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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성기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 21세였다. 신라 44대 민애왕이 선왕인 희강왕을 자켤케 하고 즉위한 것이 22세였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잦은 반란과 왕위쟁탈전이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그 나이가 20대였다. 그 당시의 인간 평균 수명이 40세가 채 되지 않는 때였으니 인생의 전성기가 20대인 것은 당연하다. 30대는 인생을 정리할 시기였던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대 제국을 건설한 나이가 30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나이도 30세 쯤 이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나이라 하겠지만 당시로서는 전성기의 나이를 넘어 원숙한 단계의 나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남이장군은 16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26세에 이시애 난을 토벌한 공으로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바로 그해에 역모의 혐의를 쓰고 사형당했다. 조선시대는 27세의 나이에 지금의 국방부장관격인 병조판서가 될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의 나이가 44세였고 김종필이 35세였다. 현대라고는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의 나이 70세를 넘기 어려운 시기였으니 그 나이가 인생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는 50세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80세를 넘어 100세를 바라본다.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면서 예전에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혼이 급증한다. 사람이 결혼해서 살다보면 지겹기도 할 것인데 예전에는 지겨울 만 하면 둘 중에 하나가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지겹도록 오래 산다. 젊은이들의 이혼은 물론이고 50세가 넘고 60세가 넘어서 이혼하는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이유는 아직도 살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노후준비다. 은퇴 연령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수명은 크게 늘었으니 은퇴 후 살아야 할 인생이 너무 길다.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들의 큰 관심이 건강과 연금이다.
또 하나는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 늦어도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이면 사회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던 것이 점차로 늦어지고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생산하는 것도 늦어진다.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아기를 생산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적어도 10년 이상 늦어졌다.
1987년 내가 첫 목회를 나갔을 때는 20대 목사도 있었다. 특히 막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군목으로 입대할 사람들은 24-25세에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대학원을 졸업해야 하고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니 30세 이전에 목사가 되기는 어렵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도 1년이 못된 개는 똥개와 다를 바가 없다. 배운 것이 있어 세 살 정도 될 때 영리한 개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개도 그러한데 사람이겠는가? 특히 인문학, 종교, 예술 분야의 큰 업적은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이룰 수 있다.
내 생각으로 목사안수는 적어도 40세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은퇴연령도 늦춰야 되는 것 아닌가? 오늘날 인생의 전성기가 65~75세라면 적어도 75세까지 은퇴연령을 늦춰야 될 것이다. 사실 목회경륜이 쌓이고 인생이 원숙해지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데 은퇴하라고 한다면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긴다. 각종 교회행사에 참석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은퇴한 목사나 은퇴가 가까운 목사들의 과욕을 보면 은퇴를 늦춰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내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설교를 맡기면 당연히 설교가 길다. 그게 염려되어 축사나 격려사를 맡겨도 역시 길다. 심지어 축도를 맡겨도. “축도하기 전에 딱 한마디 하겠다” 하고는 30분 설교를 하는 이도 있다. “짧게 하겠다”고 하면서 길다. “길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길다. “마지막으로…”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그 분들도 젊었을 때는 그렇지말아야지 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치 않았을 것인데 나이가 들면서 자신 통제가 되지를 않는다. “철들자 망령이다.”는 속담대로다.
인생의 전성기가 언제일까? 시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직업마다 다르다. 또한 전성기가 한번 인 것은 아니다. 스포츠 스타들은 선수일 때의 전성기가 있고 지도자가 되어서의 전성기가 있을 수 있다. 진짜 학자는 은퇴 후에 그의 학문적 업적이 완성되니 은퇴 후가 전성기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훗날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시기라 생각했던 때가 때로는 가장 전성기였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참 멋있는 말이지만 그 때를 아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알았다 하더라도 떠나기가 힘들다. 오히려 더 힘들다.
그러면 박수칠 때 떠나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저 죽을 날 만 기다리란 말인가? 오늘날 우리의 인생은 지겹도록 길다. 웬만한 늙은이들에게도 10년 세월은 남아 있으니 정말 인생 공부를 해 봄이 좋을 듯하다. 예부터 “10년 공부”라는 말이 있다. 어느 분야든지 10년 공부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바다. 나는 35세 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남에게 배우는 공부였지 내 공부가 아니었다. 내 공부를 해야 한다. 내 공부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 할 말이 생겼다. 말을 하니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 주었고 글을 쓰니 읽어 주었다.
나에게도 전성기는 있을 것인데 그것이 언제일까? 지났을까? 지금일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남의 전성기는 어렴풋이 보이는데 나의 전성기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판단될 것이다.
- 이야기 신학 140호(2015. 8. 1)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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