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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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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9장 3절-5절: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3절: 여행을 할 때 일반적으로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지고 손에 들고 여행을 하는 것은 무겁고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사람이 피곤해진다. 여행을 하려고 할 때 이런 것 저런 것을 최소한으로 챙겨서 가방에나 배낭에 넣고 다니더라도 무겁다.
그러면 본 절의 말씀이 1. 여행할 때 짐을 갖고 다니면 무겁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이다? 2. 여행할 때 짐을 갖고 다니면 강도나 도적을 만나기 쉽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이다? 둘 다 틀리느냐? 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이냐?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냐? 어떤 분이기에 여행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을까? 주님은 만능의 능력자요 세상만물을 당신이 다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다 예비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당신이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이다. 보내는 분이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할 때는 이미 당신이 무슨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믿어지기가 참 어렵다.
목회를 하려면 돈부터 생각을 하고 건물을 먼저 생각을 하느냐? 왜 목회를 못하느냐? 돈이 없어서? 돈이 없다는 것은 건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말이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그 사고는 틀린 것이다. 주님이 돈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느냐? 건물 하나 장만해놓고 전했느냐?
우리가 주님을 만능의 능력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처럼 말을 한다면 당신은 실력자다. 이 분이 복음을 언제부터 전하셨느냐?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전하셨다(마4:). 이긴 후에라야 전한다. 안 그러면 못 전한다. 그 세 가지 시험을 못 이기고 전하는 것은 전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의 사고방식이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겼느냐? 한 가지도 못 이겼다. 그러면서 예수이름가지고 자기 재산 불리는 일을 한다. 이거는 도둑이다. 말씀증거에 정신이 집중이 된 것이 아니라 자기 노후대책이나 자기 밥 먹고 사는 것에 목적이 들어가 있으면 주님의 종이 아니다.
신학교 때 선배 목사님들에게 많이 들었다. ‘주님의 종은 인정선 초월, 물질선 초월, 생명선을 초월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주님이 당하신 세 가지 시험 속에 이런 요소가 다 들어있다. 그런데 그 세 가지를 초월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옳은 말인데 실질적으로 초월이 됐느냐? 보면 한 가지나 초월이 됐을까? 사실 한 가지라도 초월이 안 되었으면 다 안 된 것이다. 물리고 물리고 물려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 시험을 다 이기고 전하시더라.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한 분이 어떤 분이냐? 첫째는 당신의 사역인 천국복음 전파의 명령에 순종으로 수종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 당신이 책임을 지고 계신다는 것. 두 번째는 세상천지 우주만물을 인간 너를 위해서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다 쓸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것.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복음 전도여행을 보통 보면 선교여행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많다. 사실 전도여행을 갈 때 돈이나 물품이나 어느 정도 챙기기 마련이다. 몸만 달랑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묘지에 갈 때까지 나그네로서의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이다. 출생을 했느냐? 영원의 고향을 향해서 가는 거다. 가는 와중에 이룰구원을 이뤄가면서 가는 여행이다. 선교여행만 생각하지 말고 네 인생살이가 여행을 하는 거다.
모든 인생은 출생에서부터 묘지에 갈 때까지가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인데 살아있는 동안 즉, 나그네 여행 동안에 물질적 소유목적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많이 본다. 결국은 버리고 갈 것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스럽게 여행을 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많이 가진 사람도 ‘어떻게 하면 도둑 안 맞고 안 뺏기고 더 늘리고 갈까?’ 하는 염려 걱정에 고통이 되고, 그나마도 아무 것도 못 가진 사람은 ‘나는 또 언제 저렇게 가질까?’ 하는 고통으로 살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스럽게 여행을 한다. 자기의 사는 목적이 물질부자 쪽으로 마음에 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늘 염려 걱정 근심이고 사람이 쾌활하지 못하고 늘 무겁다.
이제 천국복음의 신앙관점에서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출생에서부터 기본구원을 기초로 하고 천국을 향하여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모두가 살아간다. 실력구원에는 그 날에는 누림구원이 따라오게 돼 있다. 이걸 잘 모르겠으면 세상에서도 자기 배움의 실력이나 기술의 아는 면에서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 유리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성이다. 성경을 모르면 이런 이치라도 생각을 해 봐라. 이걸 늘어뜨리면 성경적으로 들어간다. 성경을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그 원리를 알고 세상을 보니 더 확신이 들어간다.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물질적 소유목적이 아니다. 물질은 주시는 대로 가지는 대로 먹고 입고 자고 쓰면서 자타의 이룰구원의 목적으로 들어있다. 그러니까 전도여행도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관한 교훈을 하라는 것이지 물질소유 목적적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관한 면에 교육의 중점을 두라는 것이다. 네 생각대로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그렇게 하지 말고.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느냐? 물질은 이미 다 준비해 놓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안 되면 다 빼앗긴다. 사람이 안 돼 있으면 많이 가진 것만큼 자기는 죽고, 가진 것만큼 죄를 짓는다. 자기뿐만이 아니라 자기 후대 자식도 망해버린다. 그런 가정을 많이 보고 있다.
