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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사방을 둘러보고,
이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 견주어 아무것도 아님을 알 때,
바로 그 순간, 영혼의 밤이 시작된다.
예레미야는 말했다.
“내가 땅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내가 하늘을 보았으나 아무 빛도 보지 못하였다.”
그 순간,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아무것도 아닌 것도 못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닿아
그분 안에서 변모되는 것을 그것들이 막는다.
우리는 안다, 자신의 빛을 의지하는 한,
결코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분의 피조물에 집착하는 한,
결코 하느님을 알지 못하리라는 것을.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견줄 때
그것들의 아름다움은 추함 자체다.
하느님의 멋에 견줄 때
그것들의 멋은 조잡함 자체다.
하느님의 선(善)으로 재면
그것들의 선은 선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 빠져있는 한,
결코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이 모든 집착을 여의기 전에는
이 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하느님을 모실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영혼의 밤이 시작되는 것이다.
[온종일]
다시 보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로 하여금, 어둠 속을 둘러보아
제가 이토록 집착하는
하늘과 땅의 온갖 피조물들이
당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예레미야의 눈으로
하늘과 땅을 보아
거기에 빛이 없음을 보게 하소서.
이곳 어둠 속에서
사물에 대한 저의 애착이 저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닌 것도 못되는 것들을
움켜잡게 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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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일
[밝아오는 아침에]
영성의 오솔길에 이제 막 들어선 그대는
새로 찾은 헌신의 길에
너무 열성적이고 스스로 대견하여
일종의 교만이 가슴 속에서 고개를 들 수 있다.
잘 산다는 것은 겸손히 산다는 것인데
그대는 오히려 다른 여행자들보다
그대가 우월하다는 자만심을 속으로 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비틀거리는 걸음마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 들어섰으면서
감히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영적인” 언사를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대의 기준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듯이 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자기는 남들과 다른 대단한 사람이라고
으스대던 세리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같잖은 당신의 어림짐작으로
다른 사람들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견책하는,
제 눈의 들보는 놔두고
자매 눈의 티를 뽑아주겠다고 설치는,
건방진 초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마태오 23, 24)
눈먼 안내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온종일]
네 눈의 들보를 경계하여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는 이제 막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선 몸입니다.
그런데 벌써,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고 자만하던 세리처럼,
같잖은 어림짐작으로
제 눈의 들보보다 자매 눈의 티를 걱정하는
건방진 초보자가 되려는 저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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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일
[밝아오는 아침에]
자신의 지혜를 자랑할 때 우리는,
성 바울로가 경고한 대로, ‘바보’가 된다.
하느님의 지혜에 맞서는 세상의 모든 지혜와
우리의 재간들이, 지독한 무지요 몽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신의 지혜로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시도야말로 진짜 무지요
결코 그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 무지에 막혀서 우리는
무엇이 참 지혜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아무 배운 것이 없는 아이처럼
자신의 지식을 내려놓고서
하느님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자만이
그분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아 간직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하느님의 지혜로 들어가고자 할진대,
앎으로써가 아니라
모름으로써 그리 할 일이다.
우리가 빛으로 여기는 것이 어둠으로 될 것이다.
우리가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지혜의 밤인 것이다.
[온종일]
네가 아는 것을 버려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진짜 어리석음을 지혜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이 바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직 배운 게 없는 아이처럼
저의 지식을 내려놓고서
당신의 부축을 받으며 걷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지혜로 들어가고자 할진대
앎으로써가 아니라
모름으로써 그리 할 것입니다.
빛인 줄 알고 있는 것이 어둠으로 될 테니까요.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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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
[밝아오는 아침에]
‘잠언’에서 솔로몬의 입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단순한 자들은 사려분별을 배우고
어리석은 자들은 남의 비위를 맞춘다.
부(富)와 명예, 재물과 번영이 내게 있다.
내 열매가 정금보다 낫고
내 소출이 순은보다 낫다.”
우리는 단순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이다.
여전히 세상 것들에 매달려 있는
우리에게 그분이 말씀하신다.
시시한 물건들을 보물처럼 여기고 있으니
우리야말로 보잘 것 없는 자들이다.
우리가 찾는 부(富)와 영광이
우리가 찾는 곳이 아니라 그분한테 있다.
무엇이 값진 것인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금보다, 순은보다 값진 참된 부(富)는
오직 그분한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 영혼에 주신 생명은
제련된 금은보다 값지고
우리가 세상 것들에 줄 수 있는
그 어떤 애정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만들어낸 온갖 풍요와 영광이
주님 눈에는 지독한 가난이요 비참이다.
그것들을 보물로 여기는 자들 또한
가난하고 비참한 자들이요,
유일하게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위없는 부(富)와 영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온종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오직 당신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참으로 값진 것을 엉뚱한 데서 찾았습니다.
