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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김용택의 <한시산책2>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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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게으른 아낙
게으른 아낙이 밤에 산채 따서
겨우 죽 한 그릇을 끓였네
부엌에서 몰래 마시는 소리
산새가 잘도 흉내를 내는 구나 -김병연
게으른 아낙이 죽을 끓여서 몰래 마시는 소리를 산새 소리로 표현한 김삿갓의 재치가 엿보이는 시입니다. 그러고 보면 새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그리고 듣는 이의 처지에 따라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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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가롭고 넉넉함
내 몸 가리기엔 초가집 하나로도 넉넉하고
샘물은 맑아서 먹기 좋구나
어디서 새 우는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소리 때때로 들려오네
눕거나 일어나는 데 아무런 속박 없고
진리에 맡겨 살다보니 벼슬도 잊었네
집 앞에 찾아오는 손님도 없으니
한가롭게 지내느라 그윽한 뜻만 깊어가네 -최기남
읽기만 해도 선비의 청빈함과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나는 시입니다. 초가집 한 채와 집 앞의 맑은 샘물만으로도 세상을 즐기며 살던 그 시절의 선비들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일 저 일에 밀려 정신없이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들이 '한가롭게 지내느라 그윽한 뜻만 깊어가네'의 의미를, 그 한가로움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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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연의 삶
풀을 엮어서 지붕을 이고
대를 심어서 울타리 삼았네
그런대로 산 속에 사는 맛을
해가 갈수록 혼자서 느끼네 -유방선
하버드대를 나왔으나 부와 명에를 버리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 호숫가 '윌든'으로 가서 자연의 삶을 살았던 소로우가 생각납니다. 모든 생계를 자연에서 얻었던 소로우나 우리의 옛 선비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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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농촌 풍경
며느리는 앉아서 아이 머리를 땋고
등 굽은 노인은 외양간을 치우고
뜰에는 가득 쌓인 우렁이 껍질들
부엌엔 먹고 남은 달래 몇 뿌리 -이용휴
당시의 먹고 치우는 농가의 일상을 그대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우리 학교 학생이 쓴 시가 생각났습니다. 농촌 냄새가 물씬 나는 풍경이지요.
소똥
소는 똥이 진짜 크다
어떤 사람은 소똥을 밟아
넘어지네
소똥의 냄새는 너무나 지독해서
우리는 쓰러지네 -덕치초등학교 2학년 전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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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목동
맨종아리에 소 타고 가는 아이
가을 산의 고운 빛 가득 싣고서
풀어헤친 머리로 이랴 쯧쯧쯧
노래하며 돌아오네 푸른 달빛 속 -유동양
요즘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의아해하겠지요. 몇 군데씩 학원 다니며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이 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주세요. 풀어헤친 머리, 맨발과 맨종아리에 소를 타고 가는 아이, 가을 산 고운 빛 싣고 한밤에 노래하며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 이젠 어느새 동화가 되어 버렸나요?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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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추 따는 아이
옆집 어린아이 대추 따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 문을 나서며 아이를 쫓네
어린아이 오히려 노인에게 말하길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사시지도 못할 텐데 - 이달
세월을 비유해서 쓴 참 윗트 있는 시입니다. 늙은 거지는 박대하더라도 젊은 거지는 대접해 주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대추 몇 알 인심 좋게 따 가라고 두시지. 노인네 결국 어린 아이에게 가혹한 한 말씀 듣는구려.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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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꽃의 본질
사람들은 꽃의 모습만 좋아하고
어떻게 꽃이 되었는지는 볼 줄 모르네
꽃에서 생명의 이치를 보는 사람들만이
자연의 흐름과 순리를 깨닫게 되나니 -박상현
꽃집 앞에 걸어놓고 싶은 시입니다. 씨앗에서 시작해 뿌리, 싹, 줄기, 잎, 꽃, 열매 그리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흐름과 순리를 통해 영원히 삶을 꿈꾸는 이, 깨달은 자이거늘...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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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새벽에 일어나
새벽에야 뜨는 저 조각달
선명한 빛이 얼마나 갈까
작은 둑은 간신히 기어오르나
긴 강은 건널 힘이 없겠지
집집마다 단잠에 빠졌는데
외로이 나 혼자 깨어 노래 부르네 -정약용
유배지에서 쓴 정약용의 마음이 새벽빛처럼 아리고 아픕니다. 작은 둑 하나 간신히 넘어온 여린 빛 바라보며 홀로 깨어 있는 당신의 외로움이 그 많은 글을 쓰게 했군요.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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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아침잠
풍로에 국 끓고 처마 끝에 까치 울고
치장 끝낸 아내는 국물 간을 맞추네
아침 해 높이 떠도 명주 이불 따뜻해
세상일 나 몰라라 잠이나 더 자자 -이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이불 속에서 듣는 아내의 아침 짓는 소리라고 하던가요?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이 평화로운 광경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겠습니까. 발소리를 죽이고 아내에게 다가가 뒤에서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세상 사람들이여! 나의 아내는 18년 동안 나보다 앞서 일어난 적이 한번도 없군요. 이크!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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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붓으로 그린 대나무
한가한 마음에 붓을 들고
대나무 한 그루 그려보았네
벽에다 붙여놓고 바라보니
그윽한 그 자태 속되지 않았네 -정서
속 보이는 일이 속된 것이지요.-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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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가을
섬돌에 서리 살짝 비치니
겹겹이 입어도 춥기만 하네
귀뚜라미는 모르지, 가을을 슬퍼하는 내 마음
규방의 밤이 길어지니 그것만 기쁠 뿐 -진온
날씨가 선선하네.
밖을 보면 산도 들도 강물도 쓸쓸하네.
그러나 나는 좋다네.
밤도 길어지고
따뜻한 방에 내 님이랑 살 대고 긴긴 밤 지낼 수 있는 겨울이 오니
나는 좋아라 -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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