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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서 사도로 성장된 게 있습니까?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85 추천 수 0 2021.01.20 09: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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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6-1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6-11: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6: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여지는 육신의 각종 병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면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많은 깨달음을 준다. 육적인 면을 볼 때 영적인 면에서 깨달을 줄을 알아야 하나님 앞에 하나님 기준에 사람이 온전하게 바로 만들어져 가게 된다. 단순히 육신의 병만을 생각을 하면 그 병을 치료해서 건강하게 될 런지는 모르겠지만 인격 면에서 성품적인 면에서는 하나도 못 고치고 가게 된다. 그리고 육적인 병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떻게 바로 고쳐져야 되겠는가하는 촉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걸 깨닫지를 못하면 더 큰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지금 자기가 육신이 건강한가? 육신이 건강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즉, 천국복음을 잘 받아들여서 육신이 병이 들기 전에 자기의 인격 면에서 속사람을 잘 성장시키고, 따라서 육신의 건강을 잘 조절을 해야 한다. 육신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섬길 줄을 모르면 자라지를 못한다. 자기가 신앙 믿음이 자라려면 못 깨달아도 성경을 늘 보고 설교시간에 졸지 말고 잘 듣고 깨달아야 한다. 만일 자기는 성경을 안다고 하면서 섬길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자기 속에 교만성을 못 고친 것이다. 교만하면 은혜를 못 받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섬길 줄을 안다. 알면서도 섬길 줄을 모르면 이것은 순종을 못하는 병이니 즉, 교만성이니 이런 경우 하나님 앞에 얻어맞는다.

 

그런데 한 교회에 나가도 거기에서 깨닫지를 못한다면 그 교회의 설교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면 자기 마음에 맞는 교회를 자기가 찾아가든지, 자기가 교회를 세우든지 해야 한다. 이건 인간 편에서 말하는 거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든지 인간으로 생겨났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복음이란 사업 크게 하자. 일 크게 하자그게 아니라 사람이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 중에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 쉽게 말하면 예수님으로 닮는 것. 예수님으로 닮으면 모든 만물이 자기에게 순종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여 모든 면의 병을 고침을 받아서 비뚤어지고 꼬부라지고 귀머거리 되고 벙어리 되고 한 여러 가지의 자기의 성격과 성질 면을 온전하게 성장되고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속화된 교회는 사람의 속사람을 하나님 앞에 바로 고치는 건 없고 어떻게든 재미있게 하려고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들을 많이 한다. 그런다고 해서 속사람이 고쳐지느냐? 목적과 위주가 그렇게 들어가 있으면 못 고친다. 사람이 안 고쳐진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보면 나이는 많은데도 어린애만도 못한 어른이 있다.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까 젊은 사람보다 밥은 많이 먹고 오랫동안 살았겠지만 참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는 사람이 하나도 안 됐다. 그러면 이게 뭐냐? 사람이라면 사람의 속을 가져야 하는데 사람 속은 안 보이고 짐승처럼 보이니 이게 산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나이가 많으면 세상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 살기만 했지 경험이 없다면 이게 뭐냐? 결국은 자기 편한 대로만 계속 해달라는 것뿐이다. 나이 많다고 젊은 사람에게 명령이나 할 거고. 사람이라는 게 그래서야 쓰겠느냐?

 

천국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먼저 지식을 전환해야 한다. 자기가 가진 지식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이기 때문에 이건 사망적인 지식이니 이걸 바꿔야 새로운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정확한 판단이 나오게 된다.

 

먼저 사람의 중심을 보는 지식을 가지고, 그리고 자기부터 고치고. 지식이 바로 되면 그 다음에는 모나고 거칠고 굽어지고 한 자기의 성격 성질들을 모두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이 계속 은혜를 받게 되고, 계속 은혜를 받다가 보면 사람이 크게 된다. 만일 고치지 못하면 사람에게 짓밟히게 된다. 사람이면서 무시를 당하게 된다. 고침을 받지 못하면 받은 은혜를 자기의 쓸모없는 감정을 가지고 둘러엎는다. 그러니 스스로 고통이고 불행을 만들게 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들으면 고역스럽게 들린다. ‘예수 믿어라. 교회 가자하면 이상하게 자기의 자유를 뺏기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고역이 아니라 죄에서 탈출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만드는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이고, 나중에는 고상한 존귀 영광자가 된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너를 우두머리로 만들어 주려고 그런다. 첫째 가는 자로 만들어 주려고 그런다. 그래서 깨닫는 참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자유롭게 만든다. 그러니까 사람 되는 이것이, 주님 닮는 이것이 세상의 부귀영광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는 거다.

