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잠이 오지 않을 때] (시편3편)
1. 잠이 오지 않을 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억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곤고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괴로울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때가 없다면 너무 좋겠지만
아무리 천하 태평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힘든 때가
인생에서 찾아오지 말란 법이 없다.
다윗이 그런 때를 만났다.
(시 3:1-2, 새번역) [1] 주님,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2] 나를 빗대어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다" 하고 빈정대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고
다윗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의 반역만으로도 참기 어려운데
왕권을 잃은 다윗을 향해서
온갖 욕을 퍼붓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상황이 되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
왕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왕권을 회복해야 하는데
반역을 일으킨 당사자가 아들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먼저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이런 일이 찾아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은 겪지 않는데
나만 왜 이렇게 큰 고난을 겪는가?
라는 의문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다윗도
이런 억울하고 화가 나고 황당하고 두려운데
해결하려면 아들과 싸워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었다.
하물며 나일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아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슬픈 일을 겪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님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어떻게 대처할까?
이제 문제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힘든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일 것이다.
이런 일을 누구보다 많이,
누구보다 더 억울할 정도로 겪은
다윗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힘든 상황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일은 '응답'이다.
(시 3:3-4, 새번역) [3] 그러나 주님, 주님은 나를 에워싸주는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니, [4]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셀라)
다윗이 그렇게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응답'이란 '소통'이 된다는 뜻이니,
다윗은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고통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갔던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신다.
문제는 고통을 주는 그 문제에만 골몰하거나
부르짖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절망하거나
부르짖되 고통 자체만 가지고 대상 없이 신세한탄만 하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해서
자신의 억울함과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내어놓고 부르짖는다면
그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 부르짖음이 허공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소통'한 것임을 알게 된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해결책이다.
3. 소통의 결과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응답을 받고 나면
고통스럽던 삶에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첫째, 자고 깨는 정상적 삶을 회복한다.
(시 3:5, 새번역) 내가 누워 곤하게 잠 들어도 또다시 깨어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시간 동안에 다윗은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자고 깨는 삶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 정상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삶이
주께서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소통한 다윗은
이제 잘 자고 잘 깨는 정상적 삶을 회복했다.
주님께서 붙들어주심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두려움을 극복함
(시 3:6, 새번역) 나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 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약이 본질인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방이 적인 듯 상황이 변한
쫓기는 신세가 된 다윗으로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서
사방에 적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함이 생겼다.
하나님과 소통하면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한다.
셋째, 구원의 출처를 깨닫게 됨
(시 3:7-8, 새번역) [7] 주님, 일어나십시오. 나의 하나님,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아, 주님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러뜨리셨습니다. [8]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셀라)
구원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이론으로만 아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삶에서 경험한 구원만이 의미가 있다.
다윗은 곤고하고 두렵고 무섭고 혼란스러운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고
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구원을 경험하고서야
구원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론에 머문 신앙의 개념들 가운데 특히
'구원'의 문제는 삶에서 직접 경험을 해가야만
그 출처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고틍과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과 좌절과 수치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서 응답을 받고서야
구원의 출처가 오직 주님 뿐임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된다.
4. 나는?
나는 잠을 잘 자는 성격이다.
웬만한 일로는 잠을 설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잠을 아예 자지 못한 날이 있었다.
신학공부하러 경기도로 완전히 삶의 터전을 옮길 때
경기도 외곽에 작은 보습학원 하나를 인수했다.
권리금을 꽤 주고 인수한 학원이었는데,
그럭저럭 잘 운영되다가 2년이 되어갈 무렵
그 학원을 인수한 권리금의 1/10도 받지 못하고
학원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 누웠다.
분명히 눈을 감고 있는데
한 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눈을 감은 채로 날밤을 꼴딱 새었다.
내 인생에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걱정과 두려움과 염려와 고통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다 올라왔고
온갖 부정적인 스토리가 다 상상이 되었다.
완전히 망해 버려서 신학공부도 못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상상,
부산에서도 집도 못구해서 전전긍긍하며
지인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상상,
부모 형제들이 가질 나를 향한 염려로 인한 부담감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면서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뜬 눈도 아니고 눈을 감은 채로 한 숨도 자지 못한,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그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는 말씀을 펼쳐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말씀조차 버린다면
나는 정말 망해버릴 것 같았다.
아니, 망해도 좋은데 말씀은 붙들어야 할 것 같았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고서는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의 모든 부정적 감정을 쏟아 놓았다.
두렵다고, 슬프다고, 외롭다고, 괴롭다고
하나님께 항변하고 토로하고 외쳤다.
그리고 낮에는 학원에서 아이들과 씨름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붙들고
공부하도록 시키느라 소리지르고 거친 말도 해야 했다.
학원에서의 정신없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나는 또 하나님께 호소했다.
"주님. 오늘 너무 힘들었습니다."라고
기도도 아닌, 한탄같은 말을 입으로 쏟아내는 순간
속에서 울컥하고 눈물이 올라오더니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길가에 차를 대고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하고
한탄을 하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도 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차 안에서 울었다.
소위 부르짖은 것이다.
그 모든 과정 중에서 한 가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그 아침 시간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 학원은 잃었지만
그 고통스런 과정인 순간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한 그 소통은 남았다.
그 괴롭고 두려운 시간 동안에도
매일 하나님과 말씀을 통해 소통하는
그 소통은 학원과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학원은 잃고 재정적인 타격도 있었지만
나의 내면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매일 하나님과 교제한 그 교제는
나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았다.
학원이 망하지 내가 망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고통의 시간들은 지나가지만
그 시간 동안 고통만 묵상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하나님과 소통한다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깊은 회복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19라는 상황이 주는 여러가지 아픔이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분명한 것은,
아픔을 주겠지만 고통은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고통이 지나갔을 때 고통 외에 남는 것이 전혀 없다면
고통 자체보다 그 사실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과 더 소통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삶을 건다면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말했나 보다.
고난을 통해 주의 말씀과 가까워지는 것이
가장 큰 복이 된다.
그렇게 될 때 잠이 오지 않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잘 자고 잘 깨는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신앙과 내면은 성숙해지는
가장 아름다운 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쉽지 않은 삶일 테지만
고난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어
참되고 아름다운 복을 누리는 삶이길 소원한다.
윤용 목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