여전히 세상 것들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하나로 살면서
시시한 물건들을 보물로 여기는
시시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위없는 부(富)와 영광보다
가난과 비참을 선택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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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일
[밝아오는 아침에]
아이들처럼 유치한 것들에 넋을 잃는 대신
더 고귀한 것을 갈망하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선(善)과 풍요를 우리가 상실하게 될는지,
우리가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하찮은 것들을 포기함으로써 간소한 영의 양식에서
얼마나 깊은 만족을 맛볼 수 있는지,
우리가 그것을 알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하나 됨을 저해하는 사물들에 대한
모든 열망을 먼저 비우지 않고서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과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 안에서의 온전한 변화는
하늘 땅 만큼이나 다르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물을 모두 버리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점에 분명하라. 우리와 아버지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을 버리는 길을 가르치려고
사람의 아들이 오셨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분의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자신과 자기 소유물을 놓아버리는 일에 실패하는 한,
성령과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온종일]
네가 가진 것을 놓아버려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의 하찮은 욕망들을 먼저 비우지 않고서
당신과 하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무지인지를 압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에 넋을 빼앗긴 채,
그러느라고 제가 얼마나 많은 영적 선(善)과 풍요를 잃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채우려는 하찮은 욕망들과
당신이 저에게 주시는 전적인 변화의 차이도 알지 못합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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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일
[밝아오는 아침에]
모세를 높은 산꼭대기로 불러 말씀을 나누고자 하셨을 때,
하느님은 그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모든 것을 두고 오라고,
치던 양조차 버려두고 오라고 명하셨다.
위로 오르는 여정의 목적이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오직 당신과 단둘이 있는 것임을 일러주신 것이다.
야곱이 베델 언덕에 올라 제단을 쌓을 때도 그랬다.
하느님은 그가 언덕을 오르기 전에
당신 백성에게
거짓 신들을 없애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때 묻지 않은 새 옷을 입으라고 명하셨다.
우리도 하느님께로 올라가려면
욕정을 모두 버리고 순결한 몸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이 일을 속히 이룰수록 그만큼 속히 정상에 이르러
그만큼 속히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게 되리라.
그러나 자기 욕정들이 모두 지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많은 덕행을 지어도, 정상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등정에서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기 전에,
그리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변화를 경험하기 전에,
먼저 영혼이 텅 비워지고, 벌거벗겨지고,
순결해져서 모든 욕정이 사라져야 비로소 이루어질
온전한 덕(德)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모든 것을 등지고 떠나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그러나 제가 만일 이 여정에서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말씀을 나누고,
당신과 하나 되려면,
모세처럼,
모든 것을 등지고 떠나야 합니다.
저로 하여금 이 여행의 목적이
아무 방해 받지 않고 당신과 함께 있으려는 욕망 말고는
아무런 욕정도 없이,
오직 당신과 단둘이 있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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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 욕정들이 우리 에너지를 말리고,
우리를 지치게 하여
영혼의 여정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것들은 철부지 애들과 같아서,
이걸 달라고 저걸 내어놓으라고, 끊임없이 칭얼거린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아무리 가져도 여전히 모자라는 보화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물 없는 샘을 파느라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그리하여 쇠약해지고 허무해지고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욱 목마를 뿐 아니라
화가 나고 성이 나서
그 어디에서도 평안과 휴식을 맛보지 못한다.
우리 욕정들은 땔감을 새로 넣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과 같다.
급히 그것들을 삼켜버리고 다른 땔감을 또 다시 요구한다.
하지만 땔감이 타버리면 꺼지는 아궁이 불과는 달리,
우리 욕정들은 땔감이 없을수록 오히려 더욱 헐떡거린다.
우리의 배고픔은 채울수록 더 커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를 탈진시키고 만다.
[온종일]
우리가 탈진하지 않으려면……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저는 지금 마른 샘을 파고
아무리 가져도 여전히 모자라는 보화를 찾아 헤매느라고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저는 지금 쇠약하고 허무하고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욱 목마를 뿐 아니라 잔뜩 화가 나서
어디에서도 평안과 휴식을 맛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제 목마름을 적시고
제 배고픔을 채울 수 있습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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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
[밝아오는 아침에]
누구든지 욕정이 자기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은
강력한 압제자의 손에 시달리며 고문당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한때 상대가 없을 만큼 힘이 세었지만 적수의 손에 넘어가
힘을 잃고 눈도 잃고 조롱과 고문을 당한 삼손을 생각해보라.
우리의 적은 우리의 욕정들이다.
우리도 삼손과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욕정이 강할수록 그만큼 겪어야 하는 괴로움도 크다.
“저들이 벌 떼처럼 나를 에워쌌고
가시덤불에 붙은 불처럼 타들어왔다.”고 다윗은 호소하였다.
그는 계속 말한다.
“몸통이 불길에 휩싸이고 온몸에 성한 곳이 없구나.
만신창이 몸으로 아파서 신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욕정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
하느님의 거룩하신 영은 우리를 새 기운으로 채워주신다.
