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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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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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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로 쓰는 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 이야기 제 622호 중에서
부활은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형제 여러분.
오늘은 우리 주님의 기쁜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위에 새롭게 내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20절)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입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올해 사순절 순례길에서 틈나는 대로 ‘동행(同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이렇게 자꾸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의 좋은 동행(同行)으로 길을 잘 가고 있습니까?”
그래요. 그대는 시방 예수의 좋은 동행으로 사순절 길을 잘 걸어와 마침내 부활의 은총에 크게 기뻐하며 동참하고 있는 겁니까?
묻겠습니다. 사순절 순례길의 절정은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인데, 그대는 그 절정에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부활의 영원한 전제는 ‘죽어야만 부활한다’인데, 그대는 과연 사순절에 죽었습니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구요? 그래, 내가 시방 생뚱맞은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보니, 나와 여러분은 한번도 변변히 그리스도와 함께 죽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나 역시 이렇게 자꾸 묻기 괴로우니 이런 질문은 그만 하기로 하고, 첫 번째 사순절 절정의 현장으로 가 보도록 합시다.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 와서 예수를 잡았을 때(마태복음 26장 47-55절, 마가 복음 14장 43-49절),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마태 26장 56절, 마가 14장 50절). 베드로 하나 뒤늦게 멀찍이 떨어져서 잡혀가는 예수를 뒤따라가다가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이것이 더도 덜도 없는 첫 번째 사순절 절정의 진상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부활절에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게 되었을까요? 예수와 함께 죽기는 커녕 동행도 안하고 하나같이 도망쳤던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감동하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같이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던 그들이 문득 뒤돌아서서 자기들의 배신(背信)을 뼈저리게 통감했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그의 배신을 예견하시고도,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누가복음 22장 32절)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밤에 저녁을 잡수시다가 문득 일어나셔서 대야에 물을 떠서 자기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신 주님, 숨을 거두실 때까지 오로지 사랑만으로 살다 가신 주님, 십자가에서 오히려 하느님께 용서를 비신 주님. 주님을 등지고 달아났던 제자들이 이런 회한(悔恨)으로 돌아섰을 때, 아, 거기 부활하신 주님이 계셨습니다. 이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새롭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탄생은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깊은 회한으로 돌아서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 깨달음이 참 고귀합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괴로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잠들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의 영원한 동행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잠에서 깨어나는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기뻐 찬송하게. 주님 부활했네”, 찬송을 힘차게 부른다고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안에 있는 배신의 정서를 통렬히 고백하고 돌아설 때 내 앞에 서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돌아서 있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토마가 마침내 그 불신(不信)을 등지고 주님을 향해 돌아설 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맨 처음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배신의 정서를 품고 살고 있습니다. 악마는 잠시라도 인간과 지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인간들에게 배신의 정서를 품고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배신의 정서를 외면하지 말고 철저하게 인정합시다.
이런 불의한 시절에 잘못할 수 밖에 없는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합시다. 그래야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하시는’(로마서 8장 26절) 성령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이천년 전에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때마다 다시 살아 오십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총을 입고 삽니다. 그러나 너무나 자주 이 불의한 시대 정신에 함몰되기도 하고, 세상 풍조에 휩쓸리기도 하고, 얼빠진 군중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배신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예수의 부활은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갈릴리에서 자라나 예루살렘 성 밖에서 살해된 마르고 수족이 가는 사나이, 개처럼 무력하고, 개처럼 살해되면서도 숨을 거둘 때까지 오로지 사랑만으로 산 사나이. 그는 생전에 현실 속에서 무력했으며, 다만 사랑만을 말하고, 사랑만을 살고, 사랑의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봄별이 따가운 골고타 언덕에서 죽었다.”(엔도 슈사쿠) 사도 바울로가 말씀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고 생명체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하늘에서 왔고,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주님을 등지고 도망갔던 사람이 회한으로 돌아서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42-49절을 볼 것.) (민)
부활은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형제 여러분.
