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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도, 농부도 못할 것이
우월감에 쩌는 기생충 박사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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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은근히 의사라고 뽐내고 싶었는지 기생충박사 서민은 의사가 되려면 반드시 머리가 좋아야 한다면서 예를 든 것이 "가령, 갑작스러운 경련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가 있다고 치자. 환자를 보는 순간 의사는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을 골라내 응급 처치에 들어가야 한다. 이건 머리 나쁜 사람은 하기 힘든 것이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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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4년 가을에 노가다 입문하면서 맨처음으로 접하게 된 일이 ‘석조팀’이었다. 건축의 외관을 마감하거나, 계단, 실내 바닥에 석판을 붙여서 시공하는 일이다. 이문동에 짓는 18층의 오피스텔이었는데 나는 초보 보조로서 석판을 나르고 기공들이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서 갖다 주는 일을 했다. 처음부터 ‘머리 나쁘면 못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빨간색과 파란색의 접착제 ‘에폭시’를 1대1로 섞어야 하는 일인데 기온에 따라 약간씩 비율을 조절해야 했다. 이 빨파 두놈이 완전히 배합되도록 합판 쪼가리에 과도로 쓱쓱 밀면서 비벼주는 건데 완성되면 회색으로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찰떡처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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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단순한 일부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았다. 몇 분 안에 굳어져서 못쓰게 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변수들- 날씨, 남은 일의 양, 경화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 등등을 고려하여 ‘수학적 함수’를 감으로 계산하여 만들 양을 결정해야 했다.
나는 여러 번 실패하고 비싼 에폭시 반죽을 돌덩이로 만들어 내버려야 했다.
두 개의 대학에서 근 10년을 공부한 나로서도,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단 소리를 들으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에서 척척 붙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열패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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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대장들이 우러러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특히 모牟씨 형제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형은 사업하다가 망해서 석조기공인 동생과 합류했는데 둘 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장가도 못 갔다. 형은 보조인데 그렇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을 나는 교회에서도 잘 보지 못했다. 서툰 나를 언제나 커버해 주었다.
“형님, 배울 때 다 그래요. 힘든 데 저기 가서 좀 쉬어요. 요것만 끝내면 이제 널널해요.”
앵커조립 요령, 외벽에서 타고 일하는 아시바 발판 작업, 돌 나르기 요령. 폼건 쏘기… 하나하나 가르쳐 줘서 겨울을 통과하며 5개월을 일했다.
동생 모牟는 키가 180정도 신체도 당당한데 힘도 장사였다. 장국영 처럼 잘 생겼고 마음도 그 형만큼이나 좋았다. 내가 중매를 서겠다고 했는데 안타깝게 한번도 이어주지 못했다.
그 친구를 내가 석조기공의 신神이라 여긴다. 곁에서 일하는 것 보면 탄복한다. 머리가 잘 돌아가고 바디굿Body Good!이고 미남이고 목소리는 성우급이고 인간성 좋고 그런데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일을 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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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농부, 머리 나쁘면 못한다!
고기잡는 어부, 머리 나쁘면 못한다!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노가다도 머리 나쁘면 못한다!
서민이 니가 좀 해봐라,
니 머리로 할 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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