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영광-찬송 (A glorious hymn)

에배소서 최용우 형제............... 조회 수 194 추천 수 0 2021.01.09 16:47:18
.........
성경본문 : 엡1:3-14 
설교자 : 최용우 형제 
참고 : 2021.1.3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hb5115.jpg

영광-찬송 (A glorious hymn)

엡1:3-14 
2021.1.3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3-5)


  1.찬송하리로다
  2.우리가 찬송
  3.그리스도 안에서 찬송
  4.은혜의 찬송
  5.영광의 찬송
  6.속량의 찬송
  7.결론 기도


1.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시135:1-3)
 찬송은 우리를 불러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찬송(讚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드러내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노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찬송에는 하나님의 영광, 엄위, 의로움, 위대함, 영원함, 전능하심, 자비, 사랑, 구원 등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드러나야 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가수라고 해도 될 만큼 노래를 잘 부릅니다. 저만 노래를 못하고 다 잘하는 것 같습니다. 별별 노래가 다 있어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노래로 다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인 노래와 찬송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노래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여 흥분시키는 노래이고, 찬송은 그 찬송의 대상이 하나님께 있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세상 노래들은 부르다 보면 사람의 감정이 고조되어 흥분이 됩니다. 서로 경쟁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그 노래가 사람들을 닭살이 돋게 하고 소름이 돋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전율이 느껴지게 합니다. 또 어떤 노래들은 사람의 마음을 음란하게 하는 노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래가 성적인 자극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음란한 옷차림에, 전자 악기로 감정의 미묘한 곳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찬송은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에 차마 찬송이라고 할 수 없는 음란을 일으키는 찬송이 너무나 많습니다.


2.우리가 찬송
 오늘 본문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불려지던 찬송입니다. 구약의 ‘시편’과 같은 성경입니다. 개정개역성경으로만 읽어보면 너무 어려운 단어들로 번역을 해서인지 음율도 안 살고 소위 말하는 라임도 안 맞습니다. ‘쉬운 성경’의 번역이 그나마 가장 잘 된 번역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원본 성경은 마치 찬송가 가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읽어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12번이나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우리에게 거저 주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우리가 예정을 입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시고.....
 찬송은 우리가 함께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가 있습니다. 성가대라고도 하는데 성가대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입니다. 일본에서는 신사에서나, 절에서나, 교회에서나 신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죄다 ‘성가대’라고 합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친일의 잔재라고 할 수 있으니 ‘찬양대’라고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라고 했을 때 그 ‘우리’는 에베소교회의 구성원들인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에베소는 로마가 자치권을 인정해 준 도시이며 이오니아의 전인구가 에베소로 모여드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의 화려한 문화가 점령한 음란의 도시였고, 교회에는 유대 기독교인들, 이방 기독교인들 노예들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서로 차별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상 가수들은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몇 사람이 그룹으로 부르지만 ‘찬송’은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어울려 불러야 울림이 있습니다. 그 우리 안에는 ‘이방인’인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께 한목소리로 찬송을 하면 확실히 찬송이 하늘로 쭉쭉 올라갑니다.


3.그리스도 안에서 찬송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합니다. 짧은 본문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찬송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찬송입니다. 그리스도를 벗어나면 그것은 찬송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믿음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캘빈은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In Christ Jesus)라는 바울의 말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을 에라스무스가 예수로 인하여(by Christ Jesus)라고 바꾼 것보다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촉되어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사상을 좀 더 분명히 전달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예수를 믿기 전의 사람은 ‘아담 안에서’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담과 연합된 자이며, 믿음이 있는 자는 예수와 연합된 자입니다. 고로 찬송은 믿음의 사람들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더불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성령의 유기체적인 연합’이 됩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그리스도인들만 연합하여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합하게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이며 동일한 성령을 소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찬송을 불러도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그것은 곡과 가사는 찬송이지만, 그냥 입으로는 세상 ‘가요’를 부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영혼 없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성령 안에서만 부를 수 있습니다.


4.은혜의 찬송
 첫 번째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과 그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찬송합니다.(4-5절)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오랫동안 ‘구원’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외에 다른 민족들을 ‘이방인’이라 불렀고 이방인들은 ‘지옥의 불쏘시게’로 쓰려고 만들었다고 공공연히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면서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마리아’사람들 조차 미워하면서 사마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들어가는 것조차 수치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선민’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든 누구든지 예수로 말미암아 창세 전에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독교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인식하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얼마나 또렷하고 실감나게 마음에 다가옵니까? 어떤 사람은 무조건 믿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믿기지는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찬송은 이런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에 감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함께 사용하는 ‘찬송가’에 그런 내용의 찬송이 너무 빈약한 것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아쉽습니다.


5.영광의 찬송
 두 번째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하셨다는 것을 찬송합니다.(8-9절).
 우리는 지어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을 그분이 계시해 주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선택과 예정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인식행위마저 주체적인 능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인간의 인식능력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촌스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스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적이 있는데, 그냥 ‘제목만 잘 지은 책’ 수준을 넘지 못해서 읽다가 만 적이 있습니다.
 저도 시를 쓰는 시인이지만, 시를 쓰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순간 번개처럼 머리 속에 시가 옵니다. 올 때 환영하면서 얼른 받아 적습니다. 그것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작곡가들은 자기가 작곡하는 게 아니라 소리 자체가 작곡한다고 말합니다. 화가들은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힘이 그림을 그리고 자기는 물감이나 붓과같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인간의 신 인식도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신적 계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하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머리로 상상하여 ‘만들어진 신’ 같은 글을 쓰는 인간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혹시 어느 순간에 그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면 자기가 써 놓은 글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신 만큼 찬송합니다.


