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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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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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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로 쓰는 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 이야기
2007.12.30 제 634호 중에서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는 겨울과 어둠이 지극한 동지(冬至)절기에 성탄을 맞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빛을 받아 민들레 식구 여러분이 ‘참빛’으로 새롭게 태어나시기를 빕니다. 아멘.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장 9절, 가톨릭 번역)
잘 아시는대로 동지 절기는 어둠이 지극(至極)한 절기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지극하면 거기에 ‘한빛’이 나오는 법입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농가월령가)
우리는 이 동지 절기에 예수의 성탄을 맞이합니다. 예수의 성탄은 ‘한 빛’을 보는 명일입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가 노래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빛(한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이사야 9장 1절)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의 성탄으로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성탄으로 구원은 성취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세상은 어찌하여 이토록 어두워지기만 합니까? 사람들이 진리를 등지고 맘몬(돈, 재물)이라는 우상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있으니... 참빛이 세상에 왔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사도 요한의 통탄(요한복음 1장 10절)이 새롭게 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의 빛을 받아 날마다 참빛으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그대 자신이 참빛이 되십시오. 날마다 성탄을 축하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리고 축하하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의 생일을 축하하는 명일을 기리면서 동시에 그 빛을 받아 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명일이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는데 그 빛을 받아 나 자신이 참빛이 되지 않는다면 그 빛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모나 스승이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할 때 단순히 그 어른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만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의 빛에서 감사하며 축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려면 그분의 참빛을 받아 내가 이 세상의 참빛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잘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모든 율법 조문과 규정을 폐지하시고 당신 안에서 둘을 하나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소 2장 14-16절, 공동번역, 개역, 가톨릭번역을 바탕으로 정리함)
성탄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께 영광, 땅과 사람들에게 평화!”(누가 2장 14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베소 2장 14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평화 이루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과 화해, 사람간의 화해, 땅과의 화해를 이루어 평화의 기쁜 소식이 되셨습니다.
화해(和解)는 묶은 것이나 뭉친 것을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는 맺힌 원한을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강림절 셋째 주일에 “화해(和解)업이 성탄 없다”는 제목으로 말씀하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화해와 거리가 먼 사람인가를 아픈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나 자신과 화해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왜 나 자신을 꽁꽁 묶어놓고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몹시 괴로워도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저절로 다 풀어지고 말텐데... 도대체 무슨 아쉬움이 있어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탄의 은총과 십자가의 화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대는 시방 하느님, 사람, 땅에 대하여 단절, 무시, 무관심, 무심한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끊어서는 안되는 존재나 연관관계를 단절(斷絶) 하거나,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의의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無視)하거나, 마땅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대상을 무관심(無關心)하게 대하거나, 아아, 마음을 써서 걱정하거나 도와줘야 할 대상을 무심(無心)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성탄이 되는 것은 그의 말씀과 삶이 바로 푸는 화해이고 십자가의 길로 그 도를 이루었기 때문인데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건성으로 성탄을 축하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관심을 화해(和解)에 있습니다. 성탄해서 이 땅에 오신 참빛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의 도(道)로 갈라졌던 둘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평확를 이룩하십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죽음’ 없는 성탄은 없습니다.
