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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가 앞서 인도하신다. (토저 시리이즈30)
A. 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216p 12000원 규장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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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시며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삶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보여주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 전체에게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그분이 보내고자 하시는 곳으로 몰아가신다. 교회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것에 순종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고서 그냥 흘러버리지 않고 마음 깊이 새기면 그 말씀에 자극받아 우리의 사명을 이루어드리게 된다. 각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 음성이 없으면 우리의 요단강은 갈라지지 않을 것이고, 강 저편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02.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어라.
종종 우리는 이 세상에 넘처나는 온갖 종류의 음성에 매몰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해 주도적으로 일하신다. 출애굽기 23장 20-23절 말씀에서 그분은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라고 약속하신다. 그분의 사자는 그분이 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이탈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신다. 하나님은 또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20절)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시고, 사자는 그 길을 아신다. 출애굽기 23:20절은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끝난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기 위해서 나는 마음을 잠잠히 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방법들에 이끌리며, 인간적인 생각이 지시하는 대로 가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예비하신 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소원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사람들의 음성은 이쪽 저쪽으로 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가장 좋은 길이다. 그분에게 복종하면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 이르게 된다. 사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곳까지 이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 것이다.
03. 최종 목적지에 초점을 맞춰라.
하나님은 약속의 땅, 지금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 여정은 우리의 회심에서 시작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는 승리의 삶을 향해 장애물을 뚫고 전진한다. 먼저 보냄받은 사자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은 외롭지 않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는 단계들, 즉 충돌과 전쟁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분이 정하신 것이며, 한 단계는 그다음 단계로 이끌어준다. 우리 앞에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이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걸어야 한다. 교회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성령께 마음을 열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삶과 사역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고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말씀하신 “내 아버지 집”이다.
04. 성령의 인도를 믿고 의지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보내시는 이 사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이 선택하신 곳으로 가라고 자시하며 인도하신다. 우리는 이 성령께 복종해야 하고,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하며, 날마다 결단을 통해 그분을 신뢰하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출애굽기 23:21절은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이 사자가 원수를 인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고집, 반역, 불신앙 및 불순종을 눈감아주는 권세는 없다. 이 사자는 그 어떤 것도 눈감아주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 삶 속에서 우리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 그분의 음성을 따르고 그분께 순종한다면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지만, 죄를 회개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 죄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 속에서 큰 장애물이었고, 현재 각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역사에서도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분의 용서를 가슴 벅차게 느끼게 되는 순간을 학수고대하신다. 그분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자비를 베푸신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만 한다면.
05. 신앙과 불신앙은 어떻게 다른가.
불신앙 때문에 영적인 법들, 즉 그분 나라의 법들이 작동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하신 법을 따르지 않고 대신 사람들이 정한 법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진보를 저해하고, 우리를 그분이 인도하시는 방향에서 벗어나게 한다. 불신앙은 또한 주님의 인도를 방해한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깨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나라의 법들을 보아야 하며, 그분이 우리를 두기 원하시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모든 약속을 믿지만, 그 약속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 여기가 아닌 다른 어떤 곳, 그리고 지금이 아닌 다른 어떤 때를 위한 약속들이라는 전제 아래 믿는다. 불행하게도 이런 불신앙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신앙은 “다른 어떤 때에 적용되는 진리하면 왜 지금은 안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믿음은 그 말씀이 바로 지금 나에게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이 사자를 따르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예비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그분의 계획을 이해라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분을 믿고 의지하면, 그분이 정하신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서게 된다.
06. 약속의 성취는 순종에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대로 행하면 그분이 우리의 힘과 반석이 되신다는 것이 그분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실수한 사람들에게서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네가 돌아와 내 음성에 순종하면 내가 네 힘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승리는 우리의 순종에 달렸다.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지도 아래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겨야 한다. 나의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나의 충성에 기반을 둔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기 시작하면 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내 상황이 점점 더 위험해질수록 나는 그분이 나를 이끄시는 영적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07. 원수를 분별하고 맞서 싸우자.
