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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3: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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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은평) |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마3:1-12)
하나님은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서 성경 구약의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침묵하셨어요. 그 기간이 얼마예요. 400년이지요. 하나님은 400년 동안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침묵하시고 계셨어요.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한 사람이 나타나 외침을 시작하면서, 그 오랜 침묵을 깨시고 말씀하셨지요. 400년의 침묵을 깨고 광야에 나타난 한 인물, 낙타 털옷을 입고 외치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광야에 나타난 세례요한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 오심을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절기예요. 우리 각자는 크든, 작든 각자의 소망들이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소망이 있고, 기다림에는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함이 있어요.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저는 코로나가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고, 교회가 이전할 장소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을 하고 있는지요? 기다림은 유익인 것 같아요. 성경을 봐도 기다림 만큼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 없다고 말해요. 여러분, 어떤 유익을 줄까요?
첫째, 기다림은 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400년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다렸을까요? 마치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성탄절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날짜가 되면 지나가 버리는 그런 마음일까? 아니면, 뭔가 채워지지 아니하는 기갈 속에, 기다림에 기다림을 만들어 가고 있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정말 갈망하는 것이 있었을 겁니다. ‘로마’라고 하는 큰 지배 속에서 그들은 억압을 당했고, 마치 일본의 침략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과 정신까지 빼앗기는 그런 억압처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도 그 당시 로마의 통치아래 많은 억압과 침략을 받았지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왜 그들은 그토록 기다렸을까요? 살아가는 삶이 너무 힘든 것이지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마치 우리가 지금 맞서고 있는 코로나처럼, 언제 이 코로나가 끝날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여러분, 이 땅에는 슬픔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주 의사당 앞에 코로나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 갈 때 마다, 검은색 의자를 계속 갖다 놓는 거예요. 수많은 의자들이 의사당 앞에 줄지어 놓인 것들을 보라는 것이지요.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 자녀를 잃어버린 슬픔,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아픔들, 고통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며, 더 이상 의자를 줄지어 놓지 않을 그 때를 기다리며, 코로나를 이겨 나가자고 하는 마음과 결단으로 의자를 세워놓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아픔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그들에게는, 기다림이 더 있었지요.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기다렸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만큼, 어쩌면 우리는 그분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요.
사실 우리는 기다림 자체를 굉장히 힘들어하는 세대에 살고 있어요. 빨리 빨리 뭔가를 이루어 가야하고,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기다림 자체를 우리는 힘들어 하지요. 그래서 기다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요. 지루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 갈 때, 기다림을 통해서 만들어 간다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코로나가 벌써 시작 된지 1년이 되어가고, 또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이지요. 그때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대도, 너는 언제까지 버틸 텐데” “다들 코로나가 핑계되어 교회를 떠나는데, 너는 언제까지 버티고 텐데?” 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아요.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고, 목사가 목사 되지 못하고, 성도가 되지 못하는 많은 문제와 타락한 모습들이 뉴스를 통해서, 두 눈에 보여질 때, ‘이런대도 너는 언제까지 버틸 텐데“ ”너는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건데?“ 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우리는 있어요.
그러나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된 시간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하나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어쩌면 그 기다림을 길게 가지고 갈 수 있어요.
무엇인가가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이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미성숙이, 성숙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어쩌면 나를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거예요.
저는 중학교 3년 때의 성탄절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 성탄절이 되면, 교회 장식은 물론, 교회학교에서 발표회를 준비했고, 대부분 교회 중고등학교에서는 연극을 준비했어요.
그 당시 저는 처음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도 주인공이었지요. 오죽 인물이 없으면, 저를 주인공을 했냐만은,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 전부터, 배역을 정하고, 대본을 읽고, 그 당시 교회 선생님의 지도아래 밤마다 교회 모여 연극을 연습했던 것 같아요.
떨렸어요. 참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날이 오기만을 준비하면서 기다렸어요. 연극 대사와 그리고 몸동작들이 무르익어 갈 때, 드디어 성탄절 이브가 되었지요. 참 많은 성도님들이 호응해 주셨고, 칭찬과 격려가 줄을 이어갔지요. 저는 그때의 시간들을 잊지 못해요. 연극이 처음이라 참 힘들고 어려워도, 성탄절이 오기를 기다렸던 시간 이지요.
그런데 성탄절 모든 연극을 마치고, 제 자신을 뒤돌아보니 제 믿음이 얼마나 커졌는지요? 교회를 다니는 마음의 자세도 달라졌고, 예배에 임하는 제 자신의 마음가짐도 많이 성숙되어 졌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지요. 저는 이것이 복이라 믿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기다림은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시는 시간이구나!“ 를 알게 되었지요.
여러분,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그 기간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새로워지는 거예요. 내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않고, 내 고난이 빨리 물러가지 않는다고 힘들어하거나 답답해하지 아니하고, 나에게 이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주신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아를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나에게 정말 그 메시아가 필요한가?‘ ’왜 그 메시아가 나에게 필요한가?‘ 여러분, 기다림이 무르익을 때, 나는 좀 더 성숙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다림은, 나를 뒤돌아보는 회개의 시간이 된다는 거예요.
