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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 생각 : ‘IMITATION’◈
세상이 시끄럽다.
늑대가 온다고 하니 허둥대는 사람들에게서 재미를 느낀 양치기 소년의 모조품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큰 외조카(초등학교 1학년 정도)가 애지중지하던 보물 상자를 열어본 적이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상자 안은 잡다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보물 상자 안에 또 다른 보물 상자가 있었다. 조카는 내게 그것을 보여주며 진짜 보물들만 들어 있다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궁금함이 가속되었다.
“뭔데?”
“금”
“금? 무슨 금”
“금 몰라 금반지, 금목걸이, 금귀고리 하는 금 말야!”
자랑스럽게,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조카는 작은 상자에서 금을 꺼냈다.
동그란 금, 목걸이에 끝에 달려 달랑거렸을 동그랗고 납작한 금이 엄지손톱 크기만 했다.
조카는 어딘가에서 주었을 것이다. 주우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좌우를 살폈을 것이고, 어쩌면 학교에서 배운 습득물 요령을 몇 번이고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삼촌에게 줘봐”
“엄마에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삼촌.”
분명 금이었다. 누가 봐도 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금이었다. 그런데, 뒤로 돌려보니 영어로 된 글씨 하나가 쓰여 있었다. ‘IMITATION’
풋 하고 웃음이 새나가려는 걸 애써 참고 짐짓 조카에게 물었다.
“여기 글씨, 무슨 뜻인지 알아?”
“금이라는 뜻이겠지. 진짜 금, 좋은 금...”
난 조카의 들뜬 기분을 그 자리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IMITATION’의 뜻을 아는 때, 조카는 분명 나보다 더 달뜬 얼굴로 깔깔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모방, 모조,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이다. 양치기 소년의 모조품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현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끌어당겨 본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우연이란 없다. 단연코 그렇다. 우리 주변에 비슷한 색깔과 감성으로 숨죽여 있던 세력들이 얼굴을 디미는 요즘,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고 양과 염소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어찌 하느님의 계획이 아니던가.
쭉정이나 염소였음을 모른 채 추종했던 사람들이 양치기 모조품으로 인해 뒷목만 잡고 있지 말고 깨달음의 마당 안으로 발을 디디게 되길 은근히 기대한다.
‘IMITATION’의 조카는 지금 40대 중반이고 영화감독이 되었다. ‘IMITATION’이란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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