그분이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시달리고 고문당하는 자들아,
자기 욕정들에 짓눌리는 자들아,
모두 압제자를 등지고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새 기운으로 채워 주리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숨을 얻으리라.
[온종일]
내게 오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저야말로 자기 욕정에 짓눌려
시달리고 고문당하는 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제 압제자를 등지고 당신께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간구하오니, 제 영을 새 기운으로 채워 주시고
저에게 안식을 주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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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일
[밝아오는 아침에]
욕정은 우리 영혼을 눈멀게 한다.
욕정 자체가 눈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빛에 눈이 멀어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된다.
욕정은 강렬한 빛이다.
거기에 눈길을 주면
그 너머에 있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욕정의 빛이 너무 강렬하여
그것을 치우기 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영의 빛을 알지 못하여,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눈멀어 있다.
우리는 악을 알지 못하여,
날마다 욕정으로 그것을 불러온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만으로
욕정이 우리 앞에 놓은 덫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그리하여 전적인 맹목이 결코 우리 영혼을 점령 못하리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는 빛으로 에워싸여 있으면서,
어둠 속을 걸으며 엎어지고 넘어지는 인생길을 고집하고 있다.
[온종일]
우리는 빛으로 에워싸여 있으면서 어둠 속을 걷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의 지성만으로 욕정이 제 앞에 놓은 덫을 피할 수 있고,
전적인 맹목이 제 영혼을 점령 못하리라고 스스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빛으로 에워싸여 있으면서
가짜 빛에 속아 어둠 속을 걸으며
넘어지고 엎어지는 고단한 인생길을 걷고 있나이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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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
[밝아오는 아침에]
욕정은 도둑이다.
우리 삶에 아무 가져다주는 게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을 훔쳐간다.
그것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우리를 송두리째 삼키고
나아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안에 살아남은 유일한 물건이 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를 죽일 것이다.
욕정이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어지럽히도록 내버려두면
덕을 실천하려는 우리의 의도가 무거운 짐으로 되고 만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이웃을 향하여 무감각해지고,
하느님과의 관계에 게을러진다.
영적 힘이 고갈되어 병이 들고,
그렇게 지치고 쇠약하고 눈먼 상태로 죽어간다.
반면에, 하느님께 오로지 마음을 드리고
욕정의 손아귀를 깨뜨리면,
우리 안에서 새로운 힘,
새로워진 기운이 피어나고
눈이 다시 열려 보게 되리라.
[온종일]
본디 네 것을 되찾아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그러나 제 발걸음이 욕정에 이끌릴 때,
덕을 실천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거운 짐으로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치고 쇠약하고 눈먼 상태로 죽어가겠지요.
저를 움켜잡고 있는 욕정을 깨뜨려주소서.
오로지 마음 모아 제 삶을 당신께로 돌리게 하소서.
제 힘과 기운을 새롭게 하소서.
제 눈을 다시 열어주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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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
[밝아오는 아침에]
영성에 대한 갈망으로,
욕정들보다 뜨거운 갈망으로,
불타오르지 않고서는,
오랜 세월 그 속에 탐닉해온 욕정의 감옥에서
우리 영혼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감각들의 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우리는 저항한다.
스쳐 지나가는 쾌락들을 기꺼이 비우고,
인생의 어두운 밤 속에서,
오래 길러진 욕정들이 이제 그만 버려지는 삶을 살려면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리라.
더욱 큰 사랑으로만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온 사랑들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자기 욕정들을 극복하고
자기를 지배해온 쾌락의 힘을 부인코자 한다면,
우리는 더욱 크고 좋은 사랑의 불을 댕겨야만 한다.
더 크고 좋은 사랑 안에서 만족과 힘을 찾을 때,
우리는 모든 욕정들을 부인할 용기와 항심(恒心)을 지니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집안은 조용해지고
욕망들은 멈추고
욕정들도 더 이상 우리 영혼과 싸우지 않으리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 됨을 즐기며
자유로이 거닐게 될 것이다.
[온종일]
더 크고 좋은 사랑이 필요하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여기 어둠 속에서 저로 하여금
그동안 길러온 사랑들을 대체할
더 크고 좋은 사랑을 맛보게 하소서.
그래야만 제가 저를 짓누르는
욕정의 힘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만족과 힘, 용기와 항심을 가져다줄
더 크고 좋은 사랑의 불을 제 안에 댕겨주소서.
그때 비로소 제 집안은 조용해지고
제 욕망들은 멈추고
제 욕정들 또한 더 이상 제 영혼과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제가 자유로이 거닐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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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 모두 얼마쯤 하느님을 닮은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차이점으로 하느님과 떨어져 있다.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더라도,
아무리 우아하게 꾸미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을 알 수 없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우리의 감각들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우리 영혼에 전해주지 못한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를 본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요한은 말한다.
“아무도 하느님이나 하느님 비슷한 누구를 보지 못하였다.”
이사야도 말한다.
