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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공경

말라기 김중곤 목사............... 조회 수 185 추천 수 0 2020.07.09 15:08:25
.........
성경본문 : 말1:6-7 
설교자 : 김중곤 목사 
참고 : 들풀쉼터교회 

성경 : 1:6-10

제목 : 하나님 공경

찬송 : 149(147), 151(138), 218(369), 267(201)

1:6-10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하나님을공경’(恭敬) 한다는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공손히 섬기는 것(3:9)을 말합니다.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으로 4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23개의 문답식 교훈과 6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라기나의 사자란 뜻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성전이 재건되고 학사에스라’(B.C.458년 귀환) 총독느헤미야’(B.C.445-425년경)의 종교개혁이 취해지던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 힘쓰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말라기는 유대인들이 겪고 있는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예배의 타락에서 보았고, 희망의 원인을 예배의 회복에서 찾고 있습니다.

1:6-8‘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고 말씀합니다.

 

한 유대인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준비합니다. 마음에는 비둘기 한 마리로 때웠으면 좋겠는데, 양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목장에서 제물로 바칠 양을 고릅니다. 만일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다면, 그는 값을 따지지 않고 가장 좋은 양을 고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리기는 아깝고 안 하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마지못해 한 마리를 고릅니다. 마침, 양치는 일꾼이 주인님, 이놈은 며칠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병이 낫지 않네요라고 말했던 그 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옳다, 저 놈을 바치자. 어차피 죽을 놈이니, 제물로 바치면 일거양득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꾀를 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해 엄중히 책망합니다. 그 같은 제물을더러운 떡이라고 말하고, ‘너희가 여호와를 경멸이 여기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보다, 대부분이 율법의 규정을 형식적으로 만족시키는 정도에서, 정성 없는 제물과 마음이 담기지 않은 물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최소한의 도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하시며, 이러한 행위가 주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책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90년대 유행했던 유머 시리즈 중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기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나 고양이 맞아?”, “맞아, 너는 예쁜 내 새끼 고양이란다.”, 아기 고양이는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나 정말 고양이 맞아.?”, “맞아, 넌 고양이야.”, 그런데 또 다시엄마, 엄마, 나 고양이 맞아?”, 엄마가 조금짜증을 내면서맞다니까!”하고 말하자, “근데, 왜 애들이 나 보고 개새끼래?

저는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란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가끔 하나님께, , 하나님 자녀 맞아요?”, “하나님, 정말 저 사랑하십니까?”하고 묻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2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나에게 고난이 왔을 때, 실패했을 때, 앞길이 막혔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병들었을 때, 슬픈 일이 닥쳐올 때 이런 생각과 말을 합니다.

말라기서가 쓰여 진 때는 B.C.460-B.C.430년경입니다. 이 때는 중동지역의 패권을 잡았던 나라가 바사’(Persia; 페르시아)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식민지였고, 이방 민족의 위협과, 메뚜기와 가뭄이 잦아서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기가 일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곧 임한다고 했던 메시아 왕국에 대한 약속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암울하고, 답답하고, 풀리는 일은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고, 하나님께 항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낙심되어서하나님, 저 사랑하는 거 맞나요?’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하면서 하소연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앞길이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 연속되는 실패를 경험했을 때, 상황이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할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혹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하나님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주어졌을 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고, 하나님은 나의 고통에 대해서 왜 침묵하시고, 내가 그토록 원하는데도 왜 도와주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 아닙니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이나 우리의 생각이 맞는다면 우리가 실패를 겪고, 고난을 당하고, 아픔과 슬픔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사업에 실패하고,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바울사도도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가 가진 것 다 버리고 감옥에 갇히고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고후11:24), 육체에 가시와 같은 질병이 있어 이 질병을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주께 간구하였지만, 그때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시지만, 이일로 바울사도는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이러한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7-9)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사도는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13:22, 삼상13:14)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는데,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 왕에게 쫓겨서 거처도 없이 유대 광야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는커녕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삼상21:13) 미친 사람 짓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울사도나 다윗을 사랑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다윗 왕이나 바울사도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도 이분법적사고(二分法的思考)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나 상황에 대하여 흑이 아니면 백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평탄하고 풍요롭고 잘 풀리면 복을 받은 것이고, 반대로 처한 상황이 고통스럽고 힘들고 답답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가 하면서 낙심하고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분법적사고에 의해 판단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인사고는 위험한 요소가 많습니다.

