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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나팔 소리

에스겔 김기석 목사............... 조회 수 266 추천 수 0 2021.01.15 22: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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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겔33:1-6 
설교자 : 김기석 목사 
참고 :  
파수꾼의 나팔 소리
겔33:1-6
(2020/08/23, 성령강림 후 제12주)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네 민족의 자손 모두에게 전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만일 내가 어떤 나라에 전쟁이 이르게 할 때에, 그 나라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자. 이 파수꾼은 자기 나라로 적군이 접근하여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자기 백성에게 경고를 하였는데도 어떤 사람이 그 나팔 소리를 분명히 듣고서도 경고를 무시해서, 적군이 이르러 그를 덮치면,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탓이다. 그는 나팔 소리를 듣고서도 그 경고를 무시하였으니, 죽어도 자기 탓인 것이다. 그러나 파수꾼의 나팔 소리를 듣고서 경고를 받아들인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파수꾼이, 적군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고, 적군이 이르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덮쳤다면,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파수꾼에게 묻겠다.]

∙불길한 종소리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뭔가 불길하고, 속상하고, 암담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든 나날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을 겁니다. 주님의 교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촛불을 옮기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19는 그 동안 숨겨져 왔던 한국 교회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담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예수님이 그렇게도 추하게 소비되는 현실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도된 믿음은 무신론보다 위험합니다. 이성이 작동하지 않고, 상식이 통용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광신은 반사회적 행태로 나타납니다. 감염병이 확산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자가 격리 지침을 어기는 것은 물론이고, 확진자로 판정되어도 의료당국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보건소 직원에게 몸을 부비며 ‘너도 감염되었으니 검사 받아보라’고 말하며 침을 뱉은 이도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하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조작이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면 예배를 잠시 중단해달라는 요구를 교회에 대한 박해라며 거절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자기들만이 세상이 작동되는 원리를 훤하게 꿰뚫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데 모두가 속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의 귀에는 환청처럼 ‘조종’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충격 때문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성자 프란체스코>에 나오는 일화가 떠오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꿈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다미아노 성인을 만납니다. 당황한 프란체스코는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천국에 계시잖아요, 그렇죠? 그럼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성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눈물이지. 나는 자네가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서 평화롭게 자는 모습을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왜 잠만 자는가, 프란체스코! 부끄러운 줄 알게! 교회가 위험에 처해 있다네.” 자기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다미아노는 “손을 뻗치게. 자네의 어깨로 교회를 받쳐서 그것이 쓰러지지 않도록 하게”라고 말합니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성자 프란체스코1>, 김영신 옮김, 열린책들, 2008, 76쪽).

우리가 무너지고 있는 교회를 어깨로 떠받쳐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꼭 해야 할 일이지만 쉽게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앉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다시 시작할 용기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스탠포드 대학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 자꾸만 울혈처럼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최고의 의사 중 하나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가히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때에 뜻밖에도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완치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끝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 148쪽)

산산조각난 느낌, 앞길에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 이건 어쩌면 벼랑 끝에 선 느낌일 겁니다. 그도 죽음을 앞둔 이들이 겪는다는 슬픔의 5단계를 다 거칩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이건 아닐 거야‘라고 부정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닥쳐온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껴 분노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런 저런 길을 모색하며 병과 협상을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우울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질병 혹은 죽음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폴 칼라니티는 이 과정을 역순으로 겪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의 암 투병기를 담은 책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 루시는 남편이 남긴 글의 에필로그를 통해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261쪽). 그는 자기 삶의 스토리를 세상에 남김으로 많은 절망하는 영혼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꼭 이런 심정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너진 교회의 잔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교인들을 혐오하는 말이 난무하고, 어느 식당에서는 기독교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을 붙이는 현실입니다. 미국 미시시피에서는 집합금지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다고 천명한 교회에 누눈가가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영적인 어휘가 붕괴된 현장에 남은 것은 종교적 언어의 파편입니다. 구원, 은혜, 용서, 화해, 치유, 기도라는 단어들이 예전과 다름없이 사용되지만, 구원의 능력도 은혜의 감격도 용서의 따뜻함도 화해의 기쁨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그들은 ‘애찬을 망치는 암초’, ‘바람에 밀려다니면서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 ‘가을이 되어도 열매 하나 없이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 ‘자기들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 ‘길 잃고 떠도는 별들’(유1:12-13)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불어넣어주신 숨결을 따라 예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을 뿐, 예수적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때 우리는 실천적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으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그분을 진실하게 사랑하면 그분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교신 선생님은 ‘불초不肖 신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불초란 어버이의 덕망을 닮지 못함을 뜻합니다. 불초 신자,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참담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파수꾼을 세우시는 하나님
에스겔33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4-24장)과 열국에 대한 심판(25-32)에 이어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제시되는 첫 단락입니다. 무너진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 백성의 덕성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게 에스겔의 메시지입니다. 물론 회복은 무너짐을 전제로 합니다. 낡은 것은 무너져야 하고, 더러운 것은 정화되어야 합니다. 앞서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겔6:7)라는 구절을 23번이나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경외하지도 않고,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은 엄중하게 집행될 것입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로 인하여 모욕당하고 있는 현실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그런 낡은 것들을 무너뜨리십니다.