종종 신앙인들은 자기 힘으로 원수가 두려워하게 하려고 든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없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도 원수는 겁먹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일하고 있다. 너 대신 싸우겠다. 네 원수를 내 원수로 삼을 것이니 그는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서 영광의 할렐루야를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올바른 편에 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올바른 편에 서면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분이 우리를 책임지신다. 그분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그분께 삶의 통제권을 넘겨드리는 순간 우리의 대적은 도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지 말고 모든 상황을 그분께 맡겨드리겠다고 맹세하라. 원수를 물리치는 핵심요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자.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드리는 유일한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 마음과 삶을 모두 드리는 것이다.
08. 그 땅의 소산은 들어가야만 누린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스러운 유업을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악한 땅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된 땅을 주실 수 없다. 애굽을 우리의 땅으로 여기고 계속 거기서 방황한다면 그분이 약속하신 것들을 경험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 나왔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영적 유업이다.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주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유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 유업을 받을 때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가운데 그분의 인도와 주권과 권위에 의해 받게 된다.
09. 우리의 영적 유산을 즐거워하자.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취할 의지가 있는 만큼 취할 것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취하기”라고 부른다(수1:1-9).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주님을 의지하라. 나의 큰 적은 사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지해서 살아가면, 그분의 말씀이 날마다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께 복종하고 그분의 지혜를 우리의 지혜로 삼으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의 지혜를 포기하고 그분이 인도하시도록 맡겨드리면 그분은 상항을 뛰어넘는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이다.
10.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끌고 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4). 하나님은 양 떼를 이끌고 앞서가는 목자처럼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그분이 이미 예비하신 상황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는 우리 길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궁리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목적지는 그분이 정하고 세우시며, 그곳에 이르는 길도 그러하다. 그분은 그분의 길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며, 반드시 우리가 정한 길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 계획을 빨리 포기할수록 그만큼 빨리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으로 인하여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내 길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 애굽 사람들의 재물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가라고 하실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11. 원수를 알고 그의 것을 취하라.
분내는 성질:화를 못 참고 분을 내는 성질이다. 짜증은 기질적인 죄이다. 성질내는 것은 죄의 손에 쥐어진 칼이다. 열등감: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열등감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하나님은 나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수 있다. 야망:육신적 야망이다. 사울이 바울로 변하여 그의 육신적 야망을 하나님께 맡겨드렸을 때 그분은 그것을 사용하여 그분의 큰일을 이루셨다. 소심함:나의 연약함은 내 원수가 될 수 있지만, 완전히 방향을 바꿔 나를 하나님의 자비로움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반역:하나님에 대한 반역도 방향을 완전히 바꾸면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반역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람들:사람들도 우리의 원수가 될 수 있다. 사탄:때로는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도록 길을 닦아드리는데, 사탄은 자기가 실제로는 그분의 일이 더 잘되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그분의 뜻대로 행하시도록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들이 그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드실 것이다.
12. 원수의 신들과 싸우고 대적하라.
가나안이 풍요의 땅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원수들의 땅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인간의 지혜나 결정에 맡겨두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출23:24)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원수들을 정복하려고 한다면 그들을 본받아서는 안된다. 그들과 대조되고 심지어 그들에게 적대적일 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받은 진군 명령은 “가서 순응하라!”가 아니라 “가서 대적하라!”였다. 기억하라.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혁명가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사도들은 한 사람만 빼놓고 모두 순교했다.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에 저항했기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다른 신들과 다른 제단이 있다. 세상의 쾌락, 육신, 대중적 종교, 타협, 안락, 겁박, 황금만능주의, 문화.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출23:25)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순종할 때 이 말씀대로 행하셨다.
