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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열정 (토저 시리즈23)

A.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272쪽 11,700원 규장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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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을 내게로

성경을 대하는 태도 중 한 가지는 성경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려 내 개인적인 지식과 관점에 성경을 끼워 맞추는 경우입니다. 대개의 경우 손을 뻗어 성경을 잡아 끌어내립니다. 특히 ‘큐티’(Quiet Time)를 하면서 ‘적용’한다는 명목으로 성경을 내 삶의 형편과 지적 수준에 맞추어 내 손아귀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2.내가 성경에게로

성경을 대하는 태도 중 다른 한 가지는 내 개인적인 지식과 관점을 버리고 나를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성경에 나를 맞추는 경우입니다. 성경이 주는 ‘심리적 만족’을 거부하고 성경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 그 불편함을 ‘고상한 불만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습니다.

 

3.성경이 말하는 삶

오늘 나와 내가 속한 교회와 기독교 모임에서 행해지는 종교의식은 성경에 나오는 모임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분위기와, 성경에 나오는 종교의식과 똑같은 것인가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모임에는 무엇인가가 섞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모임도 아니고, 그런 삶도 아닌 것 같습니다. 

 

4.다른 차원

교회에서 ‘부활절 천국 잔치’를 하는 그 모임 한가운데 앉아서 내가 느낀 감정은 ‘진짜로 천국에서 이렇게 잔치를 연다면 아무리 천국이라도 가고 싶지가 않다’ 분명히 ‘천국 잔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잔치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진짜 잔치에 대한 기대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5.준비는 끝났다

새로운 차원의 신앙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리 공부를 하거나, 은사를 체험하거나, 전문 강사를 초청하거나, 헬라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의 꽃이 필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겨울나무’처럼 아직 환경이 춥기에 꽃이 피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도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6.찬양집회

나는 인도자들이 방방 뛰면서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찬양집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나긋나긋한 모습으로 춤을 추고 감정을 고무시키기 위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하는 찬양집회는 하나님께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것으로 기쁨을 주려는 방법입니다.

 

7.기독교 세미나

나는 ‘전도 노하우’ ‘성경 노하우’ ‘교회 성장 노하우’같은 방법을 알려주는 세미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앙은 마치 홍수처럼 모든 것이 모두에게 열린 시대입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못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방법을 몰라서 안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 원인은 딱 한 가지 ‘실천’을 안 해서 안 되는 시대입니다. 

 

8.지적 단계

하나님을 아는 일에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지적(知的) 단계’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성을 주셨고 그 지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을 탐구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지식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우리는 다만 지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9.신학적 단계

하나님을 아는 일에 두 번째 단계는 ‘신학적(神學的) 단계’입니다. 신학은 진리를 체계화하여 ‘교리’로 만들어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해줍니다. 문제는 신학이 인간의 선입견에 따라 ‘조직화’가 되면서 하나님을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것입니다. 신학은 칼빈주의냐, 알미니안 주의냐 침례냐, 세례냐 자꾸 뭘 선택하라고 합니다. 

 

10.신비적 단계

하나님을 아는 일에 세번째 단계는 ‘신비적(神秘的)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교리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 인식의 신비적 단계는 무지의 구름을 뚫고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해력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11.부활의 권능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열정은 ‘부활의 권능’에서 나왔습니다.(빌3:10-1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영접합니다.”라고 고백하고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의 생명 속에 주입되어 내 삶 가운데 ‘부활의 권능’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12.고난에 참여함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열정은 ‘그 고난에 참여함’에서 나왔습니다.(빌3:10-1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불신자들 보다 더 큰 복을 받고 형통하고 부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보다 더한 고난도 당당하게 받음으로 고난 받으신 예수님과 고난의 동질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13.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열정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에서 나왔습니다.(빌3:10-1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로 또다시 죄를 짓게 하는 자아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4.장벽을 허물기

오늘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원수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높은 차단의 장벽을 쌓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벽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이런저런 잡다하고 자질구레한 활동과 행사와 도구와 요령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곳에 과도하게 열정적입니다.

 

15.신학과 임재

신학은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고 신학자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학문은 우리의 하나님 인식을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신학적으로 출중한 학자라도 성령 체험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평신도보다 하나님을 더 모릅니다. 

 

16. 믿지 말 것

“나에게 오면 내가 하나님을 보여 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사기꾼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가지 뿐인데 그것은 성령님의 계시입니다. 성령님의 일을 마치 자기가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기꾼이고 이단입니다.

 

17.당나귀 신앙

‘목마르지 않은 당나귀를 물가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신학은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은 고집 센 당나귀처럼 스스로 목마르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18.진짜 믿음은

믿음은 이를 악물고 만들어 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몸부림을 치면서 어떤 믿음을 억지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동행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19.종교의 자유

인터넷과 핸드폰이 일상화된 이 시대만큼 복음을 전하기 좋은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 하나님, 교회,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다 압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의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복음이 오해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려서 복음 전하기가 부끄러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20.기독교의 부흥

과거 세대와 비교하면 이 시대는 복음이 폭발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숫자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음을 들고 세계의 오지들로 찾아 나선 시대라면 지금은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적절한 방법만 연구된다면 순식간에 온 세상에 복음이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

 

<독서일기> 책을 읽으면서 한 챕트를 200자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요약하거나, 제 말로 바꾸어서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쓴 것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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