날리면 곧 분쟁이 시작된다. 타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라. 상대방에게는 검지 하나만 향하고 있지만 나를 향한 손가락은 셋이나 되지 않는가? 성경은 말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절)
/임한창 국민일보 기자


14.분노의 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편 37 장 8 절
부부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며 말대답을 하는 아내를 향해 남편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장 입 닥쳐!’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는 입을 닥친 채(?)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고개를 움직이거나 눈짓으로 뜻을 표현할 뿐이었습니다. 뒤늦게 남편은 빌며 사과를 했지만 아내는 끝내 입을 열지 못한 채 무려 30년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언어 폭력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상당수 어린이들이 부모의 언어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세 명 중 한 명은 폭언을 퍼붓는 부모가 싫어 가출 혹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폭언으로는 ‘집안의 골칫덩이’, ‘너만 없으면 속이 편하겠다’, ‘괜히 낳았다’,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 ‘나가 죽어라’, ‘정떨어진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등이라고 합니다.
화가 난다고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가족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엉망으로 일그러져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부터라도 화가 난다고 폭언을 하는 일을 삼가고 언어를 순화해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 기도: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내 입술과 생각을 지켜 주소서.


15. 1분만 기다려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는 어떤 부부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노란 물약이 든 큰 통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만약 화가 치솟거든 이 물약을 세 숟가락씩 꼭 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1분 동안 머금은 후에 삼켜야 합니다. 그러면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부부는 의사 말대로 화가 나면 물약을 마셨습니다. 물약을 먹고 3분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약이 떨어지자 부부가 다시 의사를 찾아가서 약을 더 조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 약은 설탕물입니다. 부부가 싸움을 안 하게 된 것은 그 설탕물을 먹고 3분을 기다리는 동안 분노를 삭였기 때문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분노하지 말고 그 분노를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16.분노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 14:17)
징기스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데리고 다녔는데,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징기스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칼로 매를 내리쳤습니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자칫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이 마비되어 평상시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노한 사람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급하게 성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성을 내면 이성을 잃고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17.용서를 구한 티흘


농노들의 친구였던 러시아 보로네슈의 주교 티흘은 어느 날 그 지방에 있는 한 제후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제후의 영지에 있는 농노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처사를 지적하고서 앞으로는 자비로 대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의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말투에 몹시 화가 난 제후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티흘의 얼굴을 후려치게 되었다. 이 같은 제후의 행동에 참을 수 없게 된 티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얼마간 걸어갔을 때 그는 제후를 화나게 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즉시 제후의 집으로 되돌아간 티흘은 그의 발치에 엎드려 그를 격분케 한 데 대해 용서를 빌었다. 제후는 너무도 놀라서 이 선한 사람 곁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고 서로 축복을 빌었다. 그 이후, 제후는 농노들에 대한 그의 부드럽고 관대한 친절함으로 그 지방 전역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분노를 뒤로하고 오히려 무릎꿇고 먼저 용서함으로 긍휼과 평화를 심은 티흘 주교를 통해서 나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18 몸 속의 독약


빅토르 위고의 단편 중 "93"이란 것이 있다. 큰배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났다. 배의 선창에는 수송용 대포가 실려 있었다.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은 큰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다. 대포들은 배를 파괴하며 무섭게 굴러다녔다. 몇 명의 선원이 결사적으로 선창에 내려가 제멋대로 굴러 다니는 대포를 붙잡는다. 작가는 이 배를 인생에 비유하고 있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다. 배 안의 대포인 "미움"과 "원한"과 "분노"가 사람을 망가뜨린다.


19.분노하지 말라


어느 날 한 소녀가 친구에게 말했다. "난 너같이 성품이 차분한 얘는 처음 봤어! 어떻게 성품을 그렇게 잘 관리하니" 친구는 소녀에게 말했다. "잘 관리 한다구?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버지는 성질이 불같으시고 할아버지는 얼마나 성격이 사나우신지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 숨어 버릴 정도야. 나는 분노가 한순간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매일 살고 있어.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나는 매일 예수님께 '사랑하는 주님, 저 혼자서는 제 성질을 도저히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저 대신 제 삶을 주관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있어"
분노는 엄청난 파괴적 에너지이다. 심지어 살인도 불러온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마다 살인을 범했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너희는 분노, 격분, 악의, 비방, 네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들을 다 제거해 버리라"(골로새서3:8)


20.분노를 다스리는 사람


197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터 사건으로 혼란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과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대회는 닉슨의 과실로 점점 치열해졌습니다. 입후보자 중의 한 사람인 메인주 출신의 상원의원인 에드먼드 머스키는 두뇌가 명석하고 노련한 정치가였습니다. 경험이 많은 유망한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대통령후보 지명전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의 약점을 찾으려고 인신공격을 하였고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었습니다. TV 토론에서 전국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노하여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그 후 대통령 후보를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21. 분노(화)에 관한 성경 말씀


0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5:2)
0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편37: 8)
0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잠7:9)
0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12:16)
0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 14:17)
0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0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시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0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0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 19)
0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29:22)
0 너는 조급하게 분노하지 마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가슴에 머무는 것이다.(전7:9)
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약1:20)
0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22. 분노(화)에 관한 금언