“너희가 어떻게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단 말이냐?
어떤 모습으로 그분처럼 될 수 있느냐?”
우리의 한계는 단순히 하느님의 얼굴을 뵙지 못한다는 것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머리로 이해하고 우리 의지를 작용해서는
지워버릴 수 없는 차이(difference)의 문제다.
믿음만이 그 차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온종일]
내 눈은 보지 못하고 내 귀도 듣지 못한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우리 사이의 간격이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그것은 제 머리로 이해하거나 제 의지를 작용하거나
상상으로 그려서 지워버릴 수 있는 차이가 아닙니다.
믿음만이 그 차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밤이 지속되어,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하고 당신 같은 누구를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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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일
[밝아오는 아침에]
영으로 오르는 우리의 길은 밤의 여정이다.
밤을 지내고,
그동안 우리가 의존해온 것들이 더는 길을 가리키지 못할 때,
우리에게 문득 밝아오는 빛이 곧 믿음이다.
환한 날의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의지하거나,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신앙으로만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간다.
하느님이 우리의 지성이나 상상력 또는
특출한 재능으로 담을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알 수 없는 분이 하느님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다.
오히려 애쓸수록 하느님한테서 더욱 멀어질 따름이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마련해두신 것을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마음은 담지 못한다.”
그런즉, 자신이 이해하고 상상하고 욕망할 수 있는 무엇에 매달려 있는 한,
특히 자신의 노력을 의존하는 한,
제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 너머의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앎에서 모름으로,
이해의 낮에서 믿음의 밤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온종일]
우리는 밤의 나그네들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제가 이해하고 상상하고 욕망할 수 있는 것들에 매달려 있는 한,
특히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는 한,
제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들 너머의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저에게 깨우쳐주소서.
지금은 앎에서 모름으로,
이해의 낮에서 믿음의 밤으로 옮겨갈 시간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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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일
[밝아오는 아침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려면
그분을 믿어야 한다.
오직 믿음 안에서,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신성한 빛 속에서,
그분께로 나아갈 때에만,
하느님은 당신을 우리 영혼에 보여주신다.
하느님은 뵙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다른 무슨 방법이 없다.
믿음이 깊은 그만큼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런즉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얻은
그분에 대한 관념들과 형상들을 모두 비우고
텅 빈 마음과 영혼으로 하느님을 향해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 믿음 안에서 위로 올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는 하느님이 어둠에 감싸여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어둠을 만드셨고 어두운 물을 당신 거처로 삼으셨다.”
하느님은 우리 눈에 어둠으로 보이는,
눈멀게 하는 빛(blinding light)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위로 오른다.
[온종일]
우리는 어둠 속에서 올라간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당신은 제 눈에 어둠으로 보이는,
눈멀게 하는 빛 속에서 저에게 다가오십니다.
당신은 어둠을 만드셨고 어두운 물을 당신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둠 안에서만 저는 당신께 나아갈 수 있으며
제가 그토록 바라는 당신과의 하나 됨에 오를 수 있습니다.
당신께로 가까이 가는 것은
당신을 아는 게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다른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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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일
[밝아오는 아침에]
믿음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영혼의 빛이라면
어째서 그것을 한밤중의 어둠과 같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눈을 멀게 하는 빛이 일종의 어둠이듯이
그렇게 어둠이다.
모든 것을 삼키는 믿음의 빛이
우리의 지성과 함께
지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삼켜버린다.
믿음의 빛은 태양 같아서,
그것이 빛을 낼 때에는
모든 빛이 빛 아닌 것처럼 보이고,
모든 보는 것이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믿음의 빛은 우리의 시력을 더 밝히는 대신 삼켜버린다.
믿음의 빛을 발견하는 것은
눈멀어 태어난 사람이
한번도 보지 못한 색깔을 대면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새로워진 눈으로 옹근 전체를 보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본다.
[온종일]
우리는 어둠 속에서 본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이 밤의 어둠 속에서 제 영혼을 회복하소서.
저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다른 모든 보는 것이 보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눈먼 상태로 태어난 몸입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색깔을 이제 보게 하소서.
새로워진 눈으로 옹근 전체를 보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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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일
[밝아오는 아침에]
오렌지 껍질을 핥느라고
속살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런저런 하느님의 형상들에
만족하고 사로잡혀서 하느님께 이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분은 우리가 생각으로 드리는 기도의 껍질을 찢고
어지러운 우리 마음을 가라앉혀주시지 않는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그것들 너머에 있는 영적 유산을 가리는 휘장과 같다.
하느님은 어느 한 형상에,
그것이 아무리 근사하다 해도, 갇힐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하여,
그분을 정의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백성을 내 앞에 데려와라…’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 동안,
산은 하늘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주께서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그분 모습을 보진 못하였다.
다만 음성이 있을 뿐이었다.
‘주님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실 때 너희는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즉, 주님의 형상을 새겨 만드는 부정(不淨)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온종일]
가짜 신들을 조심하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제가 만든 당신의 형상에 속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밤을 맞습니다.