 

7-9: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니 그렇게 소문이 나간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세례요한이 살아났다네. 엘리야가 살아났다네. 옛날 선지자 중 하나가 살아났다네하는 소문이 들리니 분봉 왕 헤롯이 이 소문을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왜 그런가 하니 분봉 왕 헤롯이 자기도 능히 아는 죄를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지적을 해줬다. 그런데 그 지적을 듣지 않고 세례요한을 죽였다. 예수님이 보낸 그 사람을 헤롯 자신이 죽여 버렸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이적기사가 나타나니까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나?’ 하고 놀란 것이다.

 

이 세례요한은 주님이 당신 앞서 보낸 마지막 선지자인데 이 요한까지 죽였으니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이냐? 헤롯은 하나님 앞에 큰 죄, 백성들 앞에 큰 죄, 만물 앞에서도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냥 예수를 죽이고 선지자를 죽이고, 사람 대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게 누가 보낸 것이냐?’ 할 때는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니 이런 세례요한은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죽였으니 그 형벌이 얼마나 크겠느냐?

 

예를 들면 세상 사람들이 일대 일로 감정이 있어서 한 사람을 죽였다면 법정에 서서 심문을 하고 답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재판이 오래 간다. 그런데 그 나라의 지도자를 죽였다면 그 재판이 그렇게 오래 가겠느냐? 그 지도자 안에는 백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도자를 죽인 것은 일대 일로 싸우다 죽였다그게 아니라 백성들을 죽인 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온 만물 앞에 보냈고, 인간 앞에 보냈고, 하나님 앞에 보낸 심부름꾼인데, 다시 말하자면 특명으로 천국의 대사로 보낸 것인데 그를 죽이면 어떻게 되겠느냐? 누가 노하겠느냐? 하나님이 노하시게 되면 일대 일로 죽인 것만이 아니라 네가 그 아래서 심부름을 했지하며 다 잡아서 심판이 들어간다.

 

하나님 앞에 큰 죄는 자기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쉽게 말해서 이 교회에서 죄를 지었다고 하면 그 사람 뒤에는 교회의 얼굴이 있고 목사의 얼굴이 있고 부모의 얼굴이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얼굴이 있으니 자기로 인해서 그 모든 분들이 얼마나 욕을 먹겠느냐? 교회에서 누군가가 돈을 떼먹고 도망을 갔다고 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그 사람 교회 다니는 데요하면 어느 교회 다닙니까?’ 해서 궁극교회 다닙니다하면 궁극교회에 찾아와서 목사님,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신상을 묻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얼굴이 뭐가 되겠느냐? 목사의 얼굴이 뭐가 되겠느냐?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 교인이 우리교회에 있다고 한다면 온 동네 사람들이 , 그 교회 가지 말아라. 거기는 사기꾼 교회다. 맨 거짓말만 한다이런 소리가 들리게 된다. 이러면 하나님 앞에 형벌을 어떻게 다 받겠느냐?

 

우리교회 교인들은 더더군다나 하나님 앞에서 주일을 더 잘 지켜야 한다. 주일날 백화점에 가서 뭘 사서 들고 다니다가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그 교회는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던데 교인들이 뭘 사 들고 다니네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온 교회가 욕을 먹고 전도문을 딱 막아놓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교인을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 목사가 그런 교인을 알 때는 가만 둘 수가 없는 거다. 왜냐하면 주님의 얼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있다. 온 교회 교인의 얼굴이 들어있다. 그러니 끄집어내야 한다. ‘당신이 원하는 교회로 가십시오그렇게 되는 거다.

 

헤롯은 하나님 앞에 큰 죄, 백성들 앞에 큰 죄, 만물 앞에서도 큰 쥐를 지은 것이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사람 앞에, 만물 앞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안 된다.

 

헤롯의 생각에 세례요한을 죽여서 없애버리면 자기의 고통은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다가 세례요한의 목을 베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옥에 가둔 이유는 헤롯이 제수를 빼앗는 죄를 지었는데 세례요한이 그걸 책망을 하니까 그게 듣기 싫어서 세례요한을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다.

 

옥에 가둔 세례요한을 헤롯의 생일날 사람을 보내서 목을 베었다. 헤롯이 세례요한이 죽은 것을 분명히 확인을 했다. 어떻게 확인을 했느냐? 헤로디아의 딸이 소반에 세례요한의 머리를 담아 가져와서 보여줬다. 그래서 죽은 것을 분명히 확인까지 했는데 소문에 들리기를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사실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니 이게 세례요한이 아닌가?’ 하고 벌컥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주님의 구원역사는 당신의 종들이 죽었다고 해서 창세 이후 마지막 그날까지 중단되지는 않는다. 네가 죽었으면 죽었지 중단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숨겨놓은 죄까지 양심적으로 알게 하고 당황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다.

