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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어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녀석을 만났다. 책을 선물하겠다는 명목이었지만, 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 생각에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기 가장 힘든 사람 아닐까싶다. 왜냐고? 그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냥 행복한게 아니라 겁나 행복하다. 근 이십년간 지속된 행복일 뿐 아니라, 분명한건 요 몇 주 피곤에 쩔어 살던 나보다 최소 열배는 행복해보였다. 그런 나를 앉혀놓고, 너 피곤하고 불행해보인다며, 자신의 행복론을 설파한다.
그는 자신만의 루틴가운데 자기관리하고, 명상하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배우고 싶은 것 배우고, 업무량이 많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대화가 잘 통하는 아내가 있고, 아이는 굳이 가질 생각 없다. 양가 다 안정적이고, 주변에 아픈 사람도 없다. 나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분명 현재로써 나의 복됨과 그의 복됨은 게임이 안된다.
그러나 대화하다보니, 그 행복감의 근원은 결국 강렬한 자기애...와, 적절한 이기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자기만 아는 싸가지가 아니다. 오히려 쾌활하고 건강하다. 다만 자신이 알든 모르든 듣다보니, 자신의 행복유지를 위해 문제가 되는 것을 조금씩 잘라나가거나 외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화를 마무리 할 때의 한 마디가 기억난다. “인간 죽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어찌보면 그 믿음에 대한 대답이, 그가 말끝마다 말했던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의 근거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그의 삶이 잠깐이나마 부러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중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부재’ 도무지 도피할 수 없는 ‘부재’가 찾아온다면, 즉 그만의 철옹성을 지탱하는 기둥 중에 하나라도 ‘부재’하게 될 때가 찾아온다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하였다. 예전에는 그의 체계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렴풋이나마 보였다는게 성과이다. 나도 조금은 성장했나보다.
전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어줍잖게 영혼구원 소리하기싫다. 그냥 소중한 친구이고, 거의 없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그래서 난 내 친구가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만 영원의 시간가운데서도 행복하길 더 원한다. 언젠가 그에게 진리가 들어갈 틈이 생기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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