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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4:3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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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
영의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합니다!
(막14:32-42)
우리는 가끔 기도할 때나 말할 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많이 언급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많이 언급하는 사람도 있어요. 간단하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 도와 주세요’ 라고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 도와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때로는 하나님이라고도 말했다가, 때로는 예수님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여러분 무엇이 맞을까요? 다 맞아요. 저도 가끔 ‘하나님 도와 주세요’ 라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 도와 주세요’ 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틀리지 않아요. 여러분,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쫌 어렵겠지만, 예수님에게는 인성 즉 사람의 모습과, 신성 즉 하나님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어요. 기독교 초기 역사를 보면 수많은 이단들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고 생겨나요. 그 이유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요.
어떤 이단은 ‘예수는 인간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라고 주장을 하다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있고요. 반대로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라고 주장을 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의 정확한 이해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시고,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시지요. 사람의 모습에서는 고난을 느끼시고, 아픔도 있으시고, 예수님은 때로 울기도 하시는 모습이 성경에 보면 나오죠.
그리고 또 예수님은 신적인 모습을 성경을 보면 많이 보여 주시지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바다 위를 걸으시고,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요.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와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앞두고 정말 고민하시고, 걱정하시고, 슬퍼하시고, 아파하시고,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셔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세요. 정말 철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세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고민하여 어떻게 되었다고요?’ ‘죽게 되었다’ 예수님이 고민하시는데, 죽을 만큼 고민하시고 또 고민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땀이 어떻게 해요?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
그리고 하나님에게,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해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는, 처절한 인간의 모습! 예수님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까지 하셨을까요? 여러분, 예수님 안에 있는 인성과 그리고 신성이 충돌했기 때문이지요. 인간으로서의 뜻과 하나님으로서의 뜻이 충돌했기 때문이지요. 그 만큼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은, 십자가는 피하고 싶은 고난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말씀하세요. ‘내 뜻대로 마시고, (인간의 뜻대로 마시고), 누구의 원대로? 아버지의 원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를 마치시지요.
왜? 예수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십자가, 그리고 고난을 선택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를, 사함 받지 아니하면, 결코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홀로 지시고, 그리고 그 십자가를 우리가 정말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셨지요.
여러분, 예수님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있어요. 그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 에게는요? 우리 안에는, ‘영의 모습’과 ‘육의 모습’이 함께 있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백을 하지요. ‘내가 한 법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그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고백을 해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데, 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사도바울도 평생 자기 안에 있는 이 두 마음과 싸우고 있었음을 고백을 하지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라고 외치며, 좌절감을 표현해요.
여러분, 이 두 모습이 우리 안에서도, 매일같이 충돌하지요. 영의 모습과 육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항상 충돌을 일으켜요. 어느 때는 내 안에 영의 모습이 충만하게 넘쳐 날 때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육의 모습이 내 안에서는 늘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셔야 해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초청하세요. 그것은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 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나 깨어 뭐하라고요? ‘기도’하라고 말씀하세요. 깨어 기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 ‘너희 안에 있는 육의 모습이 너를 넘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기에 ‘깨어 일어나 기도하라’고 초청을 하시지요.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보니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어요? 자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깨우시지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시고 그리고 말씀하세요? 38절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 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육신의 연약함이 있고요, 그 육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내어 두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시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험에 들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육신의 연약함으로 시험 들어 넘어질 수 있어요.
여러분, 시험을 받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요? 시험을 받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다른 거예요. 우리가 시험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바뀐 주기도문 말고, 옛날 주기도문에 보면 정확하게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지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있지요.
가끔 목회자로 상담을 할 때가 있어요. 전화 상담이나, 직접 대면해서 상담을 하지요. 그러면 저는 제일 먼저 그것을 보지요.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에 들었는가? 시험을 받고 온 분이 있고요. 시험 들어서 온 분들이 있어요.
시험에 받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목사님, 요즘 제 마음이 왜 그런지 몰라요’. ‘자꾸 미워하고 싶고’, ‘자꾸 교회에 오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요즘 성도들 보기도 싫고, 목사님도 보기도 싫고요’ ‘내 마음은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는데, 그것 다 감추고 교회 와서 섬겨야 하니, 너무 힘들어요!’ 라고 고민을 상담하시는 분들 있어요.