당신을 정의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오렌지 껍질 때문에 속살을 맛보지 못하듯이,
제가 만든 당신 형상들의 휘장에 가로막혀
당신께로 가서 닿지 못할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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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만든 하느님의 형상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아름답고 힘 있고,
아무리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자비의 손을 내밀게 한다 하더라도,
하느님께로 오르는 길을 방해할 수 있다.
하느님이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그것들은 하느님과 거리가 멀다.
“하느님이 인간의 솜씨로 금이나 은이나 돌을 깎아서 만든
그 어떤 형상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들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들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들로 만족할 때,
우리가 목적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자리로 오르는
유일한 루트가 막혀버린다.
그것들은 우리의 벌거숭이 신앙을 방해한다.
하느님께로 오르는 길을 계단 오르기라고 생각해보라.
그것이 아무리 편안하게 느껴지더라도,
또는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중간 계단을 마지막 칸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목적지는 계단 꼭대기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그중 한 계단에 머무르고 싶어 떠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결코 정상에 올라 그것이 약속한 평화,
우리로 하여금 첫걸음을 떼게 만든 그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온종일]
지금은 멈추어 쉴 때가 아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전 지금 몹시 피곤합니다.
저의 한 부분이,
지금 제가 있는 여기에 멈추어 그만 쉬고 싶다고 합니다.
이 밤에, 여기는 네 목적지가 아니라고,
계단 꼭대기 어둠에 묻힌 곳이 네 목적지라고,
저에게 일러줄 당신이 필요합니다.
제가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이 저로 하여금 첫걸음을 떼게 하였는지를 기억하여,
이 고단함을 뒤에 두고 다시 떠나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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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일
[밝아오는 아침에]
하느님께로 오르는 여정에서,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무엇인가를 뒤에 두고 떠날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은 더 하시고 우리는 덜 한다.
하느님이 더 무거운 침묵으로,
더 깊은 고요로,
더 든든한 평화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런즉, 새 평화를 선물로 받을 때,
이제까지의 익숙한 세계로,
뒤에 두고 떠나야 할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조용히 마음을 기울이면서
평안히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
계속 분주하려고 하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비로소 안심되는 마음을,
알려지지 않은 것,
믿음의 어두운 밤으로 돌려야 한다.
그동안 어렵게 습득한 기도와 명상 방법들을 버리고,
영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에 저항할수록 우리는 더욱 불편해진다.
자신과 남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우리를,
이미 선물로 받은 평화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따름이다.
[온종일]
애쓰지 마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이 밤의 고요 속에서,
이 순간만이라도,
저에게 있는,
제가 아는,
저에게 익숙해진 안락을
붙잡으려는 몸부림에서 돌아서게 하소서.
주께서는 몸소 주신 평화로부터
계속 저를 떼어내어 멀어지게 하실 터인즉,
저는 어느 한 자리에 안도하여 머물 수가 없나이다.
저는 계속 내려놓아야 하고,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도록
당신께 저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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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시도하고 소중히 여겨온 영성수련을 포기하는 마음이
모두 하느님한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기가 문득 어려워진 까닭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하느님이 그렇게 하신 게 아니라
우리의 게으름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 것일 수 있다.
우리 생각이 하느님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더 많이 집중된다면, 그것은
좀더 순수하고 깊은 기도생활로 들어가기 위하여
스스로 만든 하느님의 형상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다.
고요히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익숙한 기도방식으로 자기를 따로 증명하는 일 없이,
그 동안에는 유익했지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하느님 형상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중이라는 분명한 증거다.
더 깊은 영의 침묵과 고요에 익숙해질수록
그만큼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지식이 자랄 것이다.
절룩거리며 크게 애쓰지 않아도
더 깊은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온종일]
하느님과 함께 보낸 시간은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이 고요한 시간에 들어와서
당신만 생각한다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주, 당신 아닌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게으름이 제 영혼을 사로잡아 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한때는 유익했지만 더 이상 필요 없는
하느님 형상과 기도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하려 할 것 없이,
고요 속에서 홀로 있으며,
당신의 현존을 몸으로 느끼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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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동안 익숙했던 언어와 하느님 상(像)에
더 이상 안주할 수 없어서
기도를 드릴 수 없게 된 듯한 순간들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이 선물로
우리 마음과 영혼을 텅 비워주시는 그런 때가 있다.
우리 속이 스스로 만든 하느님 상과 언어들로 가득 차 있는 한,
언어 너머에 계시는 그분의 머무실 방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당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게으르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영혼을 텅 비우도록 하자.
분주하고 어지러운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일은
작은 성취가 아니고 작은 은사도 아니다.
“조용히 하여 내가 하느님인 줄 알라.”
[온종일]
조용히 하여 하느님이 여기 계심을 알아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이 밤의 어둠이 내려앉을 때,
저의 분주하고 어지러운 영혼을 잠재우소서.
