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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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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2001.10월 (행복수첩) 원고
그래, 아빠가 똥강아지 할께
상황에 따른 적절한 어휘력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으로 공동체 식구들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4살 난 최밝은이 이야기입니다. 함께 사는 두 언니가 유치원에 가면 언니들이 돌아오는 오후시간까지 밝은이는 혼자 놀아야 합니다.
언니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괴성을 지르며 반갑게 뛰어 나가지만, 그러나 어디 언니들이 자기 마음 같은가. 유치원에서 배운 재미있는 놀이에 세대차이가 나는지 밝은이를 끼워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속이 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도 나쁜 역은 서로 안 하려고 해요. 언니들이라는게 동생에게 꼭 강아지나 하인만 시키고..." 밝은이는 또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놀아주지 않는 언니들 틈에 낄 수 있는 방법은 언니들이 시키는 대로 대장 놀이를 할 때는 졸병, 공주 놀이를 할 때는 하녀, 병원놀이를 할 때는 환자, 그리고 동물놀이를 할때는 강아지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합니다. 어쨌든 아이들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 역할을 해야하는 법.
어느 날은 놀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자기가 강아지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지 푸들 종류의 강아지 야시와 똑같이 서로 마주보며 "왈왈 깽깽 으르렁" 짖어대는 웃기지도 않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화풀이를 하듯 강아지의 목을 조이고, 뒤집고, 깔고 앉고, 간질이고 온갖 고문을 하는 밝은이를 불러서 아빠가 잠시 놀아주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밝은이가 주인공 해라. 오늘은 아빠가 밝은이의 상대가 되어줄게 무슨 놀이부터 할까?"
"아빠, 그럼 아빠가 똥깡아지 하세요."
"으헉! 똥강아지? ..."
에이, 그래 인생은 어차피 연극인 것. 한 막쯤은 주인공을 위하여 똥강아지 역도 해 보고 착한 하인역도 좀 한들 어떠랴. 4살짜리 딸내미하고 사무실 구석구석을 네발로 기어다니며 강아지놀이를 했습니다.
아부지~ 아버지도 절 키우실 때 이러셨나요?
최 용 우
'햇볕같은이야기(http://cyw.pe.kr)'라는 기분 좋은 무료 인터넷신문을 매일 발행하고 있으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충북 보은의 깊은 산골짜기에 폐교된 학교를 빌려 꾸민 [갈릴리마을]에서 나그네들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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