그런 분들을 진단해보면, 시험에 든 것은 아니에요. 지금 시험을 받는 거지요. 그때 목사는 그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물리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 받고 있으면, 물리쳐야 되요.
또 어떤 분은 이미 시험에 들어서 온 분들이 있어요. 이미 물을 엎드려 트려놓고, 오신 분들이 있어요. 마음속에 이미 누군가를 정죄하기 시작했고, 입에서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누군가를 이야기해요. 이미 그리고 불평하고, 그리고 무엇인가에 분노하고, 서로 간에 이간하는 일들을 하고 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진단하면, 시험에 들어서 온 분들이지요.
여러분, 시험을 받으면 물리쳐야 하고요. 시험에 들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어요.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이고요. 그 연약함에 시험을 받고, 결국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고요.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지요. 하나님은 영시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기도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자꾸 만나려고 애쓰는 사람, 기도의 자리를 늘 사모하며 그 주위를 떠나지 아니하려는 사람, 그 사람이 영의 사람이지요.
하나님은 그것은 보고 계세요. 지금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육의 모습이 더 나타나고 있는가? 늘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며 늘 그 주위를 맴도는 사람과, 아니면 점점 그 자리를 떠나, 멀어져 가고 있는가? 그것을 보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저는 목사로써 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깨어 기도할때라고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데, 과연 우리 성도님들은 언제 기도하실까? 아니면, 기도 안하실까? 50시간 채우기 기도 훈련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성도님들은 언제 기도 많이 하실까?
사실 새벽제단 쌓는 것 쉽지 않아요. 새벽잠 비비고 나와 기도하는 것 쉽지 않아요. 그런데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 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직장이나 집이 멀어 나올 수 없는 경우를 빼고, 개인적으로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가 봅니다.
‘새벽에 못 나오지만, 집에서 기도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요. 그런 생각을 해요. “교회에 나와서 기도도 못하는데, 어떻게 집에서 기도가 가능할까?” 하루, 이틀, 며칠은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고, 하루 이틀은 집에서 하겠지만, 쉽게 유혹에 넘어가 무너질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기도 안하는, 핑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사단이 우리를 쉽게 이용하는 거예요. “저는 교회는 못 나와도, 인터넷으로 꼭 예배를 드립니다”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단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이지요. 한 주, 두 주, 몇 번은 가능해요. 주일 아침에 일어나 씻고, 자리를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사단은 그것을 가만히 내 두지 않아요. 게으르게 만들고, 그리고 마음이 느슨하게 만들고, 점점 예배를 드리는 자세에서, 예배를 보는 자세로, 마음을 흩트려 트려 놓고, 나중엔 소파에 누워서 예배드리게 만들어 놓지요. 그리고 점점 예배를 멀어지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예배드리는 시간, 내가 정해 놓은 시간에, 꼭 일이 있게 만들고, 못 드리게 만들어 놓지요. 그러니까 깨어있지 않으면, 십중팔구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정해 놓은 시간에 꼭 일이 있게 만들어 놓지요. (그것은 사단이 하는 중요한 일이지요. 그 일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어도 교회 나와 기도하고, 어려워도 교회라고 하는 제단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내가 어렵고 힘들 때 교회에 붙어 있는 사람이 있고, 내가 어렵고 힘들다고 교회를 멀리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입으로 이야기 하는지요. 그런데, 교회는 멀리하고 있다면, 그 마음은 진정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죠. 정말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에 붙어 있고, 그리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지 아니하려고, 늘 교회를 위해, 자신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어도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고, 어려워도 내가 넘어지지 아니하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간을 지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죠. 그것이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시험에 들지 않게 영적으로 깨어있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영의 모습이 더 있다면, 영의 생각과 영의 말이 나오고요. 내 안에 육의 모습이 더 있다면, 육의 생각과 냄새나는 육의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내 안에 육적인 모습을 제하기 위해서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 영의 사람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의 사람에게는, 사랑의 말이 그 안에서 나오고, 기뻐할 수 없는 가운데 기쁨이 나오고, 화평을 이룰 수 없는 곳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친절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친절하고,
남에게 늘 유익을 주려하고, 주를 위해 충성하고, 온유하고, 끝까지 육을 제하기 위해 절제하는 모습이 영의 사람에게는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에게 오는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 시험에서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고 깨어 기도합니다. 늘 그 은혜로 살아가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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