0 남과 다툴 때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때는 벌써 진리를 위한 디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다툼이 되고 만다.(토마스 칼라일)
0 노여움은 항상 어리석어서 종종 후회로 꿑난다.(피타고라스)
0 분노는 종종 도덕과 용기의 무기이다(아리스토텔레스)
0 지식이 많으면 노여움이 많다.
0 애정 때문에 결혼한 자는 분노 때문에 죽는다.
0 사람이 분노함에 자신을 맡기면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0 늦추는 것은 분노의 가장 좋은 약이다.(세네카)
0 강한 사람의 분노는 항상 그 시기를 기다린다.(러스킨)
0 노하고 웃는 사람을 조심하라(중국 격언)


23. 분노가 낳은 원한


서해안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멋있는 차를 하나 샀는데 이 차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판 사람이 그것을 고쳐놓지 않아서 이것이 그를 신경쓰이게 하였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차가 달릴 때 뒤쪽에서 났으므로 그는 자기 부인에게 자기가 뒤 트렁크에 들어가 있을 동안 차를 좀 몰라고 했다. 아마 부인은 그들간의 신호를 혼동한 것 같았다.
남편이 뒤 트렁크에서 차를  세우라고 두드리자 그녀는 남편이 더 빨리 달리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뒤 트렁크에서 남편은 극도로 화가 났다. 남편의 두드리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집으로 차를 몰고가서 트렁크를 열어주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편은 굴러 나와서 잔디 위에  누워 분노에 씨근덕거렸다. 화가 나서 그는 아내가 잠들 때까지 집안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그 후에 들어가서 씻고 잠들었다. 아내에게 그는 결코 이 일에 대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12년이 지난 후에 남편은 그의 목사 친구에게 자신의 그  원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아내에게 이것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그 긴 세월동안 왜 남편이 그렇게 자신을 멀리 했는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흔히 원한과  연결이 된다. 이미 우리는 이 원한이라는 감정에 관계된 심각한 결과들을 보았다.


24. 분노를 이기기 위한 열가지 충고


1. 분을 참기 위해 차분히 심호흡하라
2. ‘분노를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라
3. 분노 이유와 원인을 파악하라
4. 하나하나 기도제목 삼아 기도하라
5. 스스로 반성해 보는 훈련을 하라
6. 가능한 빠른 해결책을 강구하라
7. 고통을 몰아내라
8. 생각의 전환점을 마련해라
9. 신뢰할 만한 누군가를 찾아가 솔직하게 털어 버리라
10. 마음속에 악의가 없어질 때까지 기도하라


25. 미움


스웨덴에 사는 조지 로나씨는 비엔나에서 변호사였으나, 2차대전 때 스웨덴으로 탈출했다. 그는 돈이 없었으므로 당장 취직을 해야 되었는데, 몇 나라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무역회사 대리인 직책을 구했으나 항상 정중히 거절당했다.
어느 회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회답이 왔다.
'당신은 우리 사업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실수했고 바보입니다. 우리는 대리인이 필요없고 혹 필요해도 당신은 문장이 서툴러서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틀린 글자 투성이입니다.'  이것을 읽은 로나는 화가 바짝났다. 즉시 그 회사 사장을 골릴 편지를 썼다.
그러나 멈추고서 잠시 생각을 해봤다. '잠깐, 이 사람이 나쁘다고 어떻게 내가 단정할 수 있나? 아마 내가 스웨덴어를 배웠다고는 해도 국어가 아니니까 많이 틀렸을거야. 이 사장은 자기 본심은 아니지만 내게 호의를 베풀게 된 거야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손해 볼건 없으니까' 그래서 로나는 그 편지를 찢고 다음과 같이 썼다.
 '저에게 회답을 쓰시는 수고를 하신데 대해서, 특히 대리인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답하신 친절을 감사합니다. 귀사를 잘못 알았던 것을 사과 드립니다. 제가 귀하께 편지를 썼던 이유는 제가 문의한 결과 귀하께서 이 부문에서 명망 높은 지도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편지에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좀더 스웨덴어를 공부해서 저의 실수를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향상에 노력을 하도록 귀하께서 자극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후 로나는 그 회사의 편지를 받고 취직되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걷어간다'는 것을 그는 배웠다.


26. 성내지 말자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고전13:5). 노와 독과 회(미움)는 안에 있는 잠복한 상태라면 성내는 일은 폭탄의 폭발이요 독가스의 분출이요 더러운 것을 토하는 것과 같다. 분은 낼 수록 더 증식된다. 한번 성내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비 록 화해와 사과를 한다해도 감정의 거울에 금이 가서 없었던 상태로 원상복귀가 안 된다.
내가 성내서 맘을 상하게 해준 분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사과했으나 커다란 인격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내가 목사가 된 때부터, 성내는 일 한가지만 절제할 수 있었더라도
내 신앙인격이 지금 50점이라면 80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자녀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제자들에게 내 성난 표정과 말로 상처 입은 분들에게 즉석에서 혹은 후일 에 늘 사과는 드렸지만 다시 땅에 엎디어 빕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요. 내 속에 성난 귀신 한 마리가 나갔다 들어갔다 합니다. 내가 성낼 때는 이 귀신이 내 속에서 성령대신 발언합니다.