400년의 침묵을 깨고 나타난 세례요한의 외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외쳤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400년의 침묵을 깨고 처음 외쳤던 말이 바로 ‘회개하라’였어요.
오늘 세례요한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말해요.(8절) 여러분, 회개는 내가 하나님을 믿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지난날 이지요.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의미해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한번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다른 많은 목사님들의 말씀도 듣지만, 여러분이 저를 담임목사로 여기시고, 꼴을 먹는 목자로 여기시고, 한 해 동안 영적인 꼴을 드셨잖아요.
1년 52주!. 매주 마다 드셨던, 그 말씀들과 제목들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버리신 분들도 계시지만, 말씀 암송카드를 매주 받으셨잖아요. 소중하게 한 장 한 장씩 모아두신 분들도 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조용히 말씀카드와 그 제목을 한번이라도 조용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1년 동안 말씀을 먹었는데, 나는 이 말씀을 통해 내 신앙이 얼마나 한걸음 더 하나님께로 나아갔는가, 그리고 말씀을 보고, 나를 보아서, 내가 그렇게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을, 그 말씀을 놓고, 자신을 뒤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나를 회개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회개케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말씀이고,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라도, 말씀이 잘 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고, 내 마음이 잘 못된 것이기에, 말씀을 놓고 분명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은 정말 복된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교회 홈페이지 카페에 보면 1년 말씀 암송카드가 다 있어요)
여러분 왜 회개가 필요할까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 라고 되어있어요. 다시 말하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죄는 하나님을 못 보게 가려 놓는 것이지요. 이 죄가 씻어져야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기다림 속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성탄절이라는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계속 뒤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 회개해야, 안개가 걷히듯 분명 하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을 맞이하는 기쁨이지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거예요. 우리가 계속 성탄절이 맞이하고 또 지나가도, 진정 내 안에 회개함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매년 성탄에 예수님이 오셔도, 나는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성탄절이 내 안에서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다는 거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안 오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런데 나의 죄는 나의 눈을 가려 버리고 있어요. 그래서 기다림은 회개에요. 여러분, 회개는 아파요. 회개는 힘들어요. 그러나 아픔과 힘든 그 너머에는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짧은 기간이라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이 청결함을 위해 뒤돌아보고, 회개하고, 아쉬웠던 것, 미련 남들 것들을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다림은 영혼의 비상구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다림이 나를 만드는 시간이 되고, 그 기다림은 예수님을 보기 위한 회개의 시간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끝을 늘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쳤어요. 회개하라, 무엇이 가까이 왔다고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자나요. 세례요한의 외침은 바로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지요. 임박한 진노(7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 옆에 놓였다고(10절) 해요.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12절) 해요.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그 기다림의 끝을 우리는 생각해야 해요. 여러분, 우리 영혼의 마지막 출구는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인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십자가 돌아가셨어요. 부활하셨어요. 그리고 다시 오실 날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어요. 그 최종 기다림은 천국이냐, 아니냐? 이지요.
여러분, 성탄절과 천국과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데, 성탄절과 천국은 아주 가까이 연관되어 있어요. 기다림 끝에 400년의 침묵을 깨고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탄절은 내 영혼의 마지막 비상구를 기억하는 거예요.
요즘 전기 자동차가 대세예요. 며칠 전 뉴스를 보았어요. 전기 자동차가 건물과 충돌 했어요. 자동차 운전자가 대리 운전자를 불러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대리 운전자의 운전 미숙인지, 건물을 들이박는 사고가 난 것이지요.
그 충격으로 대리운전자는 가까스로 빠져 나왔는데, 자동차 소유주는 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어요. 원인을 찾아보니, 그 전기 자동차는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자동차 손잡이가 안쪽으로 감춰져 있는 차에요. 그래서 안에서 열지 아니하면, 결코 밖에서는 열지 못하지요.
그런데 전기 차다 보니, 충격과 함께 자동차의 모든 전기가 먹통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119 대원이 하는 소리가, 자동차의 전기가 다 나가 버려, 자동차 문을 열 수 없었고, 자동차를 부수고 탑승자를 밖으로 꺼냈을 때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굴 죽고 말았다는 거예요.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믿는 우리를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 우리는 늘 영혼의 비상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빠져 나갈 내 영혼의 비상구는 어디 있는지를,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냥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회개하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의 외침에 분명 귀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우리에게 천국은 어제 보다 오늘, 더 가까이 와 있는 거예요. 오늘이 지나면 한걸음 더 천국은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겠지요.
그럴 때 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정말 영혼의 비상구를 기억하고 있는가?’ 여러분, 우리는 성탄절 기다리며 마지막 나의 영혼의 비상구는 어디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마지막에 비상구를 알고 있는가? 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성탄절 어떻게 기다리시겠습니까? 그냥 시간 지나가는 데로 그냥 보내겠습니까?
기다림 속에서, ➊나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➋회개함으로 마음이 청결하여 예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➌나의 마지막 영혼의 비상구를 나는 가졌는가를 묵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절한 기다림 속에, 올해 정말 의미 있는 성탄절을 보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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