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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1: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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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20.02.02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
가장 아름다운 교회(1)
행11:19-30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아름다운 교회라면 우리는 대개 웅장하고 훌륭한 건물을 연상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교회 건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좋은 목사가 있어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좋은 목사만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서 목사를 내보냈는데, 그 목사가 다른 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시킨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좋은 교회란 그 교회의 평신도들이 좋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한가? 그들의 삶이 어떠한가?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고 성숙되어 있으며, 그들의 삶이 건강하고 거룩하며 착한가에 따라서 좋은 교회인가 아닌가가 판가름 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안디옥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과 삶이 아름답고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지금까지 지상에 존재했던 교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이 교회의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다.
사도행전 8:1에서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일어난 핍박으로 인하여 사도들 외에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8:1하) 그런데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그들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빌립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전도한 일이었습니다.
누가는 계속해서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19절)
그런데 이 때 교회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 중에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20절)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이미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몇 사람이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1장에는 대단히 의미 있는 두 단어가 나오는데, 그 하나는 18절의 ‘이방인에게도’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세례를 주셨다 하니라”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말씀을 듣고 있던 이방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방인에게도 임하신 것은 유대인들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초대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인정한 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교회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 허물어졌고, 이방인들도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20절에는 ‘헬라인에게도’라는 말이 나오는데, 역시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그 때까지는 복음을 주로 유대인들에게만 전했는데, 이제는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헬라인이라면 당시에 국제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바야흐로 복음이 로마와 땅끝을 바라보고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디옥은 당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 가는 세계 3대 도시로서 아시아의 심장부였습니다. 안디옥은 헬라 문명이 발달된 곳이었으며,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이 안디옥에서 성도들이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헬라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 안디옥은 장차 이웃 지역과 전 세계를 향한 선교의 전초기지가 됩니다.
안디옥에 교회를 세운 사람들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졌던 무명의 평신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명의 개척자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주님을 위해 핍박을 감수했다는 것이 이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고통과 반대를 당해봐야 확인이 됩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주님을 위해 얼마나 고통과 반대를 감내하느냐로 증명됩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무명의 평신도들이었는데,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으며, 그 핍박을 감내함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주님을 위해 손해와 고통을 감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를 위해 기꺼이 수고와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믿음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바나바 파송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짐으로써 교회 역사의 중심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까지 퍼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베드로의 경험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렸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즉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21-22절)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밀하고 정확한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린 안디옥 교회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 바나바를 파송함으로써 안디옥 교회를 도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는 일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훌륭한 지도자 바나바를 맞아들임으로써 크게 부흥하게 됩니다.
먼저 세워지고 앞서가는 교회의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부흥된 교회는 마땅히 더 약한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선교의 당위성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우리가 농촌의 미자립 교회들과 개척교회들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할 일입니다. 기회만 되고 형편만 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더 많은 교회들을 도와야 합니다.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고 후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농촌의 미자립 교회들과 해외의 선교사님들과 어린 교회들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바나바 - 훌륭한 지도자
그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교회인가 하는 것은 그 교회의 평신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동시에 지도자의 역할도 역시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에 파송한 바나바는 매우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일찍이 그는 자기의 토지를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었으며, 사도들은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사람들을 신앙 안에서 잘 권면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으로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23절)
바나바는 또 착한 사람이었으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지도자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4절)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사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발굴하여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활용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울 줄 아는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5-26절)
우리는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서 지도자들이며, 앞으로 지도자가 되어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나바를 통해 훌륭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필수적이 요소입니다. 은혜를 볼 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줄 안다는 뜻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보니 평신도들을 통하여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보고 실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문제가 많고 연약하지만, 교회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나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더 좋은 교회가 되려면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은 못 보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가 바로 앞에서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는 애굽의 기병대가 추격해오고 있을 때도 모세는 아우성을 쳐대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보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은 거인 장수 골리앗과 맞서면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늘 하나님의 손길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들에 핀 백합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며 향기를 즐겼지만, 우리 주님은 그것을 기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늘 보셨습니다. 공중을 나는 새를 통해 주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는 것이 믿음이요,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필수적인 자질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의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과 성령충만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택할 때의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일군을 뽑을 때도 역시 이 기준이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구원받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로서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 믿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히11:6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다윗이 가졌던 믿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이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조직을 만들었다 해도, 아무리 사람이 많고 재정이 뒷받침된다 해도, 성령 충만하지 못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 모든 일들을 충성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에 성령 충만한 지도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해야만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하).