27.분노는 해지기 전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롬 12:19)
40대 부인이 정신과 진찰실로 들어왔다. 우울한 표정이었다. 아랫배가 아프며 하루에 대여섯번씩 설사를 하고 때로는 변비 증세로 며칠씩 대변을 볼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런 증상은 벌써 10여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내과에서 세밀한 진찰을 받아 보았으나 별 다른 소견이 없고 다만 신경성이라는 진단만을 내렸다고 했다.
약 을 먹으면 며칠은 괜찮다가 다시 재발하곤 하여 이제는 지쳐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재발은 언제나 심리적인 괴로움과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비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 부인을 쫓아내되 위자료가 아까워서 부인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고 한다.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당하던 어느 날 마침내 부인은 4살짜리 아들을 업고 집을 나와 버렸다. 설사와 복통이 발생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러나 현재의 부인은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졌고 안정도 되찾았다.
부인을 괴롭히는 아무런 문제도 의식세계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와 복통이 수시로 부인을 엄습했다. 부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남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고 있었다. 부인은 흥미있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꿈은 10여 년 전부터 자주 되풀이되는 꿈이라고 했다.
꿈속에서 부인은 얼굴을 알 수 없는 남자와 싸운다. 그러나 번번이 무참하게 얻어맞고 잠을 깬다. 이 꿈을 꾼 날은 더욱 배가 아팠다. 꿈속의 남편은 아무래도 남편인 것 같다고 했다.
숨겨진 분노가 이 부인의 문제였다. 정신과적 치료로 부인의 증세는 호전되었다. 치료를 마칠 무렵의 꿈 또한 흥미로웠다. 꿈속에서 부인의 시댁 식구들이 상복을 입고 있었다. 관이 하나 있는 데 남편의 것이라고 했다. 남편의 장례식을 부인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관이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담담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마 제 마음속에서 그 사람이 떠나간 모양이에요.` 마음속의 증오의 대상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증오심과 복통 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월프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 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한다. 대장염의 96%가 분노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등의 위험을 가중시킨다.
존 헌터라는 유명한 생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분노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학회에서 자신의 학설이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분해서 반격을 하려다 그만 그자 리에 쓰러져 죽었다. 사망원인은 분노로 인한 심장혈관의 순환장애였다.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한다. 더욱이 숨겨진 분노는 인간의 뼈를 마르게 한다. 남을 증오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다. 미움의 대상 은 차라리 편히 자고 잘 먹을 수 있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이 안 된다. 미운 사람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잠자리에도 따라와서 잠을 못 이루게 하고 식탁에도 따라와서 식욕을 빼앗아가 버린다.
그러므로 억눌린 미움과 분노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큰 손실이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에게 복수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롬 12:19)고 당부하신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성경은 또한 분을 해가 지도록 품고 있지 말라고 하신다.(엡4:26)
분은 되도록 빨리 풀어 버려야 한다. 분노는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화목한 인간관계도 파괴하는 다이너마이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는 분노에 대한 귀 한 처방이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 보다 어렵다"(잠 18:19)고 잠언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마19:26)


28. 분노에 관한 명언


분노는 마음의 등불을 끄는 바람이다. (무명)
유순한 말은 분노를 삭히지만 과격한 언동은 분노에 불을 지르느니라. (잠언15:1)
남이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도 당신 스스로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캠피스)
화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은 뒤로 미루는 것이다. (노만 빈센트 필)
이성을 잃는 것은 진정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즉 건전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균형잡힌 결정 능력을 잃는 것이다. (조지 스위팅)
인내, 친절, 관대함이 없거나 예절을 모르고 이기적인 것, 이 모든 것은 성급함의 상징이다. (헨리 드럼몬드)
분노, 분노는 용기에 붓는 것보다 담겨진 것에서 더 많은 해를 주는 산성이다. (무명)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느니 광야에서 홀로사는 게 났다. (잠언21:19)
한 학생이 어느날 나에게 말했다.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단 일분간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소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생기는 손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조지 스위팅)