13. 하나님의 뜻을 알아 신뢰하고 섬겨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땅으로 이끌어 들여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이끄셨는데 그곳은 그들이 선택한 곳이 아니라 그분이 선택하신 곳이었다. 그분은 그들의 목적지를 정하시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셨다. 그 길이 준비된 길이라면 우리는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신뢰하고 따를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이 더 깊어지려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 소유주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섬긴다는 것은 내가 그분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온전히 그분에게만 충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종, 신뢰, 사랑, 경배... 이런 것들은 ‘하나님 섬김’이라는 우리의 행위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14. 하나님은 이끄시고 채우신다.
우리는 섬김을 통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우리 편할 대로 그분을 섬기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뜻에 대한 반역의 첫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그분의 인도와 보호를 받았던 이유는 여호와 한 분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분을 믿는 내 신앙이 커질수록 내 삶은 그분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더욱더 성장해간다. 그분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갈 때 나는 그분을 의지하며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를 보내실 때 그분은 내가 아무 준비 없이 가도록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내게 맡기실 일을 위해 나를 훈련시키시는데, 나는 믿음에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이름으로 그 일을 받게 된다. 때로 우리가 혹독한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 결과 우리는 그분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문제들이 아니라 그 문제들의 ‘해결자’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5. 복과 전쟁이 다 우리 앞에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깊은 삶’애 대한 열정을 더욱더 뜨겁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일들 속으로, 또 그분의 마음속으로 더욱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분은 약속의 땅이 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거기에는 시련과 싸움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복만을 보고,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싸움만을 본다. 이것은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복과 싸움이 모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야 한다. 우리의 원수는 어디까지나 원수일 뿐이므로 우리는 그들과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정체계이다. 내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나는 그분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길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그분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약속의 땅으로 전진해 들어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16. 전진하는 자만이 승리한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보고도 뒷걸음질 친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나안 땅을 보고온 두 정탐꾼은 긍정적인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백성들에게 전진하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다수가 지배하면서 하나님의 약속들에서 뒷걸음질 치는 경우들이 오늘날에도 보인다. 사람들은 광신자라는 말을 들을 것을 두려워서 주님과 함께 전진할 기회를 망치고 있다. ‘더 깊은 삶’이 그들 앞에 놓여 있지만, 핍박 받을까봐 매우 불안해한다. 그분은 우리가 전진하고 싸울 준비를 다해두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했다. 교회가 편안함에 빠져버리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망각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을 싫어하고 편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전진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놓치는 것이다. 그분은 장애물 때문에 놀라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의 능력 안에서 전진하고 그분의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땅에서는 나의 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시련과 전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진하면, 나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능력과 힘이 내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17. 어제의 믿음 대신 오늘과 내일의 믿음으로
하나님은 어제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은 오직 어제의 하나님이실 뿐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눈 앞에 있고 우리를 앞서 있지만 우리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려 할 때가 너무 많다.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 복된 땅, 열매의 땅으로 이끌고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시키실 때 그분은 항상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지금 우리 모두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 위로 솟아올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을 지금 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18. 순종하는 자만이 복을 취한다.
복 받는 길은 협상이 아니라 순종뿐이다. 하나님의 복은 언제나 그분께 순종할 때 찾아온다. 하나님의 복을 앞에 두고 그분과 이러쿵저러쿵 협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분의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그분께 온전히 드리며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모든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미루는 잘못을 범한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한 세대가 모두 사망한 다음에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셨다는 것을. 순종과 희생과 선물의 크기는 비례한다. 희생이라는 것은 지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순종하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 순종할수록 희생할 것도 많아진다. 그리고 희생이 클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도 더 커진다.
19. 지연된 복도 여전히 축복이다.
때로는 ‘지연된 복’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이 되기도 한다. 아들을 얻는 것이 늦어진 것은 아브라함의 불순종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그분은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 타이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어 그분보다 앞서가려고 한다. 이스라엘의 복이 지연된 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부르신 일을 행하지 않으려고 한 불순종의 결과였다. 장벽은 순종의 발을 내디뎌야 열린다. 그분은 우리의 불순종에 겁을 먹고 물러서지 않으신다. 우리가 불순종하면 이스라엘처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겠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20. 분수령을 넘어 전진하라.
