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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은 진리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 안에서 우리 인생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볼 때에 인생은 어디서 왔고, 무엇하려고 살고, 또 얼마나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사실은 누구나 한 번은 생각 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더 나아가 할아버지로부터 즉, 조상으로부터 왔으며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진화론에 의해서 원숭이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민족은 단군인 곰에게서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단군을 신화라고 주장하는 일각의 사람들이 단군 신전 건립을 위해 힘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한국 교회들은 지난주간에 대구에서 만명의 신도가 단군상 건립 반대를 위한 궐기대회도 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결코 곰이나, 원숭이가 아닙니다. 만약 원숭이나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지금도 어디선가 원숭이나 곰이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흙을 재료로 사람을 만듬으로 인생이 출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흙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야 만 합니다.
또한 인생은 무엇하려고 사는가? 먹고, 자고, 낳고 하는 것이 인생인가?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손이 장례를 지내고 비석을 세우려고 석공에게 찾아갔습니다. 석공이 무엇이라고 적을까요? 라고 물으니 자녀들은 무엇이라 적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석공이 묻기를 당신들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나요? 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세상 오셔서 그럭저럭 살다가 가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석공이 비문에 새기기를 "이 세상에 와서 먹다가 죽다"라고 비문을 섰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만약, 인생이 먹다가 죽는 것이라면 인생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둘때만이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은 마치 길 잃어버린 아이와 같이 방황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몇세를 살것인가? 구약에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고 시편에는 강건해야 80이고 그렇지 못하면 70이라 했습니다. 예로 지금 사람의 수명을 100세로 잡으면 적게 잡았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100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날짜로는 3만6천5백날, 시간은 8십7만6천시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 만큼 살면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도 못살고 죽는 것이 80-90%는 될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 하지만 짧은 세월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어디를 가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개중에는 죽으면 무덤에 묻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환생한다고 생각해서 윤회설을 말합니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후에 소, 돼지, 말 등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며 착하고 의롭게 산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인생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 살다가 죽으면, 의인들은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고 악인(죄인)은 영벌을 받는 지옥으로 간다고 마25:4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가보았느냐?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분명이 있다고 성경과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보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가 되려면 의학 공부를 해야 하고,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에 관한 책을 보고 배워서 알게 되듯이 성경을 배우지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 없다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교도소에 가두어 격리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후에 가야 하는 곳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확신이 있는 자는 소망을 찾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방향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적당하게 살고 형편에 따라 행동하게 됨으로 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 무서운 범죄와 부도덕한 일들을 낳게 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정의하기를 "앞에는 벼랑이고 뒤에는 죽음의 사자가 잡으려고 쫓아오는 상황에 어쩔수 없이 벼랑중간에 있는 칡넣쿨을 붙잦고 있는데 옆에 벌들이 나뭇잎에 꿀을 발라놓은 것을 보고 혀로 맛을 보니 달고 좋아서 꿀맛에 심취해 있는 상황"을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시적인 향락과 즐거움에 취해 죽음을 생각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솔로몬의 인생관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며 베드로의 인생관같이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인생의 길에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확신 있는 삶을 살다가 주님에 부르심이 있을 때 아멘 주 예수여! 하며 고백할 수 있는 기쁨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인생은 어디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인생에 대한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입니다.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다. 공자도 역시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역천자와 순천자가 가는 곳이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종교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천국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천국에서 오신 분의 증언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오셔서 천국에 대해 증거해 주셨습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천국에 대해 말씀하는 사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분명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사로와 부자의 대화 속에서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깨어 근신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구원이 우리에게 필요하게 되었는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죄 값으로 영원
히 멸망하는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살을 찢으셔서 대속의 제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나의 죄가 속죄함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 안에서 우리 인생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볼 때에 인생은 어디서 왔고, 무엇하려고 살고, 또 얼마나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사실은 누구나 한 번은 생각 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더 나아가 할아버지로부터 즉, 조상으로부터 왔으며 이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진화론에 의해서 원숭이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민족은 단군인 곰에게서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단군을 신화라고 주장하는 일각의 사람들이 단군 신전 건립을 위해 힘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한국 교회들은 지난주간에 대구에서 만명의 신도가 단군상 건립 반대를 위한 궐기대회도 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결코 곰이나, 원숭이가 아닙니다. 만약 원숭이나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지금도 어디선가 원숭이나 곰이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흙을 재료로 사람을 만듬으로 인생이 출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흙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야 만 합니다.
또한 인생은 무엇하려고 사는가? 먹고, 자고, 낳고 하는 것이 인생인가?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손이 장례를 지내고 비석을 세우려고 석공에게 찾아갔습니다. 석공이 무엇이라고 적을까요? 라고 물으니 자녀들은 무엇이라 적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석공이 묻기를 당신들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나요? 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세상 오셔서 그럭저럭 살다가 가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석공이 비문에 새기기를 "이 세상에 와서 먹다가 죽다"라고 비문을 섰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만약, 인생이 먹다가 죽는 것이라면 인생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둘때만이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은 마치 길 잃어버린 아이와 같이 방황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몇세를 살것인가? 구약에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고 시편에는 강건해야 80이고 그렇지 못하면 70이라 했습니다. 예로 지금 사람의 수명을 100세로 잡으면 적게 잡았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100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날짜로는 3만6천5백날, 시간은 8십7만6천시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 만큼 살면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도 못살고 죽는 것이 80-90%는 될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 하지만 짧은 세월을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어디를 가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개중에는 죽으면 무덤에 묻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환생한다고 생각해서 윤회설을 말합니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후에 소, 돼지, 말 등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며 착하고 의롭게 산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인생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 살다가 죽으면, 의인들은 영생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고 악인(죄인)은 영벌을 받는 지옥으로 간다고 마25:4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가보았느냐?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분명이 있다고 성경과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보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가 되려면 의학 공부를 해야 하고,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에 관한 책을 보고 배워서 알게 되듯이 성경을 배우지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 없다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교도소에 가두어 격리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후에 가야 하는 곳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확신이 있는 자는 소망을 찾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긍지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방향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적당하게 살고 형편에 따라 행동하게 됨으로 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 무서운 범죄와 부도덕한 일들을 낳게 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정의하기를 "앞에는 벼랑이고 뒤에는 죽음의 사자가 잡으려고 쫓아오는 상황에 어쩔수 없이 벼랑중간에 있는 칡넣쿨을 붙잦고 있는데 옆에 벌들이 나뭇잎에 꿀을 발라놓은 것을 보고 혀로 맛을 보니 달고 좋아서 꿀맛에 심취해 있는 상황"을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시적인 향락과 즐거움에 취해 죽음을 생각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솔로몬의 인생관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며 베드로의 인생관같이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인생의 길에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확신 있는 삶을 살다가 주님에 부르심이 있을 때 아멘 주 예수여! 하며 고백할 수 있는 기쁨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인생은 어디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인생에 대한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입니다.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다. 공자도 역시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역천자와 순천자가 가는 곳이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종교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천국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천국에서 오신 분의 증언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오셔서 천국에 대해 증거해 주셨습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천국에 대해 말씀하는 사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분명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사로와 부자의 대화 속에서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깨어 근신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구원이 우리에게 필요하게 되었는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죄 값으로 영원
히 멸망하는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살을 찢으셔서 대속의 제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나의 죄가 속죄함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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