29.억울하고 분할 때


우리는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는 열을 내어 기어이 한마디하고 싶어지는 것이 상정(常情)이다. 그 냥 묻어두고 넘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 것만 같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밝히고 싶고, 신문에도 낼 수 있으면 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예수의 마음과는 다르다.
예수께서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두려워 말고 염려와 근심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시고도 "바알세불에 씌였나 보다"고 비난을 받으셨다. 그런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 알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들어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해를 벗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섰다가 "본전" 찾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다. 무슨 오해를 받는 다고 해도 말을 하지 말라. 헛것이다. 신앙이 아니다. 언젠가는 알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 기다릴 일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 그때는 내가 높아진다. 그러나 내가 해결할려고 팔을 걷어붙이면 내가 오히려 낮아진다. 상처만 커질 뿐이다.
옛날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있었다. 눈이 하얗게 오던 날, 사랑방에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밤늦도록 도박을 하고 있었다.
행인하나가 지친 몰골로 그곳을 지나다가 이 사랑방의 불빛을 보고 다가왔지만 추위속을 오래도록 걸어서 굶주리고 지쳤는지 딱하게도 그 방 앞에까지 간신히 와서 그만 끝내 쓰러져 죽고 말았다.
도박을 하던 젊은이 하나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앉은 채 꽁꽁 얼어죽은 행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방안의 사람들에게 알렸고 모두들 나와서 그 시체를 들여다 방 안 아랫목에 뉘였다. 이제 파출소에 알리는 일이 남았다. 젊은 사람 중 하나가 파출소로 알리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사람을 보내놓고 나서 젊은이들은 그가 올 때까지 도박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웬걸 죽었던 사람이 몸이 녹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부시시 일어나 보니 젊은이들이 도박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음, 내가 살아난 것을 이 사람들이 알면 필시 날보고 한 턱 내라고 할거야 내 수중에 돈이라곤 몇푼 되지 않는데 잘못하다 가는 이마져 몽당 털리고 말겠다."
이렇게 생각한 나머지 그들이 도박에 열중하고 있을 때 몰래 기어나가 달아나 버린 것이다.
이윽고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 난감해진 것이다.
곧 순경이 올텐데 시체는 온데간데없으니 이거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경이 오면 우리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괜히 끌려가 혼만 날텐데,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했는데 마침내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뒷산에 전날에 장사지낸 바 있는 무덤을 파고 거기 있는 시체를 대신 갖다 놓자는 것이었다. 시체인데 이것이면 어떻고 저것이면 어때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나의 무덤을 파 해치고 거기 묻힌 시체를 대신 가져다가 아랫목에 눕혀 놓았다. 한참이 지나자 순경이 이윽고 당도했다. 순경은 사람이 얼어죽었다며?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방안의 시체를 한참 들여다보던 순경은 아무래도 얼어서 죽은 시체가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호통을 치며 물었다.
"이 고얀 놈들, 너희들 사람하나 죽여 놓고서 얼어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순경은 그들을 앉혀놓고 다그쳤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하는 수 없이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실직고(以實
直告) 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시체는 누구의 시체냐?"
순경은 젊은이들을 앞세우고 그 시체가 묻혔던 무덤을 새벽에 찾아가 보았다. 가보니 과연 바로 그저께 장사 지냈던 그 동네 사람의 무덤이 아닌가?
순경은 그러나 무엇인가 좀 찜찜하다 싶었던지 시체를 도로 묻지 않고 이래저래 조치를 해서 시체를 검사를 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시체의 귓속에서 큰 대못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것은 살해당한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
바로 죽은 이의 아내가 정부와 짜고 잠든 남편의 귀에다가 대못을 박아 죽였던 것이다.
장례까지 치렀으니 이제 정부와 함께 희희락락 살고 있던 그 독부에게는 맑은 하늘에 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줄 알았는데 무덤 속에 들어간 것조차 그렇게 웃지 못 할 우여곡절 끝에 시체가 밖으로 기어 나오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뱅겔이라는 신학자가 한 소리를 들어 보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30.합당한 분노


레오메도우는 『분노의 극복』이라는 책에서 ‘분노를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신체와 정신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는 모 두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의로운 분노는 죄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여러 번 의로운 분노를 발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분노를 품을 때는 마음에 미움과 악의와 원한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유발된 것이어도 안되며, 적절하게 감정이 통제된 상태에서 분노를 품어야 합니다.


31.분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는 살아가면서 옳은 분노이든 옳지 못한 분노이든 분노를 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분노는 우리의 얼굴과 마음과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죠이스 랜돌프는 『미의 향기』라는 책에서 “나는 20대 초반이었지만 얼 굴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분노가 나의 정서와 마음에 새긴 잔악한 행위였다”라고 말했고, 노르윅 시립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엘러브로엑 박사는“심장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높이는 것은 식습관 때문이 아니라 나쁜 감정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분노는 우리의 영과 육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화가 난 채로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것은 맨손으로 선인장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것과 다름 없으므로 상대방이 상처 입게 됨과 동시에 당신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32.화의 해악성


품은 화를 잘못 다스리면 화병이 된다. 그리고 이 화병은 정신은 물론육체와 생활에 큰 손상을 입힌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정신 신체 의학연구 개척자인 월터 캐논박사는 [화의구름]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 구름이 노신경에 모이면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말을 더듬게 되는 증세가 생긴다고 분석한다.
캐논박사는 화의 해악성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며 피가 위와 장기에서 심장 중추신경계근육 등으로 역류한다. 소화관의 기능이 중지되고 간에 저장되어 있던 당분이 유출된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우리는 절제할 수 없는 화, 그 짐을 예수께 맡기며 살아야 한다.


33.거룩한 분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4 : 26-27)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습니다 - 이 것은 쉬운 일입니다 : 그러나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 -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 : 26은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분노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분노의 결핍은 영적인 약함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설교자 논평] 이란 잡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분노는 "마귀에 대해 신속히 격정으로 무장시키고, 본능이라는 힘과 효력을 작동시킵니다. 만약 분노가 악의와 섞이면 죄가 됩니다. 그러나 분노가 거룩한 의도와 제휴하면 이것은 안전하고 선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증오도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서로에게 생명력을 걸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무미건조하고 침체한 삶을 생생하고 균형이 잡히고 즐거운 활동으로 바뀌어 놓는 하나의 숭고한 감정이 가지는 두 얼굴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가지되 거룩한 본성의 영감을 받으면 사악함과 허위 그리고 부정에 대항하는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게 합니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질투로 인하여 분노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러나 불의나 죄악에 의해 야기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진실된 의도로 시작된 거룩한 분노는 건전하고 효과적입니다.
주여, 분을 낼지라도 죄 짓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34.알렉산더의 실수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혀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큰 불행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란 막연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클레토스라는 그의 친구는 알렉산더 대제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술에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알렉산더는 옆에 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아서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물론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그 창은 자기의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 후회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옆의 사람들의 만류로 실패했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그는 전 세계를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35 분노의 폭탄