오늘은 우리 주님의 기쁜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위에 새롭게 내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20절)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입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올해 사순절 순례길에서 틈나는 대로 ‘동행(同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이렇게 자꾸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의 좋은 동행(同行)으로 길을 잘 가고 있습니까?”
그래요. 그대는 시방 예수의 좋은 동행으로 사순절 길을 잘 걸어와 마침내 부활의 은총에 크게 기뻐하며 동참하고 있는 겁니까?
묻겠습니다. 사순절 순례길의 절정은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인데, 그대는 그 절정에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부활의 영원한 전제는 ‘죽어야만 부활한다’인데, 그대는 과연 사순절에 죽었습니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구요? 그래, 내가 시방 생뚱맞은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보니, 나와 여러분은 한번도 변변히 그리스도와 함께 죽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나 역시 이렇게 자꾸 묻기 괴로우니 이런 질문은 그만 하기로 하고, 첫 번째 사순절 절정의 현장으로 가 보도록 합시다.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 와서 예수를 잡았을 때(마태복음 26장 47-55절, 마가 복음 14장 43-49절),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마태 26장 56절, 마가 14장 50절). 베드로 하나 뒤늦게 멀찍이 떨어져서 잡혀가는 예수를 뒤따라가다가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이것이 더도 덜도 없는 첫 번째 사순절 절정의 진상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부활절에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게 되었을까요? 예수와 함께 죽기는 커녕 동행도 안하고 하나같이 도망쳤던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감동하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같이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던 그들이 문득 뒤돌아서서 자기들의 배신(背信)을 뼈저리게 통감했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그의 배신을 예견하시고도,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누가복음 22장 32절)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밤에 저녁을 잡수시다가 문득 일어나셔서 대야에 물을 떠서 자기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신 주님, 숨을 거두실 때까지 오로지 사랑만으로 살다 가신 주님, 십자가에서 오히려 하느님께 용서를 비신 주님. 주님을 등지고 달아났던 제자들이 이런 회한(悔恨)으로 돌아섰을 때, 아, 거기 부활하신 주님이 계셨습니다. 이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새롭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탄생은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깊은 회한으로 돌아서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 깨달음이 참 고귀합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괴로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잠들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의 영원한 동행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잠에서 깨어나는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기뻐 찬송하게. 주님 부활했네”, 찬송을 힘차게 부른다고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안에 있는 배신의 정서를 통렬히 고백하고 돌아설 때 내 앞에 서 계신 부활하신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돌아서 있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토마가 마침내 그 불신(不信)을 등지고 주님을 향해 돌아설 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맨 처음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배신의 정서를 품고 살고 있습니다. 악마는 잠시라도 인간과 지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인간들에게 배신의 정서를 품고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배신의 정서를 외면하지 말고 철저하게 인정합시다.
이런 불의한 시절에 잘못할 수 밖에 없는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합시다. 그래야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하시는’(로마서 8장 26절) 성령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이천년 전에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때마다 다시 살아 오십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총을 입고 삽니다. 그러나 너무나 자주 이 불의한 시대 정신에 함몰되기도 하고, 세상 풍조에 휩쓸리기도 하고, 얼빠진 군중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배신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예수의 부활은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갈릴리에서 자라나 예루살렘 성 밖에서 살해된 마르고 수족이 가는 사나이, 개처럼 무력하고, 개처럼 살해되면서도 숨을 거둘 때까지 오로지 사랑만으로 산 사나이. 그는 생전에 현실 속에서 무력했으며, 다만 사랑만을 말하고, 사랑만을 살고, 사랑의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봄별이 따가운 골고타 언덕에서 죽었다.”(엔도 슈사쿠) 사도 바울로가 말씀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고 생명체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하늘에서 왔고,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주님을 등지고 도망갔던 사람이 회한으로 돌아서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42-49절을 볼 것.)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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