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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3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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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담임 |
(2019.11.17. 주일예배 설교)
성경 : 렘32:1-3
제목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찬송 : 321(351), 337(363), 336(383), 316(주여)
렘33:1-3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본문은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BC 597-586) 왕 때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고 예언하므로, 유다 왕 시드기야 왕이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냐’ 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있을 때, 두 번째 임하신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부르짖다’의 뜻은 ‘큰 기쁨이나 슬픔, 고통 따위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소리 높여 어떤 주장이나 의견 따위를 열렬히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악해지고 죄악으로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소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다면, 개인, 가정, 사회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소망을 잃어버리고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생명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2017년 비영리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전국 15살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민희망지수’ 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전체 연령 중에서 30대가 가장 비관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30대는 집단우울증을 의심할 만큼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만족도 점수가 낮았습니다. 30대는 현재 삶의 만족도(3.09점)·정신 신체의 건강(3.04)·경제상태(2.50)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평균보다 낮은 만족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개인·사회·국가·전 세계적 등 전반적 미래 희망 수준도 낮았다고 합니다.
30대라면 가장 힘차게, 가장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인데 우리나라의 30대는 우울증을 의심할 정도로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누가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마음에 힘과 소망을 주어야 하는데 누가 그들에게 빛과 소망을 주실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능력이요.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소망과 미래가 있지 그렇지 않고는 어디에도 소망을 얻을 데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면서 ‘나를 이 깊은 어둠에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르짖음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대답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좋은 소식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일들은,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는 죄에서 용서함을 받음으로 소망이 없던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실 뿐 아니라 벧전2:24-25절에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치유해 주실 뿐 아니라,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고후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저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한 곳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항아리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먹을 물을 퍼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땔감을 구하시기위해 마을 분들과 새벽에 깊은 산에 가셔서 저녁에야 무거운 나무를 지게에 지고 돌아오셨습니다.
어렸을 때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밖에서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문고리에 얼어붙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같이 오리털 외투 같은 옷도 없었고, 추운 겨울에도 어머니가 길쌈을 해서 손수 만들어주신 100% 국산 무명옷을 입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가난하지만 비싼 옷을 입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릎도 팔꿈치도 헤어진 옷이었는데, 지금 그런 옷이 몇 십 만 원짜리 옷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검정 고무신이 닳을까 바, 고무신을 들고 자갈길과 논두렁길을 달려가면서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금은 배고프지 않고 세끼 밥을 먹으며 자동차를 운전하고 살아갑니다.
불평하려고 하면 불평거리가 생기겠지요, 그런데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건축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이 감사의 연속입니다. 개척교회가 꿈을 꾸기에도 벅찬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다 건축재정이 떨어지면 또 얼마나 많이 성도님들이 힘들어 하겠습니까? 이제 다음 주일에는 건축이 설계대로 되었는지 특검 신청을 하고 특검을 마치면 행정적으로는 건축공사가 준공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어찌 저 혼자 하는 일입니까? 우리 교회가 개척하고 지금까지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한 결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대마다 두렵고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일기와 일하시는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셨고,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좋은 나무는 뿌리가 든든한 나무입니다. 뿌리가 연약한 나무는 어려움을 당하면 곧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뿌리가 든든한 나무는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뿌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선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건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차이가 분명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교회 건물도 없는 교회라는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들풀쉼터교회가 잠시 있다 사라지는 교회가 아닌, 뿌리가 든든한 교회로, 지금은 약한 교회지만 말씀에 바로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충주에 교회를 건축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큰 교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의 마음에는 언제나 파란 하늘이 보이는 언던 위에 작은 교회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도님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만나는, 서로 사랑하는 진실한 교회가 저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들의 생활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차고 힘이 듭니다. 교회를 건축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고 힘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개척하면서부터 준비한 것이 헌금의 20%를 성도님들을 위한 복지를 위해 적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금액으로는 많이 부족한 예산이었지만, 여기저기에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교회 건축과 기존 교회를 복지관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일 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역사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도 저는 어려울 때, 우리 성도님들에게 손을 내 밀까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지금까지 교회 일을 하면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새 정전에 그랜드 피아노를 헌물 해 주신 오래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우리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데, 이 마저도 마음 놓고 이야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일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마음의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들어하시는 성도님들을 도와드리지는 못해도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자는 것이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지켜온 저의 마음입니다. 이번 성전을 건축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러한 일들을 통해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죄의 어두움이 세상을 다스릴지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골1:13-14절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희망찬 삶을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슴에 품고 그 꿈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늘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갈 때, 꿈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꿈이 있었습니다. 저를 위한 꿈이기보다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해지는 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꿈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박한 꿈도 우리 아이들마저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안 되는 꿈이 이루어지겠느냐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고, 하나는 성도님들을 위한 쉼터인 복지시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꿈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 분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대 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겠느냐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꿈의 중심인 성전이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학보다도 그 재정을 다른 곳에 투자하여 교회를 발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럴 듯한 말입니다. 온 힘을 다해 적립한 장학기금으로 후임목사님을 모시고, 유급으로 피아노 반주자를 두고 버스를 구입해서 교인들을 모셔오자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후임 목사는 어떤 분을 모셔올 것입니까? 재정이 바닥이 나면 그때는 무어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러한 것을 주장하시던 분들은 목사 때문이라거나 다른 이유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버리면 되겠지만, 우리 들풀쉼터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교회가 꿈꾸는 소망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단기간이 아닌 10년 20년 후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10년이 지나 20년을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언제까지 저가 목회를 할 수 있을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지금이라도 그만하라하시면 그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의 뜻을 따라 목회의 길을 가려고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저의 고집이 있었다면 내려 놓으려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지금까지의 우리 들풀쉼터교회가 지켜온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제 목회자 초빙도 목회자에 대한 책임도, 교회의 운영도 우리 성도님들이 책임 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교회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모여진 재정을 사용하는 데는 힘들이지 않고 단시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결코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지혜로운 사람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김으로 주인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라는 칭찬을 받지만, 한 달란트 받은 어리석은 종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채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5:30)는 주인의 엄중한 질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우리 들풀쉼터교회를 이제부터는 우리 성도님들 책임 하에 운영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힘을 모아 주의 일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일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마음과 정성을 드릴 때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생각의 틀이 긍정적인 사람은 무엇을 보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생각의 틀이 부정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만사가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보이고, 믿음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좋게 보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틀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그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 애굽의 바로왕은 그의 병거를 갖추고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지휘관들을 다 거느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처음에는 담대히 나아갔으나,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바라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고 말합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14:15-1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는 물속에 빠져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고 출14:28절에 기록하였으며,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1)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약1:6-8절에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의심을 하면 불평이 들어오고 불평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이러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께 아무 것도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꿈을 가슴에 품으면 그 꿈을 이루게 되는 줄 믿습니다. 모세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고 말씀한 것입니다.
영국 침례교 목사이며 유명한 설교가‘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목사님은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든지 마지막 인생길에 들어서면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내 힘으로, 나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러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책임지고 일하시기 시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한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떤 고난이나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고 말씀하시고 꿈을 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 군대가 추격 해와도 홍해가 앞길을 가로막아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염려와 근심,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찬송가545(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는 찬송 시와 같이 우리 눈에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우리 귀에 아무소리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탐스럽고 풍요로운 열매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고한 농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함으로 귀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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