중국 북부산시성 산젠 마을에서 한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인에 대한 복수로 어느 결혼식장에 폭탄을 터뜨려 36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있었다. 전직 광산 폭발물 전문가였던 이 남자 역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서 함께 타락하여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갖게 되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자신이 공평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하며, 이로 말미암아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흑인들의 인권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수감되었다는 사실과 견딜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감옥의 환경으로 인해 분노에 휩싸였다. 그래서 면회 오는 변호사에게 “여긴 지옥이야, 지옥!”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분노를 일으켜도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하루는 변호사가 찾아와서 물었다.
“아직도 수감 생활이 고통스럽습니까?”
“아니, 지금은 천국이오.”
“그새 감옥의 환경이 많이 개선된 모양이군요.”
“아니, 감옥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했소.”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분노하면서 죄의 소원을 따라 죄악을 저지를 것인지, 아니면 분노가 우리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여호와 앞에 잠잠히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든 신원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36 분노와 사탄의 역사


인간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분노다. 문제는 분노가 폭발할 때 그것은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나 미국과 알카에다간 관계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아무리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일단 분노가 폭발하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된다. 마치 내리막길을 달리는 마차와 같아서 넘어지기 쉽고 넘어질 때는 크게 다치게 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화가 나면 열을 세고, 많이 나면 백을 세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바울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분노란 누구나 안 가질 수는 없지만 사탄에게 죄를 짓는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며 모두 분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첫째,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분을 모두 털어놓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우리의 분을 해결하는 장소다. 두번째 방법은 분을 쌓아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You-message’이고 다른 하나는 ‘I-message’이다.
‘you-message’란 상대방에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네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잘못했다’는 식의 상대방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I-message’란 나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 잘못은 말하지 않는다.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퍽 섭섭했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라며 자신의 느낌을 표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상대는 마음이 상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너무 심했구나”라며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기 때문에 분노를 폭발하지는 않는다.
분노란 표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인해 죽는 경우도 있고 암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분노는 ‘I-message’로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분노가 사탄에게 틈을 보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37 세 번의 심호흡


꽉 막힌 도로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세 번의 심호흡'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화가 치밀고 당황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첫 번째 호흡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킨다. 두 번째 호흡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준다. 세 번째 호흡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우리 자신과 영혼을 결합시켜 준다.
- 토머스 크럼의《세 번의 심호흡》중에서 -


38 성급함이 부른 화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언 16 : 32)
징기스칸은 위대한 왕이자 용장이었다. 그는 자기 군대를 이끌고 중국과 페르시아로 쳐들어갔고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 모든 나라에서 그의 용맹스런 행위에 대해 이야기했고, 알렉산더 대왕이래 그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들 했다.
징기스칸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와 있던 어느 날 아침, 왕은 하루동안 사냥을 즐기려고 숲으로 말을 달렸다. 많은 보좌관이 그와 함께 갔다. 징기스칸과 그의 사냥꾼들은 하루 종일 숲 속을 달렸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많은 사냥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날은 더웠기 때문에 왕은 무척 목이 말랐다. 마침내 기쁘게도 왕은 어떤 바위 가장자리에서 물이 조금씩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왕은 말에서 뛰어내려 물방울을 받으려고 작은 은컵을 바쳐 들었다 왕은 너무나도 목이 말라 더 기다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왕이 컵을 입에 대고 막 마시려는 순간, 왕이 아끼던 매가 컵을 쳐 떨어뜨렸다. 그리고 , 두 번 더 왕의 컵을 떨어뜨렸다 왕은 순간 화가 나서 자기가 그렇게도 아끼던 매를 죽여 버렸다.
목이 마른 왕은 물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샘을 찾았다. 마침내 샘을 찾은 왕은 깜짝 놀랐다. 그 샘 속에는 독이 매우 강한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왕은 갈증도 잊은 채 자기의 성급한 행동으로 가엾게 죽어버린 매를 생각했다.


39 감사의 이유가 되는 분노


가장 최근에 분노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분노한 이유를 자문해 보라. 누가, 아니면 무엇이 당신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상황이나 하나님을 향해 분노할 수 있다. 각각 누가, 혹은 무엇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했다. 우리가 분노의 원인이라고 밝힌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분노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 감각이 있다.
즉 분노의 뿌리가 피조물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도덕법에 있다.
분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분노는 죄가 아니다. 분노는 타락한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분노는 인간의 삶에 사탄이 활동하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분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다. 본성이 타락했는데도 인간이 정의와 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음을 시사한다.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강력한 증거다. 분노는 의와 정의와 공평함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보여 준다. 분노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고결함을 지녔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분노를 느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 감각을 잃은 사람이다. 도덕 감각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정말로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가장 최근에 분노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분노한 이유를 자문해 보라. 누가, 아니면 무엇이 당신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상황이나 하나님을 향해 분노할 수 있다. 각각 누가, 혹은 무엇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했다. 우리가 분노의 원인이라고 밝힌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분노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 감각이 있다.
즉 분노의 뿌리가 피조물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도덕법에 있다.
분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분노는 죄가 아니다. 분노는 타락한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분노는 인간의 삶에 사탄이 활동하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분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다. 본성이 타락했는데도 인간이 정의와 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음을 시사한다.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강력한 증거다. 분노는 의와 정의와 공평함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보여 준다. 분노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고결함을 지녔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분노를 느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 감각을 잃은 사람이다. 도덕 감각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정말로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40. 역사를 바꾼 별