성령충만은 우리가 받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 되는대로 하는 체험’이 아니다. 성령충만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영적 선이 그러지는 분수령 체험이며, 그 선을 넘으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분수령을 체험함에 따라 우리는 성장, 발전하게 되고 그 결과로 주변의 땅을 정복하게 된다. 일단 분수령의 그 영적 선을 넘으면, 오직 성령께서 그분께 굴복한 사람의 삶에서 계획하고 끌어가시는 새로운 체험이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여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게 하셨는지 기억하게 해줄 어떤 표지물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가 ‘모호한 기독교’로 너무 변절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선을 넘었다면 반드시 그 표시가 있다. 선을 넘었다는 것을 모른다면 선을 넘은 것이 아니다. 언제 그렇게 했는지를 모른다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선을 넘는 체험을 했다는 것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언제 주님께 복종했는지를 모른다면 그분께 복종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언제 성령충만 받았는지를 모른다면 성령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순종으로 선을 넘을 때 장애물이 녹는다. 그 장애물은 우리 삶 속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불을 견디지 못한다. 말로만 세상을 버려서는 안 되고 행동으로 버려야 한다. 우리가 치러야 할 싸움들이 우리 앞에 도전해오고 있다.
21. 약속의 땅에 뿌리 내리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오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성숙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그분이 가지신 목적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날도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일들에 대해 성숙하라고 도전하신다. 성숙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큰 문제이다. 아직도 광야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여전히 만나를 먹으며 가나안의 음식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보통 그리스도인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뿌리를 둔 오락과 참된 하나님 경배를 구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참된 하나님 예배를 체험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결코 세상의 오락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독교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사교를 위한 것인가? 오락처럼 재미있게 해주는 것인가? 형식적인 것인가? 신학에 너무 치중하는가? 현실도피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큰 기쁨과 황홀을 느끼며 그분을 경배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인가?
22. 낙심이 오면 격려를 받아라.
우리가 낙심할 수 있지만, 그 낙심 중에도 우리의 눈에 두 가지가 보일 수 있다. 첫째로는 우리의 연약함이 보이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연약함 속에서 우리의 삶에 임하는 것이 보인다. 낙심이 찾아오면 우리는 쉽게 그것에 지배당한다. 낙심이 우리의 관점과 태도를 결정하고, 우리는 낙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모든 것을 보게 된다. 낙심은 잘못된 생각 때문에 생긴다. 그 잘못된 생각은 당신이 혼자가 아닌데 혼자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사면초가에 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심지어 주님도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는 가운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까지 기도하셔야 했다(눅22:43,44). 하나님께 천사를 보내 엘리야를 위해 떡을 구워주게 하신 것은 그가 깊이 낙심하고 있을 때였다. 낙심이 오면 그것에 굴복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시여, 감사합니다. 비록 제가 과거의 위대한 신앙인들보다는 못하지만,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통해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 은폐의 구름을 딛고 올라가라.
하나님의 미소 짓는 얼굴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라.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의심의 씨앗을 그 누구도 뿌리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의 미소 짓는 얼굴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면(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한데, 미소 짓는 하나님의 얼굴과 우리 사이에 ‘은폐의 구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름은 우리를 향해 빛나는 하나님의 얼굴의 기쁨과 경이와 경외를 보지 못하게 가리는데, 문제는 우리가 이 ‘은폐의 구름’이 우리를 덮도록 허락한다는 것이다. 교만, 완고함, 고집, 야망 그리고 성령께서 당신에게 지적해 주실 수 있는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전부 이 ‘은폐의 구름’이 될 수 있다. 당신에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것이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떤 경쟁자이든 간에 그것은 그분과 우리 사이를 가리는 구름일 뿐이다. 용기내어 ‘은폐의 구름’을 발로 밟고 햇빛 속에 계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에게 무엇을 하셔야 한다거나 어떻게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려 하지 말라. 단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이 일하시게 하라. 아멘. (정리 :이재익 목사)
들꽃편지658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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