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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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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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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11:15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 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하시매
밤에 인천에서 안산방향으로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소래포구라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래의 야경은 그야말로 와!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화려하고 별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낮에 다시 그곳을 지나면서 보면 그 불빛의 정체는 바로 '모텔'과 놀이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13절)
예수님의 시선이 "무성한 잎사귀"에 멈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 보았을 때 "무성한 잎사귀"는 한갖 위장적인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성한 잎사귀 속에서 열매를 찾으셨지만 찾지 못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14절) 저주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단순한 하나의 과실나무가 아니고 이스라엘 종교의 무익성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실물 자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곧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였으며 무화과나무가 받은 저주는 곧 이스라엘이 받을 저주의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보신 것과 성전에서 보신 것이 서로 일치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서 찾으신 것과 , 성전에서 찾으신 것이 서로 일치합니다. 성전은 겉에서 보면 잎사귀가 무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보니 아무런 열매가 없는 곳이었습니다.(15절) 그런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인정사정 없이 둘러 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2천년 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 다시 재현되고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성전을 보신 것처럼 동일하게 오늘 나를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와 성전에서 찾으신 것을 동일하게 오늘 나에게서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매매하는 자들(장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전'과 '장사'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매우 소중한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배는 점점 형식적이 되고 점점 '장사'를 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장사'가 목적이 되고 예배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왔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크고 붐비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국회의원도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인들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해서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서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서점에는 기독교인들 외에는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라는 말입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기독교서적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서점에 기독교서적이 많아야 바람직한 일인데, 기독교서적을 죄다 기독교서점에만 모아놓고 기독교인들만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있다 이겁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은 성전 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와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무슨 짓들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막거나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게, 무슨 짓들이냐!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으시는 분이 무섭게 화를 내신 것입니다. 성전의 사악한 자들은 '돈을 바꾸면서' '제물로 바쳐질 비둘기를 팔면서'가난한 자들의 주머니까지 싹싹 털어냈습니다. 칼만 안들었지 정말 강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이런 모든 장사꾼들을 몰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겠다 경고하셨습니다.(호9:15)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성소에는 날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각종 제물이 바쳐집니다. 그러나 그 제물의 양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다는 속담처럼 제사장들과 상인들의 관심은 예배보다는 돈 버는 일에 쏠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예수님은 싫어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밝은 것이 아니라 돈버는 일에 밝고, 점점 부유하게 될수록 예수님은 싫어하십니다. 교회가 재정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 입니다. 그러나 넉넉해질수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지출되어서 남는 것이 없이 오히려 부족해야 됩니다. 교회가 부유하게 되는 일에 재정이 펑펑 쓰여 진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화를 부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신 예수님께서, 오늘 화려한 교회를 보시고 찾아 오셔서 열매를 찾으시면 과연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
밤에 인천에서 안산방향으로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소래포구라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래의 야경은 그야말로 와!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화려하고 별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낮에 다시 그곳을 지나면서 보면 그 불빛의 정체는 바로 '모텔'과 놀이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13절)
예수님의 시선이 "무성한 잎사귀"에 멈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 보았을 때 "무성한 잎사귀"는 한갖 위장적인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성한 잎사귀 속에서 열매를 찾으셨지만 찾지 못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14절) 저주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단순한 하나의 과실나무가 아니고 이스라엘 종교의 무익성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실물 자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곧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였으며 무화과나무가 받은 저주는 곧 이스라엘이 받을 저주의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보신 것과 성전에서 보신 것이 서로 일치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서 찾으신 것과 , 성전에서 찾으신 것이 서로 일치합니다. 성전은 겉에서 보면 잎사귀가 무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보니 아무런 열매가 없는 곳이었습니다.(15절) 그런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인정사정 없이 둘러 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2천년 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 다시 재현되고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성전을 보신 것처럼 동일하게 오늘 나를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와 성전에서 찾으신 것을 동일하게 오늘 나에게서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매매하는 자들(장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전'과 '장사'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매우 소중한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배는 점점 형식적이 되고 점점 '장사'를 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장사'가 목적이 되고 예배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왔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크고 붐비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국회의원도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인들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해서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서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서점에는 기독교인들 외에는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라는 말입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기독교서적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서점에 기독교서적이 많아야 바람직한 일인데, 기독교서적을 죄다 기독교서점에만 모아놓고 기독교인들만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있다 이겁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은 성전 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와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무슨 짓들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막거나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게, 무슨 짓들이냐!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으시는 분이 무섭게 화를 내신 것입니다. 성전의 사악한 자들은 '돈을 바꾸면서' '제물로 바쳐질 비둘기를 팔면서'가난한 자들의 주머니까지 싹싹 털어냈습니다. 칼만 안들었지 정말 강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이런 모든 장사꾼들을 몰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겠다 경고하셨습니다.(호9:15)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성소에는 날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각종 제물이 바쳐집니다. 그러나 그 제물의 양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다는 속담처럼 제사장들과 상인들의 관심은 예배보다는 돈 버는 일에 쏠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예수님은 싫어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밝은 것이 아니라 돈버는 일에 밝고, 점점 부유하게 될수록 예수님은 싫어하십니다. 교회가 재정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 입니다. 그러나 넉넉해질수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지출되어서 남는 것이 없이 오히려 부족해야 됩니다. 교회가 부유하게 되는 일에 재정이 펑펑 쓰여 진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화를 부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신 예수님께서, 오늘 화려한 교회를 보시고 찾아 오셔서 열매를 찾으시면 과연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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