“위험(Danger)에서 한 치 모자라는 것이 화(Anger)”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화는 자신과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는 바이러스다. 방울뱀은 극도로 화가 나면 제 몸부터 물어뜯는다. 사람도 화가 나면 자신을 학대한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바른 판단이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웅이나 위인들은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화를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링컨은 노예의 슬픈 얼굴을 보고 ‘노예해방’이라는 화를 분출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분개해 개혁에 나섰다. 유관순은 일제의 만행에 맞서 ‘3·1 만세운동’이라는 이름의 화를 표출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 14:17)
징기스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데리고 다녔는데,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징기스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칼로 매를 내리쳤습니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자칫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이 마비되어 평상시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노한 사람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급하게 성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성을 내면 이성을 잃고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무골인간(無骨人間)은 주위로부터 칭송을 듣긴 하지만 역사를 바꾸는 힘은 없다. 인류의 역사는 화를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화를 잘 조절하라. 그러면 그것은 선을 이루는 동력이 된다. ‘용기’란 ‘잘 조절된 화’를 의미한다. 화가 나면 일단 10까지 세어보자. 상대가 죽이고 싶도록 미우면 100까지 세어보자.


41 화를 풀면 인생이 풀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탁월한 분노 관리자인 셈이죠. 인생 철학을 묻는 질문에 그는 늘 ‘나 자신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려 한다’고 대답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것이 분노 관리의 핵심입니다.”
분노·스트레스 전문 심리학자 전겸구 미국 유타대 건강증진학과 교수는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리고, 화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중요한 건 분노를 건강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몇 번 명상을 한다고, 성찰에 관한 좋은 책 한두 권을 정독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미국에서는‘앵거 매니지먼트(분노조절)’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 비결을‘똑똑하게 화를 다스리는 법’(21세기북스)에 담았다. 국내 심리학자들과의 분노 관리 워크숍을 위해 잠시 귀국한 전 교수를 만나 분노 해소 노하우를 들었다.  
 

42 노여움과 사랑


들판을 걸어가노라면 이따끔 쐐기풀에 찔려 오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갖가지 경우를 당하면서 노여움을 일으키고 비통한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재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마음이 노여움의 불길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그만큼 큰 이유가 있습니다.
악한 마음과 노여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속박하지만 사랑은 생명을 방출합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마비시키지만 사랑은 우리에게 능력을 줍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쓰디 스게 만들지만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낫게 만듭니다. 노여움은 우리들 생명에 대하여 눈멀게 만들지만 사랑은 자유와 빛의 고약으로 우리 눈에 발라 밝히 보게 합니다. 


43 인간의 역사


미소의 핵 경쟁은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미 가진 핵 탄 만으로도 지구를 41회 파괴할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이므로 한번만 파괴해도 끝날 일을 41회나 파괴할 무기를 마련  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만 5천명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증오심과 싸움을 위하여 전 세계가 쓰는 돈은 연간 5천5백억 불이다. 미국은 1987년까지 1조6천억 불을 군사비로 이미 썼다. 사회복지 사업과 교육비를 대폭 줄이고 무력경쟁에 골몰하는 것은 비극을 넘어 선 큰 죄악이다. 미국의 경우 교육비는 한 어린이에 연간 260 불 밖에 안 쓰면서 군인 한 명을 위하여는 1만 6천불을 쓰고 있다.
지난 3천년의 역사 속에 3천 3백번의 전쟁이 있었다. 사람의 역사란 싸움의 역사이다. 2차 대전의 영웅이라는 조지 패튼 장군이 `하나님 나를 도 우소서 나는 전쟁을 사랑합니다. ` 라고 말한 것은 영화[패튼]에도 인용된 유명한 망언이다.
전쟁터에서 하나 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동시에 싸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악마적 인간의 모순된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44.하나님의 사랑과 질투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열쇠 같은 개념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 과 질투와 분노다.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신 곳이 많다 (신5:9,32:16).
단순한 도덕적 분노가 아니라 부부관계에 있어서 사랑을 배신한 아내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구약 성서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은 단순 한 피조물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유형 무형의 우상 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은 사랑의 질투와 분노를 쏟는다.
종교인도, 윤리적 인간도, 강철의지의 인간도, 예술적 인간도 천재와 철인도 성현군자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화해가 되어 있지 않는 자연인은 단순한 무관계가 아니라 누구나 본 질상 종교적 간음자이며 진노의 자녀이며 (엡2:3), 하나님과
원수가 된 관계애 있다. (롬8:7) 자연인마다 종교의 의상을 입었거나 섹스의 의상을 입었거 나 상관없이 자아신 우상숭배자다.
자아신 교인의 신조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무아를 추구하고 표방하나 동기와 궁극 목표가 하나님 없는 자아일 뿐이다.


