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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재물이 아니라 여러분
(고린도후서 12:14-21)
1. 바울이 원한 것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를 부탁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이 재물을 탐하고 원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은 정말 재물을 탐했을까?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
(고후12:14, 새번역) 지금 나는 이렇게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 자체를 원했다.
고린도 교인 자체를 원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들을 바울의 소유로, 또는
바울의 추종자로 만들겠다는 의미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후12:15, 새번역)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쓰겠고, 내 몸까지도 희생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나를 덜 사랑하겠습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기 추종자들로 만들어
결국 재물을 착취하는 악한 사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비용을 지불할 마음이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자기 몸이라도 희생할 마음이었다.
바울이 원한 건 성도들의 재물이 아니라
성도들 자체였다.
성도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2. 성도들 자체를 원한다는 건?
성도들을 사랑하고 원한다는 것이
그들을 소유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일까?
(고후12:19, 새번역)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덕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서 무슨 이득을 취하려는
악한 의도가 바울에게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성도들에게 덕이 되게 하는 것이
바울이 간절히 원한 것이었다.
성도들에게 덕이 된다는 것은
성도들이 부정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이다.
(고후12:21, 새번역) 내가 여러분에게 다시 갈 때에, 여러분 때문에 내 하나님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한 부정함과 음란함과 방탕함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슬피 울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참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서
영적인 지도자인 자신이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를 가장 걱정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 자체를 원한다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무슨 이익을 얻겠다는 의미는 1도 없었고,
성도들이 참된 신앙적 성숙을 이루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걸 원한다는 의미였다.
3. 변명같은 말
안타깝고 슬프게도 바울은
자신의 이런 모든 마음 상태에 대해
변명같은 말을 해야했다.
오해를 피해야 했고
거짓 사도들에게서 성도들을 건져야 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삶을 보기만 한 것으로도
바울의 의도를 오해하지 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고,
바울은 자신을 변호해야 했고
낯 뜨겁게도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변명같은 말을 해서라도,
그래서 바울 자신은 낯이 좀 부끄럽더라도
오해를 줄여서 한 사람이라도 더
생명의 길로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4. 나는?
바울의 변명 같은 말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나도 조금 어리석은 변명같은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단순하게 묵상글을 나누려고
sns에 글을 올려 왔던 것이니,
내가 이제 글 전체가 아니라
'나는?' 부분을 제외하고 포스팅 하기로 결정한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글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하고
필요를 느끼는 분들께만 글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 '의지'를 확인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적은 금액의 회비를 받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서 올리면서 내가 실수를 했다.
무례한 댓글들에 받은 상처만 강조되었고,
회비를 받는다는 내용만 강조되었던 것이다.
정말 말했어야 하는 본질적인 내용을 적지 못한 것이다.
글을 올리자 말자 염려하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그제서야 가장 중요한 설명이 빠졌음을 깨달았다.
나의 묵상글들을 좋은 마음으로 읽어오신 분들은
내가 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나의 실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변명 같은 말을 하는 것,
그리고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이
때론 너무나 필요하고 중요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나의 의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묵상글을 올리고 독자가 많아져도
나는 마음에 늘 부담이 있었다.
단순히 sns 묵상글의 팔로우와 좋아요가 늘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없었다.
내가 목사가 되려고 결심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는 말씀의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이분들 중에 말씀을 묵상하길 원하시는 분들을
다만 몇명이라도 모아서
말씀의 사람으로 서가도록 돕고 싶었다.
묵상 세미나를 하고 일대일성경공부 세미나도 했지만
세미나나 강의로 끝나 버린다면
실제로 말씀묵상에 삶을 걸기가 쉽지 않고
나눔 모임이 없다면 더 쉽지 않음을,
나의 과거의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 묵상 나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말씀에 삶을 거는 사람,
적어도 말씀에 삶을 걸고자 하는
갈망에 있지만 혼자는 어려워하는 분들,
말씀을 묵상하고 계신데 나눔 모임을 찾을 수 없는 분들을
온라인으로라도 모아서
묵상이 조금씩 깊어지도록 돕고 싶었다.
무례한 댓글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묵상글 공개를 멈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묵상글을 팔아 장사할 마음도 전혀 없다.
말씀에 삶을 걸고자 하는
의지와 갈망이 있는 분을 만나서
함께 깊은 말씀의 교제를 누리고 나누면서
한 분 한 분 말씀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참가자들이 말씀을 묵상하길 원한다.
그분들을 나의 주종자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나는 그저 그분들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걸 원한다.
그래서 목사로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
말씀의빛교회에서는 말씀의 사람들이
한 분 한 분 세워져왔고,
지금도 세워져 가고 있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제 눈을 조금 돌려 외부의 성도들 중에서도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보고 싶다.
이 새로운 여정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길,
말씀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자 하는
신실한 분들을 많이 만나서
그 분들과 함께 말씀에 삶을 거는 여정을
새롭게 걸어갈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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