누가 지도자입니까? 여기 앉아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가 지도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알며,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가 지도자입니다. 당신이 가정에서 지도자이지 않습니까? 사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도 역시 우리는 나름대로 여러 모양으로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가 되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먼저 평신도들이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성도들은 믿음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받았으나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해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민족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헬라인에게까지 과감하게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웠던 평신도들의 믿음이 이렇게 좋았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그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는 비나바라는 좋은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었으며 성도들을 잘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쳐 굳게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안디옥 교회처럼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적인 안디옥 교회를 기억하면서 우리도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 늘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삶으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2)
행11:19-30
역사상 존재했던 교회 중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웠던 교회는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 불어 닥친 무서운 핍박을 피해 외국으로 나갔던 무명의 평신도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평신도들은 핍박을 감내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증명해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었으며, 배운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칭찬과 존경을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믿음 좋은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는 교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훌륭한 평신도들이 있었으며, 또 좋은 지도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어 목회했던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교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사람을 세울 줄 아는 지도자
예루살렘에 일어난 큰 핍박을 피하여 안디옥으로 갔던 성도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특별히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소식을 듣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가서 교회를 돌보며 목회하는 동안에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사울의 고향인 다소에 가서 사울을 찾아 데리고 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목회했습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발탁하고 세우는 데 탁월한 은사를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바나바는 일찍이 사울을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본래 교회를 잔혹하게 박해하던 핍박자였습니다. 그런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심한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성도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사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나서서 사울이 진정으로 회심한 것을 교회에 자세히 설명하고, 교회가 그를 받아들이게 해주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행9:26-28) 사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기까지는 이렇게 바나바의 역할이 대단히 컸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교회
안디옥 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고 있던 사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안디옥 교회를 돌보며 목회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삶이 소문날 정도로 변화되었고, 그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5-26절)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변화되기까지는 3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해 듣고 믿게 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크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교육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기에 지속적인 강조점을 두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는 데 열심을 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배운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당신을 거룩하고 능력 있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에 와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자 교회가 더욱 부흥되었으며,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삶이 아름답게 변화되었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변화되었던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분명히 보고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안디옥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진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로마식으로,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식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집트식으로, 각각 나름대로의 종교와 관습과 삶의 모양이 달랐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옷차림이나 삶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척 보면 그 사람이 로마인인지, 그리스인인지, 이집트인인지, 유대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사람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복음을 듣고 말씀을 배운 사람들은 이 모든 사람들과는 또 다른 특징을 분명히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배운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삶이 놀랍게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처럼 경건하고 바르게 살았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모습이 지금까지의 어떤 사람들의 스타일과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하)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을 깊이 사랑하여 그들의 행실이 아름답게 변화됨으로써 얻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 어떤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이 얻은 이름이었고, 듣고 배운 말씀대로 순종했던 사람들이 얻은 이름이었으며, 항상 그리스도를 전파하기를 쉬지 않던 사람들이 얻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삶의 모습이 그들의 평판이 되고 그들의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지금 우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역시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어떤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듣고 배운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름을 고칠 것이냐 삶을 고칠 것이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이 부하들의 막사를 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막사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서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았더니, 병사들이 보나파르뜨라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험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욕하고 있다고 생각한 황제는 노기가 등등하여 그 막사로 들어가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부하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감히 폐하를 험담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사실은 부대의 신참 병사인 보나파르뜨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정말 황제와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있었는데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보나파르뜨는 몰래 부대를 빠져나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다가 황제 앞에 끌려왔습니다. 갑자기 황제 앞에 끌려 온 보나파르뜨는 두려워 떨며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황제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성이더니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명령했습니다. “너는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너의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그 행실을 당장에 바꾸든지 하라.”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나라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살기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가 거의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 실업자 문제, 노사 갈등, 진영과 이념 대립 등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키며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얻은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오늘 우리가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 구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그 말씀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우리는 27절 이하에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 한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27-30절)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안디옥에서 목회하며 가르치는 가운데 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예루살렘에서 몇 사람의 선지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와 밀접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 나오는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는 다릅니다. 초대 교회가 이제 막 세워지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제 막 시작된 교회를 위해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도와 선지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사도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계시를 받았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선지자들은 계시를 받는 자들은 아니었지만 성경의 탁월한 해석가들이었으며, 교회에 닥쳐올 일들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와 있던 선지자들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구제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구제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 또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들 역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잠언 19:17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아 주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수익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 투자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 이율도 매우 낮아졌고, 주식에 투자하여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수익률이 좋은 사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제하는 일입니다.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선행을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제는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부흥할 때 늘 구제에 힘썼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에는 구제가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구제를 위해 특별히 일곱 집사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즉시 구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각각 그 힘대로 헌금을 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는 목회자의 돌봄을 받은 지가 1-2년밖에 안된 어린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핍박을 피해 외국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이 아직 안정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주저하지 않고 힘을 다해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에 참여했습니다.
구제 - 각각 그 힘대로
구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 차원에서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동시에 구제는 성도들이 각각 개인적으로도 힘써야 합니다. 내 주위에 있는 어려운 형제를 위해 우리 모두가 각각 힘을 다해 구제해야 합니다.
구제할 때는 힘껏 해야 합니다. 구제를 좀 더 할 수 있는 사람이 푼돈이나 구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꺼이 구제에 동참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때로 어려운 형제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구제금 모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넉넉하지 못한 성도가 놀랄 정도로 많은 액수를 내놓는가 하면, 다른 성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형편없이 작은 액수를 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려운 형제를 도울 때 힘을 다해서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배우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얼마나 자주 우리에게 이웃을 도와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까? 신앙이 얼마나 성숙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구제하기를 힘쓰는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 벌어서 남 주고,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공부하고 돈 버는 것이 나 한 몸, 내 가족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그렇게 유치한 가치관을 가진 성도가 있다면 당장 고치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을 힘껏 돕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 교회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희망의교회도 안디옥 교회처럼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소문이 나야겠습니다. 희망의교회 성도들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거룩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믿음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어떤 손해와 고통도 감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가 극심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켰으며, 가장 모범적이고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그 나라에서 전능하시고 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믿음 좋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씀의 뿌리가 없으면 참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을 열심히 배울 뿐만 아니라 배운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힘을 다해 어려운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매일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만 있다면 뜨거운 감격과 감사 가운데서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희망의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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