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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응답에 대한 오해](시편 4편)
1. 오해
기도와 응답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
대표적인 오해를 시편 기자가 말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 주십시오. (시4:6)
기도에 대한 가장 크고 치명적인 오해는
큰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큰 복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수많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만큼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까? '를 찾는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자신의 소원들 들어주는 신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참 신이라는
헛된 믿음을 갖고 기도하면서
그 신을 찾는 것이다.
2. 오해의 결과
기도에 대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오해를 가지면
그 신앙과 삶은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너희 높은 자들아, 언제까지 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겠느냐? (셀라) (시4:2)
그 신앙은 결국 우상을 향하게 된다.
거짓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우상이란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가짜 신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복을 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
결국 거짓 신을 섬기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하나님께 큰 복을 받기 바라는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섬기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가짜 신일 뿐이다.
그렇게 가짜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니,
기도와 응답에 대한 오해는 신앙과 존재를 망가트리는 심각한 문제다.
3. 바른 기도와 응답은?
1) 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첫째, 곤궁에서 구해달라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나를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시4:1)
곤궁에 빠지고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
거기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기도다.
살아가다 보면 곤란과 어려움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는
결코 기복적이거나 타락한 기도가 아니다.
큰 복이 아니라 곤궁에서 벗어나길,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길 기도해야 한다.
둘째, 회개의 기도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셀라) (시4:4)
회개는 기도의 본질이다.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깨달아가는 것,
그래서 죄로 인해 애통하며 눈물흘리는 기도는,
기도의 본질일 뿐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다.
그렇게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회개하면
분노가 일어날 때 죄를 짓지 않게 된다.
분노하게 만든 사람보다 자신이 더 죄인임을 알기에
분노를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바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렇게 바른 기도를 하면 주께서 응답해주신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각별히 돌보심을 기억하여라. 주님께서는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 주신다. (시4:
3)
그리고 참된 응답을 누려가게 된다.
참된 응답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모습일까?
두 가지다.
첫째, 기쁨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시4:7)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함은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도의 제목, 즉 큰 복이다.
큰 복이 아니라 기쁨이 중요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참 기쁨이
바른 기도와 바른 응답의 결과다.
둘째, 평안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4:8)
복을 구하고 복을 얻지 못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하다.
그래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진다.
복이 아니라 주님 자체를 구하면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놀라운 평안을 누리게 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바른 기도와 응답의 결과다.
4. 나는?
복 받으려고 부자 되려고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너무나 당당히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지 생각했다.
나는 그와 달랐을까?
그 말을 들을 때는 황당했다.
그런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나라고 별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소원을 당당히 말했고
나는 은근히 바랄 뿐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똑같았다.
기도란 마음에서 참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 원은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되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보다
신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적인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은근히 더 크다는 사실은,
나의 믿음의 수준이 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었다.
내가 정말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거 시작했고
그래서 조금씩 나의 기도제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기도할 제목은
점점 적어져갔다.
현실의 문제는 대부분 세상적인 복과 관계가 있어서
그 기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과 너무나 다른 나의 뜻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 차이만큰 아파하는 시간들을
말씀을 묵상하면서 계속 보냈다.
그것이 나의 기도가 되기 시작했다.
목사가 된 지금의 삶에서는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성도들의 삶이 막다른 골목이 되거나,
곤궁에 빠지거나,
신앙적인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상황들을 두고 기도하는 기도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주의 도우심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큰 복을 위한 허망한 기도에서 벗어나
나와 성도들이 곤궁에서 빠져나오길,
자신의 죄인됨을 더 깊이 깨닫고 발견하는
참된 회개의 기도를 누려가길,
그리고 주의 도우심을 누려가면서
평안과 기쁨을 누려가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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