한자에서 해(解, 풀다)는 ‘소(牛)의 머리에 난 뿔(角)을 칼(刀)로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소뿔이나 거북이 배딱지로 점을 쳐서 신의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소의 무기는 뿔인데 해(解)는 그 소뿔을 잘라 어떤 문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7년 성탄에, 저는 비로소 ‘성탄은 화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모든 사람을 비추는 / 참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 말씀이 들어있는 ‘요한복음’은 교회에서 독수리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 중의 왕 독수리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아도 눈이 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독수리처럼 참빛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참빛이신 그리스도처럼 화해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납시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3장 3절)
“정말 잘 들어 두십시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한 3장 5절)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의 참빛을 받아 참빛으로 새로 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빛으로 새로 난 사람은 일마다 때마다 화해의 길을 걸어갑니다.(민)
2007.12.30 제 634호 중에서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는 겨울과 어둠이 지극한 동지(冬至)절기에 성탄을 맞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빛을 받아 민들레 식구 여러분이 ‘참빛’으로 새롭게 태어나시기를 빕니다. 아멘.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장 9절, 가톨릭 번역)
잘 아시는대로 동지 절기는 어둠이 지극(至極)한 절기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지극하면 거기에 ‘한빛’이 나오는 법입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농가월령가)
우리는 이 동지 절기에 예수의 성탄을 맞이합니다. 예수의 성탄은 ‘한 빛’을 보는 명일입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가 노래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빛(한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이사야 9장 1절)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의 성탄으로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성탄으로 구원은 성취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세상은 어찌하여 이토록 어두워지기만 합니까? 사람들이 진리를 등지고 맘몬(돈, 재물)이라는 우상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있으니... 참빛이 세상에 왔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사도 요한의 통탄(요한복음 1장 10절)이 새롭게 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의 빛을 받아 날마다 참빛으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그대 자신이 참빛이 되십시오. 날마다 성탄을 축하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리고 축하하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의 생일을 축하하는 명일을 기리면서 동시에 그 빛을 받아 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명일이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는데 그 빛을 받아 나 자신이 참빛이 되지 않는다면 그 빛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모나 스승이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할 때 단순히 그 어른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만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의 빛에서 감사하며 축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려면 그분의 참빛을 받아 내가 이 세상의 참빛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잘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모든 율법 조문과 규정을 폐지하시고 당신 안에서 둘을 하나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소 2장 14-16절, 공동번역, 개역, 가톨릭번역을 바탕으로 정리함)
성탄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께 영광, 땅과 사람들에게 평화!”(누가 2장 14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베소 2장 14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평화 이루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과 화해, 사람간의 화해, 땅과의 화해를 이루어 평화의 기쁜 소식이 되셨습니다.
화해(和解)는 묶은 것이나 뭉친 것을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는 맺힌 원한을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강림절 셋째 주일에 “화해(和解)업이 성탄 없다”는 제목으로 말씀하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화해와 거리가 먼 사람인가를 아픈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나 자신과 화해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왜 나 자신을 꽁꽁 묶어놓고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몹시 괴로워도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저절로 다 풀어지고 말텐데... 도대체 무슨 아쉬움이 있어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탄의 은총과 십자가의 화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대는 시방 하느님, 사람, 땅에 대하여 단절, 무시, 무관심, 무심한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끊어서는 안되는 존재나 연관관계를 단절(斷絶) 하거나,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의의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無視)하거나, 마땅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대상을 무관심(無關心)하게 대하거나, 아아, 마음을 써서 걱정하거나 도와줘야 할 대상을 무심(無心)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성탄이 되는 것은 그의 말씀과 삶이 바로 푸는 화해이고 십자가의 길로 그 도를 이루었기 때문인데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건성으로 성탄을 축하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관심을 화해(和解)에 있습니다. 성탄해서 이 땅에 오신 참빛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의 도(道)로 갈라졌던 둘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평확를 이룩하십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죽음’ 없는 성탄은 없습니다.
한자에서 해(解, 풀다)는 ‘소(牛)의 머리에 난 뿔(角)을 칼(刀)로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소뿔이나 거북이 배딱지로 점을 쳐서 신의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소의 무기는 뿔인데 해(解)는 그 소뿔을 잘라 어떤 문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7년 성탄에, 저는 비로소 ‘성탄은 화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모든 사람을 비추는 / 참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 말씀이 들어있는 ‘요한복음’은 교회에서 독수리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 중의 왕 독수리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아도 눈이 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독수리처럼 참빛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참빛이신 그리스도처럼 화해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납시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3장 3절)
“정말 잘 들어 두십시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한 3장 5절)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탄의 참빛을 받아 참빛으로 새로 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빛으로 새로 난 사람은 일마다 때마다 화해의 길을 걸어갑니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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