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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2:2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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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9.2.6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
변모하라, 하나님과 씨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창32:25-28
부할 절 이전 40일 동안을 사순절(lent)이라 해서, 성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까지의 수난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통찰하는 기간입니다. 2019년 3월10일부터 4월20일까지의 사순절 기간 동안 전국의 감리교회가 사용할 ‘사순절 묵상집’을 쓰다가, 2010년도에 나온 어떤 선언서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쁘게 살고, 소비 중심으로 생활하고, 인터넷 중독에 빠져서 사는 현대인의 삶을 반성하기 위해서 시작된 ‘전원 끄기(unplug)라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를 좀 더 확장 시켜서 [Sabbath Manifesto-안식 선언]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거기에 유대교의 안식일 개념을 빌려와서 현대인이 지켜야 할 십계명을 적어 놓고 있습니다.
구정을 지나고 새해가 되었으니, 우리도 새 마음가짐으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추구해보자는 의미에서 싸바트 메니페스토가 제안한 ‘현대인의 십계명’을 참고하여 우리 자신의 변화에 대한 금년의 계획을 세워보십시다.
10계명(The Ten Principles)
제 1계명/인터넷 관련 피하기(Avoid Technology)
제 2계명/인터넷이나 전화 대신 사랑하는 이들과 직접 대면하기 (Connect With Loved Ones)
제 3계명/건강을 위해 독려하기(Nurture Your Health)
제 4계명/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기(Get Outside)
제 5계명/소비하지 않기(Avoid Commerce)
제 6계명/초 켜기(Light Candles)
제 7계명/와인 마시기(Drink Wine)
제 8계명/빵 먹기(Eat Bread)
제 9계명/침묵하기(Find Silence)
제10계명/받은 것 돌려주기(Give Back)
사람이 왜 변화 되어야 하느냐? 우리는 그 해답을 구약의 인물인 야곱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한 나라의 이름인 ‘이스라엘’은 야곱이라는 개인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서 국가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합시다. 그럴 때 과연 남북을 합쳐서 한 개인의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요? 야곱이라는 개인에게서 출발한 이스라엘은 이제 세계에서 유명한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야곱이라는 인물이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지금도 이스라엘은 개인의 이름을 국가의 이름으로 쓰는 것에 당당함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팥죽 한 그릇으로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남이 되려고 했다가 그게 발각이 나서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친 사람입니다. 이 땅에 태어났으면 훌륭은 고사하고 부모를 속인 무도한 자요, 반성할 줄 모르는 패역자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런 야비함, 예의 없음, 야심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럼 야곱에서 높이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변모시키는 일에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젊은이였습니다. 부모 밑에서 안락하게 살려고 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는 그의 행실이 가져올 뻔 한 결과를 알면서도 그것에 도전해서 자신을 변모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결코 성공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삶을 보면 아시지만 그는 결코 성공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안락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죽을 대도 객지에서 죽으면서 고향땅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달라고 유언합니다. 이시대의 가치로나 당시의 가치로 본다면 야곱처럼 사는 삶은 부끄럽고 창피한 삶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걸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줘서 보호해 준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와 형을 피해 정든 집을 도망 나온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종살이합니다. 결혼은 실패하여 원치 않게 자매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야곱은 큰 사람으로 커갔습니다. 결국 외삼촌과 겨뤄 이기게 되고 외삼촌의 집을 떠나죠? 더군다나 무서워서 형 에서에게서 도망을 쳤는데 삼촌과 겨뤄 이기고 나자 형과도 맞닥뜨릴 배짱이 생겼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신(하나님과)과도 씨름을 할 만큼 사람이 커져 있었습니다. 인간사의 관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여 마침내 신과 씨름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우리 인생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간의 표상이 아니겠습니까?
현대인들이 첨단 문명 속에서 점점 왜소해지는 것은 야곱과 같이 ‘현재의 나를 넘어서려는 용기와 두려움 없는 변화에의 도전이 없는’까닭입니다. 지난 번 인문학 강좌에서 암 전문 의사(김성진 박사-서울대 정밀의학연구센타장)가 말하길, 인간은 처음에 우울증으로 병들기 시작해서, 당뇨로 차차 죽어가다가, 마침내는 암으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한병철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는 ‘피로사회’에서 왜 현대인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가 하면 ‘문명에 기대어 편안하게 안주하며 살려고 하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완전히 죽지 않은 자들의 생명’을 지닌 채 살아가기 때문에,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당시의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제도와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사실 야곱은 생김새부터 형과 딴판이었습니다. 형은 남성답게 호남아였습니다. 사냥을 잘하고 시원시원했습니다. 이삭은 이런 아들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성격이 차분하고 주로 집안에서 어머니하고만 지냈습니다. 여자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야곱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의당 야곱을 더 좋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고난을 자초하면서 마더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세상과 관습의 틀과 씨름하다가 마침내 신과도 씨름을 하는 사람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로 부르게 된 내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댓바람에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된 줄 알지만 이럴게 되기까지 그를 단련한 여러 차례, 많은 세월동안의 모험과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야곱이 라반을 떠나서 다시 형 에서와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전날 밤에 얍복 나루에서 어떤 분(신적 존재)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합니다. 신적 존재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만 야곱을 떼어 놓으려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다치게 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신적 존재를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그러자 신적 존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러면서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내일이면 형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싸울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야곱은 지금 엉덩이뼈가 부서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이게 무슨 축복이냐’고 할 터이지만 야곱은 다릅니다. 그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면서 그곳을 ‘브니엘’이라 명명하고, 혈육과의 문제가 아니라 신과의 씨름에서 이겼다는 것에 더 충만감을 갖습니다.
야곱은 기성의 것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여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날 줄 아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현대의 사람들이 왜소해지고 점점 유약해지고 병들어가는 것은 기계문명과 기성에 너무 안주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워지려고 하지 않고 기계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울하고, 병들고 늙어가다가 아주 무력하게,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가 새해를 맞아 뭔가 도전해야 한다면, 야곱의 도전과 용기를 갖으십시오. 야곱처럼 고난과 수치의 삶을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열망을 품고 마침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사람’,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기는 사람’이 되기까지 변모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고, 우리가 동물이나 기계나 사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인 이상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추구해야할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쌰바트 메니페스토’의 십계명 선언을 자기화 하여 한 해 동안 실행함으로 삶을 바꾸십시오.
이것도 못하면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려는 수작은 허툰 짓일 뿐입니다
허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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