 

우리 같으면 이런 일을 겪는다면 아무리 남이 모른다고 해도 신앙 양심적으로 회개의 기도를 하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일지라도 내 양심이 찔리는 것이 있다면 회개를 해야 한다. 신앙양심을 어기게 되면 남이 몰라도 신앙인격 면에서 부끄러워진다.

 

헤롯적인 즉, 헤롯의 정신 사상 마음을 가진 사람은 회개가 안 된다. 그래서 헤롯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회개가 안 되므로 성경에 이 족속아, 이 씨야, 그 후손아, 패역하고 어그러진 세대여그렇게 들어간다.

 

왜 회개가 안 되느냐 하면 회개하라고 헤롯 자기에게 보내주신 선지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그 안에 든 의미가 너의 장래를 밝혀준다. 미래를 밝혀준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밝혀주고 너의 미래를 가르쳐 준다. 그런데 그 정신 사상을 다 죽이니 앞날이 캄캄한 것이다. 그러니 회개가 안 된다.

 

옳은 진리지식은 그게 선지자 역할이 되고 빛 된 역할이 되는 건데 네가 그 옳은 진리지식을 죽이면 너는 깨닫는 면에서 캄캄해지는 거다. 분별하는 면에서 분별이 안 되니 캄캄하다. 왜 그러냐? 선지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헤롯은 도대체 누구인지 보고자 했고, 또 오랜 후에 예수님께서 잡혀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 잡히면 안 잡히는 건데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헤롯에게 잡혀주셨을 때 이 헤롯이 예수님으로부터 이적기사 행함을 한 번 보고자 했으나 못 보게 되니까 즉, 예수님께서 헤롯 자기가 보는 앞에서 이적기사를 안 일으키니까 예수님을 더 조롱했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냈다. 그동안 헤롯과 빌라도와는 서로가 앙숙이었는데 헤롯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내는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졌다.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서로 친구가 됐다.

 

예수님을 살리는 일에 서로 친구가 되어야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으니 더럽고 악하고 한심한 친구들이다. 친구도 살리는 친구를 사겨라. 서로 짝짝꿍 되어서 하나님의 진리이치의 말씀을 죽이는 목사들이 많다.

 

성도가 진리를 죽이는 일을 하면 자기는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너는 어두워진다. 사람이 어두워지면 갈 길을 모른다. 판단도 안 되고. 하나님께서 자꾸 파도와 같은 사건을 겹겹이 몰아치면 난감한 것이다.

 

10-11: 오전 시간에는 제자들을 보낸 것을 보았고, 예수님도 병을 고치시고 제자들도 병을 고치고, 그 소문이 나갔고, 그 다음에 10절에 보니 처음 보낼 때는 제자로 보냈는데 여기서는 사도들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거는 뭔가를 암시하고 있다.

 

나갈 때는 제자로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사도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제자로 보낼 때는 무엇으로 돌아와야 되겠느냐? 사도가 돼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보고할 때는 사도로서 보고를 한다.

 

왜 이렇게 표현이 달라졌을까? 제자란 순종하여 배운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심부름을 가는 것도 배우는 것, 이것저것 말씀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배우는 것, 청소를 하는 것도 배우는 것, 밥 짓는 것도 배우는 것, 빨래하는 것도 배우는 것, 말하는 것도 행동 걸음걸이도 다 배우는 거다. 배워놓으면 그게 숙달이 되면 선생이 된다.

 

제자란 순종하여 배운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사도라는 것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한 사람인데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나갈 때는 제자로서 순종해서 나갔고, 들어올 때는 전도하고 고치고 했으니까 그만큼 실력이 붙어왔으니 사도다. 말씀에 순종하며 동시에 가르치고, 가르치며 동시에 순종하고. 그러니까 순종하는 자가 은혜를 받고 커지는구나.

 

순종하면서 자라지는 못하고 가르치려고만 하고, 성경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자가 남의 말을 수집하여 가르치고, 욕심내고 빼돌리고 빼앗고 도둑질하여 자기 얼굴을 내는 자가 목사들 중에 많다. 남의 것을 훔쳐다가 자기 얼굴을 내는 자가 많다. 그게 어디 제자냐?

 

제자로서 순종하여 배웠느냐? 그렇다면 사도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 스스로 제자라 하면서 스승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너는 내 제자로구나하는 것은 스승이 할 말이지 내가 나는 제자다할 수 없는 것이다. 제자로서 순종도 안 하면서 사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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