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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816번째 쪽지!
□예수의 심장소리를 듣는 신앙
1.요한복음은 다른 3복음서에 없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유난히 많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나눈 긴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거나 간단하게 몇 줄 언급만 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말만 다섯 번 나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요한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요13:23)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의 숨소리까지 듣는 위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제자였습니다.
2.기독교 신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를 제1대 교황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의 권위를 토대로 한 어거스틴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권위를 토대로 한 펠라기우스의 신학이 있습니다. 필립 뉴엘은 그의 책 <켈트교회>에서 ‘베드로 신학’을 기독교가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면 ‘요한 신학’은 딸이라고 했습니다.
3.우리는 ‘아들 신학’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딸’신학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호전적이고 외적이고 과시적이며 정복적인 면이 강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딸 신학’은 내면을 강조하는 ‘영성 신학’입니다. 딸의 영성은 ‘예수의 심장 박동을 듣는 내면 신앙’입니다.
4.저는 오래전에 우연히 <요한묵상>이라는 책을 읽고 베드로 신학보다는 요한신학을 더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성’이라는 단어는 요한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의미도 모르고 인기에 영합하여 쓰는 유행어일 뿐입니다. 저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아무데나 막 유행처럼 쓰이는 것을 보면서 영성이 때를 잘못만나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용우
♥2020.12.5. 흙 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4'
최용우
물론 간적이 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러니 간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성경만으로는 알 수 없죠.
성경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성경에 없으니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고양이는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니 고양이는 없다...라고 '단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실제로 고양이라는 동물은 성경에 안 나옵니다.)
다른 교부문서에 보면 베드로가 로마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로마에 갔는지 안 갔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만요.^^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의 신학은 베드로의 권위를 토대로 한 어거스틴 신학이라는 겁니다.
땡큐~ 베리머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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