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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신학’이란 분명 ‘말로 하는 것’이다. 이건 여기저기 엄청나게 출판되는 신학 서적 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거긴 모두 ‘말’이 담겨 있다. 그런데 비밀 아닌 비밀은, 출판된 신학 서적의 재발행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신학책을 읽는 독자의 수와 부류가 극히 소수라는 현실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많은 신학출판물들을 필요’로 하고, ‘누가 신학서적을 읽는가?’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 신학서적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학서적을 출간하는 - ‘신학자들 자신’이다. 그 외에 독자들은 사실 극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이건 슬퍼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화학서적은 화학자들이 구입해서 읽고, 스포츠 관련서적도 대부분 체육학자들이 구입해서 읽기 때문이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저조한 재출판부수를 자랑(?)하는 신학서적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진실이 한 가지 있다. 신학적 ‘말’들이 세상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몇몇 신학자들만이 상대적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신학이 세상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또는 나눌 수 있을 건지, 나눌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것인지 항상 질문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신학관련 서적 재발행 부수가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가 한스 큉이다. 그런데 한스 큉이 그처럼 폭넓은 공감을 얻게 된 이유가 '혹시 기존 교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또는 지금 그렇게 관심을 얻는 인기가 그저 '흘러가는 유행이나 스캔들처럼 한 번 흘러가는 그런 건 아닐까?'하고 삐딱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특별히 거침없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언제나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 관심을 얻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 교회와 불편한 관계,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 때문인 건 확실하다. 아직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온전한 역사의 평가를 바라는 건 시기상조일 수 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앞서 제기한 이유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대중적 인기가 세상과 생산적 대화를 잘 끌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종종 언론에서 대통령이나 정당별 지지율 조사를 발표하는데, 마찬가지다. 인기투표의 지지율이 높다고 국정운영을 잘하는 게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대중의 공감을 받고 있지만, 로마-가톨릭 신학은 여전히 대중의 공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건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 가톨릭 교인은 의무적으로 일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무(?) 또는 권고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당에 찾아가는 가톨릭 교인은 전체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많은 가톨릭 재단학교의 보고서에서 잘 드러난다.(내 은사인 Prof. Hans Schwarz 교수가 2015년 여름 내 사무실에서 해 주신 이야기)
교황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환호와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교황의 요구는 묵살한다. 교황청 교서에 나오는 요구들은 이제 더 이상 가톨릭 교인들에게도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고, 교서를 실제로 따르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집권적인 로마교회가 이런 실정이니, 한 교회에 한 명씩 교황이 있다는 개신교회는 어떨지 그 결과도 예상할 만하다.
목사가 인기 있으면, 갈채를 보낸다. 고개도 숙인다. 그런 목사 책은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쫙 깔리고, 인기 있는 만큼 책도 잘 팔린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설교집에 담긴 요구, 신학서적에 담긴 요구는 묵살된다. 책이나 설교에 담긴 '말'이 공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당신의 인기에는 공감하지만, 당신 말을 따르지는 않겠습니다.'라는 반응이기도 하다.
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렇듯 신학적 진술과 신학은 점점 그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심화되어가는 세계의 ‘세속화’와 본회퍼가 예언했던 ‘성인된 세계’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내 고민은 이것이다. ‘성인된 세계’, 각 개인이 독립적 주체가 되어가는 것과 '교회공동체'는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정형화된 현재의 교회에 희망적인 미래가 있을까? 신앙으로 보자면 분명히 희망이 씨앗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도대체 어느 방향, 어느 땅 구석을 파야 될 것인가?
코로나 상황이 이런 생각을 더욱 부채질한다.
목사인 나는 요즘 뭐라도 해보려고 삽질하고 다닌다.
뭐가 나올지,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지만 일단 열심히 파본다.
하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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