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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목회 낙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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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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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슴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복받쳐 흐느끼는 울음은 아닙니다. 끝도 없이 솟는 눈물샘이 제가 미처 닦아낼 겨를도 없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웁니다. 왜 이리 마른 울음이 되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가 너무 강퍅해졌습니다. 여리고 순수한 제 심령이 그만큼 무디어진 것입니다. 전에는 제 개인의 일탈과 게으름이 보이면 당장 성전에 달려가 용서를 구하고, 마치 눈물로 모든 죄를 씻듯이 울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전에 달려갈 용기조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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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용기가 없는 게 아니라 무디고 완악하고 게을러졌습니다. 죄가 제 위에 덕지덕지 입혀져도 영혼이 누더기가 될 때까지 버티고, 때로는 부인하고, 더러는 은폐하고, 아예 무시하기도 하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갑니다. 예전 같으면 며칠 금식하고, 울고불고 밤새 기도할 상황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야금야금 제 영혼에 침투한 죄성이 저를 마비시켜서 이젠 웬만한 죄에는 느낌도 없고, 웬만한 느낌에는 영혼이 미동도 않고, 어느 정도의 죄로는 영혼의 찔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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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매주 월요일 새벽 한 시간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었습니다. 요원해 보이는 통일을 위해 울고, 가족, 특히 자녀들을 생이별하고 가슴앓이 하는 이산가족을 위해 울고, 어떤 일로 북한을 일주일 돌아본 후에는 참혹한 모습 때문에 정말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이 안 납니다. 섭섭한 생각, 괘씸한 생각도 들고 분한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다시 월요일을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절절한 울음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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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상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분노합니다. 이념이 무슨 대수입니까? 그게 민족보다 우선합니까? 진영이 무슨 대수입니까? 우리 생존보다 더 시급합니까? 몰라서 그런다면 모르지만, 다들 저보다는 공부도 많이 하고 사회적 경험도 풍부하고,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이들이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들 패싸움하듯 싸우는 것을 봅니다. 제 눈에는 그들의 눈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민을 팔아 자기 배를 채우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우리는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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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 나라에 돈 많다고 지도자 되고, 어느 나라에서 권력을 잡았다고 지도자가 되고, 어느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지도자가 됩니까? 모름지기 지도자는 그가 가진 인품에 존경과 신뢰를 보내며, 그의 언어가 힘이고 그의 행동이 품격이기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구하고 지혜를 배웠습니다.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지금은 엎드려 무릎 꿇은 채 가르침을 구할 이가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길 모르는 무지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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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보며 또 웁니다. 크거나 작은 교회, 도시나 농촌교회가 동일합니다. 작은 교회는 교회 존립과 목회자의 생존에 피 말리는 싸움을 하며 터지는 제방을 온 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고, 대형교회는 높은 자리를 향한 감투에만 온 영혼이 팔렸습니다. 거기 들어가는 돈은 가난한 교회 백 개쯤은 몇 년 동안 굶지 않고 살 정도는 됩니다. 그분들이 그런 계산을 못 한 것은 아니기에 울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난한 교회의 이중직 문제까지 오버랩 되니 더 슬퍼서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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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마치 '코로나'의 온상처럼 비쳐져 슬프고, 정치권력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교회를 이 사회에 악을 전파하는 집단으로 각인시키려하는 듯이 보여서 슬픕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고급 정보를 가신 당국에서 '이만희'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고, 당국에서 '한기총'이 건강한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대의기구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독교를 마치 사교(邪敎)집단이나 이단처럼 몰아가니 이런 모습에 웁니다. 물론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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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며 웁니다. 이렇게 유행하듯 말하는 '총체적 위기'가 저에게도 찾아온 것 때문입니다. 영성은 사라지고 기도의 능력은 고갈되었습니다. 삶에 묻어있던 한 움큼 향기도 악취로 변했습니다. 교회에서도 할 말이 없어졌고, 교단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을 항해 사자후를 토해낼 용기가 없음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흐르지 않는 눈물을 탓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울 자리, 기도하는 자리로 가야할 터인데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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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울어보고 싶습니다. 목 놓아 울어보고 싶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보고 싶습니다. 정말 그가 북쪽에 있든 남쪽에 있든 사랑하는 민족을 끌어안고 울고 싶습니다. 거리에 달려 나간 시민들이 애처로워 울고, 안 나간 이들은 측은해서 울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이들이 애처로워 울고, 그 위기 속에서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 고마워 울고, 어려운 교회를 운명처럼 지키며 무서운 생존의 싸움을 이어가는 주의 종들을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울고 싶습니다.
정성학 목사
기적의교회 목사로 29년째 있습니다. 이룬 건 없고 세월만 많이 보내서 주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해보려고 매일 다짐하는데 잘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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