조용히 하여 당신이 하느님인 줄을 알게 하소서.
아무리 황당하고 불편하더라도
당신 현존 안에 머물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영혼을 텅 비우게 하소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작은 성취도 아니고
작은 은사도 아님을 잘 알고 있나이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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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일
[밝아오는 아침에]
솔로몬이 방금 지은 성전으로 내려오실 때,
하느님은 어둠 속으로 들어오셨다.
하늘에 해를 있게 하신 주님이
몸소 어둠 속에 거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모세에게 하실 때
하느님은 당신을 두터운 구름으로 감싸셨다.
기드온의 병사들은 들고 간 항아리를 부술 때까지
그 안에 있는 불빛을 볼 수 없었다.
항아리가 부서졌을 때
그들은 밝은 빛으로 눈이 부셨다.
우리 모두 안에 신성한 불꽃이 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껍질이 깨어질 때에만
우리는 우주에 가득 찬 광휘를 볼 것이다.
그때까지 하느님은 어둠 속에 숨어 계시며
우리의 흐릿하게 어두운 믿음을 통하여
우리와 교제하실 것이다.
우리의 흐릿하게 어두운 믿음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어둠은 걷힐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온종일]
우리의 지식은 불완전하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제 영혼은
흐릿하게 어두운 제 믿음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
비로소 사라질 어둠 속에서 걸어야 합니다.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는
당신을 아는 저의 지식이 불완전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 속에 지니고 다니는
당신의 충만한 광휘를 보지 못할 거예요.
그때까지 당신은 어둠 속에 숨어 계시며
흐릿한 저의 믿음을 통하여 저와 교제하실 것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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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영혼의 모든 문들을 열어놓지 말고,
오히려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욕정과 욕망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만든 하느님 상(像)들과
하느님에 대한 관념들에 대하여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오랜 세월 모아둔 기억과 상상의 창고에 대하여,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영혼의 문을 닫고 잠가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영혼의 문을 열어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사도들이 방안에 모여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닫힌 문으로 들어가셨다.
이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그분은 우리 영혼에 들어오시는데,
우리는 그 길을 모르고,
우리 쪽에서 그분이 들어오시도록 따로 힘쓸 것도 없다.
다만, 그분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
지난날의 경험에 대한 기억과 상상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영혼의 문을 닫아놓기만 하면 된다.
그때 비로소 그분이 평화의 강물처럼
우리 영혼에 내려오시어,
아직 남아있는 우리의 불신과 혼란
그리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없애주실 것이다.
[온종일]
그분은 닫힌 문으로 들어오신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사도들이 방에서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은 그 방의 닫힌 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 또한 당신이 같은 방식으로,
제가 알 수 없는 길로,
제 쪽에서 따로 힘쓰지 않아도,
제 영혼에 들어오시리라 믿고 기다리면서,
저의 모든 기대들이 들어와 방해하지 못하도록
영혼의 문을 닫겠습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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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일
[밝아오는 아침에]
악의 교활한 요원들이,
우리 스스로 만든 상상과 기억들이,
제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영혼의 문을 잠그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악마를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다.
그리스도의 평화 대신 악마는
범죄의 뿌리인 교만, 탐욕, 분노, 질투, 증오를 가지고 다니며
우리 영혼의 능력들을 악의 도구로 이용한다.
영혼의 문을 열어놓고
모든 기억과 스스로 만든 상상을 환영하여 받아들이는 한,
최선의 영혼이 불러오는 것과
최악의 악마가 불러들이는 것의 차이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기억이나 상상과 함께 들어오는 것은
악마뿐 아니라 염증, 비애, 침울 따위 질병들과,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하느님과 함께 사는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방해하는,
끊임없이 어지러운 마음이다.
자신의 기억과 상상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이왕에 시작한 위로 오르기를 마음껏 계속하도록 도와주자.
[온종일]
닫힌 문들이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제가 만일 영혼의 문을 열고,
스스로 만든 온갖 기억과 상상들이 계속 드나들게 한다면,
최선의 영혼이 불러오는 것과
최악의 악마가 불러들이는 것의 차이를 모르겠지요.
저로 하여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인간의 이해 범위 너머에 있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생명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켜주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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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일
[밝아오는 아침에]
자신의 기억과 상상들로 가득 채워진 우리 가슴에는
하느님이 거하실 방이 거의 없거나 아주 없다.
욕정이 원하는 것들을 잊거나 옆으로 밀쳐두는 법,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길들이는 법을 배우기까지,
우리 가슴은 언제나 괴로움으로 신음하고
영혼은 결코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잊는 법을 배워 익히면
더 이상 자기 욕정을 채우고, 자기 가슴을
어지럽히는 것들의 방해공작에 놀아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도, 있지도 않는 것들에 놀아나지 않는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어떤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괜한 근심걱정으로 시달리다가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것들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쾌락과 욕정의 불을 다시 일으킨다.
