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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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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전원준목사 |
참고 : |
제 목 : 사랑의 프리즘.
<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
성 경 : 고린도전서 13장4절-7절 (2020.5.31. 주일오전예배)
설 교 : 전 원 준 목사(☎ 051-523-8457. HP 010-3847-8457)
(47758)부산시 동래구 시실로135번길28-7(산상성서침례교회)
(산상교회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ssbbc )
< 찬송 = 373태산을넘어. 370기쁘다주님.421사랑하는 >
< 특송 = 사랑은 언제나 >
(고전 13:4- 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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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발하는 만남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줄 보석을 사러
귀금속 상인을 찾아갔습니다.
상인은 여러 보석들을 보여주었지만
남자는 연인을 위한 아주 특별한 보석을 원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상인은 마침 그런 보석이 있다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고에서 어떤 보석을 가지고 나와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보석은 아주 평범해 보였습니다.
“별다른 광택도 없고 세공도 별로인 것 같은데
그 보석이 왜 특별합니까?”
“특별한 것엔 다 이유가 있지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상인은 손 안에 보석을 쥐고 있다가 몇 분 뒤에 펼쳐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평범했던 그 보석에서 영롱한 무지갯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어찌된 영문인지 묻자 상인이 말했습니다.
“이 보석은 오팔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보석 같지만 사람의 체온이 닿으면
이런 빛이 납니다.
사람이 있어야 빛이 나기에 연인을 위해
이보다 더 특별한 보석은 없을 것입니다.”
오팔이 체온을 만나야 빛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야 특별해 집니다
오늘 우리들이 서로 만남으로 빛이나는 보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랑의 프림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프리즘이란 그기에 빛이 통과되면 7색으로 나타나는 물제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 사랑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의 말씀되시기를 바랍니다.
1.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다보면 인간관계에서 많은 문제들이 야기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불화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자칫하면 다투기 쉽고, 불화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 참으셨습니다.
## 비유로 = 탕자가 집을 뜨났으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린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2) 우리는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
한달, 일년, 10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오래 참으세요.’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오래 참음을 옷 입고』
2. 사랑은 '온유하며' < kind >입니다.
1) kind = 친절한 것입니다.
사람을 무시하거나 갑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의를 갖추어서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먼저 대접하고...
2) 한문 = 溫 따뜻할 온;
따뜻하다, 온화하다, 순수하다, 원만하다
柔 부드러울 유;
부드럽다, 성질이 화평하고 순하다, 약하다, 여리다, 복종하다.
## 어느 광고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렇습니다.
정말 커피 한잔을 마셔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조그만 일이 있어도 짜증내고 불평하고. 하는 그런 사람은
사랑을 못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하고 싶고, 편안함을 주는 사람.
온유한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온유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 11:28-29)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질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투기의 길입니다.
▶ 가인과 아벨 = 두 형제가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의 제사는 열납지 아니하시고,
동생의 제사만 열납하셨습니다.
형은 동생에 대해서 시기했습니다.
결국은 동생을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가인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결국은 시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 아버지가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시기했습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속담 =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우리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않줗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4.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자랑은 잘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힘든 일을 해 놓고 공치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공치사로 인해 자신의 공로가 없어지고 맙니다. 자랑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마 6:3-4)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랑이 외적인 것이라면 교만은 내적인 것입니다.
자랑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교만은 마음 자세입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약 4:6) 『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6.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무례는 '아름다움이 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그릇에 금이 간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무례입니다.
사람도 무례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의가 없습니다. 행동을 함부로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름다움이 없고 값이 떨어진 사람입니다.
왜 ? 인격에 금이 갔고 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말과 행동에 최고의 예절을 갖는 것입니다.
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교만의 극치는 무례로 나타납니다.
(잠 21: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롬 13:7)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신앙안에서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 사랑의 모습입니다.
7.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이 시대에 특징 중에 하나가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본의로,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처사입니다.
탐욕의 포로
14세기 벨기에의 왕인 레이몬드 3세는 백성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맛있는 음식만 찾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반란이 일어나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나 그와 사촌이었던 새로운 왕은 차마 레이몬드를 죽일 수 없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너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기 안위에만 신경을 썼다. 만약 음식에 대한 탐욕을 이겨내 살이 빠져 이 문으로 나올 수 있다면 너는 자유다. 하지만 음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막상 문이 생각보다 작지 않아 레이몬드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충분히 나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한 번도 음식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자기 욕망의 결과 때문에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 '빅토르 위고'가 쓴 '나인 더 쓰리'라는 작품 중에서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무렵 군인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허기진 어머니와 세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빵 한 개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빵을 받자 맞자 세 등분하여 세 아이에게 나누어줍니다. 이 모습을 본 한 병사가 말하기를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그때 상사가 말합니다. "야, 이 바보야! 바로 그게 어머니야"
▶ 어머니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기를 극복합니다.
자기 욕심을 체우고자하는 것은 절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희생이고 섬김입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찬 송 = 요한의 아들 시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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