‘예수 믿으면 세상부자 된다’고 하는 그런 물질목회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단 마귀가 예수님에게 그런 사상으로 성경구절을 들고 와서 시험을 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시대에 거짓과 이단자들의 ‘세상축복’ 운운하는 가르침에 거의 다 빠져있다. 주님은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여행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거짓 종들은 부자가 돼서 인생을 살라고 한다. 그리고 옳은 것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도 물질에 정을 두고 고치지 않는 자들도 결과적으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거다.
‘여행할 때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외국 선교여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외국에 선교여행을 가려면 이고 지고 가야 한다. 그러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부자 되기에 힘쓰지 말라는 것이다. 천국복음은 그게 아니라 그 말이다.
이 세상은 몸을 움직이면 쓰고 먹고 마실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니 나그네로서 당신의 온전을 위해서 살아라. 거기서 나오는 지혜, 거기서 나오는 부지런함. 이치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금방 눈에 확 나타나게 안 보이니까 감지를 잘 못하지만 물질 소유목적으로 믿으면 그 다음에는 네 머리통은 서서히 녹이 쓸고, 네 가정은 교육이 없어지고, 후대가 없어지고, 네 가정의 등불은 꺼지는 거다.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그렇게 들어간다. 서서히 되기 때문에 감지를 잘 못한다.
금방 팍 되지 않고 왜 서서히 되게 했느냐? 서서히 되게 한 것은 모든 걸 네가 보고 듣고 깨닫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서히’ 라는 말속에는 긍정적으로 보면 날 회개케 하는 복이 들어있는 거다.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여행할 때 지팡이의 쓰임새가 많은데 왜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할까? 무슨 뜻을 말씀하시려고 지팡이라고 하는 용어를 빌려다 쓰실까? 지팡이는 여행할 때 꼭 필요하냐? 첫째, 지팡이는 마른 막대기다. 부러지기도 하지만 다리가 불편할 때 다리역할도 한다. 무기로도 쓴다. 지시할 때도 쓰고.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심이 아니고 마른 막대기 같은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에 또 보면 지팡이를 가지라는 곳도 있다. 그러면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냐?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시도 때도 아닌데 밥을 달라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어느 때냐? 배가 고플 때이다. 그런데 밥 때인데도 밥을 안 먹기도 한다. 다른 걸 먹어놓으니까 배가 불러서 그런다. 그러니까 달랄 때가 있고 내칠 때가 있다. 내버릴 때가 있고 주워 담을 때가 있는 거다.
마른 막대기 같은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 마른 지팡이 같은 불완전한 인간,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 교만한 인간. 이런 인간을 의지하다가 실수하고 싸우고 원망하고 원수 되고 헤어지고 슬프고 고통스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아라. 지팡이도 약한 지팡이가 있어서 이것에 의지하다가는 사람이 크게 다친다.
부부간에도 신부는 남편을 하나님 이상 의지하지 말아라. 먼저 하나님을 제일로 놓고,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실습을 남편에게 하고, 남편은 하나님 사랑하는 실습을 아내에게 한다. 상대는 말하자면 지팡이다. 그거는 없이 하나님처럼 상대를 의지하다가 남편이 먼저 죽을 수도 있고 선악과 따먹고 도망갈 수도 있다.
인간은 다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처음에 사랑할 때 ‘나만 믿으라’고 한다. ‘나만 믿으라’고 해서 믿고 따라간 사람이 있느냐? 언젠가는 넘어질 날이 있다. 하나님처럼 믿지 말아라. 하나님처럼 믿고 있다가 어느 한 쪽이 없어져 버리면 자기는 미쳐버린다.
그 다음에 ‘주머니를 갖지 말라.’ 옷에 다 주머니가 있느냐? 사실 주머니가 많으면 뭘 넣기가 쉽다. 주머니가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주머니를 갖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일까? 주머니가 많으면 뭘 챙겨 넣듯이 받아 챙기는 마음을 갖지 말아라. ‘왜 안 주나?’ 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라. 그런 욕심을 갖지 말아라.