모두가 우리 가슴을 휘젓고 우리 영혼을 어지럽힌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보고 오르는
하느님에 대한 시선을 가리는 구름이 된다.
[온종일]
기억하려고 애쓰지 말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욕정이 원하는 것들을 잊거나 옆으로 밀쳐두는 법,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길들이는 법을 배워 익히기까지
제 가슴은 항상 괴롭고 제 영혼은 평안을 모르고,
그리하여, 나의 하느님,
당신을 위한 방이 거의 없거나 아주 없을 것입니다.
제 시선을 가로막는 구름을 걷어주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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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일
[밝아오는 아침에]
만사가 잘못되고 온 세상이 엎어진다 해도
여전히 뒤집어지지 않는 곳이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우리 영혼의 평화를 지켜줄 뿐 아니라
본디 우리 것인 복을 가져다준다.
그 복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대하여 바른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비참하게 살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태어난 존재다.
솔로몬이 말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 때에 아름답게 지으셨다.
…그분 백성으로서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먹고 마시며
스스로 즐기는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괴로워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들을 기쁨의 기회로 삼을 일이다.
그러나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 아닌 다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온종일]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으셨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들로 괴로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기회로 삼을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지속하려면
제가 하느님 아닌 다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루가 저무는 이 시간,
오늘 일어난 모든 좋은 일과
좋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고,
그것들을 당신이 아름답게 지으셨듯이,
저 또한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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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일
[밝아오는 아침에]
이 단계에서 우리 생명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과 위임을 통하여
하느님께 매여 있다.
우리는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희망한다.
그런즉 이 희망에 충실하려면,
하느님 아닌 것들을,
스스로 상상과 기억으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온갖 상(像)과 관념들을
우리 영혼에서 말끔히 비워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따름인 안녕을 주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희망을 배반한다.
보물처럼 간직해온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상상들을
많이 버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 희망은 깊어지고
하느님과의 하나 됨은 견고해질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통해 하느님께로 올라간다.
벌거숭이 희망의 여정을 위해,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는 위안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다.
[온종일]
우리는 희망 안에 산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따름인 가짜 안녕에 매달리지 말고,
저로 하여금, 희망 안에서 걷게 하소서.
제가 기억하고 있는 당신은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은 저의 희망입니다.
제가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이 제 희망을 배반합니다.
제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는 위안을,
벌거숭이 희망의 여정으로 바꾸게 도와주소서.
저에게 다른 길이 없나이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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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일
[밝아오는 아침에]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영적 체험과 깨달음이
겸손보다는 교만과 자기-만족을 촉발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자기가 하느님의 무슨 특별한 은사를 받은 줄 알고,
그 은사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흐뭇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서의 바리사이들처럼,
자기가 남들과 다른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하느님의 아름다운 상(像)을 찬미하고
그분의 따스한 현존을 느끼는 것이,
그만큼 자기가 그분께 가깝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 아니라
경험이 없는 자들은 그분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가까운 거리가,
스스로 만든 그분의 상(像)이나
자신의 이른바 ‘영적 체험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를 알고,
특별한 존재로 존중받기를 바라는 대신
우리가 찾는 하느님에 견주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깊은 겸손에 의하여 결정된다.
위로 오르는 여정에서 우리가 겪는 ‘경험’이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남들의 이익을 찾는
겸손한 행동 하나만큼도 값진 것이 아니다.
[온종일]
겸손하게 걸어라.
[하루-]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하지만 제가 겸손하게 걸어야 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소서.
저와 당신 사이의 가까운 거리는
제 생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보지 않는
겸손의 깊이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당신에 견주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의 경험이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남들의 이익을 찾는
겸손한 행동 하나보다도 값지지 못한 것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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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살면서 사람, 장소, 사물들로부터 받는 가장 큰 유혹은
그것들을 기쁨의 처음과 나중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맛볼 수 있고
그것들도 하느님께 오르는 우리 여정을 가로막지 못한다.
사물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은 자의 기쁨과
사물을 굴복할 대상이 아니라
놓아버릴 대상으로 여기는 자의 기쁨에는
넘지 못할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사람, 장소, 사물들 안에 있는
가장 좋은 점을 보고 즐기는 것과
그것들 안에 있는 가장 나쁜 점에 홀려
그것들에 매달리는 것의 차이다.
사물들 안에 있는 참 기쁨은
사람을 너그러움으로 이끌고,
거짓 기쁨은 사람을 움켜잡음으로 이끄는데
움켜잡음은 돌이켜 움켜잡힘으로 끝난다.
사물들을 움켜잡지 아니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자유로이 소유하고,
그것들을 움켜잡을 때 우리는 그것들에 움켜잡힌다.
피조물한테서 얻는 기쁨은
참 기쁨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온종일]
진실, 그 안에 기쁨이 있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로 하여금 사물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자의 기쁨과
사물을 굴복할 대상이 아니라 놓아버릴 대상으로 여기는 자의 기쁨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오늘을 마감하게 하소서.
