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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0:4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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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20.01.19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
이방인에게 임하신 성령
행10:44-48
우리 인생과 사역의 성패는 성령 충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교회와 우리 성도 각 개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죄를 버리고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언제가 성령 충만 받기에 가장 좋은 기회일까요? 바로 예배시간이며,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베드로는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집안 친척들과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하)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베드로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입을 열어 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던 베드로는 갑자기 그의 설교를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가 설교하는 도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고넬료의 집에 모여 말씀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4절)
그것은 마치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의 오순절과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처음 임하신 것처럼, 고넬료의 집에 모여 말씀을 듣던 이방인들에게 처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또 다른 오순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 있었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께서는 이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셔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십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고넬료의 집에 모여 말씀을 듣던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것이었습니다. 단지 성령께서 이처럼 함께 모여 있던 이방인들에게 동시에 임하신 것은 처음이었고, 너무나도 획기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임하신 성령
오순절 성령 강림과 고넬료의 집에 성령께서 임하신 이 두 사건은 모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에는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하던 120명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집에서는 그곳에 모여 말씀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함께 모여 말씀 들을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그들 중에는 좀 더 경건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좀 더 열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모여서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심야기도에 모든 성도들이 열심히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할 때 우리는 모두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갈망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새벽기도회와 심야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여 뜨겁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들으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베드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자세로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44-45절)
‘할례 받은 신자들’은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의 집에 왔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처음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전할 때, 그리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으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말씀을 읽거나 묵상하지 않고, 또 성경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잘못된 길로 빠지거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기도를 한 시간 하면 성경도 한 시간 읽어야 균형 잡힌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이 치유되며 문제의 해결을 보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며, 불안과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찼던 마음에 평안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령께서 임하신 증거입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들을 때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을 더욱 충만하게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 받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하며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먼저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닌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사랑의 문답을 통하여 주님을 부인하고 사도의 자격을 상실해 버린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때 성령 충만을 받은 후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한꺼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면서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을 보고 일어나 걸으라고 명했더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죽은 다비다에게 일어나라고 명했더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가 안수하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영적 지도력과 권위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성령 충만의 결과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의 표적
성령께서 임하실 때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오순절에는 강하고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여 말씀 듣던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자,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6절) 오순절 성령강림 때는 성도들이 자기의 것을 조금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이 유무상통하는 공동생활을 했으며, 사람들에게 크게 칭찬과 존경을 받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 결과로 은사와 신앙 인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은사를 체험했으면서도 신앙인격과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영광을 가리며 교회를 손상시키는 심각한 오류에 빠집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 여러 가지 은사들과 함께 반드시 신앙인격의 성숙이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모습은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등의 말을 자주하는 사람은 대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생토록 자기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데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온 우주만물의 대주제이신 하나님 아버지, 영광을 받으소서.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길 원합니다.” 라고 진심으로 고백해보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뜨겁고 은혜가 넘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고 더욱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이런 고백하기를 좋아하며, 하나님 찬양하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세례를 줌
고넬료의 집에 모여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함께 갔던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이상 어떻게 세례를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47-48절)
고넬료와 그 집에 모여 있던 이방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들이 정식으로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방인들이 개종할 때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고넬료의 집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도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었는데, 이것은 교회 역사에서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받아주셨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
베드로가 그날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베푼 세례는 물세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받는 세례입니다. 고넬료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방인인 그들이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정식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교회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와 물세례는 어떻게 다를까요?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신앙을 확인하고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요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어떻게 다를까요?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가 성령님께 강하게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상태인데, 이 말을 역으로 설명한다면, 내가 성령님께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할 때, 자아를 버리고 성령님께 순종할수록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힘입게 되며, 인격과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물세례 받은 것만으로도 구원받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얼마나 크고 귀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이 지역에 우리가 책임져야 할 영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보살펴야 할 어려운 이웃들이 얼마나 많이 있으며, 오늘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은 또 얼마나 큽니까?
북한에서 억압받는 동포들, 중국 14억의 영혼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18억 이상의 영혼들에게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복음전파의 최대의 접전지가 될 회교권과 힌두권과 공산권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으로서는 이 모든 일을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들을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가 거룩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모든 사명들을 놀랍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열심히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와 새벽기도회, 그리고 심야기도회에 열심을 내서 함께 모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지 않고서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열린 마음과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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