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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그 6829번째 쪽지!
□교회와 수도회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나는 개신교 신학자의 프란치스코 강의를 들으러 간 적 있다. 그 자리에서 그 신학자는 프란치스코의 사회적, 영성적, 신학적 순종과 자기 비움에 대한 가치를 일갈했다. 그의 언어가 하도 현란하고 스펙트럼이 넓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말을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그런 것이지 그의 말이 그리 깊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발제를 마친 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자동차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에게 프란치스코의 삶은 그저 먼 산 바라보기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신학교 강의를 준비하면서 작은형제회 소속 수도사들의 프란치스코에 대해서 강의하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교수는 이렇게 말을 한다. “여러분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과 하느님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겠지요? 그렇게 삽니다.” 그랬더니, 그 이야기를 똘망똘망 바라보던 새내기 수도사들이, “네 수도사님 저희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들은 밭일과 설거지를 하러 일터로 떠났다.>
신학교 교수님이신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너무 공감되어 스크랩 해 놓았다가 인용합니다. 담론은 있고 실천이 없는 것이 바로 개신교영성입니다. 입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습니다.
마치 유행처럼 ‘영성’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붙이는데, 저는 마음이 참 불편합니다. 진짜 ‘원조’가 아니면서 ‘원조’라고 붙여놓은 식당 간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영성’이라는 단어의 본 뜻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리기 힘든 단어입니다. ‘영성’이 진짜 ‘영성’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용우
♥2020.12.21. 눈발살짝 날리는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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