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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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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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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8:10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세상에서 어떤 절대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점치는 일이 성행하고 자칭 '메시야'라고 하는 이단들이 등장하여 활개를 친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자칭 메시야가 나타나서 스스로 큰 이적을 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약속했던 이적을 행하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큰 사기를 치기도 했고 마술과 같은 술수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많이 속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그런 사이비 메시아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진짜 메시아라면 다른 메시아들처럼 큰소리도 팡팡치고 기사와 이적도 행해 보라고 비꼬듯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삼아 기적을 보여달라 하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기로 작정하십니다. 그저 군중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이적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연약한 자를 돕기 위하여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감당키 위하여 이적의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나, 놀라운 초자연적인 이적을 통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실제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고 삶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되어지는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잠자고 일어나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걷고 뛰거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신앙이란 이렇듯 삶의 한 부분입니다. 생활신앙입니다.
신앙이 생활이 되지 못하고 관념 속에 머무르면 그것은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 바리새인들처럼 어떤 특이한 이적을 찾고 초자연적인 것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어라 하십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표적을 주지 않으리라 하십니다.
저는 요즘에 아주 힘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전 같으면 깊은 한숨을 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떤 초자연적인 이적을 보여 주시기를 기도 하였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기자의 고백이 생생하고 실제적으로 저의 입에서 나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눈동자와 같이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날마다 그분과 함께 삽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보다 더 큰 이적과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도 잡히는 것 없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이 마음에 믿어지는 것보다 더 엄청난 기적이 어디 있을까요!
세상의 계산과 방법으로는 100% 망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회복시켜주시는 과정을 보면 천하에 이런 신비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생활속에서 세미한 부분까지 주님이 간섭하시고 예비하여 주시고 잘 되게 하여 주시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이적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지 못한다면 돌이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여 어떤 특이한 것을 기대하는 믿음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내가 표적을 주시지 않으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도 되새겨볼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세상에서 어떤 절대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점치는 일이 성행하고 자칭 '메시야'라고 하는 이단들이 등장하여 활개를 친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자칭 메시야가 나타나서 스스로 큰 이적을 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약속했던 이적을 행하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큰 사기를 치기도 했고 마술과 같은 술수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많이 속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그런 사이비 메시아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진짜 메시아라면 다른 메시아들처럼 큰소리도 팡팡치고 기사와 이적도 행해 보라고 비꼬듯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삼아 기적을 보여달라 하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기로 작정하십니다. 그저 군중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이적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연약한 자를 돕기 위하여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감당키 위하여 이적의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나, 놀라운 초자연적인 이적을 통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실제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고 삶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되어지는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잠자고 일어나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걷고 뛰거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신앙이란 이렇듯 삶의 한 부분입니다. 생활신앙입니다.
신앙이 생활이 되지 못하고 관념 속에 머무르면 그것은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 바리새인들처럼 어떤 특이한 이적을 찾고 초자연적인 것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어라 하십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표적을 주지 않으리라 하십니다.
저는 요즘에 아주 힘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전 같으면 깊은 한숨을 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떤 초자연적인 이적을 보여 주시기를 기도 하였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기자의 고백이 생생하고 실제적으로 저의 입에서 나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눈동자와 같이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날마다 그분과 함께 삽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보다 더 큰 이적과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도 잡히는 것 없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이 마음에 믿어지는 것보다 더 엄청난 기적이 어디 있을까요!
세상의 계산과 방법으로는 100% 망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회복시켜주시는 과정을 보면 천하에 이런 신비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생활속에서 세미한 부분까지 주님이 간섭하시고 예비하여 주시고 잘 되게 하여 주시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이적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지 못한다면 돌이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여 어떤 특이한 것을 기대하는 믿음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내가 표적을 주시지 않으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도 되새겨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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