그 다음에 ‘양식을 갖지 말라.’ ‘무엇을 먹고 마시나?’ 하는 먹는 목적으로 살지 말아라. 먹는 위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돈을 갖지 말라.’ 비상금은 항상 갖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돈을 갖지 말라고 함은 재산을 모으는 목적으로 살지 말아라. 재산 재물 그 목적을 버려라. 재산 재물은 이용물 활용물로 써야 한다.
그 다음에 ‘두 벌 옷을 갖지 말라.’ 두 벌 옷을 가지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거 입어볼까, 저거 입어볼까’ 하게 된다. 그러니까 두 벌 옷을 갖지 말라는 것은 변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된 수단성으로 너희 몸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아라. 비겁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4절: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거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아무 집으로나 들어가서 ‘나 여기서 며칠 묵다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냐? 어느 집에 거하게 되는 경우는 그 집에서 천국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다. 그곳에 유할 동안에는 가르치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집에만 계속 있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한다. ‘우리 집 일을 거들어주면 돈을 많이 줄 테니 있어주십시오’ 해도 떠나야 한다. 또 ‘데릴사위로 있어주면 우리 집 재산을 다 주겠습니다’ 해도 떠나야 한다. 복음은 어느 한 사람의 독점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 집에 있는 동안에 천국복음을 확실히 전하고 가야 한다. 거할 동안에 그 집에 확실히 복음을 세워라.
5절: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너희를 영접한다? 뭘 보고 영접한다? 영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영접이냐? ‘천국복음을 영접하고 안 하고’가 너희들을 ‘영접하고 안 하고’가 되는 것이다.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1. ‘돈이 없어보여서 영접치 아니하거든’ 그 말이냐? 2. 거지꼴로 보여서 영접치 아니하거든? 3. 못 생겨서 영접치 아니하거든? 4. 자기들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영접치 아니하거든? 5. 천국복음을 영접치 아니하거든? 천국복음이다.
천국복음을 영접치 않으면 친형제끼리라도 대화가 안 된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말을 하게 되면 세상 일, 돈 버는 일, 누가 잘 사느니 못 사느니 그런 소리가 나갈 수밖에 없다. 복음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묻고 하면 참 재미가 있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는데 세상 사람들은 취직, 돈, 잘 사는 거 못 사는 거, 누가 잘 생겼네 못 생겼네 그런 얘기 아니면 없다.
‘천국복음을 영접치 아니하거든.’ 세상은 천국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일을 도와주고 물질로 위해주면 다 좋아한다.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아라.’ 여기에는 법이 들어간다. 복음을 영접하고 안 하고 하는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 들어간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이 들어간다. 그걸 알아야 한다.
사도들을 영접하는 것은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이것을 영접치 않는 것은 자기를 인간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짐승과 같은 본능으로 살겠다는 반항이 된다. 복음을 받지 않는 것은 참 인간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는 구원이 너를 인간으로 만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있는 건데 그렇게 안 살겠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되기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심판을 받아도 좋다’는 말은 사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 말과 같다.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신판으로 들어간다. 이건 안 믿는 사람에게 하는 말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도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잘 살겠다고 하는 자가 있다. 이건 세상적으로 살겠다는 자들이다. 복음이라 할 때는 반드시 이룰구원의 이치가 들어있다. 이룰구원의 이치가 안 들어있으면 세상이 목적이 들어간 신앙이다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아라.’ 첫째는 그 성읍의 먼지가 사도들의 발에 묻었다면 말하자면 예수님이 제자들보고 ‘너 그 동리에 갖다 왔느냐?’ 하면 ‘예, 갖다 왔습니다’ 할 것이다. 그러면 갖다 온 증거가 발의 먼지로 나타난다. 그 동리의 성읍의 먼지가 사도들의 발에 묻었다면 그 동리로 그 성읍으로 그 고을로 다녀왔다는 증거가 된다.
2. ‘이 먼지가 누구의 신발에서 떨어진 먼지냐?’ 이게 나온다. 그 먼지가 누구의 신발에서 떨어진 먼지냐? 사도들의 신발에서 떨어진 것이다. 사도들의 신발에서 떨어진 먼지라면 사도가 왔다 갔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3. 복음을 안 받으니까 사도들이 발의 먼지를 떨어버린 것은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한 거냐? ‘하나님의 심판 때 가서 보자. 너희들이 얼마나 잘 견디나 보자’ 그게 들어가 있다.
4. 또 말하자면 ‘나는 말씀을 너희들에게 다 전했다. 그런데 너희들이 받지 않았으니 심판의 책임을 너희들이 져라’ 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들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냥 옛날처럼 생각하지 말아라. 옛날처럼 믿으려고 하면 자기 얼굴이 부끄러워지는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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