45 화를 내어도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에는 화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최근의 생리학은 분노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분노하지 않는 편이 절대로 이롭다."
어떻게 이롭다는 말인가?
첫째,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화를 내면 뇌 속에서 해로운 물질이 분비된다.
끝까지 화를 내 는 것은 독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둘 째, 노화를 촉진시킨다.
분노는 활성 산소를 생성시킨다.
활성 산소 는 호흡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 산소가 변화한 것인데, 강렬한 노화 촉진 인자로 인식되어 있다.
 항상 화만 내고 있으면,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생기며 탄력성이 없어진다.
 어린이를 심하게 꾸짖고 있는 어머니는 노화를 촉진하고 있다. 셋째, 분노는 때로는 감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어 인생을 파괴하는 수도 있다. 화가 난 나머지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살해당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 도 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넷째, 분노는 대체로 즐겁지 않다. "넌 바보야!"라는 말을 듣거든 "아, 그래? 충고해 줘서 고마워" 하고 감사해 한다. 이렇게 하면 뇌 속에서 쾌감 물질이 나온다.
알랭 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고, 최고로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다."


46 망신 부르는 3가지 함정


요 며칠 전 뉴스에 유명한 여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돼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이 나온다. 그 첫째는 키이소오(돈주머니),둘째는 코오소오(술잔),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이다.
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처리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돈 못지 않게 사람을 흔드는 게 있는데 그것이 ‘술’이다.
사람들이 술에 좌우되어 숱한 일들이 생기고 사고를 저지른다.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그 후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노여움’이다. 분노가 어떤 경우에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이 심할 때 느긋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47. 소중한 것을 잃게 하는 분노


대부분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될 때 분노를 발산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이웃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고 아픔과 이별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혹은 이웃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토스카니니는 음악적 재능으로 위대한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도 유명하였다.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을 할 때 한 연주자가 실수하면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변에 있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집어던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합주 연습을 할 때 한 연주자가 눈에 띄는 실수를 하자 즉시 얼굴이 분노로 굳어졌다. 그는 갑자기 지휘대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비싼 시계를 집어서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시계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으로 깨뜨려지고 말았다.
위대한 지휘자인 토스카니니의 분노의 불길은 자기의 값비싼 시계를 잃어버리는 손해만 봤지만 분노는 종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홧김에 던진 말 한마디가 친구나 가족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를 좋은 방법으로 극복하도록 해야 하겠다. 분노가 일어나거든 누구든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잠언 15장 1절 말씀을 생활화해야 하겠다.


48. 곰 사냥


사냥꾼들이 곰을 잡는 방법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곰이 잘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놓는다. 그러면 그곳을 지나던 곰이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치게 된다. 머리를 부딪힌 곰은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은 것이 화가 나서 돌덩이를 이마로 들이받는다. 그러면 돌덩이는 저만큼 밀려갔다가 다시 곰을 향하여 밀려와 곰을 들이받는다.
그러면 더 많이 화가 난 곰이 더 세게 돌덩이를 들이받는다. 곰의 반복되는 무차별한 공격은 그 도가 더 심해진다. 결국 곰은 그 어리석은 힘 겨루기로 머리가 터지고 녹초가 되어 힘을 다 소모해버린다. 그때 지켜보던 사냥꾼들이 와서 곰을 끌고 간다고 한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힘 겨루기로 자신을 파괴시켜가고 있는가? 그냥 피해가면 될 것을 한 곳에 더 집착하면 할수록 그 수렁에 깊이 빠지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피해갈 것은 그냥 피해 가라. 사울은 다윗을 피해 가지 않았기에 평생을 질투와 미움으로 고통 당하다가 불행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49.화가 나면


“분노를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 37: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 27:3,4.
한 지혜로운 사람이 모욕을 당해 분개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젊은이, 모욕은 진흙과 같은 걸세. 진흙은 마른 뒤에 털어야 잘 털린다네. 속상하겠지만 조금만 참게. 그러면 일이 쉽게 풀릴 걸세. 만약 자네가 내 충고를 무시하고 자네 감정대로 행동을 한다면 자네는 반드시 후회하고 말 걸세.” 젊은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머지 않아 모욕을 준 사람이 찾아와 사과를 했습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라고 중얼거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도 몰랐 던 평안이 당신 마음을 넉넉하게 해 줄 것입니다.


50.합당한 분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마 3:5.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 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요 2:14,15.
레오메도우는 『분노의 극복』이라는 책에서 ‘분노를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신체와 정신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는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의로운 분노는 죄가 아닙니다.
성경 을 보면 예수님도 여러 번 의로운 분노를 발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분노를 품을 때는 마음에 미움과 악와 원한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유발된 것이어도 안되며, 적절하게 감정이 통제된 상태에서 분노를 품어야 합니다.