에스겔은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괴롭고 분통이 터지는 심정에 잠겨 있었는데, 주님의 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겔3:14). 예언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는 사람입니다. 괴롭고 분통이 터지는 심정은 에스겔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등을 돌린 백성들을 심판하시지만 그들을 아주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워 경고의 말을 하게 합니다. 악인들에게 그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하는 것이 에스겔의 소명입니다.

에스겔 33장은 그의 두 번째 소명 이야기입니다. 파수꾼의 이미지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적의 동태를 살피다가 적이 다가오면 백성들에게 알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GOP를 담당하는 부대의 군목으로 재직할 당시 저는 가끔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찾아가 격려하곤 했습니다. 나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초병들의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파수꾼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적이 다가올 때 파수꾼은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경고를 해야 했습니다. ‘적’이라고 번역된 ‘헤레브’(chereb)는 실은 ’칼’이라는 뜻입니다. 칼이 다가온다는 것이 파괴가 임박했음을 뜻합니다. 나팔 곧 ‘쇼파르’(showphar)로 양의 뿔을 잘라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을 경고할 때도 불었고, 백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때도 불었고, 대속죄일에도 불었습니다. 파수꾼의 의무는 위험을 미리 알아채고 경고의 나팔을 제때에 부는 것입니다. 경고의 나팔을 불었는데도 사람들이 그 소리를 무시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직무를 태만히 해서 백성들이 경고를 받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요즘 저도 반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는 나팔소리가 분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경고의 나팔이 아니라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나팔을 불었던 것은 아닌가?’ ‘악을 악이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닌가?’

∙우리가 부를 노래
귀가 어두워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을 뒤흔들어 놓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달콤한 이야기, 부드러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 꽤 괜찮은 신자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에스겔도 그런 세태에 절망했습니다.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들어나 보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를 보러 오듯이 너에게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달갑게 여기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를, 악기를 잘 다루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나 부르는 가수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시켜서 한 그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말씀이 이루어지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33:31-33)

듣기만 할 뿐, 복종하지는 않는 현실, 입으로는 달갑게 여기면서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욕심을 따르는 현실 속에서 예언자들은 마치 좋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나 부르는 가수로 여겨집니다. 오늘의 상황도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무엘의 고백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삼상3:10) 사무엘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했고, 내키지 않았지만 심판의 메시지를 엘리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도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등지고 살면,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면 망한다고 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믿음을 기초부터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이 천둥처럼 울려옵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고후13:5)

교회에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십시오. 몽매함 속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혀를 차지 마십시오. 불의와 공모하며 살았던 삶을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법에 기대 살았던 삶을 참회하십시오. 지금 세상이 교회를 조롱한다 하여 함께 조롱하며 ‘애굽’에 머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로 나갈 용기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압도적인 무력으로 사람들을 강압하던 로마제국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꿈꾼 것이 예수 정신 아닙니까? 방해물이 많아도 길을 찾아야 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메리 올리버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게 뭐죠?/이 한번 뿐인, 거칠고 값진 생으로/당신이 하고 있는 게 뭐죠?“(So what is it/What is it, you’re doing/with this one wild and precious life of yours?).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서 움터 나오는 푸른 싹이 장엄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복음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아름답습니다. 잠시 지체될 수는 있지만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벌걸음을 멈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잠시 호흡을 고른 후에 다시금 그리스도의 생명 노래, 사랑 노래를 함께 부릅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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