이 세상 장소와 사물들을 제 기쁨의 처음과 나중으로 알지 말고
너그러운 가슴으로 오늘 하루를 마감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사람과 장소와 사물들 안에 있는
가장 좋은 점을 보아 즐기고,
그것들 안에 있는 가장 나쁜 점에 매달리지 않는
그런 세상에 깨어나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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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일
[밝아오는 아침에]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자들도 있겠지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에 놀랄 것 없다.
우리는 육의 감각들을 충족시킴으로써
영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보이는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있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감각의 기쁨을 스스로 부인하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번 생에서도, 보상을 백배로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 또한 진실이다.
자신의 감각에 굴복하면
슬픔과 분노가 백배로 우리를 덮칠 것이다.
자신의 감각을 통제하기까지 우리는 결코 안녕과 평화,
하느님 안에 사는 자의 영원한 기쁨을 모를 것이다.
[온종일]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히 지속된다.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저로 하여금 육의 감각들을 충족시킴으로써
영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짓지 않게 하소서.
이 밤의 어두운 침묵 속에서 거듭나게 하시고,
다가오는 모든 날에
당신 사랑의 보상을 백배로 받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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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일
[밝아오는 아침에]
우리가 영적 위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하느님한테서 버림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반대로,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어리석음이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위안을 얻는 데,
또는 그것을 얻어서 만족하는 데 영적 에너지를 쓴다면
그건 훨씬 더한 어리석음이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만 추구할 수 있는 하느님 대신
시시한 사물들을 떠받들고 추구하는 것이기에.
하느님보다 못한 무엇에 만족하는 것은
우리를 아래에 묶어두는 것이요,
자기 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이 생의 위안들로 만족하는 한,
우리는 결코 하느님과의 하나 됨을 즐길 수 없다.
위로 오르는 우리의 여정을 끝까지 가려면
하느님을 향한 충족되지 않은 욕구 아닌
다른 모든 욕구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느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굶주림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우리 영혼에서 비워야 한다.
[온종일]
굶주림으로 가는 길에 만족하라.
[하루를 마감하며]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사랑 안에서 걷는 자는
멈출 수도 없고
고단할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소서.
제가 이 길을 끝까지 가려면, 나의 하느님,
당신을 향한 충족되지 않은 욕구 아닌
다른 모든 욕구들을 내려놓고,
당신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굶주림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제 영혼에서 비워야 합니다.
스쳐지나가는 이 생의 위안들로 만족하는 한,
당신과의 하나 됨을 즐길 수 없으리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당신보다 못한 무엇으로 만족하는 것은
저 자신을 아래에 묶어두어
당신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제가 밤중에 여행하며
믿음의 눈으로만 겨우 볼 수 있다 하여도,
지금 제 영혼 위로 평화의 빗물처럼 내려오시어
저의 불신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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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한 마디
이 삼십 일간의 여정은 위대한 성인과 함께 가는 영적 오솔길의 첫걸음이다.
가야 할 길도 아직 많이 남았고 배워야 할 성인의 지혜도 아직 많이 남았다.
그대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하느님 체험을 좀더 친근하게 좀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의 책을 좀더 읽어야 할 것이다.
탁월한 신학자이자 영성수련가인 그에 관하여 쓴 글과 그가 직접 쓴 글들이 상당량 있다.
그의 저술이, 학술논문과 시편들을 포함하여,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을 소화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읽기 거북하거나, 그냥 입맛에 맞지 않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글은 영적으로 많이 성숙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 대한 이 기본적 안내를 읽고서 그대의 소감이 어떻든 간에,
1589년 어느 날 하느님이 자기를 인도하시는 길이 자기 기대에 어긋났다고 생각하며
정신적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여인에게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하느님 섬기는 일이,
악을 피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의 일에 매달리는 것이 전부인가요?
그렇다면 다른 무슨 큰 은총을 구할 것 없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어둠 속에 던져두시고 꾸미지 않은 믿음과 소망만을 남겨두신 것은 그분의 크신 배려입니다.”
그의 가장 난해한 글들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이런 생각들이 그의 가르침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되게 한다.
하지만 잊지 말라, 우리에겐 십자가의 성 요한 말고도 많은 교사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그대에게 특별히 맞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선생을 만나야 하고 마침내 그대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듯이, 선생이 먼저 그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대가 그를 찾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 더 말해둘 것이 있다.
영성은 하느님과 그대의 자아 사이에서 스스로 제 속에 갇혀있는 고치 같은 관계가 아니다.
길게 보아서, 그것이 시들지 않고 자라나려면, 자비로운 삶으로 샘처럼 솟아 흘러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와서 닿으셨듯이, 우리도 이웃에게로 가서 닿아야 한다.
참된 영성은 우리 영혼의 장벽들을 무너뜨리고, 하늘뿐 아니라 온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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