6.속량의 찬송
 세 번째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표로 성령을 주셨다는 것을 찬송합니다.(13절)
 성령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지극히 공동체적입니다. 성령이 개인에게 임하여 방언을 하게 하거나 각종 은사를 주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도 하지만, 성령이 공동체 가운데 임하여서 공동체를 결속시키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하게도 합니다. 세계선교를 결단하게도 하고, 환란 가운데에서 신앙을 포기하지 않게도 합니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성령은 이 세상에 생명을 불러오고 유지하고 완성시키는 영입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을 끌어가는 어떤 신비한 힘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방언으로, 때로는 치유로, 이방선교로, 교회 안에서의 사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될 뿐이지 결국은 거룩한 생명의 힘인 성령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성령입니다.
 우리로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어 죄에서 건져 구원하여 주시고, 죽음으로 걸어가던 발걸음을 생명의 길로 바꾸어주신 일을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언젠가 동네 쓰레기장에 폐업한 노래방에서 나온 노래방 책이 잔뜩 나와 있어 호기심에 들추어본 적이 있습니다. 노래 제목과 번호가 무려 1만번 까지 적혀 있어서 진짜 이 세상에 노래가 많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찬송가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영가가 1만곡 가까이 불려졌었다고도 합니다.


 7.결론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찬송은 은혜의 찬송, 영광의 찬송, 속량의 찬송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찬송할 때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하늘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최용우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의 목소리가 예쁘지 않고, 음악적인 테그닉은 서툴지만 진심을 다하여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립니다. 할렐루야 영광 받으시고 찬송 받으시옵소서, 아멘 

 

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정용섭<찬양의 이유>2005.1.2설교 http://dabia.net/xe/3854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 에배소서 영광-찬송 (A glorious hymn) 엡1:3-14  최용우 형제  2021-01-09 194
16990 에배소서 영광-찬송 엡1:3-14  정용섭 목사  2021-01-09 222
16989 사무엘상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 삼상6;10-16  전원준목사  2021-01-09 335
16988 누가복음 악어의 눈물 눅6:27-36  이영교 형제  2021-01-08 285
16987 창세기 욕망의 윤리학, 하나님 안에서 욕망하라! 창1:26-29  백소영 교수  2021-01-08 198
16986 마태복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마18:21-22  김선민 자매  2021-01-08 162
16985 마태복음 용서의 비밀 마18:23-35  문지영 자매  2021-01-08 199
16984 창세기 바벨의 언어에서 성령의 언어로 창11:1-9  정경일 형제  2021-01-08 241
16983 누가복음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눅9:3-5  김경형목사  2021-01-06 157
16982 마가복음 하늘이 열리는 세례 막1:4-11  강승호목사  2021-01-05 171
16981 신명기 말씀은 가까운 곳에 있다 신30:11-14  김기석 목사  2021-01-04 293
16980 욥기 모호한 삶 앞에서 욥29:11-20  김기석 목사  2021-01-04 172
16979 디모데후 기초가 튼튼하면 딤후2:14-19  김기석 목사  2021-01-04 298
16978 마태복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 마15:1-9  김기석 목사  2021-01-04 198
16977 데살로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살전3:1-5  김기석 목사  2021-01-04 470
16976 창세기 사람을 보는 눈 창24:10-14  김기석 목사  2021-01-04 212
16975 빌립보서 두려움 없이 빌1:27-30  김기석 목사  2021-01-04 231
16974 창세기 에섹과 싯나의 시대를 넘어 창26:26-33  김기석 목사  2021-01-04 160
16973 누가복음 승리하는 삶 - 나의 강점을 조심하라 눅4:11- 13  김기성 목사  2021-01-03 329
16972 히브리서 믿음으로 살리라(신년 주일) 히10;38-39  전원준목사  2021-01-02 586
16971 누가복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눅9:1-2  김경형목사  2020-12-30 132
16970 로마서 구원의 사역이 영원토록 롬16:25-27  강승호목사  2020-12-29 123
16969 갈라디아 종에서 아들로! (from servant to son) 갈4:4-7  최용우 전도  2020-12-27 238
16968 갈라디아 행위에서 존재로! 갈4:4-7  정용섭 목사  2020-12-27 208
16967 누가복음 하나님 앞에 다시 서다 눅15:11-24  김기성 목사  2020-12-27 344
16966 마태복음 내 안에 있는 헤롯을 밀어내라 마2:1-12  김기성 목사  2020-12-25 319
16965 누가복음 하나님의 구원 계획 눅2:22-40  강승호목사  2020-12-25 241
16964 시편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시107:19-20  김남준 목사  2020-12-24 308
16963 디모데후 주께서 하실 수 있나이다 딤후2:9  김남준 목사  2020-12-24 213
16962 시편 길 찾게 하는 연단 시119:67  김남준 목사  2020-12-24 271
16961 욥기 나의 믿음, 순금 같이 되어 욥23:10  김남준 목사  2020-12-24 275
16960 욥기 죄인을 건지심 욥22:30  김남준 목사  2020-12-24 83
16959 욥기 하나님이 낮추실 때 욥22:29  김남준 목사  2020-12-24 185
16958 욥기 화목을 이룬 자의 행복 욥22:28  김남준 목사  2020-12-24 177
16957 욥기 네 기도를 들으실 때 욥22:27  김남준 목사  2020-12-24 262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