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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방향으로 가라 (토저 시리즈19)

저자/역자 : A. W. 토저/이용복  | 출판사 : 규장

2013년 출간  13,000원 

 

1.의지(意志)를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나의 자유의지가 나의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제로 막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순종의 결단도 내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강제로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2.행동은 마음에서 나온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지성, 의지, 도덕, 동정, 반감 등등 그 사람의 인격 전체가 포함됩니다. 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의 감정(욕구), 지성(상상), 의지(계획)을 오염시킵니다. 마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호의적인 감정이 생기면 의지를 움직여 행동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동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3.의지로 생각을 통제하라

생각을 통제하는 힘은 의지에 있습니다. 그냥 저절로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의지적으로 생각을 통제하여 마음을 지키고 그 마음과 생각이 예수를 향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곧 행동입니다.(빌4:8, 시112:7)

 

4.진리의 길

인간은 자기 삶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인간의 지성이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죄로 인해 그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빛이 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라고 합니다.

 

5.헌신(dedication)

헌신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바친다는 거룩한 개념이 담긴 ‘성경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분명히 ‘신적 존재를 섬기거나 경배하기 위해 전념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헌신’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마구 사용하면 안 됩니다. 

 

6.하나님을 추구하는 복

피타고라스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첫째 지식을 추구하는 자, 둘째 명예를 추구하는 자, 셋째 돈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두 부류가 더 있습니다. 넷째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자, 다섯째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가운데 가장 고차원적인 삶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의 삶입니다. 

 

7.우리의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그분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십니다. 나에게 다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그분만 남아 있다 해도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요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을 아무리 많이 소유한다 해도 그분이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우주의 거지입니다. 영원히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8.시선을 주님께 고정시켜라

교회가 구제, 교육, 상담, 사회운동, 정치참여 등등 그런 일들을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온전히 집중할 때 교회는 가장 순수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고리타분한 사람들이라며 비웃을 것입니다. 

 

9.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초대교회 신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신앙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위한 거룩한 열정으로 불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둠의 세력을 격파하기 위해 주님께 작전 명령을 받은 군대의 정예부대원들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거룩하고 용감한 열정에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10.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 세대의 씨앗이 됩니다. 변질 된 씨앗을 뿌리면 변질 된 수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선 시작해야 할 일은 ‘도덕적 개선’을 통해 적극적으로 영적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11.성경의 분명한 목적

성경은 죄악의 들판에서 헤매는 인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지도이고, 의에 관한 교훈의 책이고, 어둠 속에 비치는 빛이고, 하나님, 인간, 생명, 사망, 천국, 그리고 지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입니다. 성경을 통해 인간은 구원과 생명을 얻고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12.성경을 읽고 그대로 사는 것

전 세계에서 1년에 수천만권의 성경이 발행되고 판매되어 나갑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대로 살아갈까요? 만약 전 세계에 걸쳐서 수십 만명만 성경을 읽은 대로 살았다면 세상은 아마도 도덕적 혁명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성경이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기는 하지만 가장 실천되지 않는 책이기도 합니다. 

 

13.성경에 대한 오해

성경을 과학이나 경제학이나 기타 다른 과목의 교과서로 삼으려는 시도는 성경을 완전히 오해한 데서 나오는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성경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고,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고, 그들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모든 책들과는 다른 성경의 유일무이한 목적입니다.  

 

14.양다리 신앙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돌이키지 않는 양다리 신앙인들에게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타협적인 해결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줌으로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가 양다리 신앙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5.십자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영적 능력을 얻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하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도에게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를 용납하지 않기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영적 능력을 얻어 영적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6.회개가 빠진 복음

복음은 ‘거저 주는 죄 사함’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제공되는 죄 사함의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속죄의 메시지인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이 세상에서 절제와 의와 경건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회개가 빠진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반쪽짜리 복음입니다. 

 

17.죄로 유혹

마귀는 탁월한 잔략가로서 그는 백전노장의 장군처럼 작전을 바꾸어가며 우리를 멸하기 위해 전략을 구사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로 유혹합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먹혔고 세월이 흐른 지금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많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타락한 마음’과 은밀히 내통하면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18.덕으로 유혹

마귀의 교활한 전략은 우리의 덕을 이용하여 우리의 저항을 무력화시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사람들에게 유포시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미소짓고 온유하고 관용적인 분이다. 너희도 그리스도처럼 행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마귀는 성경을 교묘하게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리려고 속입니다.

 

19.사라진 제자도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지금 당장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라.”고만 하고 ‘회개’와 같은 도덕적, 사회적 문제인 ‘제자도’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나중에 배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복음을 처음 전해 받은 사람들은 복음과 제자도가 서로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0.앵무새가 아닌 독수리로

복음을 믿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독수리가 아니라 앵무새입니다. 그들은 저 멀리 높이 날아올라 하나님 나라의 무한한 황무지를 탐험하지 않습니다. 대신 편안한 홰에 앉아 자기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종교적 어휘들을 맑은 가성을 써서 반복할 뿐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 무지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달아야 합니다. 

 

<독서일기> 책을 읽으면서 한 챞트를 200자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요약하거나, 제 말로 바꾸어서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쓴 것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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