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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1:2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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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성경 : 행11:24-26
제목 :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찬송 : 435(492), 370(455), 463(518), 456(509)
행11:24-26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오늘 본문에는 이방인 교회로 첫 번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그중에 ‘스데반’집사님이 순교를 당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던’(행8:1) 당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박해를 피해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이 두루 다니며 베니게와 구브로 뿐 아니라 안디옥에 까지 가서, 그곳에 사는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파하는데(행11;19), 그중에 구브로(지중해 동북쪽에 있는 현재의 사이프러스 섬)와 구레네(아프리카의 애굽 서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도시)에서 온 이방인 교인들은 안디옥에 사는 헬라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행11;20). 주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안디옥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행11;22-24)합니다. 안디옥에 도착한‘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누구입니까? 오순절 이후 예수님을 영접한 평신도입니다. 그는 구브로 출신 레위족 사람으로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이 그를‘바나바’(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행4:36). 그는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었던 신실한 사람(행4:37)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할 때,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증거 하므로 사울을 주의 제자가 되게 한 사람입니다(행9:26-27).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돕기 위해 그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하여‘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낸 것입니다.
‘바나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함께 도울 동역 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당시 고향인 다소에 피신해 있던 사울을 찾아가 동역을 요청(행11;25)합니다.
‘바나바’는 밀려드는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동역 자가 필요했는데, 당시 헬라인들을 가르치기에 사울이 적임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은 구약에 정통한 랍비로 로마시민권자이며 다소에서 자라 헬라어에 능통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으며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치고,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는데(행7:58), 그 청년이 바로 사울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함이었습니다(행9:1-2).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 가까이 이르러 그가 박해하던 주님을 만난 후, 완전히 회심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새 언약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주님께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행9:15)이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교적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통해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그는 회심 후에도 계속 사울로 불리다가 바나바와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구브로 섬의 살라미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부터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행13:9)로 언급되면서‘바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 온 사울은,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따르고, 예수님을 삶으로 증거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으며, 이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행11;26).
‘그리스도인’을 헬라어로‘크리스티아누스’(Χριστιανυs)라고 하는데,‘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는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데서 선교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한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마치고 본국에 돌아가서 선교보고를 하는데 다음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주일날이면 성경책을 들고 예배드리러 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일에는 길거리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오늘‘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나는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아야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베들레헴 침례교회 담임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존 파이퍼’(John Stephen Piper; 1946- ) 목사님은 ‘열방을 향해 가라’라는 책에서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목표이다. 예배가 없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열방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높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의 목표는 열방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회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중심이 되시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 자신이 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온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딤후3:16)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이끄십니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는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 자신입니까? 우리 자신이라면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이시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성경말씀에 어떻게 하라고 말씀 하셨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른다면,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참‘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옛 것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난 사람입니다.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사망과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할 죄인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우리가 자격이나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엡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롬3: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옛것을 버려야 새것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처럼, 옛사람으로 죄인인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복음 안에서 새 사람이 될 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거듭나는 비결에 대해 엡4: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세상 풍속을 쫓고, 세상 욕심을 따라 살고, 죄의 종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 되어,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고,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위해 사는 성도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이상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곧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믿고 따르기로 고백한 그리스도인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사도는 빌3:7-9절에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육체의 소욕을 좇아 즐겨하던 모든 것,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주님의 능력 안에서 살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죄악으로 멸망 받을 옛사람, 죄의 종이 되어 세상을 따르던 나는 죽고,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임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롬14:8)으로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된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요16: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말씀하신 주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니, 우리는 자랑스럽고 빛나는 이름‘그리스도인’으로, 존귀하고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그렇지 못합니다.
독일의 신학자‘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교수는 현재 기성교인 중에 10%는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오직 10%만 이 살아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렌 교수’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드려 보지 못했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없고, 40%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 헌금을 안하고 있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못했으나 교인들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련하고 불쌍하고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예수님처럼 자기를 내어주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 복음의 역사가 펼쳐질 수 있다면’, ‘나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질 수 있다면’, ‘나 한 사람으로 주의 몸 된 교회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면’, ‘나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실천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희생하고 더 섬기며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삶입니다.
어떤 신부님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란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이 빼앗은 하나님 자리에 생명이요 정의요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시려, 하느님 팔아 제 배 채우려는 불경을 거슬러 물신(物神)이 판치는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 모습 닮은 존엄한 사람들과 하나님 손길 닿은 고귀한 피조물을 섬기려 높은 자리 오르려는 탐욕을 거슬러 세상 가장 낮은 곳에 기쁘게 자신을 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악의 세력에게 짓밟힌 사람들과 오만한 인간에게 유린당한 피조물을 보듬으려 편안한 자리 찾는 나약함을 거슬러,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신성(神聖)이 온전히 드러날 새 하늘 새 땅 일구는 일꾼 되고자 매순간 순간 지금 여기에서 죽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죽음을 선택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과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인 마5:38-45절에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그리스도의 사람은 세상 적으로 볼 때는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를 생각은 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잘도 하면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손해보고 희생해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비우고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면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다.’라고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말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으로 가졌노라’(갈6:17)고 하였습니다.
은혜찬양 597장 ‘예수님의 흔적’이라는 복음 찬양 시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남았네 /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 자국이 남았네 / 주님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주셨으니 / 이제 후로는 내 몸에 손댈 자 없도다 /
부족하기 그지없는 이 죄인을 택하사 / 주의 복음 전하라고 예수 흔적 주셨네 / 나의 몸과 나의 맘에 성령께서 계시니 /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내주신 증거라 /
주님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주셨으니 / 이제 후로는 내 몸에 손댈 자 없도다
3.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감사의 삶입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1954- )는 아무리 바쁜 일정 중에도 하루에 5가지 감사 제목을 찾는 일기를 적는 일은 빼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를 놓고 보면 매우 작은 일이지만 오프라는 감사 일기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3: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불행과 절망은 감사의 부재와 감사가 메말라버린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미국 남북전쟁 때 장애인이 된 무명의 상이용사의 기도문입니다
‘강한 사람이 되어 많은 것을 성취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이 되게 하시어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순종하는 진리를 터득하게 하셨다. 건강한 사람으로 더 큰일을 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장애인이 되게 하시어 더 좋은 일을 하게 하셨다.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빈곤하게 하시어 지혜롭게 살게 하셨다. 권력을 가지고 남들의 칭송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힘이 없는 약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고 의지하게 하셨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생명을 나에게 주셨다. 내가 하나님께 간구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희망했던 모든 것을 얻었다. 현재 처해 있는 나 자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이다. 할렐루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죄악의 종, 탐욕의 종, 술의 종, 도박의 종, 돈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어차피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죄악의 종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종으로 참 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부끄럽고 죄악 된 옛 것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고, 자기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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