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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1:2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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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
성찬이 주는 은혜
(고전11:28-29)
성찬은 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되는 요소 중에 하나로 들어가 있어요. 바른 교회란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어져야 하고, 그리고 성찬이 있어야하고, 말씀에 따라 잘 사는지 못사는지, 권면과 권징이 있는 곳이 바른 교회라는 하지요.
여러분도 들어 보셨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찬을 통해 ‘나를 기념하라’ 라고 하셨어요. 이 기념하라는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에요. 생각하는데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풀이하고, 반복해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기념하라’는 의미예요.
여러분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어요. 눈앞에 보여 주어야만 그때서야 다시 기억하는 습성이지요. 눈에 보이지 아니하면 서서히 잊어버리지요. 그래서 눈에서 보이지 아니하면, 마음까지 떠나고요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우리 본성은 예수님을 잊고 살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 나오기가 힘들어도, 철저히 방역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을 쉽게 잊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코로나가 장기화 되니까 교회 안가본지 벌써 1년이 넘은 분들이 그렇게 많데요. 교회 안 가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멀어지고, 그러다 보면, 믿음까지 멀어지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은 가만히 놔두면 금세 방전되어요.
얼마 전 배터리를 분명히 충전해 놓았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사용하려고 보니 작동을 안 하는 거예요. 분명히 충전해 놓았는데, 그 사이에 벌써 방전이 되어 버렸어요. 믿음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놔두면 믿음도 방전 되요. 장기화된 코로나가 우리 믿음을 그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기에, ‘나를 기념하라’ 하시는 것은, 잊지 말고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도구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이라는 것이지요. 성찬에 참여 하면서,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에 있어서 성찬이 대단히 중요해요.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하는 성찬이 너무 가벼워졌어요. 성찬에 대한 중요성도 많이 사라졌고요. 그저 교회에서 하니까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아무의미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성찬은 큰 은혜도 있지만, 책임도 있어요. 그래서 성찬을 받을 때 잘못 받으면 큰일도 나요. 그것을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오늘 성찬이 주는 은혜는 무엇이고, 그 은혜를 받기 위해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성찬은 아무나 참여할 수 없다는 거에요. 교회의 긴 역사 속에서 성찬의 자격을 이야기 할 때, 가톨릭에서는 성찬을 받을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신앙과 상관없이 교회 오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해요. 세례교인 상관없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교회에 오면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래서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면, 성찬식을 하는데 그 사원에 관광을 온 사람들까지도 모두에게 성찬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요. 믿음과 상관없이, 모두 다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마시게 하지요. 이것이 카톨릭에서 하는 성만찬 이예요.
여러분, 성경에 ‘나를 기념하라’는 것은, 기억하라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도록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거고요,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에 대해서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이 안에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실제로 알고, 깨닫고, 누릴 수 있는 자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불신자들은 절대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기념할 수 없어요. 나를 향한 그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알 수 없고,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성찬은 꼭 영적으로 거듭난 자만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꼭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가 없으면 아무리 성찬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가톨릭과는 달리 우리 개신교에서는 이 은혜를 정말, 진짜로, 실제로 경험한 세례교인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교회법으로 정해 놓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성찬은 누구나 참여할 수 없다는 것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찬식은 예수님과 나 사이에 맺어 있는 ‘은혜의 언약’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예요. 성찬식을 함으로 그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그냥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지’ 를 우리가 기억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 약속을 우리에게 상기 시켜 주시는 거예요. 지옥 갈 수 있는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나의 이 공로를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이 그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 약속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고백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떡과 피를 마심으로 저도 그것을 기억하며, 죄 짖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찬식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죄를 도려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앉아 있고, 그리고 그냥 차례가 와서 성찬을 받는 사람을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거지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성찬식에, 저를 기억하시고,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그래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해! 너를 영원토록 사랑할 꺼다” 예수님의 약속이 그 성찬 안에 들어 있는데, 우리는요? 아무런 고백 없이 그저 받는다는 것이지요.
오랜 역사 속에서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믿고 있어요. 성찬식을 할 때, 물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 물질이 바로 떡과 포도주이지요. 그래서 그 성찬을 받아먹는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떡과 포도주, 그 물질 자체에 힘이 있다는 거예요. 떡과 포도주를 먹는 그 순간,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성찬을 하면서 신부의 그 기도가 중요한 거예요. 그 기도의 능력으로 살과 피로 변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꿔주는 신부의 기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 성찬의 참여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악한 사람이든, 죄인이든, 나쁜 사람이든 성찬을 받는 그 순간,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 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래서 성찬 그 자체가 한마디로 구원의 수단으로 설명이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떡을 가게에서 사고, 포도주를 사지만, 가톨릭에서는 떡과 포도주를 아주 귀중하게 다루지요. 그런데 신앙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냐 하면, 불신자가 와서 이 떡과 포도주를 마시면 갑자기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들어오니까, 아프던 병도 다 낫고, 힘도 쏟고, 하는 일 마다 잘될 것이라고 하는 미신적인 성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성찬의 효력이 물질, 떡과 포도주에 있고, 그 물질을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꾸는 신부에게 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점점 물질이 우상숭배 화 되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믿는 신앙과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성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믿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단’이라는 단어가 우리 개신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이 성찬이라는 보조 수단을 잘 사용하게 되면, 성도들에게 신앙의 성장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성찬을 믿음으로 참여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성찬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 알고, 깨닫고, 그리고 나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찬이 주는 은혜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나 또한 예수님을 기억하여, ‘죄를 떠나, 하나님 앞으로 내 믿음은 한걸음, 한걸음 나가겠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그래서 우리가 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성찬을 대하기 전에, 자신을 살펴야 하는 거예요.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고는, 성찬에 임하지 말라는 거지요.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고 그냥 내 앞에 오니까 받고, 주니까 먹는 그런 성찬식이 된다면, 이것은 성찬으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냥 받아먹고 마시다가 잘못하면 하나님께 도리어 죄를 지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경고하는 거예요.
27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시작) 29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받으려고 성찬을 먹고 마시는데,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어 잘못 하면 죄를 먹고 마시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잘못 성찬을 받아서 하나님께 나의 죄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해서 아직 화해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 주일날 성찬을 할 때, 스스로 성찬을 받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지요. 또는 성도가 누구와 싸워서 맞거나, 폭행을 하거나, 이 사실이 명백하게 들어난다면, 교회와 당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성찬을 금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실정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야 죄를 짓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죄지 짓지 못하도록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찬식 때는 목사님은 꼭 이런 설명을 해야 해요. ‘마음에 부대끼는 분들은 받지 마시고, 그냥 지나가서도 됩니다’ 라고 꼭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예요. 성찬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펴보지 아니하고 그냥 성찬을 받다보면, 은혜보다 죄를 더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꼭 성찬을 받으시기 전에, 자신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여러분 자신을 뒤돌아보아 예수님 앞에 죄송하고, 성찬을 받기가 부담스러우면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받아 놓기만 하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내 앞에 왔을 때 지나가게 하는 것이 죄짓지 않는 것입니다. 꼭 자신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찬은 분명 우리에게 은혜를 줍니다. 기념하라는 의미 안에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거듭난 자만이 알 수 있기 때문에, 거듭난 자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은혜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고, 나는 그 은혜를 힘입어 죄를 멀리하고 주를 위해 살겠다는 나의 고백이 그 안에 있습니다
성찬을 대할 때 우리는 은혜 받으려 하다고, 오히려 죄를 지을 수 있기에, 꼭 자신을 살피고, 합당한 성찬을 받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로 성찬에 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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