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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경본문 : |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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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아멘 |
[깊은데로가서] 말씀묵상을 시작하며....
밤이 무척 길군요...
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글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밤새워 묵상하고 기도하고 연구하여 의문에서 풀려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5:4)하셨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눅10:26>
혹, 저의 편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못 헤아리지나 않을까
늘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말씀 앞에 자복 합니다.
2002.5.13 최용우
[말씀 묵상에 대한 나의 원칙]
1.나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열어주신 것만큼만 연다.
2.나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여주신 것만큼만 본다.
3.나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깨닫고 경험하게 하여주신 것만 증거 한다.
4.나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흘려 보내주신 것만 흘려 보낸다.
5.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고 깨닫게 하여 주시지 않으면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다시 열어 주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린다.
6.나는 말씀을 묵상할 때 언제나 나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한다.
7.나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
[알리는 말씀]
인터넷 공간에는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가 원문과 동영상으로 무수히 올라와 있습니다.
혹 설교자료를 원하신다면 이곳의 글은 별로 도움이 안 될것입니다. 여기의 글은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닌 그저 초야에 묻혀 사는 한 초라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다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 만큼 겸허하게 받아 적은 '묵상'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내놓기에도 부끄럽고 껄끄러운 글을 여기에 올리는 이유는 다음 몇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제 자신이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주 설교해야한다는 부담은 없지만, 빈번히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말씀을 전해야 하는 기회가 많은데, 말씀묵상을 게을리 하여 남의 설교를 가져다가 내것인냥 설교한다던가 옛날에 했던 설교를 재탕한다던가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늘 칼을 가는 심정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말씀묵상을 하고 그 결과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자신과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둘째 -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해져 오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와 은혜에 사로잡혀 말문이 막힐때가 많은데, 그 생생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준비'를 할 때 수많은 주석을 펼쳐놓고 짜집기를 하는데, 그에 앞서 우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을 먼저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말씀의 샘물을 받아야 순혈의 설교가 됩니다. 비록 그것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 나올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셋째 - 참으로 부족한 글이지만 단 한명이라도 저의 글을 읽고 비신자가 주님 앞으로 돌아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박한 욕심과, 단 한분이라도 저의 글을 보고 설교를 더 잘 준비해서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는 목회자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넷째 - 성경을 '설교 본문'용으로만 사용하다 보면, 정작 성경 자체가 각 개인에게 역사하는 세밀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을 설교를 하기 위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성경 자체에 촛점을 맞추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을 풀어내는 영계에 속한 그런 글도 너무 부족하고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그 부족한 부분에 저의 글이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다섯째 -가장 큰 이유는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렇게라도 말씀묵상을 해서 공개해야겠다는 장치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순식간에 멀어지기에 쉬운 기질과 성향을가진 사람입니다. '한 여름 너무 덥고 나른한 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깎았다는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거울 삼아 저도 날이 시퍼렇게 선 칼로 날마다 뽀쪽한 대나무를 깎겠습니다.
-최용우
[참고]
제가 한 참 다음 칼럼(지금은 없어진 서비스)에서 '사이버 새벽예배' 를 만들고 아침마다 예배를 인도할 때 어떤 목사님께서 저에게 '설교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목사안수'를 받지 않은 '전도사'이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듣고는 마음에 격분을 하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절차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뒤부터는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자격이 없으므로... 교단법적으로 '강도사'부터 설교를 할 수 있다네요.)
그래서 그 뒤부터 꼭 가야될 자리가 아니면 초청도 대부분 거절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설교'라는 말을 더 이상 안 쓰고 '말씀묵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말씀묵상'은 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더라구요.
부득불 설교를 할 때는 '설교'라고 안 하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보에도 '설교'시간이 없고 '말씀나눔'시간이 들어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안 거죠.
[저는 이런거 이야기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요즘 하도 이단 사이비들이 신분을 숨기고 설치는 세상이라서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제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할 수 없이 제 자신을 잠깐 소개해야겠습니다.
-최용우(崔用雨) 약력
1964년생 (저... 작은나이 아닙니다. 제가 하도 정신연령이 낮아 하는 짓을 보고 어리게 보는 분들이 있어서...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 목사님은 김학중 목사님, 전병욱 목사님 등등입니다.)
저는1992년 방배동 총신(나중에 이름을 기독신학-백석신학으로 바꾸었죠. 지금은 천안에 '백석대학교'라는 제법 큰 학교가 되었고 여전히 서울 방배동에도 방배동 캠퍼스 백석신학교가 있습니다.)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언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3학년때 이쁜 자매 한명 꼬셔서 결혼을 했는데 지금 같이 살고있는 알음다운그녀입니다.
저는 몇군데 교회에서 부목회자 생활을 했는데... 해 본 결과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 일찌감치 '목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 했습니다. 목사가 되면 이래저래 주어지는 특권이 많다는데..... 저에게 주어진 소명은 '수도자'이지 '목회자'는 아니기에 목사가 되는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평생 '전도사'로 불러주면 그만이고(학교다니면서 전도사고시에 붙어 전도사 자격증을 땄다) 형제라 불려도 좋고 최용우씨라 불러도 괜찮고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수사'라고 불려 주셔도 좋고 시인(詩人)으로 불리고도 싶습니다.(요즘 동네 이장자리를 넘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장님으로 불리고 싶어서요^^)
저는 깊은 수도와 묵상으로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영계'에 속한 글을 쓰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많아 기독교고전들을 섭렵하다 보니 오늘날의 기독교 교회는 솔찍히 원래의 기독교에서 너무 많이 이탈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예수님 시대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다 '수도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좀 더 일찍 '수도원'을 만났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고 '수도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날 깨닫고 보니 제 옆에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깽이 같은 딸들이 생글거리면서 저를 바라보고 있더라니까요.
저는 '고려수도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집에서 수도를 하는 '재가수사'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또한 관상기도를 가르칠수 있는 강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은 이런 배경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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