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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경본문 : | 전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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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주님의교회 |
시간 (Time)
전3:11
2017.2.26. 주님의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9.6. 햇볕교회 주일예배 설교
1.영원한 시간
2.시간을 보는 관점
3.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4.주님의 시간
5.시간은 돈이다
6.시계와 시간
7.하늘이 열리는 시간
인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 시간이 시작되어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시간도 끝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시간 위에 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도대체 그 시간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가요?
1.영원한 시간
우리는 시각과 시각의 간격을 ‘시간’이라고 합니다. 초, 분, 시간, 일, 월, 년으로 시각을 표시합니다. 천체물리학에서는 시간을 측정하는 단위로 ‘거리’를 사용합니다. 빛이 1년 동안 간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이 세상에서 빛이 가장 빠르며, 광속으로 계산해 보면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것을 ‘1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초는 약 300,000km 거리입니다. 알고 보면 시간은 정말 빠르죠?
그런데 빛의 관점에서 볼 때, 빛이 움직이는 가장 짧은 순간의 시각은 0입니다. 빛은 0의 시각에 무한대의 거리를 이동하는 셈이며, 그것은 중력에 의한 굴절 및 회절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0인 빛의 속도를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학자들이 ‘빛이 1년 동안 가는 공간의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하자.’고 서로 약속한 것이죠. 그러므로 시간의 창조자(?)는 과학자들인 셈입니다.
그렇게 광속으로 계산했을 때,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약 8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내가 쬐고 있는 이 햇볕은 8분 전에 태양을 출발했던 햇볕입니다. 하늘에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가운데 어떤 별은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별이 존재했을 때 출발한 별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별빛만이 남은 것이죠. 실체는 없는데 ‘시간’만 남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 ‘영원’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았는데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을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인데 그 ‘영원’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시간적 영원’이 아닙니다. 영원은 분명히 있고 지금 우리가 영원 가운데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의 시간 위에 올라타기 전에, ‘영원’이라는 어떤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2.시간을 보는 관점
우리 집 여기저기 시계가 4개 걸려 있습니다. 방에는 동그란 시계가 있고, 거실에는 디지털시계가 붙어 있습니다.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시간(時間)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입니다.
□숫자가 나오는 디지털 시계는 시간을 수직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쭉 이어진다는 관점입니다. 미래의 결과로 현재가 있고 현재의 결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관점으로 주로 서양인들의 시간관념입니다.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이길 수 없는 일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긴장하면서 최대한 열심히 무슨 일이든 많이 하여 많은 것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번 실패하면 끝입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그란 시계는 시간을 원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시간이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계 바늘처럼 뱅글뱅글 돈다고 봅니다. 오늘은 오늘로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자정이 되면 리셋 되어 다시 1부터 새롭게 오늘이 시작된다는 주로 동양인들의 시간관념입니다.
시간이란 하루에 한 번씩 계속 새롭게 주어지는 것이며, 1년에 한 번씩 한해가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의 생도 죽었다가 다시 다른 생으로 살아난다는 윤회(輪回)적인 시간관념입니다. 그래서 동양인들의 시계는 시작도 끝도 두루뭉술한 배꼽시계입니다.
▦성경의 시간 관념은 어떨까요? 시간을 수직적으로 보는 관점과 원으로 보는 관점을 합친 ‘동시 관점’ 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여 종말에 끝나는 긴 시간은 수직적으로 흐르고,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표현은 시간을 원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 글을 쓰고 다시 벽시계를 보니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예사롭게 들이지 않습니다.
3.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간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시간과, 그 시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하나님의 시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직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카이로스’는 히브리인들의 시간개념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직적(vertical)인, 혹은 기회적인(moment)시간의 의미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옆으로 흐르는 수평적 시간인 ‘크로노스(kronos)’입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인들의 시간개념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로서 시간의 경과나 과정을 나타내는 수평적인(horizontal) 혹은 직선적인(linear)시간의 개념을 지닌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수직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에서 인간들의 시간인 ‘크로노스’ 속으로 내려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인간의 수평적인 시간 즉, 과거 현재 미래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수직적인 시간 즉, ‘영원한 현재’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인간의 시간 가운데에서는 응답이 오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걸리지만,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기도하는 순간 바로 응답’입니다. 하나님께는 나중에 응답해주고 뭐 그런 거 없습니다.
독일의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하나님의 창조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으로써 ‘영원한 현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끝나지 않은 ‘창조 사역’을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에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4.주님의 시간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출발해서 현재를 거쳐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비가역적이고 연속적이며 무한히 계속되는 사건과 존재의 흐름입니다. 이러한 ‘시간’이라는 장치를 만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으신 분이시고 끝도 없으신 어느 한 경점(更點)이십니다. 경점이신 하나님께서 시각을 만드시고 시각과 시각 사이를 ‘시간’이라 하셨고 그 시간 위에 인간과 우주 만물이라는 물질 혹은 비물질을 올려놓으셨습니다.
