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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갈망하다 (토저 시리이즈33)

A. 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192p 15000원 규장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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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명(照明)

기독교 신학은 ‘선행적(先行的) 은혜’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인간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에 물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하려면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에게 빛이 비취는 조명(照明)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조명을 받아야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2.하나님과 인격적인 소통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이시기에 그분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의 관계를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인격적으로 영접했다고 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 대한 목마름과 굶주림과 갈망도 없습니다. 심지어 ‘너무 미치지 말고 적당히 믿으라’는 말을 공공연히 합니다. 

 

3.하나님은 인격체

그분은 다른 인격체들처럼 생각하고, 의지를 가지고, 즐거워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바라고, 고통당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실 때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로로 사용해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속량 받은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랑과 생각의 소통이 지속되는 것이야 말로 신앙의 가슴 설레는 요체(要諦)입니다. 

 

4.거룩한 역설의 사람들

성 버나드(St. Bernard, 1090. 클레르보의 대수도원장)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또 계속 찾는다’고 시를 썼습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사랑의 역설(逆說)입니다. 신앙심이 돈독한 체하면서 현재 상태에 쉽게 안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역설을 비웃을 것이지만 믿음으로 불타는 그분의 자녀들은 복된 경험을 통해 이 역설을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5.거룩한 갈망을 잃어버린 세대

오늘날 스스로 정통 근본주의라 자처하는 선생들은 ‘일단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일단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된다는 교묘한 거짓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믿음의 향기를 발하는 무수한 성도의 체험에서 나오는 ‘마음의 신학’은 배척되고, 대신 ‘자기만족에 빠진 성경해석’을 환영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6.들판으로 나가는 사람들

영적 찬바람이 쌩쌩부는 이 시대에도 얄팍한 구원의 논리에 만족하지 않고, 논리의 힘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한적한 곳을 찾아 들판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며 “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소서.”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맛보고 마음으로 만지고, 영혼의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7.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라

하나님을 만나려면 먼저 그분을 찾겠다고 굳게 결심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단순한 방법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깊은 어둠 속에 숨기십니다. 온갖 외형적인 것들에 둘러싸인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8.하나님 한분만으로

신앙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잡다한 것들을 다 버리고 핵심적인 것만 추려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핵심적인 것들은 몇 개 안 됩니다. 남들에게 보이려는 짓을 그만두면 됩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솔직해지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즉시 만나주실 것입니다.

 

9.하나님을 보화로 삼은 사람

하나님을 자기의 보화로 삼은 사람은 세상 보화들에 대한 집착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것들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합니다. 그것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해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만유의 근원이신 분이 함께하기에 그분만이 모든 기쁨이요 만족이요 즐거움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가 소유한 것은 순수하고 정당하고 영원합니다.

 

10.밀려난 하나님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중심에서 밖으로 밀려 나가시고, 대신 물질이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물질이 인간의 내부를 점령하면서부터 인간의 마음 안에는 본질적으로 평안이 없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왕좌가 사라지고, 대신 고집스럽고 공격적인 세력들인 도덕적 암흑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11.내 안에 둥지를 튼 원수 

소유하고 또 소유하고 소유하려는 타락한 생명의 질기고 질긴 뿌리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물질이 없으면 못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선물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물질들이 차지했고, 이런 괴물 같은 ‘자리바꿈’으로 인하여 인간은 엉망이 되었으며, 이것은 본래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아닙니다.

 

12.복된 가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있는 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외로운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모든 외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마음에서 소유욕을 전부 뿌리뽑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입니다. 이런 복된 가난은 폭군처럼 군림하려는 사물에게 더이상 종노릇하지 않고 오히려 압제자의 멍에를 부숴버립니다.

 

13.더러운 반역

하나님은 그분의 기쁨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분과 우리가 거룩한 교제를 통해 감미롭고 신비로운 사귐을 즐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고,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의 미소를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 그분의 본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러운 반역’의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14.하나님의 속량

하나님의 모든 속량은 저 ‘더러운 반역’의 비극적 결과 들을 무효화하고, 우리를 다시 불러들여 그분과 영원히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가 만족스런 방법으로 처리되고, 완전한 화목이 이루어지며, 그분과의 의식적(意識的) 교제를 회복하여 타락 이전처럼 그분 앞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했습니다.

 

15.첫걸음

그분이 먼저 그분께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야 우리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때가 어느 때인가 하면 평안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임재를 갈망하면서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말씀 드리리라”(눅15:18)라고 중얼거릴 때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이것이 그분께 가는 첫걸음입니다. 

 

16.임재 체험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멸망하고, 교회는 그분의 임재가 없어서 영적 기근에 시달립니다. 우리의 병든 신앙을 즉시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임재를 영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홀연히 깨닫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 성공하면 우리는 편협함을 벗고 넓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17.전지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십니다. 이것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단 한 번의 자유로운 행위를 통해 모든 물질과 모든 영과 모든 관계와 모든 사건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에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그분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제한적이고 한정적인 그 어떤 말이나 글로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18.서기관과 선지자

서기관은 자기가 읽은 것을 말하지만, 선지자는 본 것을 말합니다. 책을 읽은 서기관과 하나님 앞에 가보았던 선지자 사이에는 대양만큼이나 넓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안에 귀에 거슬리는 서기관의 음성은 많이 들리지만, 휘장을 젖히고 들어가 내면의 눈으로 ‘저 놀라운 하나님’을 본 선지자의 부드러운 음성은 드뭅니다.

 

19.자아 휘장

자아는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가리는 불투명한 휘장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에 의해 제거되지 않으며, 오직 영적 경험에 의해 제거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되려면 하나님이 자아를 죽이셔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집행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니다. 자기중심적 죄들을 십자가로 끌고 가 심판받게 해야 합니다.

 

20.영의 세계

영적 세계는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내적 자아가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습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알아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임재에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영원한 세계는 우리가 그것의 ‘실재’를 ‘의지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되살아납니다.

 

*독서일기 -최용우

들꽃편지660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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