저가 만약에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아마우리 목사님은 우리가 모르는 죄가 있거나,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은 종인가 봐. 하나님의 종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겠어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목사는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도 아플 수 있고, 사고 날 수도 있습니다.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이 복은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3-40십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3-40십을 사나 100세를 산다고 하여도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90:4)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오래 살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더 열심히 하라는 줄 알고 죽는 순간까지 충성하면 되고, 조금 일찍 부르시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다했으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줄 알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먼저 가서 안식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정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을 때, 우리 모두 정 집사님의 치유를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가 아는 목사님은 정 집사님 보다 먼저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가 되어, 곧 소천 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정 집사님은 생각도 긍정적이고, 표정도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정 집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정 집사님을 사랑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까? 저가 마지막 집사님을 만났을 때 호흡도 힘들고 많이 괴로워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치료해 주실 수도 있으셨겠지만, 하나님은 힘들고 괴로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로 집사님을 부르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집사님 때문에 기도 제목을 주셨고,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고하게 예수님 믿기를 거부하던 남편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인공호흡으로 살아있을 수는 있었겠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우리 곁을 떠나 마음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9:20-21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는 말씀같이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우리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판단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지음 받은 사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때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내 고집 내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너는 내 자녀다. 인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우리가 받은 은혜의 많고 적음이나, 성공과 실패를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판단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실패할 때에도, 우리 앞길이 막힐 때에도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도 고난을 당했을 때, 그의 아내가 욥에게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때,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2:9-10)고 하였습니다.

그 후 욥을 찾아온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4:7-9)고 욥을 훈계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 고난을 통해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2-3),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라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전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고난 그 자체는 괴롭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우리가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이전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된 다는 것을 욥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탄식하지 말고,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어떤 고난도, 우리가 당하는 질병도 이겨내고 주님과 함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높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 커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하면 고난 가운데서도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우리고,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합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믿기는 믿는데하나님이 인도해주실까, 하나님이 도와주실까의심을 한다면 그건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사면이 막히고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하고 의심이 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맡길 때, 사면이 막혀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이러한 전적인 위탁이 있으면 당장은 낙심될지 모르지만 금방 안정을 찾고 위로와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벧전5: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를 모두 다 주님께 맡기는 것이 전적 위탁이고 믿음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면 평안이 오고 앞길이 막혀도, 실패해도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서 위로와 평강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농부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올해는 제발 폭우가 오지 않게 하시고 폭풍도 불지 않게 하시고 늘 따뜻한 햇볕 속에서 필요할 때에만 필요한 만큼 비를 뿌려주십시오.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해의 날씨는 딱 그러했습니다.

가을이 됐습니다. 추수하는 농부의 마음은 기쁘고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추수한 곡식들의 속이 텅텅 비었습니다. 모두 쭉정이들입니다. 농부는 하나님을 찾아가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속 빈 쭉정이들만 만들어주셨습니까. 이제 어떡합니까.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폭풍과 폭우를 통해 열매가 알차게 영그는 법인데 너는 그것을 마다하고 편안한 길만 택했으니 네가 거둘 것이 그것밖에 더 있겠느냐.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편안한 삶만을 원한다면, 빈 쭉정이와 같은 인생이 될 뿐입니다.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더욱 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8:5-6‘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 더 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편안한 삶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폭풍우와 같은 고난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형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형통(亨通)의 뜻은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감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리스 신화에 매우 탐욕스러운 미다스 왕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더 많은 부귀를 원했습니다. 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미다스는 정원수, 조각물, 가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황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지기만 하면 황금이 되니 도대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상심한 그는 무심코 자기 딸을 안았다가 사랑하는 딸도 금 조각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간청하므로 팍톨로스 강물에 목욕함으로써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이겨낼 때 얻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만 믿음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일이 잘 되는 형통의 복이 아니라, 우리 앞에 고난이 닥쳐오고 길이 막힐 때, 고난을 이기고 우리 앞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지 분별하여,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문제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일어나 주님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주님가신 그 길을 우리도 가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가다가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포기하는, 실패하는 인생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끝까지 주님을 따르므로 이 모든 고난과 환난을 이기고 주님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고난과 슬픔과 괴로움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오직 주님만을 믿고 공경함으로 끝내는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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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1 시편 세 가지 심판 시 98:13  강종수목사  2020-06-28 212
16690 잠언 여호와의 손에 있는 성도 잠언21;1-7  전원준목사  2020-06-27 460
16689 창세기 여호와 이레 창22:1-14  강승호목사  2020-06-26 396
16688 마태복음 제자들이 받을 상 마10:40-42  강승호목사  2020-06-25 215
16687 누가복음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눅7:14-16  김경형목사  2020-06-24 104
16686 요한계시 성경을 가감하지 말라 계22:18-19  강종수목사  2020-06-21 190
16685 마가복음 닭 우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막14:27-31  김기성 목사  2020-06-21 439
16684 창세기 하갈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창21:8-21  강승호목사  2020-06-20 227
16683 잠언 내삶속에 있는 주님의등불 잠언20;10-27  전원준목사  2020-06-20 426
16682 마태복음 제자인 전도자 마10:24-39  강승호목사  2020-06-18 189
16681 누가복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눅7:9-14  김경형목사  2020-06-18 187
16680 마태복음 복음을 전할 때 마9:35-10:8  강승호목사  2020-06-17 184
16679 데살로후 세상 종말의 시작 살후 2:3-4  강종수목사  2020-06-14 214
16678 창세기 하나님의 약속 창21:1-7  강승호목사  2020-06-13 298
16677 잠언 충성된 신앙의 참모습 잠언20;1-7  전원준목사  2020-06-13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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