사람 또한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비물질에서 물질로 ‘시간’ 위에 올려졌다가 죽는 순간 ‘시간’에서 내려가 비물질인 ‘영’상태로 바뀌고 그것을 영원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불구덩이 속에서 산다고 합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날마다 춤추고 노래하고 즐거워하면서 끝도 없이 그 상태로 삽니까? 어떤 목사님은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 경험하는 오르가즘(orgasm) 상태가 천국의 맛보기라고 하는 별로 신빙성 없는 설교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저는 천국에서 못 살 것 같아요.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미친 것이지.
그런데 그게 가능한 것은 죽는 순간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기쁘고 행복한 환희의 상태에서 딱 멈추고, 예수 안 믿으면 두렵고 무서운 상태에서 딱 멈추기 때문에 그것이 그냥 그 대로 영원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그 ‘시간’ 위에 잠시 올려져 있다가 내려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시간 밖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에 너무 집착하여 사는 것은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5.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시간을 거저 주셨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당연히 받을 것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느 순간 시간을 ‘돈’으로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간은 ‘돈’입니다.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하루 여덟시간을 회사에 주고 그 댓가로 월급이라는 돈을 받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사람들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할 시간이 ‘돈’을 버는 일에 사로잡혀버렸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돈’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모든 일들을 돈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로날드 사이더<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그것을 얼마나 이기적으로 사용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좀 더 많은 돈을 주신 것은 이기적이고 타락하여 부도덕한 이 세상에서 그나마 그리스도인들이 좀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기업가들은 신앙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시간을 착취하고, 기독교학교는 엄청난 등록금으로 학생들과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고, 대형 교회들은 넘쳐나는 돈 때문에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봅니까?
나의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 대용으로 만들면 더욱 아니됩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은 ‘생명’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시간도 내 시간과 똑같기 때문에 남의 시간을 사용할 때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6.하늘이 열리는 시간
숨은 들숨과 날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기를 평생 반복하며 삽니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는데 거기서 다시 들이마실 힘이 없으면 죽는 것이지요. 그런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순간 그 0.001초의 찰라의 순간에 숨이 멈춥니다. 반대로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마시는 순간에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짧은 숨이 멈추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을 의도적으로 길게 해보는 것입니다. 숨을 내쉬고 도저히 못 참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흐읍! 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반대로 할수도 있겠지요. 마치 숨을 참고 물 속에 잠수했다가 도저히 못 참을 때 물 밖으로 올라와 푸하=3=3=3 숨을 쉬는 것과 같습니다.
이 들숨과 날숨을 조용한 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마치 아기의 새근거리는 콧바람이 깃털을 가만히 흔드는 것처럼 천천히 해 보십시오. 이것은 가장 쉽게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오래된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프랜시스 성자가 조용히 앉아 자신의 호흡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몸이 나무 높이까지 들려져 하나님의 신비와 만났습니다. 숨어서 보던 제자들이 넋을 잃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은총의 시간이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신비를 사모하는 이들은 하늘이 열리는 체험을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인정할만한 것이 없는 그런 사람에게도 가끔 그 경이로운 시간이 다가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맑아지며 온 몸의 불순물과 악한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듯한 투명함이 하늘로부터 임합니다. 몸의 힘은 다 빠져 나간 것 같은 공간에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채워지는 것 같은 그 순간 “아! 이것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것이로구나” 하고 자기도 모르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 주여! 주님의 신비한 은총의 시간을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
7.시계와 시간
방학이라고 맘껏 뒹굴고 있는 큰딸 방에서 아까부터 10분 간격으로 기상 알람이 울어대고 있습니다. 아유! 시끄러워. 과연 그 알람을 누가 끌까요? 정답은 참다못한 ‘엄마’입니다. “너는 알람 소리가 10분 간격으로 매미처럼 우는데도 안 들리냐? 이래가지고 개학하면 어떻게 일어나서 학교에 갈래 응?”
“그때는 다르지 엄마. 지금은 방학이니까...” 시계를 보며 플레너에 하루 24시간 딱딱 체크를 하면 나름대로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시계도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죠.
제가 두 가지를 다 해보니 어떻게 하루를 살든 별 차이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간의 밀도(密度)입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 시간에 집중을 했으면 잘 산 것이고, 조금 나태했다면 시간이 아까운 것이지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하루를 잘 살았다고 해도 기도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그 날은 잘 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루의 압축이라고 할 만큼 가장 중요하고 밀도가 높은 순간입니다.
저는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께서 ‘시계’를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계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기도’를 떠올려야 합니다. 마치 직장인이 퇴근시간을 기다리듯 시계를 보며 정해진 기도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최용우
참고자료
1.햇볕같은이야기5287,5294,5707,5710,5711,5816,6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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