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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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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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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편지] 육필로 쓰는 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 이야기 제 623호 중에서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시방 부활절 셋째주일을 곡우(穀雨)절기와 함께 맞이합니다. 곡우절기는 봄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곡우 다음이 입하(立夏, 5월6일)절기이니까 우리는 어느새 봄과 여름이 공존하는 절기를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절기가 곡우에 들면 봄비가 잘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고 해서 절기 이름이 곡우(穀雨)입니다.
절기가 곡우에 들면 봄비가 잘 내리기 마련입니다. 올해도 곡우(4월20일)날 비가 내렸습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물에 담갔습니다.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었으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으로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이내 물에 담가놓은 볍씨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곡우 때는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때입니다. 그래서 전라남도, 경산남북도, 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갑니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라무 등에 상처를 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사람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습니다.
곡우는 봄의 마지막 절기에 봄비가 잘 내려 나무와 풀들이 생명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절기입니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곡우 때 봄비를 내리는 분은 하느님이시지만,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곡우 때 사람이 할 일은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일입니다.
‘씨앗’이란 무엇입니까? 한 생명의 열매인데,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씨앗은 심지 않으면 딱딱한 상태로 그냥 한 알 그대로 있어 마치 무생물(無生物) 같습니다. 엄청난 생명과 힘(生命力)이 그 안에 깃들어 있되 심지 않으면, 심어 그 몸이 죽지 않으면 그냥 ‘딱딱한 한 알’일 뿐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곡우 때 그냥 죽어 있는 것 같은 볍씨를 물에 푹-담가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싹을 티어 씨앗의 몸은 죽고 형체를 바꿔 줄기와 잎이 있는 볏모가 되면, 때되어 논에 옮겨 심겠지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사도 바울로가 부활절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장 20절, 개역)
예수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되어 우리 각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공로(功勞)나 노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무상으로 거저 오셨습니다. 열매는 곧 씨앗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부활의 씨앗이 되어 오셨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10년 넘게 해마다 부활절 때면 꼭 이야기 했습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도 있을까요? 그런데 참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말로만 이 진리를 알고 그냥 살아왔을 뿐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일은 잘 안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곡우 때 볍씨를 물에 푹-담그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은 오로지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새롭게 기억합시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장 5절)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의 소관이고 ‘물’은 인간의 소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 즉 부활의 씨앗으로 주시는 건 하느님의 소관이고 그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건 사람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로라는 분, 참 재미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일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 뿐입니다. 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어 주시는 것으로 씨악 하나 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고린도전서 15장 37-38절)
세상에, 아무리 농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도 구태여 이런 말씀을 사도 바울로가 하게 된 것은, 농사 이치는 그렇다 해도 예수 믿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때나 시방이나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처신하는 것이 아닐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어 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50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2007년 부활절기에 곡우 절기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가라”입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신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물’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가요?
물은 그냥 물입니다. 천지창조 한 처음에 “어둠이 깊은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던 ”창세기 1장 2절) 그 물일수도 있고, 사람을 빚어 만드실 때 쓰신 물일 수도 있고, 베드로 사도 말씀대로, “물은 곧 세례니,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베드로전서 3장 21절)으로 믿고 세례를 새롭게 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하여간 영•육간에 씻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2007년 부활절에 주님은 확실하게 그대 안에 ‘부활의 첫 열매’ 곧 ‘부활의 씨앗’ 하나를 심으셨습니다. 이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건 오로지 그대 자신의 소관입니다.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이 부활의 씨앗이 들어 있는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그십시오. 때가 볍씨를 물에 푹-담그는 곡우절기입니다. 부활의 씨앗을 물에 푹-담근 사람만이 부활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시방 그대가 서둘러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은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그는 일뿐입니다. 깊은 물에 그대 자신을 충분히 푹-담그십시오. (민)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시방 부활절 셋째주일을 곡우(穀雨)절기와 함께 맞이합니다. 곡우절기는 봄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곡우 다음이 입하(立夏, 5월6일)절기이니까 우리는 어느새 봄과 여름이 공존하는 절기를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절기가 곡우에 들면 봄비가 잘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고 해서 절기 이름이 곡우(穀雨)입니다.
절기가 곡우에 들면 봄비가 잘 내리기 마련입니다. 올해도 곡우(4월20일)날 비가 내렸습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물에 담갔습니다.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었으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으로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이내 물에 담가놓은 볍씨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곡우 때는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때입니다. 그래서 전라남도, 경산남북도, 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갑니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라무 등에 상처를 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사람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습니다.
곡우는 봄의 마지막 절기에 봄비가 잘 내려 나무와 풀들이 생명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절기입니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곡우 때 봄비를 내리는 분은 하느님이시지만,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곡우 때 사람이 할 일은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일입니다.
‘씨앗’이란 무엇입니까? 한 생명의 열매인데,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씨앗은 심지 않으면 딱딱한 상태로 그냥 한 알 그대로 있어 마치 무생물(無生物) 같습니다. 엄청난 생명과 힘(生命力)이 그 안에 깃들어 있되 심지 않으면, 심어 그 몸이 죽지 않으면 그냥 ‘딱딱한 한 알’일 뿐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곡우 때 그냥 죽어 있는 것 같은 볍씨를 물에 푹-담가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싹을 티어 씨앗의 몸은 죽고 형체를 바꿔 줄기와 잎이 있는 볏모가 되면, 때되어 논에 옮겨 심겠지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사도 바울로가 부활절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장 20절, 개역)
예수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되어 우리 각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공로(功勞)나 노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무상으로 거저 오셨습니다. 열매는 곧 씨앗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부활의 씨앗이 되어 오셨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10년 넘게 해마다 부활절 때면 꼭 이야기 했습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도 있을까요? 그런데 참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말로만 이 진리를 알고 그냥 살아왔을 뿐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일은 잘 안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곡우 때 볍씨를 물에 푹-담그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은 오로지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새롭게 기억합시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장 5절)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의 소관이고 ‘물’은 인간의 소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 즉 부활의 씨앗으로 주시는 건 하느님의 소관이고 그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건 사람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로라는 분, 참 재미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일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 뿐입니다. 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어 주시는 것으로 씨악 하나 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고린도전서 15장 37-38절)
세상에, 아무리 농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도 구태여 이런 말씀을 사도 바울로가 하게 된 것은, 농사 이치는 그렇다 해도 예수 믿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때나 시방이나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처신하는 것이 아닐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어 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50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2007년 부활절기에 곡우 절기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가라”입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신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물’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가요?
물은 그냥 물입니다. 천지창조 한 처음에 “어둠이 깊은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던 ”창세기 1장 2절) 그 물일수도 있고, 사람을 빚어 만드실 때 쓰신 물일 수도 있고, 베드로 사도 말씀대로, “물은 곧 세례니,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베드로전서 3장 21절)으로 믿고 세례를 새롭게 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하여간 영•육간에 씻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2007년 부활절에 주님은 확실하게 그대 안에 ‘부활의 첫 열매’ 곧 ‘부활의 씨앗’ 하나를 심으셨습니다. 이 씨앗을 물에 푹-담그는 건 오로지 그대 자신의 소관입니다.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이 부활의 씨앗이 들어 있는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그십시오. 때가 볍씨를 물에 푹-담그는 곡우절기입니다. 부활의 씨앗을 물에 푹-담근 사람만이 부활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시방 그대가 서둘러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은 그대 자신을 물에 푹-담그는 일뿐입니다. 깊은 물에 그대 자신을 충분히 푹-담그십시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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