51.화내지 않고 사는 법


♠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인생이 훨씬 더 재미있어지고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당신의 말을 더 잘 들어주기 시작할 것이다.
♠ 매일 최소한 한 명에게 당신이 그 사람을 왜 높이 평가하는 지 설명해 주어라.
♠ 너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 말라. 너무 꼼꼼하면 당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신경질이 난다.
♠ 당신의 권리에 맹목적으로 얽매이지 말라. 그러다 보면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입바른 소리를 자꾸 하지 말아라. 대부분 당신만 손해다.
♠ 낯선 사람에게도 종종 웃음을 보내라.
♠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끼어 들지 말아라.
♠ 자신의 불쾌함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일이 조금 잘못되더라도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 모든 것이 완벽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또한 당신 스스로도 완벽해지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면 인생이 한 순간에 훨씬 단순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도 화를 주체할 길이 없을 땐 지금 화를 내고 있는 일이 앞으로 일년 동안 일어날 일들에 대해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2.분노의 감정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11)
어느 날 한 목사님이 분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부인이 목사님께 다가갔습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성질이 너무 급해서 고민이라며 목사님에게 자기 문제를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을 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뒤가 없습니다. 금방 풀어버립니다. 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는 않지요. 일분도 안 걸려 그 사람하고 그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끝납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그 부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정중히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방이면 끝나지요 그러나 한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다 박살나지요."
사람은 모두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느끼는 정도와 표현하는 여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감정은 감정을 즉시 표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희노애락의 감정 중에 기쁨과 즐거움은 표현을 하든지 안 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다툼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깨뜨립니다. 물론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나. 분노가 치민다 해서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후회할 일만 생깁니다. 그러므로 노를 잘 다스려서 억제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53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 틱낫한의《화(Anger)》중에서 -


54 하나님의 분노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식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부모인 줄 안다.
자녀의 악에도 눈먼 분으로 말이다. 그러나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악에 노하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언제나 악에 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에 노하신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양자간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인간의 분노는 전형적으로 자신 때문에 생겨나 성질을 부리며 폭력으로 터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속일 때 발끈한다. 이것이 인간의 분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는 이러한 분노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이 노하시는 것은 불순종이 언제나 자멸을 낳는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자식이 자해를 하는데 옆에 앉아서 보고만 있을 아버지가 누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망쳐 놓는 악에 노하신다. 


55 거룩한 분노


성수대교 붕괴 후에 서울시 기술 공무원들은 "관리와 보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건축물을 가능한 원래의 상태로 관리, 보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일부 교회에서는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개혁"은 무엇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관리하고 보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교회와 복음을 성경에서 말하는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개혁의 바른 정신입니다.
마틴루터는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 자체를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오직 원래의 말씀으로만 돌아가자는 취지였습니다. 세례요한의 등장을 알리는 누가복음 3장에는 이 시대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때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방에서 포진하던 시기입니다. 즉 황제 디베료 가이사, 총독인 빌라도, 유대 각지방의 분봉왕들인 헤롯과 빌립 그리고 루사니아,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가 바로 그들입니다. 왜 이들은 세례 요한의 출현에 앞서 기록되고 있을까요?
그것은 세례요한의 등장이 그만큼 볼품 없는 극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백성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지금 겪는 상황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되면 낙원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또 GNP 1만불만 넘으면 무지개가 뜨는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북한의 남침위협은 여전히 시대의 소망은 화려한 가이사의 궁전이나, 막강한 로마 정부의 군사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그 해답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대도 관심도 두지 않았던, 빈들의 요한에게서 그 해답을 준비하셨습니다. 광야에 묻혀서 이름도 없이 살아가던 한 청년의 입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박사학위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탁월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인상이나 인간미, 교양을 갖춘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광야에 묻혀서 한 순간의 쓰임을 위하여 준비되었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모든 것을 넘치게 갖추었습니다. 웅장한 건물, 풍부한 재정, 그리고 세상적으로도 힘과 세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기관장들이 와서 굽실거립니다. 목회자는 최소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야만 담임목사로 청빙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세력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힘의 논리입니다. 세상의 철학입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여리고와 아이성의 전투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전쟁은 세력과 힘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는 힘의 철학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대세보다는 대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힘과 권력에 편승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궁이나 위엄이 가득한 성전에서가 아닌 텅빈들에서 시대의 난국을 헤쳐갈 해답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강단은 이제 달콤한 음녀의 속삭임을 그쳐야 합니다. 백성들의 필요와 시대의 필요를 따라서 편의적으로 설교를 하는 것도 좋으나 지금은 거룩한 분노가 필요한 때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세속의 오물들을 먼저 걷어내고 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당 푸닥거리를 중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것을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렘7:4-8)
'제로-베이스'운동이란 용어는 기업에서 한창 적용 중인 경제용어입니다. 이 단어에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보자는 운동이며 둘째, 모든 것을 본질에서 다시 보자는 운동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원점'에서 그리고 '본질'에서 다시 보는 영적인 제로베이스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성경을 다시 보고, 바로 읽기를 시작해야합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탐욕스런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위선과 타협과 허세와 허수 그리고 기복을 걷어내고 먼저 교회를 빈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새상이 문제가 아니라 회심하지 않는 교회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은 찬란한 교회에서가 아니라 빈들에서 하나님의 엘리야들을 찾고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함께 할 기도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군종으로는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헌신된 이름없는 무리들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잠자는 교회,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어찌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처럼 교회의 개혁을 위해 나팔과 횃불을 높이들 십자가의 군병들은 모입시다.(삿7장) 주의 일에 전심코자 하는 형제여 함께 모입시다. 작은 물방울처럼 모여 예수의 큰 강을 이룹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13-17)


56.분을 참으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15:18)
오래 전 미국의 홀트 이반 판사는 살인을 저지른 27세의 한 여인에게 중형을 언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홀트 판사는 이 일을 내내 가슴 아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의 살인 동기가 너무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웃과 5센트(한화 40원)를 갖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기다가 그만 격분을 참지 못하고 총을 들어 상대방을 쏴 죽였던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 발단되어 엄청난 비극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을 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분을 쉽게 내는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언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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