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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원고/cm 2001.6월호-(정직 )
제목/ 이 집은 은행에 넘어갔어요.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이 이야기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옛날 pc통신시절 컴퓨터를 통해서 만났는데, 모 교회의 안수집사이고 교회에서도 역시 고등학생부를 맡아 가르치는 반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가 오랫동안 단칸방에서 전세를 살다가, 몇 년만에 방이 두개이고 깨끗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했습니다. 그것도 시세보다 훨씬 싼 돈을 주고 전세를 얻게 되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뒤 어느 날 은행에서 나왔다고 하며 두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그 집이 사실은 은행으로 넘어간 집이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졌습니다. 이리저리 뛰어 다녀 보았지만 전세금을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전세계약을 하던 날 집 주인이 들고 온 등기부등본을 보았지만 저당잡힌 흔적이 없는 깨끗한 집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오전에 전세계약을 하고 오후에 집을 저당 잡히는 방법으로 집을 팔고 잠적해 버렸던 것입니다. 어쩐지 집주인이 서두르더라니.
여기저기 알아보니 전세금을 찾는 일은 아주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100% 다 찾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전세등기도 하지 않고 덤벼들었느냐며, 싼값에 전세를 내 놓을 때 의심을 해 보았어야 했다며 동정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 기도도 되지 않았고 믿었던 하나님도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내며 식구들과 거리로 나안기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세금을 건져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묘수를 생각해 냈습니다.
다음날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아가 능청스럽게 집을 내 놓았습니다. 특별히 신경 써서 집만 빨리 나가게 해 주면 수수료는 곱을 주겠다며 우선 용돈으로 쓰라고 10만원을 쥐어 주었습니다.
이틀 후 생각보다도 빨리 집을 보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변두리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는 이방 저방 둘러보며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내는 등기부 문제가 나올까봐 조마조마 하여 안절부절못하였고 친구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일단 아주머니는 내일 남편과 함께 다시 와서 계약을 하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 친구와 친구의 아내는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무슨 뾰쪽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공인중개사에서 나온 분의 도움으로 계약은 금방 끝났습니다. 이사날짜도 다음달 8일로 하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요구를 물리치고, 학교에서 전근을 가게 되어 이번달 말까지 이사를 가야 된다며 열흘 뒤인 월말로 잡았습니다. 이제 10일동안에 저쪽에서 등기소에 가 열람만 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전세금을 되찾고, 무사히 이사를 가게되는 반면, 골치 아픈 전세금 반환문제의 공은 저 사람들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친구만큼이나 순박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었는지 별 일 없이 이사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친구는 그 집에서 한 참 떨어진 동네에 전셋집을 계약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물론 등기부 등본부터 확인하고 틀림없는 집을 골랐습니다.
친구는 피난 가는 사람처럼 서둘러 후다닥 짐을 꾸리고 이사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사하는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 여보세요? 오늘 이사하기가 힘들겠는데요"
빌어먹을! 집이 은행에 넘어가 있는 것을 알아버린 게로구나!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이거 큰일났구나! 이거 남을 속인 죄로 하나님께 벌받는구나!
잠시 후에 아저씨가 황급하게 택시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굽신거리며 돈이 미처 마련되지 않아서 빚을 얻고 어쩌고 하느라고 늦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 가슴속에서, 양쪽 바지 주머니에서 노란 재생봉투에 둘둘 말은 돈뭉치들을 꺼냈습니다.
"이거, 그래도 100만원이 부족합니다. 이거, 집사람이 지금 목포에 있는 친정으로 돈을 꾸러 갔는데 아직 오질 않는군요."
친구는 노끈으로 묶은 천원짜리 돈다발을 보면서, 저걸 노점상을 하면서 한 장 한 장 모았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등기부등본 열람은 해 보셨습니까?"
"안해봤습니다. 대문에 보니 00교회 이름이 붙어 있던데, 저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00교회는 잘 알지요. 00교회 다니시는 분인가 본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요"
친구는 돈 다발을 주섬주섬 도로 싸주면서 말했습니다.
"돌아가세요. 며칠 전에 이 집이 은행에 넘어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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